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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05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8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05화

 

105화

 

 

 

 

 

 

눈을 부릅뜬 네 명의 절정고수가 공력을 잔뜩 끌어올린 채 필생의 적을 찾는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저 안에 누가 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대공자와 두 명의 장로가 오기 전까지 소지환밖에 없었거늘.

 

그때였다.

 

[휴우우, 아주 잘했수.]

 

뒤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음습한 독기처럼 귀청으로 스며드는가 싶더니 한 줄기 기운이 뒷목을 파고들었다.

 

안자도는 눈을 부릅뜬 채 몸이 굳어버렸다.

 

‘어, 어떻게……?’

 

안자도의 심맥을 끊어서 철문에 기대어놓은 풍천은 환신술을 펼친 채 입구로 향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정쩡한 표정으로 뇌옥을 바라보고 있던 간수들이 의아해하는 목소리로 안자도를 불렀다. 그들은 그때까지도 안자도가 죽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옥장님, 무슨 일입니까?”

 

그때 유등불이 심하게 흔들리며 일순간 금귀옥의 통로가 어두워졌다.

 

동시에 허공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오며 간수들의 마혈을 제압했다.

 

간수들을 제압한 풍천은 슬쩍 뒤를 돌아다보았다. 단리욱 등은 아직 자신이 빠져나온 걸 모르는 듯했다.

 

‘잘들 있으쇼.’

 

히죽 웃은 풍천은 철문으로 다가갔다.

 

철문을 잠근 걸쇠는 모두 세 개였는데 기이한 형태로 얽혀 있었다.

 

눈살을 찌푸린 풍천은 일단 가운데 있는 것을 먼저 당겼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줘도 당겨지지 않았다. 위아래 것을 당겨도 마찬가지였다.

 

‘뭐 이따위가 다 있어?’

 

풍천은 한쪽에 쓰러져 있는 간수들에게 갔다.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두 명의 간수 중 이를 갈며 자신을 노려보는 자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피가 묻은 검을 다른 간수의 목에 댔다. 그 간수는 자신이 죽인 간수와 다르게 두려움에 질린 눈빛이었다.

 

“문을 어떻게 열지? 알려주면 살려주겠다. 내 부모님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간수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풍천이 빠르게 몇 마디 더 했다.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오기 전에 말해. 그래야 저들이모를 테니까.”

 

겁에 질린 간수는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을 더 원했다.

 

“먼저 아래 것과 위의 것을 동시에 당기고 그 다음에 중간 것을 당겨야 합니다.”

 

풍천은 간수의 아혈을 다시 제압해놓고 철문의 걸쇠를 풀었다.

 

철컹, 철컹, 철컹.

 

단리욱은 걸쇠 풀리는 소리가 들리자 눈을 치켜뜨고 소리쳤다.

 

“옥장! 무슨 일인가?”

 

하지만 눈을 부릅뜬 채 철문에 기댄 안자도의 표정은 미미한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단리욱은 벌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놈이 밖으로 나갔소!”

 

“헛! 언제……?”

 

“이노오옴!”

 

제일 먼저 악초당이 분노해서 철문을 장력으로 후려쳤다.

 

콰아앙!

 

천둥소리와 함께 뇌옥이 뒤흔들렸다. 세 푼 두께로 된 철문의 중앙이 튀어나오고 경첩이 있는 곳에서 돌가루가 튀었다.

 

‘다 늙은 영감이 무슨 기운이 저리 좋아?’

 

풍천은 마지막 걸쇠를 잡아당기고 천 근 무게의 철문을 열었다.

 

끼이이이.

 

마음이 급한 그는 문이 한 자 반 정도 열리자 재빨리 금귀옥을 빠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철문이 통째로 떨어져서 통로에 나뒹굴었다.

 

콰앙! 우당탕!

 

“이놈! 어딜 도망가느냐!”

 

“멈춰라!”

 

악초당과 단리욱이 노성을 내지르며 고문실에서 달려나왔다.

 

‘저런 바보들. 당신들 같으면 멈추겠어?’

 

환신술을 펼친 풍천은 전력을 다해서 서른세 개의 계단을 갈지자로 올라갔다.

 

지하 일층에서는 뇌옥의 간수들이 잔뜩 긴장한 채 웅성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한바탕 싸움이 벌어진 것 같은데? 누가 탈출하려고 그랬나?”

 

“미친놈, 대공자와 팔대신마 중 한 분인 악 대장로와 독을 애들 장난감처럼 다루는 지 장로가 내려갔는데 어떤 놈이 탈출을 해? 기관이 움직이지 않은 걸로 봐서 별일 아닐 거야.”

 

“하긴 귀신이 되기 전에는 금귀옥에서 탈출할 수 없지.”

 

풍천은 간수들의 웅성거림을 들으며 손을 흔들었다.

 

계단의 유등불이 꺼질 것처럼 흔들렸다.

