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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75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3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75화

 

75화

 

 

 

 

 

 

한편 풍천은 거구 청년이 정말로 장한들에게 다가가자 어깨를 으쓱하고 빈 탁자로 갔다.

 

밖으로 나가서 다른 객잔을 찾아봐도 되지만 그냥 이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첫 번째 이유는 객잔의 이름이 마음에 들었고, 두 번째는 네 명의 장한이 신마성 놈들이기 때문이었고, 셋 번째 이유는 거구 청년이 그들에게 당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었다.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있는 친구야. 저런 사람이 신마성 놈들에게 당하도록 놔둘 수는 없지.’

 

자칫하면 백초령에 대한 걸 알아내지도 못하고 신마성 놈들에게 쫓길지 몰랐다.

 

그래도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순진한 덩치가 강호에서 사라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었다.

 

‘일이 꼬이면 남창으로 직접 가서 알아보지 뭐. 어차피 위태곤이 데려갔으면 그곳으로 갔을 거야.’

 

“어이, 점소이!”

 

풍천은 일단 점소이를 불렀다. 그게 격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라도 되는 듯 흑서귀가 날아가며 거구 청년을 공격했다.

 

점소이는 즉시 풍천에게 달려왔다. 한쪽에서 싸움이 벌어졌는데도 그리 불안해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저런 싸움이 자주 벌어지는가 보군.’

 

사실이 그랬다. 그리고 어차피 점소이나 객잔 주인이 말린다고 싸움을 멈추는 강호인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싸우는 자들이 죽든 살든 그들은 그들의 할 일만 하면 되었다.

 

물론 손해배상은 확실히 받아내야겠지만. 패한 사람에게 말이다.

 

점소이는 엽차를 먼저 따라주고는 친절함이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뭘 드릴깝쇼?”

 

풍천은 동전 이십 문 한도 내에서 제일 빨리 되는 요리를 두 가지 시켰다. 그러고는 엽차로 입을 축이고 싸움이 벌어지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사이 거구 청년과 흑서귀의 싸움은 점점 더 치열해졌는데 마치 코끼리와 족제비가 싸우는 것 같았다.

 

‘호오, 제법인데?’

 

풍천의 두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커다란 덩치를 생각하면 거구 청년의 행동이 굼뜰 것 같았다. 그런데 제법 날렵하게 움직이며 흑서귀의 공세를 잘 막아내고 있었다.

 

게다가 흑서귀의 내가중수법이 가끔 몸을 두드리는데도 얼굴만 찡그릴 뿐 큰 충격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가끔씩 휘둘러진 거구 청년의 칼에 흑서귀가 대경하며 물러섰는데, 풍천조차 감탄할 정도로 감각적인 공격이었다.

 

‘의외군. 아주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잖아?’

 

정식으로 무공을 수련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위기 때마다 펼쳐지는 공세는 상대의 빈틈을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그것은 많은 경험을 겪었거나 천부적인 감각이 있어야만 가능한 공격이었다.

 

더구나 칼이 워낙 크고 무거운 중병이다 보니 흑서귀도 무작정 들이대지 못했다.

 

“나왔습니다, 공자님!”

 

팽팽하게 진행되는 격전이 십여 초 흐를 때 점소이가 요리를 가져왔다. 마치 미리 만들어 놓은 요리를 가져온 것처럼 빨랐다.

 

다른 사람이라면 요리가 빨리 나온 것을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풍천은 오히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후루룩, 쩝쩝.

 

풍천은 사흘 굶은 거지처럼 정신없이 요리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먹는 게 어찌나 빠른지, 오죽하면 점소이가 격전을 벌이는 사람이 아닌 풍천을 쳐다볼 정도였다.

 

풍천은 게 눈 감추듯 접시를 하나 비우고 두 번째 접시를 끌어당겼다.

 

그동안 탁자 하나가 더 부서지고, 근처에 있던 손님들이 좀 더 뒤로 물러났다.

 

풍천이 두 번째 접시의 요리를 반쯤 비웠을 때 앉아 있던 세 명의 장한 중 하나가 검을 들고 일어났다.

 

“클클클, 흑서귀도 다 됐군, 덩치 큰 돼지 한 마리 잡지 못하다니 말이야.”

 

그자는 검을 엄지로 툭 밀어 올리며 격전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좀 더 구경하면 좋겠는데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 되었으니 아쉽군.”

 

풍천은 입을 쫙 벌리고 요리를 마저 털어 넣었다. 그러다 마침 닭 뼈 하나가 입 안에 들어오자 툭, 내뱉었다.

 

딱!

 

“큭!”

 

검을 들고 싸움에 끼어들려던 장한이 짧은 비명과 함께 비틀거렸다.

 

옆에 있던 그자의 일행은 의아한 표정으로 장한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지?”

 

“어떤 개자식이 암기를……!”

