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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04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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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천풍전설 104화

 

104화

 

 

 

 

 

 

“물론이네. 그러니 성주께서 친히 명을 내리신 것 아니겠나?”

 

염소수염의 노인이 말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바로 팔대신마 중 하나인 삼령신마(三靈神魔) 악초당이었다. 세 개의 영혼을 지녔으며 사람의 혼을 마음대로 조종한다는 희대의 마인.

 

그리고 그의 바로 뒤를 따라 들어오는 아름다운 중년 여인은 독부용 지민민이었다. 아름다운 모습과 전혀 다른 마음씨를 지닌 여인.

 

천하의 마인들이 모였다는 신마성에서도 그녀를 우습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 날 독에 중독되어서 귀신도 모르게 죽고 싶지 않다면 몰라도.

 

문제는 지민민의 뒤를 따라서 들어오는 서른가량의 장한이었다. 그를 본 소지환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떡 벌어진 어깨에 부리부리한 눈매, 자의를 입은 그는 다름 아닌 혁련궁의 대제자, 진마공자(振魔公子) 단리욱이었다.

 

“대공자께서도 오셨구려.”

 

“어떤 세력이기에 사부님께서 신경을 쓰시는지 직접 들어보려고 왔소.”

 

“금방 죽을 것처럼 생겨서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소이다.”

 

악초당이 음험한 웃음을 흘리며 진호량이 누워 있는 침상으로 다가갔다.

 

“후후후, 그래서 우리가 필요한 것 아니겠나? 걱정 말게. 곧 이놈의 입이 열릴 테니까.”

 

지민민은 쥐 잡아먹은 것처럼 붉은 입술을 혀로 핥으며 요사스런 웃음을 지었다.

 

“호호호호, 소 장로는 구경만 하세요.”

 

“저도 구경하고 싶습니다만 바쁜 일이 있어서…… 그럼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대공자.”

 

소지환은 담담한 표정으로 단리욱에게 포권을 취하고 몸을 돌렸다.

 

순간 단리욱의 눈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고개를 돌린 그는 막 걸음을 옮기려는 소지환의 등을 쳐다보았다.

 

“소 장로, 도움이 필요할지 모르니 잠깐만 기다려주시오.”

 

멈칫한 소지환이 몸을 돌리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답했다.

 

“세 분이 계신데 제가 필요할 일이 있겠소이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아니겠소?”

 

“정 그러시다면야…….”

 

소지환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 자리에 서서 지켜보았다.

 

그때 진호량의 상태를 살피던 악초당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파였다.

 

“응? 어제보다 더 안 좋은 것 같은데? 이상하군.”

 

지민민이 눈살을 찌푸리고 진호량에게 바짝 다가섰다.

 

“제가 한번 손을 써볼게요.”

 

그녀는 진호량의 맥을 짚어보고는 품속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손가락만 한 옥병이 열 개 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중 하나를 꺼내더니 마개를 열고 진호량의 입을 벌린 다음 두어 방울 떨어뜨렸다. 그리고 입술을 오므려 진호량의 입에 대고 입김을 불어넣었다.

 

다섯을 셀 즈음 진호량의 몸이 잘게 떨렸다. 하지만 그뿐 눈을 뜨거나 입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이상하군요. 굉혈독 세 방울이면 다 죽은 자도 눈을 뜰 만큼 뇌에 충격이 클 텐데…….”

 

지민민마저 이상하다는 듯 말하자 단리욱이 진호량에게 다가갔다.

 

그는 진호량의 맥문을 잡고 내부 상태를 점검했다. 잠시 후 가늘게 좁혀진 그의 눈에서 한광이 번뜩였다.

 

그는 진호량의 얼굴을, 정확히는 머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뇌에 급격한 이상이 생겼다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소?”

 

“호호호, 물론 그야 그렇죠. 그런데 머리는 멀쩡하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요.”

 

“나도 그리 들었소. 하지만 지금 살펴본 대로라면 뇌로 향하는 혈맥이 끊겨 있어서 숨만 쉴 뿐 사실상 죽은 상태나 마찬가지요.”

 

악초당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게 사실이오, 대공자?”

 

“그렇소. 솔직히 그래서 더 이상한 일이지요.”

 

단리욱은 나직이 말하며 소지환을 쳐다보았다.

 

“소 장로라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아는 게 있을 것도 같습니다만.”

 

소지환이 당황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모르는 일이외다, 대공자. 나는 단지 이자에게 귀영사를 아는지 물어봤을 뿐이외다. 믿어주시오.”

 

단리욱이 문 밖에 서 있는 안자도에게 물었다.

 

“옥장, 어제부터 오늘까지 우리가 오기 전 이곳에 들어온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

 

“어젯밤에 두 분이 들어오셨고 오늘은 소 장로님 한 분뿐이십니다.”

 

단리욱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소 장로의 구지검이라면 뇌의 혈맥을 이토록 세밀하게 끊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안 그렇소?”

 

“허어! 글쎄 내가 왜 이자에게 손을 쓴단 말이오? 생각해보시오! 금귀옥에는 옥장과 간수들이 상주해 있고 다른 죄수들도 있소이다. 왜 나만 있었다고 보는 거요?”

 

소지환은 절대 범인이 아닌 것처럼 악착같이 변명했다.

 

단리욱의 미간에 주름이 그어졌다. 사실 그도 소지환을 의심하긴 했지만 계속 추궁하기는 어정쩡했다. 혈맥이 끊긴 것을 꼭 구지검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꼭두새벽에 금귀옥에 들어와서 이자를 만난 것은 분명 의심받을 만한 일이었다.

