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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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69화
69화
풍천은 후다닥 고개를 돌리고는 심장박동에 맞춰 물고기를 뼈까지 으드득, 으드득 씹어 먹었다.
‘초령이 것보다 확실히 작긴 작아. 아직 어려서 그런가?’
그때 물고기를 반쯤 먹은 아수비가 탄성을 내질렀다.
“와, 맛있어요.”
“그, 그래요?”
“그런데 많이는 못 먹겠어요. 맛은 있는데 금방 질려요.”
‘아무래도 날 것만 먹다 익힌 것을 먹으니 질리는가보군.’
자극적인 양념이 발라져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양념을 약하게 해서 구우면 나을 거요.”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냄새가 너무 진한 것 때문에 질리거든요.”
“나중에는 양념을 조금만 묻혀서 구워보죠.”
식사를 마치자 아수비는 풍천을 벽라동의 수많은 동굴 중 하나로 안내했다.
풍천은 아수비의 뒤를 따라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동굴 벽에 구경할 만한 것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일 장 앞에 아수비가 걸어가고 있었다. 작은 가죽 천을 걸친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거리면서.
보고 있다는 걸 알면 아수비가 치한으로 생각할지 모르는 일. 억지로 보지 않기 위해서 고개를 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지, 고개를 돌려도 눈알은 돌아가지 않았다.
‘미치겠군.’
청광석은 광장 근처에만 있는 듯했다. 동굴로 가는 통로에는 그 돌이 없어서 조금 어두웠는데, 대신 청광석을 벽에 박아놓아서 걷는데 지장은 없었다.
삼십여 장이나 들어갔을까, 아수비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여기에요. 그 옛날 공손곽, 그 원수도 이곳만큼은 건들지 못했어요.”
아수비가 눈짓으로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앞에는 직경이 십 장 정도 되는 동굴 광장이 있었다. 천장은 첨탑으로 쿡 쑤셔놓은 듯 뾰족했는데, 광장 전체에 푸른 안개가 서려 있어서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아수비의 뒷모습만 보고 걷다보니 기분이 묘해진 풍천은 걸음을 빨리해서 아수비를 지나쳤다.
자신도 모르게 한 곳에 자꾸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무작정 광장으로 들어가자 아수비가 뒤에 대고 급히 말했다.
“저기…… 억지로 대항하지 말고, 동화되려고 노력해봐요. 힘들어도 정신을 잃으면 절대 안 돼요.”
왠지 알려주는 게 큰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망설임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런데 무슨 뜻이지?
풍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광장을 둘러보았다.
일순간, 입을 반쯤 벌린 그는 눈을 크게 떴다.
벽과 천장에는 빈틈이 없을 정도로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유령총에서 조각은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조각이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헛!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대경한 풍천은 아수비에게 물어보기 위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자신의 바로 뒤에 있을 거라 생각한 아수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수비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들어온 통로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제기랄! 기문진에 갇힌 건가?’
문득 ‘벽라족이 기문진을 펼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수만 관 바위를 움직이는 기관을 설치한 자들이 아닌가. 그러한 자들이라면 기문진도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문진은 기초밖에 모르는데, 나가려면 고생 좀 하겠군.’
그는 속으로 투덜대며 입구로 짐작되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방에서 기이한 기운이 밀려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흠칫, 걸음을 멈춘 풍천은 좌우를 재빨리 둘러보았다.
순간 그의 두 눈이 튀어날 것처럼 커졌다.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던 조각이, 정확히는 조각에서 흘러나온 뭔가가 그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으아아아아! 유, 유령이다!”
그는 비명을 내지르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신법을 혼신을 다해 펼쳤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조각에서 흘러나온 기운은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왔다.
결국 그는 채 반 각을 피하지 못하고 벼락이라도 맞은 듯 움찔하며 걸음을 멈췄다.
직후 그의 입에서 기괴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커커커컥!”
조각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몸을 뒤덮더니 칠공을 통해서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전신의 모든 신경을 자극하는 끔찍한 느낌!
