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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07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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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천풍전설 107화

 

107화

 

 

 

 

 

 

워낙 갑작스런 일이어서 미심쩍어하던 자들이 우르르 뇌옥 안에서 나왔다. 그리고 곧장 입구로 향했다. 개중 몇 사람은 쓰러져 있는 간수의 무기를 챙기는 침착함을 보였다.

 

하지만 몇몇은 뇌옥 안에서 나오지 않고 눈치만 봤다. 그들은 공력을 쓸 수 없는 상태에서는 나가봐야 죽음뿐이란 것을 아는 듯했다.

 

풍천은 죄수들이 쏟아져 나오자 먼저 위로 올라갔다.

 

위로 올라간 풍천은 놀란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쳐다보는 간수들을 냉정하게 쓰러뜨렸다. 

 

그가 다섯 명을 쓰러뜨렸을 때 죄수들이 샘물 솟구치듯이 위로 올라왔다.

 

세 사람은 죄수들이 반쯤 올라왔을 때서야 나타났다.

 

아무리 공력을 쓰지 못한다지만 인원이 칠팔십 명이면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은 대부분이 무공을 익힌 자들이어서 근력이 강했고, 빠져나가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반면 남은 간수들은 네 명밖에 안 되었다.

 

순식간에 뇌옥 안이 죄수들로 꽉 차면서 간수들이 그들 속으로 파묻혔다.

 

풍천은 혼란한 틈을 이용해서 세 사람과 함께 뒤쪽으로 갔다.

 

통로가 끝나는 곳에 굳게 닫힌 철문이 하나 있었다. 가로세로 크기가 두 자 정도 되었는데 그곳은 사람이 드나드는 입구가 아니라 쓰레기를 버리는 개구멍이었다. 가끔은 죽은 시체도 내보낼 때가 있지만.

 

풍천이 철문의 걸쇠를 푸는데 뇌옥의 문이 열리고 죄수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갔다.

 

곧 바깥쪽에서 경비무사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뇌옥의 문이 열렸다! 죄수들이 탈출한다! 막아라!”

 

풍천은 뒤를 지키던 경비무사들이 모두 앞쪽으로 몰려가자 철문을 완전히 열었다.

 

“지금이오, 나가쇼.”

 

그는 노인을 먼저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동방산과 허무정을 차례대로 내보낸 후 자신도 그곳을 통해 나갔다.

 

그들이 다 나갔을 즈음 앞쪽에서 비명과 고함소리가 혼란스럽게 들려왔다.

 

풍천은 세 사람을 이끌고 십여 장 밖에 있는 담장으로 갔다.

 

네 사람이 담장을 넘은 직후 사방에서 호각소리가 울리고 신마성의 무사들이 뇌옥 쪽으로 몰려들었다.

 

“도망치는 놈은 모조리 죽여라!”

 

“한 놈도 놓치지 마라!”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비명이 밤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하지만 풍천은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뇌옥에서 멀어졌다.

 

곧 금귀옥의 죄수들이 탈출했다는 게 알려질 터, 자신에 대한 수색보다 훨씬 더한 천라지망이 펼쳐질 것이었다.

 

풍천은 단숨에 백여 장을 달린 후 정원의 후미진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곳으로 죽 가면 와우산을 넘을 수 있수. 내가 저들의 시선을 반대편으로 돌려놓을 테니 살고 싶으면 심장이 터지더라도 달리쇼.”

 

노인의 눈매가 잘게 떨렸다.

 

“이 늙은이가 오랜만에 괜찮은 젊은이를 만난 것 같군. 나는 황우연이라 하네. 설령 빠져나가지 못하고 죽더라도 자네를 잊지 않겠네.”

 

동방산이 다급히 물었다.

 

“이름을 알려주실 수 있는가?”

 

황우연이라는 노인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풍천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잠풍이라고만 아쇼.”

 

허무정은 이를 지그시 악물고 몸을 돌렸다.

 

“살아나면…… 반드시 약속을 지키지.”

 

“그거야 당연하죠.”

 

‘당연하다? 살아나면 내가 저놈의 종이 된단 말이지? 후우우…….’

 

“그럼 살아서 봅시다.”

 

[허씨 양반, 살아나면 하남 동쪽 상구현의 금산에 있는 천풍장으로 오쇼.]

 

풍천은 허무정에게 전음을 보내고 그 자리를 떠났다.

 

이제 세 사람의 생사는 하늘이 알아서 할 것이었다. 살면 좋고 아니면 어쩔 수 없고.

 

세 사람은 빤히 보고 있는 와중에 풍천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사라지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풍천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멀리서 고함소리가 밤하늘을 울렸다.

 

“놈이 저기 있다! 쫓아라!”

 

“유령 같은 신법을 쓰는 놈이다! 빠져나가지 못하게 철저히 막아라!”

 

황우연과 동방산, 허무정은 눈빛을 교환한 후 와우산의 산 그림자가 드리워진 곳을 향해 전진했다.

