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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08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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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천풍전설 108화

 

108화

 

 

 

 

 

 

2

 

 

 

풍천은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데도 다음 날부터 천라신수와 뇌정천결을 파고들었다.

 

천라신수와 뇌정천결을 반만 익혔어도 어제와 같은 꼴은 당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두고 봐라, 단리욱! 나중에는 내가 네놈의 몸에 칼자국을 내주마!’

 

문제는 그 두 가지 무공을 익히는 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천라신수는 그래도 나았다. 유령총에 있을 때 이미 벽을 하나 넘어선 상태였으니까.

 

그러나 뇌정천결은 달랐다. 뇌정천결이 뛰어난 검결임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구결을 수백 번 암송하며 아무리 노력해도 한 치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혹시 놓친 게 있나 싶어 악착같이 파고들수록 머리만 깨질듯이 아프고 검결의 흐름이 뒤죽박죽되었다.

 

‘대체 왜 이런 거지? 내가 이렇게 멍청했나?’

 

그는 생각도 못 했다.

 

천라신수와 같은 극상승의 수법을 그가 쉽게 익힌 것은 몇 가지 여건이 절묘하게 맞아들었기 때문이었다.

 

천부적인 소질과 무욕의 상태, 절박한 상황으로 인한 두뇌의 활성화까지,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일순간에 벽을 깨버린 것이다.

 

하지만 뇌정천결은 욕심을 부려서 빨리 익히려고만 했다. 절정의 상승검공도 익히지 못한 그가 극상승의 절대검결을 마주하고 마음조차 비우지 못했으니 깨달음이 찾아올 리가 있겠는가.

 

‘아, 정말! 뭐 이런 게 다 있어?’

 

사흘이 지나자 이제는 이게 정말 뛰어난 검법인지조차 판단이 서지 않았다.

 

오죽하면 겉보기만 그럴 듯한 엉터리 무공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었을까?

 

만약 그가 절정의 상승검공을 익히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것이거늘, 그는 자신 앞에 거산준봉이 몇 겹이나 더 있다는 건 생각지 않고 그 너머의 대산이 보이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다.

 

나름대로 무공에 대해서 천재적인 머리를 지녔다고 자신하는 자신을 이토록 곤혹하게 하다니.

 

‘좋아, 누가 이기나 보자!’

 

오기가 발동한 풍천은 눈을 뜬 후부터 눈을 감을 때까지, 식사하는 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뇌정천결의 분석에 매달렸다.

 

그런데 닷새째 저녁을 먹은 후였다. 생전 고민이 없을 것 같은 풍천이 이마를 찡그리며 다니자 상관경의가 넌지시 물어보았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

 

“별것은 아니고…….”

 

풍천은 머뭇거리며 말을 질질 끌었다.

 

무공에 대한 것은 누구에게 물어볼 수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상승요결을 말해준다는 것은 미친 짓에 가까웠다.

 

상관경의도 풍천이 무공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말해주기 어려운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럼에도 슬슬 풍천의 성질을 긁었다. 그 동안 당한 복수라도 하려는 듯.

 

“구결이 잘 풀리지 않는 것 같던데 말해주면 안 되는 것인가 보군. 하긴 자네 같은 사람이 남에게 구결을 알려줄 리가 없지.”

 

풍천은 상관경의를 째려보았다. 표정은 담담한데 꼭 약 올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번개처럼 어떤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상관경의는 검으로써 일대종사의 경지에 이른 자가 아니던가. 검으로만 따진다면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수 말이다.

 

‘한번 시험해봐? 잘하면 덕 좀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었다. 덕을 보기는커녕 자칫하면 죽을 고생해서 잡은 노루를 호랑이 입에 넣어주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관경의는 무사로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몸이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본 그는 목이 달아나도 자신의 자존심을 굽히지 않을 자였다.

 

‘좋아! 까짓 거 인생 뭐 있어? 모험을 두려워하는 놈은 남자 새끼도 아니지.’

 

그는 그런 마음에, 그리고 또 하나의 은밀한 목적을 품고서, 품속 깊은 곳에 넣어놨던 뇌정천결의 구결이 적힌 양피지책자를 꺼내 상관경의에게 던졌다.

 

툭.

 

상관경의는 자신의 무릎에 떨어진 양피지책자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들었다.

 

“이게 뭔가?”

 

“나를 고민하게 만든 거요. 당신이 풀어서 좀 알려주쇼.”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지자 상관경의의 눈이 커졌다.