풍천은 소름끼치는 충격에 몸을 푸들푸들 떨었다.
텅 빈 뇌리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린다.
희열에 찬 탄성인가, 아니면 악마의 속삭임인가.
‘크허헉! 이 미친 영감이 나를 유령에게 제물로 던져준 거 아냐?’
풍천은 아극사를 열두 번도 더 씹어대며 몸속으로 들어온 기운을 몰아내기 위해 진기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몸으로 파고든 정체불명의 기운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혈도와 전혀 다른 통로를 통해서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기운이 뭔가에 놀란 듯 황급히 그의 몸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덜덜덜덜…….
풍천은 몸을 떨며 그 끔찍한 느낌을 고스란히 느껴야만 했다.
그 느낌이 어찌나 생생한지, 살아있는 뭔가가 자신의 몸을 헤집고 다니다가 빠져나오는 듯했다.
잠시 후.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몸도 더 이상 떨리지 않았고 조각에서 흘러나온 기이한 기운도 몸 안에서 느껴지지 않았다.
풍천은 드러누운 채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일어서면 또 다시 조각의 기운이 달려들 것 같았다.
‘이곳에 정말 유령이 있었던 거야. 빌어먹을 미친 영감태기! 알려주고 들여보내면 누가 뭐라고 해?’
아마 알았다면 들어오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아극사는 왜 아무런 말도 없이 자신을 이곳에 집어넣은 걸까?
골려주기 위해서? 한번 혼 좀 나보라고? 진짜 제물로 바치려고?
단순히 그런 이유 같지는 않다.
‘이곳에 뭐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그게 어떤 것이든, 이런 끔찍한 일을 겪으면서까지 얻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풍천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나가서 아극사 노인과 다시 이야기를 해봐야지. 아무 것도 안 줘도 좋으니 그냥 내보내달라고 하면 노인도 좋아할 거야.’
그는 결정을 내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와 동시에 벽의 조각들이 튀어나올 것처럼 출렁였다.
“헉!”
대경한 그는 급히 드러누웠다. 출렁이던 벽도 조용해졌다.
‘젠장! 일어나면 움직이는군. 이거 어떻게 하지?’
한참 동안 머리를 굴린 그는 누운 채 발로 바닥을 밀어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그가 움직일 때마다 벽의 조각들이 반응했다. 심지어 손만 조금 들어도 벽의 조각들이 당장 달려들 것처럼 그를 노려보았다. 움직이지 않으면 다시 조용해지고.
‘환장하겠군!’
그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았다.
한참을 고민하고도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한 그는 아수비를 불렀다.
“아수비!”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친 순간!
이번에는 푸른 안개가 천장에서 회오리쳤다.
설마 저것도?
‘아, 지미!’
깜짝 놀란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푸른 안개의 회오리는 주위를 탐색하듯 서서히 맴돌더니 곧 움직임을 멈췄다.
풍천은 석상처럼 굳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그때 문득 아수비의 말이 떠올랐다.
‘억지로 대항하지 말고 동화되려고 노력해보라고?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다고?’
설마 저 유령처럼 생긴 이상한 기운을 몸에 받아들이란 말은 아니겠지?
생각만 해도 몸이 떨렸다. 멋모르고 한번 받아들이긴 했지만, 두 번 다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석상처럼 움직이지도 못하고 계속 누워 있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한참을 망설이던 풍천은 오른손을 느릿하니 들어올리고 검지를 까딱거려보았다. 그러면서 눈알을 좌우로 굴리며 벽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살펴보았다.
오른쪽 벽에서 두 줄기의 사람 형상을 한 푸른 기운이 뻗어 나왔다. 마치 사람이 벽에서 쑥 빠져나오는 듯했다.
‘저게 유령이 아니면 뭐야?’
풍천은 겁이 났지만,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푸른 기운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그에게 다가온 푸른 기운은 까딱거리는 오른손 검지를 휘감더니 팔을 거슬러 올라왔다. 그리고 곧 입을 통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으으으…….’