 

 

 

풍천은 진마원에서 한바탕 난리를 피운 후 수백 명의 무사들이 몰려들자 그곳을 유령처럼 빠져나갔다.

 

밖은 금귀옥의 안과 달랐다. 어둠이 내린 세상은 천풍의 세상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마음껏 휘저어서 신마성 놈들의 혼을 빼주고 싶었다. 하지만 몸에 난 상처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단리욱, 나중에 만나면 오늘 내 몸에 상처 낸 것을 뼈저리도록 후회하게 해주마.’

 

그래도 금귀옥을 털었으니 어느 정도는 복수를 한 셈이었다. 잘하면 괜찮은 종도 하나 생길 것 같고.

 

‘근데 황우연이란 이름을 내가 어디서 들어봤더라?’

 

 

 

3

 

 

 

“뭐라? 금귀옥에 갇혔던 자들이 도망쳤다고? 그게 무슨 말이더냐?”

 

혁련궁은 분노한 표정으로 단리욱을 내려다보았다.

 

단리욱은 이를 지그시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

 

“환술을 쓰는 놈을 쫓느라 잠시 금귀옥을 비웠는데 놈이 되돌아가서 금귀옥의 문을 연 것 같습니다, 사부님.”

 

“바보 같은 놈! 그럼 금귀옥을 완전히 단속하지도 않고 놈을 쫓았더란 말이냐?”

 

“제자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사부님.”

 

“셋이 빠져나갔다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금 전력을 다해서 찾고 있으니 곧 잡힐 것입니다.”

 

“다른 놈은 놓쳐도 상관없다. 하지만 황우연, 그 늙은이만은 반드시 잡아야 한다. 알겠느냐?”

 

“예, 사부님. 그런데 황우연이란 자는 대체 누굽니까?”

 

혁련궁은 차가운 눈으로 단리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굳이 관계를 따진다면 이 사부의 사형이 되는 사람이다.”

 

“예?”

 

“깊은 이야기는 나중에 들려주겠다. 너는 일단 황우연을 잡는 일에 주력하도록 해라. 생포하기 힘들면 머리만 가져와.”

 

“알겠습니다, 사부님.”

 

대답하고 돌아서는 단리욱의 두 눈이 의혹으로 물들었다.

 

‘사백이 계셨던가? 그런데 왜 사백을 금귀옥에 가둔 거지?’

 

혁련궁은 단리욱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이마를 찡그렸다.

 

‘어리석은 놈, 그깟 환술 쓰는 놈을 잡지 못하고 금귀옥의 죄수들을 놓치다니······.’

 

황우연은 그가 사부를 죽이고 마황문을 차지하자 사문을 떠나간 자였다. 아마 이 년 전, 남창에 갔을 때 자신을 암습하기 위해 나타나지 않았으면 영원히 못 만났을지도 몰랐다.

 

그는 자신을 암습한 황우연을 잡아서 바로 죽이지 않고 금귀옥에 집어넣었다. 혹시라도 그가 사부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 사문 최강의 절대무공, 패황마기(覇皇魔氣)를 얻었을지 모른다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황우연은 그 질문을 받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풀썩 웃으며 말했다.

 

 

 

“내가 패황마기를 얻었다면 이토록 쉽게 패하지 않았을 거다. 설마 그걸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겠지?”

 

 

 

혁련궁은 그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황우연의 진기는 부드러워서 절대 패력을 자랑하는 패황마기와는 완전히 상반된 기운이었다.

 

황우연이 패황마기를 얻지 못했다는 것을 확신한 혁련궁은 대신 그에게 자신의 사람이 될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황우연은 금귀옥에 갇힌 채 묵묵히 입을 닫고 그가 내민 손을 거부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황우연이 금귀옥에 있다는 것조차 잊힐 즈음 탈출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큰일을 앞두고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느낌이 안 좋아.’

 

사실 황우연 자체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문제는 그가 자신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안다는 것이었다. 그래 봐야 지난 것들이지만, 때론 작은 구멍 때문에 둑이 무너지지 않던가.

 

그는 무엇보다 그것이 찜찜했다.

 

‘이번에 잡으면 무조건 죽여야겠어.’

 

황우연을 죽이기로 결정을 내린 혁련궁은 묵묵히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우를 바라보았다.

 

“사우, 준비는 어떻게 되었느냐?”

 

“소성주를 총지휘로 삼는다는 것에 몇몇 간부가 못마땅해했습니다만, 그 이상의 반발은 없었습니다.”

 

“그 일은 걱정할 것 없다. 후아의 본 모습을 알게 되면 그들도 승복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당연한 일이지요.”

 

“북천과 서천에 사람은 보냈겠지?”

 

“보냈습니다.”

 

“그들이 움직일 거라 보느냐?”

 

사우는 혁련궁의 질문에 사이한 미소를 지었다.

 

“넘치는 힘을 주체 못해서 강호에 혼란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자들이 아닙니까?”