 

그가 아는 풍천은 강호에 알려지지 않은 진짜 고수 중 한 사람이었다. 비록 신법을 제외한 다른 무공은 그리 강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이 고수라 칭할 만한 사람이 고민하는 무공이라면 적어도 상승무공이라는 뜻. 그런데 그런 무공이 적힌 비급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주다니.

 

그는 풍천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며칠 함께 지내면서 어느 정도 알았다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이걸 풀이하고도 알려주지 않으면 어쩌려고 함부로 주는 건가?”

 

“그럼 어쩔 수 없죠, 뭐. 또 머리를 쥐어짜고 연구해보는 수밖에. 그래도 안 되면 처음부터 나와 인연이 될 게 아니었는가 보다 여기고 포기해야죠.”

 

담담한 표정. 정말 욕심이라곤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그가 만약 풍천에 대해서 조금만 더 자세히 알았다면 지금의 표정을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풍천이 어떤 사람이란 것을 아직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허어, 이런 사심 없는 친구가 있나.’

 

상관경의는 진정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상대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상처를 치료해주고 며칠간 뒷바라지까지 해준 사람이 아닌가.

 

저렇게 순수한 사람을 놀리다니. 얄팍한 재주를 믿고 남을 비웃다니.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가슴이 찡하니 울렸다. 목에 뭔가가 꽉 찬 거 같아서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이 상관경의의 심성이 언제부터 이리 얄팍해졌단 말인가? 아아아, 대접에 머리를 처박고 싶구나. 상관경의야, 상관경의야! 너 따위 소인배가 무슨 천하의 안녕을 논할 수 있단 말이더냐!’

 

자신에 대해 회의감마저 든 그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고함이라도 지르며 스스로를 질책하고 싶었다.

 

‘큭큭큭, 어이가 없구나. 은혜를 입고도 그걸 모르는 놈이 무슨 사내대장부라고…….’

 

잠시 고개를 숙이고 마음을 진정시킨 그는 뿌연 물안개가 서린 눈을 들어 양피지책자를 바라보았다.

 

입술을 질끈 깨문 그는 진실된 마음으로 풍천을 도와주기로 하고 책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첫 장을 넘겼다.

 

순간 그는 양피지 책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 맙소사, 어떻게 이런 검이!’

 

풍천은 그런 상관경의의 모습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상관경의는 진정으로 뇌정천결에 경악했을 뿐 그 외의 다른 이유로 경악한 것 같진 않았다.

 

‘뇌정천결이 유령총에서 나온 것이라는 건 모르고 있군.’

 

그걸 알아본다면 천외가 천상신문이라는 게 확실해질 텐데.

 

하지만 실망하진 않았다. 무려 구백 년 전의 일이 아니던가.

 

더구나 뇌정천결의 주인은 공손곽의 아래가 아닌 자. 천상신문이 그의 진신무공에 대해서 모를 수도 있었다.

 

상관경의는 풍천이 자신을 살펴보는 줄도 모르고 모든 신경을 뇌정천결에 집중했다. 그리고 근 반 시진 만에 고개를 들어 바위처럼 굳은 표정으로 딱딱하게 말했다.

 

“내 실력으로 이걸 완벽하게 풀이할 수 있을지 아직은 확신할 수가 없네. 그래도 나의 도움을 원한다면 내 모든 것을 걸고 도와주지.”

 

“정말 해독은 가능한 겁니까?”

 

“그렇다네. 하지만 해독하는 것과 익히는 것은 다른 문제네. 이 검은 안다고 해서 익힐 수 있는 것 아니야. 하늘에 닿는 오성과 인간의 한계에 달한 공력이 있어도, 깨달음의 인연이 닿지 않는다면 그림의 떡일 뿐이지.”

 

그럼 어떻게 가르치겠다는 거지?

 

풍천이 의아해하며 바라보자 상관경의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 몸이 성하다 해도 나 역시 익히는 것은 자신이 없네. 궁극에 이를 정도까지 가르칠 수도 없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길을 올바르게 갈 수 있는 방법뿐이라네.”

 

풍천은 상관경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왠지 조금 전과 눈빛이 달라진 듯 보였다.

 

바람 한 점 없는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한 눈빛.

 

등선을 앞둔 도인이나 깨달음을 얻은 고승의 눈빛이 저럴까 싶었다.

 

풍천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상관 대협의 도움을 받죠.”

 

그는 자신도 모르게 대협이라는 존칭을 붙였다. 이상하게도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죽이겠다고 벼르던 자이거늘.

 

그런데 상관경의가 그리 불리는 걸 반기지 않았다.