 

갑작스런 상황에 간수들이 눈을 깜박인 순간, 환신술로 몸을 감춘 풍천은 정말 귀신처럼 그들의 머리 위를 타넘은 뒤 전력을 다해서 뇌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곧 계단 아래에서 단리욱과 악초당, 소지환과 지민민이 날듯이 위로 올라왔다.

 

악초당이 간수들을 향해 소리쳐 물었다.

 

“좀 전에 올라온 놈을 못 봤느냐?”

 

간수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예? 아무도 올라오지 않았는데요?”

 

“빌어먹을, 하긴 네놈들이 그놈을 발견하는 걸 기대한 내가 미친놈이지.”

 

단리욱은 얼굴이 벌게진 채 이를 으드득 갈았다.

 

“개자식, 어떤 놈인지 반드시 잡아내고 말겠어!”

 

그는 욕설을 퍼붓고는 광기가 일렁이는 눈으로 소지환을 바라보았다.

 

“소 장로, 방금 도망간 자는 우리가 들어가기 전부터 있었소. 설마 그를 모른다고는 하지 않겠지요?”

 

소지환은 간절한 표정으로 변명했다.

 

“보지 않았소? 대공자와 악 장로님조차 발견하지 못한 자외다. 그런 자가 그 안에 있는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소? 그보다 놈이 피를 많이 흘리는 것으로 봐서 부상이 심한 것 같소이다. 지금 쫓아가지 않으면 놓칠지 모르오. 나에 대한 것은 놈을 잡은 뒤에 추궁하시오, 대공자. 놈을 잡아야 나도 대공자의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겠소?”

 

일리 있는 말이었다. 소지환의 행동에 의심 가는 바가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금귀옥에 침입했던 놈을 잡는 것이 더 급했다.

 

“좋소. 일단 그놈을 먼저 잡고 봅시다!”

 

이를 간 단리욱은 지하 일층의 간수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금귀옥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라! 나중에 자세히 조사할 테니까!”

 

“예, 대공자!”

 

 

 

풍천은 뇌옥을 빠져나오자마자 장로원으로 연결된 담장을 넘어갔다.

 

이제 볼일이 끝난 이상 신마성을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야 했다.

 

하지만 그는 백송림을 통과하지도 못한 채 걸음을 멈춰야 했다. 마치 볼일 보고 그냥 나온 사람처럼 찜찜한 기분이었다.

 

걸음을 멈춘 그는 이마를 찌푸린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이렇게 허전하지? 진호량이 죽어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그때 바람 한 줄기가 백송림을 훑고 지나갔다.

 

단리욱의 도에 스친 가슴속으로 시원한 바람이 스며들었다.

 

‘헉!’

 

튀어나올 것처럼 눈을 크게 뜬 풍천은 급히 자신의 가슴에 손을 집어넣었다.

 

순간 그의 안색이 썩은 땡감처럼 시커멓게 변했다.

 

‘내 돈주머니!’

 

가슴의 옷자락이 길게 갈라져 있었는데 설추교에게 받은 상자만 남고 돈주머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문득 정신없이 단리욱의 도세를 피하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몸을 빙글 돌릴 때 뭔가가 돌 침상 밑으로 들어갔는데 이제 보니 그때 옷이 갈라지고 자신의 돈주머니가 빠진 듯했다.

 

풍천은 백송림의 나무 위로 올라가서 뇌옥 쪽을 바라보았다. 뇌옥 안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단리욱이 반쯤 미친놈처럼 설치는 소리가 들렸다.

 

“성 전체에 비상을 거시오! 놈은 부상을 입었소! 바닥의 핏자국을 잘 살펴보고 추적하시오!”

 

풍천은 자신의 상처를 내려다보았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온몸이 욱신거리고 쓰라렸다.

 

풍천은 지혈을 하고 급한 대로 옷을 찢어서 대충 상처를 감쌌다.

 

돈주머니는 뇌옥 안에서 잃어버린 게 분명했다.

 

자신의 돈주머니를 놈들이 주웠을까?

 

‘아냐, 돈주머니가 돌 침상 밑으로 들어갔다면 놈들도 모를 거야.’

 

놈들은 자신을 잡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었다. 가슴에서 빠져나온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어떡하지? 그냥 놔두고 도망쳐?’

 

그럴 수는 없었다. 돈주머니 안에는 무려 황금 사십 냥과 가치가 얼마나 나갈지 알 수 없는 때깔 좋은 청광석 두 개가 들어 있지 않은가. 하늘이 무너져도 그걸 놔두고 갈 수는 없었다.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 하잖아?’

 

풍천은 이를 지그시 악물고 숨을 골랐다.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핏자국이 장로원 쪽으로 이어져 있다!”

 

그는 무사들이 백송림으로 들어오기 전에 나무에서 나무로 옮겨가며 뇌옥의 뒤쪽으로 돌아갔다.