 

“후후후후, 하긴 그들도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겠지.”

 

혁련궁은 조금 전까지의 찜찜함을 털어내고 어깨를 폈다.

 

“준비를 서둘러라. 몰아칠 때 폭풍처럼 몰아쳐야 놈들이 화들짝 놀라서 기어나올 테니까.”

 

“예, 성주.”

 

 

 

 

 

제3장. 다 버리게

 

 

 

 

 

1

 

 

 

해동산의 집으로 돌아온 풍천은 상관경의의 치료를 위해서 사놓은 약을 자신을 위해 썼다.

 

상관경의는 형편없는 몰골로 돌아온 풍천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풍천이 보기에는 상관경의가 무척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즐겁수?”

 

“그게 무슨 소린가? 나는 누구처럼 다친 사람을 보고 즐거워하는 사람이 아니네.”

 

솔직히 그런 기분도 없진 않지만.

 

“제길, 고수라는 놈들이 떼로 달려드는데 하마터면 죽을 뻔했수.”

 

“허어, 누가 자네를 어렵게 했는지 모르겠군. 그래, 몸은 괜찮나? 내가 약 발라줄까? 등 쪽은 혼자 바르려면 힘들 것 같은데.”

 

약 발라준다는 사람의 눈빛이 왜 저리 반짝이는 거야?

 

“걱정 마쇼.”

 

풍천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상관경의의 호의를 거절하고 손을 기묘하게 꺾어서 등에 약을 발랐다.

 

상관경의는 기회를 놓친 게 아쉬웠지만 겉으로는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어딜 다녀온 건가?”

 

“신마성요. 아흐으으, 아파라.”

 

“남자가 그 정도 가지고 아프다고 하긴. 이제 보니 자네도 참을성이 별로군.”

 

“아프면 아프다고 해야지, 그럼 안 아프다고 거짓말합니까? 남자가 거짓말을 하면 안 되죠.”

 

“전에는 지금의 자네보다 훨씬 부상이 심한 단천무령에게 엄살을 피운다고 하지 않았나?”

 

“엄살은 엄살이고 아픈 것은 아픈 것이죠. 그게 어떻게 같아요?”

 

상관경의는 풍천을 노려보며 입을 꾹 닫았다.

 

자신이 언제 이런 문제로 티격태격한 적이 있던가?

 

계속 이야기해봐야 성질만 나빠질 것 같았다.

 

그리고 솔직히, 보고만 있어도 이상하게 웃음이 나오며 즐거워졌다. 아픈 사람에게는 조금 미안했지만 그것도 사람 나름이었다.

 

‘훗, 남을 약 올려서 벌 받은 거라 생각하게나.’

 

그때 풍천이 툭 던지듯이 말했다.

 

“진호량이란 사람, 신마성에 잡혀왔는데 죽었수.”

 

순간 상관경의의 표정이 돌덩이처럼 굳어지고 몸이 잘게 떨렸다.

 

“그게…… 사실인가?”

 

풍천은 고개만 끄덕였다.

 

“어떻게 죽었지?”

 

“고문 받기 전에 죽었수.”

 

“다행이군.”

 

“죽기 전에 두어 마디 나누었는데 자식과 귀하를 부탁합디다.”

 

“그랬나? 허어어, 저나 편히 죽을 것이지…….”

 

허공을 응시하는 상관경의의 두 눈에 안개가 어렸다.

 

힐끔 상관경의를 바라본 풍천은 마저 남은 말을 해주었다.

 

“아들 이름이 진청군이죠?”

 

상관경의는 그 말로써 실낱처럼 남았던 한 가닥 의심마저 털어냈다.

 

“맞네, 이제 열일곱이지.”

 

“아들에게 사랑했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상관경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에 맺혔던 물기가 흘러내렸다. 그는 진호량이 왜 그 말을 남겼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도 그 아이가 걱정되던가, 호량? 걱정 말게. 청군이는 강한 아이네. 세월이 흐르면 자네의 마음을 알게 될 거야.’

 

진호량은 우직하고 무뚝뚝했다. 평생 자식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했다. 게다가 아내마저 일찍 죽자 더욱더 입이 무거워졌다.

 

그 바람에 그의 아들인 진청군은 아버지 원망을 많이 했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한 그는 열다섯이 되던 해 자진해서 지옥수련에 참가했다.

 

“자네 덕분에 호량의 일을 자세히 알게 되었군. 정말 고맙네.”

 

풍천은 초옥에 대한 것은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개인적인 대가니까.

 

그렇게 진호량의 소식을 전해준 풍천은 상관경의에게 등을 보여주었다.

 

“등에 제대로 약이 칠해졌는지 좀 봐주쇼.”

 

“그러지.”

 

상관경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순수한 마음으로 풍천의 등에 난 상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풍천이 말했다.

 

“엉뚱한 생각하지 마쇼.”

 

뭘?

 

울컥한 상관경의는 풍천의 등을 노려보았다.

 

‘이걸 그냥, 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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