 

장한은 피가 줄줄 흐르는 이마를 붙잡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장한의 일행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누구냐? 누가 감히 신마성의 무사를 암습한 거냐!”

 

거구 청년을 몰아붙이던 흑서귀도 뒤로 물러나서 작은 눈알을 빠르게 굴렸다. 동료를 암습한 자가 언제 자신을 암습할지 모르는 상황.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겨우 위험을 벗어난 거구청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흑서귀를 노려보았다.

 

그때 한 줄기 전음이 거구 청년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뭐해? 놈들이 합공하기 전에 빨리 빠져나가!]

 

거구청년도 아주 우둔한 자는 아니었다. 더 있으면 정말 죽을지 모른다는 걸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았다.

 

거구 청년은 바로 옆에 있는 반쯤 부서진 탁자를 흑서귀에게 던지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입구를 향해 달렸다.

 

“저놈이……!

 

흑서귀는 무지막지하게 날아드는 탁자를 피하느라 거구 청년을 쫓지 못했다.

 

그때 쓰러진 장한의 이마를 살펴보던 자 하나가 풍천을 향해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동료의 이마에 박힌 것이 다름 아닌 닭 뼈라는 걸 안 것이다. 그것도 아직 따끈따끈한 닭 뼈.

 

현재 객잔에서 닭고기 요리를 먹고 있는 사람은 풍천밖에 없었다. 그리고 날아온 방향도 일치했고.

 

하지만 그는 풍천을 바로 다그치지 못했다.

 

닭 뼈를 날려 동료의 이마에 구멍을 뚫었다. 상대가 그만큼 고수라는 말. 건드려서 좋을 게 없는 것이다.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놈인데 정말 저놈이 닭 뼈다귀를 던진 놈일까?’

 

거구 청년의 손을 가볍게 막은 걸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했고, 허름한 행색에 만사 귀찮아하는 나른한 표정을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쓰벌, 괜히 건드려서 닭 뼈에 머리통 구멍나봐야 나만 손해지.’

 

풍천은 장한 중 하나가 자신이 범인임을 눈치챘다는 걸 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태연히 동전 이십 문을 탁자에 놓고 자신에게 관심이 집중되기 전 객잔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온 풍천은 좌우를 둘러보았다. 거구 청년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도망가는 건 무지 빠르군. 내상을 심하게 입은 것 같던데, 괜찮은지 모르겠네.’

 

그는 거구 청년에 대한 생각을 떨치고 동마부로 향했다.

 

동마부는 경덕진 서쪽에 있다고 했다. 자세한 것은 물어보면 알 수 있을 터, 일단 서문 쪽으로 갔다.

 

그런데 그가 막 서문을 나가려 할 때였다.

 

“이봐.”

 

대로 왼쪽의 골목에서 누군가가 불렀다.

 

풍천은 골목 안을 쳐다보았다. 거구 청년이 구석진 곳에 몸을 숨기고 앉아 있었다.

 

“왜 거기 있지?”

 

“배가 아파서.”

 

풍천은 골목 쪽으로 걸어가며 거구 청년을 살펴보았다. 안색이 창백하고 눈이 전보다 더 충혈되어 있었다.

 

역시 자신의 생각대로 제법 심한 내상을 입은 듯했다.

 

문득 웃음이 나왔다.

 

거구 청년은 내가중수법에 두들겨 맞았다. 그런데 반응이 고작 배가 아프다는 정도다.

 

절정의 공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거구 청년은 절정은커녕 삼류 수준의 공력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어느 정도 아픈데?”

 

“체한 거 같아.”

 

풍천은 웃음을 겨우 참고 손을 내밀었다.

 

“손 좀 내밀어봐. 맥 좀 짚어보게.”

 

거구청년은 부채처럼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손을 내미는 그를 보고 풍천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진짜 순진하군. 꼭 작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그는 장 노인이 들으면 뒤로 넘어갈 생각을 하며 거구 청년의 손목을 잡았다.

 

“어디서 왔지? 본래 이곳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무이산.”

 

“정식으로 무공을 배운 것 같지는 않고, 그 도법은 누구에게 배웠지?”

 

“채주에게 배웠어.”

 

채주(寨主)? 역시나 산적 출신인가 보다.

 

“그런데 여긴 뭐 하러 온 거야?”

 

“더 이상 산적으로 살기가 싫어서 나왔어. 마음에 드는 문파에 들어가서 정식으로 무사가 되려고.”

 

풍천은 그의 말을 들으며 거한의 몸 상태를 살펴보았다.

 

내기가 침범해서 몇 군데 이상이 있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심하지는 않았다.

 

‘어이가 없군. 정말 배가 아픈 정도겠는데? 가만 놔두어도 이삼일이면 멀쩡해지겠어.’