풍천은 눈을 딱 감고, 일체의 저항도 하지 않은 채 기운이 마음대로 흘러다니도록 그대로 놔두었다.
몸속으로 스며든 기운은 그의 몸을 탐색하듯이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마치 신비의 세계를 여행하는 여행자처럼.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풍천의 눈이 가늘게 뜨이며 기광이 번뜩였다.
‘처음보다 나은 것 같은데? 숫자가 적어서 그런가?’
한번 겪어봐서 그런 것인지 처음처럼 소름끼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어느 때는 몸이 상쾌해지는 기분마저 들 때가 있었다.
‘나도 미쳐가는 거 아닐까?’
그러니까 유령의 기운을 기분 좋게 생각하지.
풍천은 다시 눈을 감고 몸속의 기운이 나갈 때를 기다렸다.
푸른 기운이 밖으로 나온 것은 일 각 가량이 지난 후였다.
별 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휴우…….’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쉰 풍천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아극사는 이곳을 벽혼계라 불렀다. 벽라족의 혼이 머무는 곳.
벽의 조각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기운이 정말 벽라족의 혼인지, 아니면 유령인지 그로선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푸른 기운에 의지가 있는 듯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저항만 하지 않으면 이들도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는 것 같아.’
그래서 대항하지 말라고 했나?
문제는 혼이든 유령이든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것인데…….
심호흡을 한 풍천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십여 줄기의 기운이 달려들었다.
풍천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기운이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처음보다 많이 나아졌다곤 해도 여전히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푸른 기운들은 일 각 동안 풍천의 내부를 휘젓고 밖으로 나갔다.
조금 자신이 생긴 그는 허공을 쳐다보며 소리를 내봤다.
“어어어이!”
천장에서 수십 줄기의 기운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박쥐 떼처럼 몰려오는군.’
풍천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은 것은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즈음이었다.
열다섯 번에 걸쳐 서서히 단계를 올리면서 푸른 기운을 받아들여보았다. 그런데 푸른 기운, 벽라족의 혼인지 유령인지 모를 기운은 심장이나 단전, 머리꼭대기의 백회혈 쪽으로는 가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온몸을 휘돌았는데, 그곳에 갔다가 깜짝 놀란 것처럼 튕겨 나오더니 두 번 다시 접근하지 않았다. 설령 접근한다 해도 근처만 맴돌 뿐.
‘왜 그러지? 그곳을 싫어하나?’
그때 문득 그곳이 바로, 아극사가 자신에게 걸어놓은 금제를 시험했을 때 느꼈던, 극렬한 고통의 진원지라는 게 떠올랐다.
‘이들도 그곳에 금제가 걸려 있다는 걸 아는가보군.’
그곳에 벽라의 인이 심어져 있다는 걸 모르는 그로선 단순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되었든, 이제 벽혼계의 푸른 기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
풍천은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벽과 천장의 조각을 둘러볼 수 있었다.
제7장. 공짜라면 화중지병(畵中之餠)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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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천이 벽혼계에 들어간 지 칠일 째 되던 날.
아수비는 아극사를 찾아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아무래도…… 유혼(幽魂)과 동화된 것 같아요, 할아버지.”
아극사는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아수비를 바라보았다.
아수비는 거짓말을 하는 아이가 아니다. 잘못 판단할 아이도 아니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단 말.
‘말도 안 돼!’
아극사는 부정하고 싶었다. 칠일 만에 유혼과 동화된다는 건 벽라족이라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피가 다른 지상의 인간이 어떻게…….
그러나 말한 사람이 아수비인 이상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 칠일이 지났다. 그런데 벌써 벽혼계의 유혼과 동화가 되었다고?”
“저도 믿기지 않아요. 하지만 유혼이 더 이상 그를 적으로 여기지 않아요. 그리고 제가 잘못보지 않았다면…….”
아수비는 잠시 망설이다가 사실대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