 

 

 

2

 

 

 

둥둥둥둥!

 

갑작스런 비상고 소리에 신마성이 발칵 뒤집혔다.

 

신마성 무사들은 잠을 자다 말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여기저기서 외치는 소리가 신마성의 밤하늘을 울렸다.

 

“대공자의 명이시다! 뇌옥을 탈출한 놈이 있다! 부상을 입은 젊은 놈을 보면 무조건 잡아라! 놈을 잡은 자에게는 은자 백 냥의 상금이 내려질 것이다!”

 

상금이 은자 백 냥이라는 말에 신마성 무사들은 성을 샅샅이 뒤지며 아닌 밤중에 보물찾기를 했다.

 

그 시각, 풍천은 몰래 뇌옥으로 스며들었다.

 

금귀옥으로 내려가는 입구를 간수 두 명이 지키고 있었지만 그들은 환신술을 펼친 풍천이 다리 옆으로 지나가는데도 알아채지 못했다.

 

풍천은 계단을 내려가 조심스럽게 금귀옥으로 접근했다.

 

다행히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몇 사람이 있긴 했다. 그에게 혈도를 제압당한 간수들이.

 

금귀옥 안으로 들어간 풍천은 조심스럽게 철문을 닫았다.

 

걸쇠 푸는 법을 알려준 간수는 그때까지도 누워 있었는데 풍천을 보더니 겁에 질려서 벌벌 떨었다.

 

풍천은 그를 향해 씩 웃었다.

 

“하하, 놓고 간 게 있지 뭐요. 그것만 찾으면 갈 테니까 걱정 말고 편히 쉬쇼.”

 

그러고는 간수의 수혈을 짚어서 편히 쉬도록 만들어놓고 진호량이 있는 뇌옥으로 갔다. 철문은 이미 휴지처럼 구겨진 채 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그는 진호량을 바라보았다. 진호량은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풍천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돌 침상 아래를 찾아보았다. 다행히 자신의 돈주머니는 주인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풍천은 돈주머니를 꺼내서 찢어지지 않은 쪽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일어나서 진호량을 한 번 더 바라본 다음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바로 그때 안자도의 옆구리에 매달린 열쇠뭉치가 보였다.

 

순간 엉뚱한 생각이 든 풍천은 입술을 비틀며 눈을 반짝였다.

 

‘이 위험한 곳에 다시 돌아왔는데 돈주머니만 찾고 나갈 수는 없지. 단리욱, 네놈의 머리를 터지게 만들어주마.’

 

단리욱 등은 자신을 잡기 위해서 신마성을 뒤지고 있을 터, 바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금귀옥을 한바탕 뒤집어놓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그는 쓰러져 있는 안자도에게 다가가 옆구리에 걸린 열쇠를 떼어냈다. 그리고 옥실의 문을 열었다.

 

첫 번째 옥실에는 말라붙은 피로 온몸이 시커멓게 물든 중년인이 있었는데, 그의 두 손에는 쇠로 된 수갑이 채워져 있고 벽에서 늘어진 쇠사슬이 수갑과 연결되어 있었다.

 

풍천의 그의 손을 묶고 있는 쇠사슬을 풀어주었다.

 

“그 몸으로 나가긴 힘들겠지만 잠시라도 편히 지내쇼.”

 

손목을 매만지는 중년인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그도 자신이 뇌옥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발의 근맥이 잘리고 내공마저 잃은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곧 편안해진 표정으로 풍천을 쳐다보았다. 목에 가래가 꽉 낀 것 같은 목소리가 가늘게 벌어진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혹시 자네가 조금 전에 단리욱 등과 싸운 사람인가?”

 

막 나가려던 풍천은 그를 돌아다보았다.

 

“그렇습니다만?”

 

“나는 제종완이라 하네. 부탁 하나 해도 되겠나?”

 

부탁을 받아주면 이행해야 한다. 그는 고금제일의 해결사. 신용 하나는 철저해야 하니까. 그래서 아예 부탁을 듣지 않기로 했다.

 

“미안한데 말이죠, 저도 바빠서…….”

 

하지만 제종완이란 죄수는 그가 거부하는데도 말을 계속했다.

 

“혹시라도 안휘의 종산에 갈 일이 있으면 백운암에 기거하고 있는 진학이라는 사람을 찾아가 내가 여기서 죽었다는 걸 알려주게.”

 

생각해보니 별로 어렵지 않은 부탁 같다. 언제까지라는 기간도 정해져 있지 않고.

 

마음이 변한 풍천은 적당한 청부금을 계산해보았다.

 

“그 정도 청부면 은자 스무 냥은 줘야 되는데요?”

 

‘뭐라?’

 

금방 죽을 것 같던 중년인, 제종완은 별놈 다 본다는 눈빛으로 풍천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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