 

그때 거구 청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기…… 아까 도와줘서 고마워. 그 말을 하려고 불렀어. 남자는 신세지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할아버지가 그랬거든.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나중에 힘이 생기면 갚을게.”

 

“너무 마음 쓰지 마. 근데 이름이 뭐지?”

 

“초웅.”

 

‘곰은 곰이군.’

 

풍천은 피식 웃으면서 다시 물었다.

 

“나는 풍천이야. 초웅은 지금 몇 살이지?”

 

“스물하나.”

 

풍천의 눈이 동그래졌다. 젊은 줄은 알았지만 자신보다 어리다니.

 

“그래? 그럼 나보다 어리네?”

 

초웅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게…… 어릴 때부터 나이 먹어 보인다고 그랬어. 그래도 요즘은 몇 살 차이 안 나게 보이는 거야.”

 

풍천은 초웅이 마음에 들었다.

 

순진하고, 커다란 덩치에 몸이 돌덩이처럼 단단하고, 감각도 뛰어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 비해서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마음대로 부릴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초웅이 자신의 제의를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초웅, 내가 무공을 가르쳐 줄까?”

 

“무공을 가르쳐 준다고?”

 

“내 사문에 전해지는 무공이 제법 많은데, 임자를 못 만나서 빛을 못 보는 괜찮은 것이 몇 가지 있거든.”

 

풍천은 자신을 가볍게 던져버린 사람이다. 더구나 말로만 듣던 전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지 않던가.

 

되묻는 초웅의 눈에 열기가 피어났다.

 

“저, 정말 그걸 나에게 가르쳐 주겠다는 거야?”

 

“물론이지. 그 중 두어 가지만 배워도 시커먼 쥐새끼 같은 놈 정도는 한 손으로 두들겨 팰 수 있을 거다.”

 

초웅이 두툼한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배울 게. 이제부터 풍천, 아니 풍……공자를 사부님으로 모실게.”

 

“에에에, 사부는 무슨! 아직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들을 나이는 아니니까 그냥 형이라고 불러. 어차피 나이도 내가 더 많잖아.”

 

초웅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그도 그게 훨씬 편하고 좋았다.

 

“알았어, 형.”

 

풍천은 빙그레 웃었다.

 

‘사람은 역시 인상이 좋고 봐야 돼.’

 

마침내 커다란 곰 한 마리가 낚시에 걸려들었다.

 

‘제대로 가르쳐 놓으면 쓸 만하겠어. 나중에 장 노인이 죽으면 대신 천풍장을 지키게 해야지.’

 

내상을 살필 때 솔직히 많이 놀랐다. 심법을 수련해서 익힌 내공은 거의 없는 대신 선천적인 기운이 무척 강했던 것이다.

 

그것은 천부적인 신력을 타고났다는 말. 거기에 감각까지 뛰어나니 잘만 가르치면 훌륭한 천풍장의 파수꾼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근골도 아주 기가 막혔어. 불안한 것이 하나 있긴 한데, 그쯤이야 뭐…….’

 

열 중 아홉을 만족한 풍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지나가며 두 사람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자, 일단 여기를 벗어나자, 초웅. 다른 곳으로 가서 내상부터 다스려야겠다.”

 

“어, 형.”

 

형이라 하면서도 여전히 반말이다.

 

풍천은 그에 대해선 그냥 놔두었다. 그게 오히려 더 친근하게 들렸다.

 

 

 

풍천과 초웅은 가장 가까운 객잔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초웅의 덩치에 놀라서 쳐다보는 바람에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객잔에 들어가자마자 방부터 얻은 풍천은 초웅의 내상을 다스려주었다. 아직은 제삼의 기운을 운용하는 것이 서툴지만 초웅의 가벼운 내상을 다스릴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한 시진 후.

 

풍천은 초웅을 객잔에 남겨놓고 밖으로 나왔다.

 

초웅에게는 밖으로 나오지 말고 자신이 일러준 심법을 확실하게 외워놓으라고 했다. 배고프면 식사도 방에서 하고. 쥐새끼 같은 놈의 동료들이 찾아다닐지 모르니까.

 

움직이면 안 된다는 말에 반 시진 동안 꼼짝도 안하던 초웅이었다. 그의 우직함을 생각하면 허튼 짓은 하지 않을 듯했다.

 

‘흠, 이제 동마부를 방문해볼까?’

 

고개를 들자 치자물이 든 것처럼 붉게 변해가는 석양이 보였다.

 

이제 곧 홍시처럼 빨갛게 변해서 서산에 처박힐 터. 그때부터는 자신의 세상이었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천풍의 세상.

 

그런데 그가 동마부로 가기 위해서 서문으로 향할 때였다. 저만치에서 바쁜 걸음으로 다가오는 자가 보였다.

 

‘응?’

 

그를 바라보는 풍천의 눈매가 실처럼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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