 

“대협이라…… 나는 그리 불릴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네. 그러니 그냥 형이라 부르게.”

 

“에이, 그래도 나이가 스무 살은 차이 나는데 어떻게 형이라고 불러요?”

 

저런 모습을 보면 꼭 순진한 강호초출 무사 같다.

 

누가 저 모습을 보고 신마성의 천라지망 속을 자유자재로 누비는 고수이며, 사람을 죽임에 있어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사람이라 생각할 것인가.

 

상관경의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스무 살 차이면 어떤가? 강호에서 호형호제하는 데 그 정도 나이 차이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네. 더구나 자네는 내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 아닌가?”

 

그건 그렇다. 강호는 나이순이 아니니까.

 

“에…… 뭐 그러면 그렇게 하죠. 상관 노형.”

 

엉겁결에 대답한 풍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만? 천외와 대판 싸워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때는 어떡하지?’

 

그때 상관경의가 말했다.

 

“좋아, 그럼 이제 호형호제하는 사이니까 내가 아는 검을 알려줄 수 있겠군.”

 

“예?”

 

“뇌정천결은 절대의 검이네. 설마 곧바로 익힐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건 그렇지만…….”

 

“많은 걸 알려줄 수는 없네. 중간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검 한두 가지만 가르쳐 줄 거네. 그러니 부담 가질 필요는 없네. 자네가 그런 검을 알고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랬나? 그것 때문에 억지로 호형호제하자는 거였나?

 

자신의 검을 남에게 가르쳐 줄 수는 없으니까?

 

풍천은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상관경의를 바라보았다.

 

유령총에서의 일을 생각하면 원수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천외의 실체를 알기 위해 이용할 생각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일이 묘하게 흐른다.

 

더 묘한 것은 그도 상관경의가 그리 싫지 않다는 것이다.

 

‘세 사람을 죽이고 한 사람을 중상 입혔으니 구자암도 서운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상관경의가 그 말을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배신당한 것처럼 느끼지 않을까?

 

‘거 복잡하네.’

 

하지만 그는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에라, 나도 모르겠다. 흘러가는 대로 그냥 놔두자. 싫다면 갈라서지 뭐.’

 

 

 

풍천은 솔직하게 자신이 익힌 세 가지 검법에 대해 말해주고 직접 시범을 보였다.

 

상관경의는 보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나름 일류에 속하는 검법이긴 하지만 절대의 초입에 이른 그의 눈에는 하찮게만 보였다.

 

‘저런 검으로 신마성의 고수들을 상대하면서 여태 살아온 게 신기하군. 뛰어난 신법이 아니었으면 진즉 길거리에서 죽었겠어.’

 

그래도 차마 그 말을 하지는 못했다.

 

한편으로는 별 볼 일 없는 검으로 신마성의 고수들을 곤경에 빠트린 풍천이 신기하게만 보였다. 또한 그만큼 풍천의 신법에 대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잠풍에게 뇌정천결이 더해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갑자기 든 그 생각에 상관경의는 어깨를 가늘게 떨었다.

 

자신이 혹시 천하를 뒤집어엎을 괴물을 만드는 건 아닐까?

 

‘후우, 그 또한 운명일지니…….’

 

그때 풍천이 상관경의를 쳐다보며 어색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습니까?”

 

상관경의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다 버리게. 방해만 될 뿐이니까.”

 

“그래도 사부님께서 초석을 세우기에는 괜찮은 검법이라고 했는데…….”

 

“기초는 좀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네. 기초를 중요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초에 지나치게 얽매이면 발전이 없는 법이지. 기초를 녹여서 그 다음 단계로 올라섰을 때 비로소 기초를 튼실하게 닦은 것이 빛을 발할 수 있다네.”

 

왠지 좋은 말처럼 들렸다.

 

사부님도 이렇게 좋은 말로 무공을 가르쳐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잘못하면 무조건 때리고 굴리기만 했다. 녹초가 될 때까지.

 

사부님께 아쉬운 것은 딱 그것 하나였다.

 

풍천은 상관경의의 말에 순순히 응했다.

 

“버리라면 버리죠, 뭐. 근데 이 검까지 버려야 하는 거요? 이거 우리 사문에서 제법 아끼는 건데…… 조사께서 은자 백오십 냥을 주고 산 것이거든요.”

 

상관경의의 얼굴이 괴이하게 일그러졌다.

 

누가 진짜 검을 버리라고 했나?

 

‘내가 잘못 생각한 것 아닌지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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