 

“귀영사를 만나러 왔다는 분이 이자는 왜 만난 거요?”

 

“귀영사를 아는지 물어보려 한 것뿐이오.”

 

“그걸 왜 궁금해한 거요?”

 

“귀영사가 이자와 연관되지 않았나 의심이 되어서 그랬소.”

 

“소 장로가 왔을 때도 이자가 이 상태였소?”

 

“물론이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몇 마디 물어본 것밖에 없소이다.”

 

거침없는 소지환의 답변에 단리욱도 더 이상 강하게 추궁하지 못했다.

 

한편 소지환의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풍천은 갑자기 콧속이 근질거리자 미칠 것 같았다.

 

지민민이 진호량에게 투여한 독을 입으로 불었을 때 미미한 양의 독기가 옆으로 흘렀는데, 바짝 웅크리고 있는 그의 콧속으로 스며든 것이다.

 

결국 참다못한 풍천은 소지환의 그림자를 벗어나 악초당 쪽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한번 콧속을 파고든 독기는 풍천의 인내를 집요하게 시험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얼굴이 붉어지도록 참던 그의 입에서 막을 새도 없이 재채기 소리가 흘러나왔다.

 

“에취이…….”

 

사람들은 그 소리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소리도 워낙 작았고, 안에 있는 사람 중 누군가가 재채기를 한 것이겠지 생각한 것이다.

 

단리욱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별 의미 없이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을 느끼고 이마를 좁혔다.

 

악초당, 지민민, 소지환, 하다못해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안자도조차 재채기를 한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한 것도 아니고.

 

그럼 누가?

 

그는 진호량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귀신이 곡할 일이었다.

 

단리욱은 주위를 둘러보며 이상한 점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그는 곧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유등불로 인해서 생긴 악초당과 소지환의 그림자가 바람도 없는데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음을 보냈다.

 

[악 장로님, 옆으로 가보십시오.]

 

악초당은 의아해하면서도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순간 그의 그림자가 흔들리며 둘로 나누어졌다가 겹쳐졌다.

 

단리욱의 이마에 파인 골이 더욱 깊어졌다. 정상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무엇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짜증이 난 단리욱은 악초당의 그림자를 향해 우수를 저었다.

 

강력하면서도 은밀한 장력이 그림자를 향해 밀려갔다.

 

그때였다. 또다시 그림자가 흔들렸다. 단리욱은 싸늘해진 눈빛으로 다시 우수를 휘둘렀다.

 

조금 전보다 더욱 강한 장력이 그의 손에서 쏟아졌다.

 

풍천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걸 알고 재빨리 옆으로 이동했다.

 

‘빌어먹을!’

 

하지만 미숙한 환신술로는 안력을 집중한 단리욱의 눈을 완벽하게 속일 수 없었다.

 

“이 안에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소!”

 

단리욱이 소리치며 옆구리의 도를 빼 들고 입구 쪽을 막아섰다.

 

소지환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단리욱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처럼 완벽히 차단된 곳에 누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신마성의 대제자가 하는 말을 무시할 수 없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찾는 시늉을 했다.

 

공력이 제일 강한 악초당이 먼저 이상한 느낌을 받고 소리쳤다.

 

“엇? 진짜 누가 있는 것 같네!”

 

소지환은 알고도 모른 척했고 지민민은 정말로 눈치를 채지 못했다.

 

풍천은 더 이상 환신술만으로 상대의 눈을 속일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천풍무영류를 펼쳤다.

 

모습을 숨기는 데는 환신술이 더 뛰어나지만 대신 환신술을 펼치면서는 공격에 제대로 된 진기를 실을 수가 없었다.

 

문제는 천풍무영류를 펼치기에는 장소가 좁다는 것이었다.

 

‘지미, 조금만 넓었어도 한바탕 해버리는 건데…….’

 

천풍무영류를 펼친 풍천은 일단 장력을 발출해서 유등불부터 꺼버렸다. 그리고 제일 먼저 악초당을 공격했다.

 

풍천이 억눌렀던 기운을 풀고 공격을 감행하자 악초당도 팔대신마 중 한 사람답게 풍천의 존재를 본능적으로 느꼈다.

 

“헉!”

 

뒷골이 섬뜩해진 그는 반사적으로 양손을 휘저어서 풍천의 공세를 막았다.

 

떠덩!

 

풍천의 검이 악초당의 옷자락을 찢고 어깨를 훑으며 지나갔다.

 

분노가 솟구친 악초당은 눈을 부릅뜨고 전 공력을 끌어올렸다.

 

“웬 놈이 감히……!”

 

풍천은 옆으로 일 장을 흘러간 후 곧장 입구로 향했다.

 

처음부터 신경을 곤두세운 채 풍천의 움직임을 좇던 단리욱의 두 눈에서 기광이 일렁였다.

 

그는 뇌옥 안에서 흐르던 미미한 기운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자 손에 들린 도에 기운을 집중하고 번개처럼 휘둘렀다.

 

위태곤의 검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한 위력의 도세가 풍천을 휘감았다.

 

‘빌어먹을!’

 

풍천은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일단 옆으로 물러났다.

 

순간 단리욱이 천장의 구석을 향해서 소리쳤다.

 

“모두 저쪽을 공격하시오!”

 

절정고수 네 사람이 일제히 풍천을 향해 공세를 퍼부었다. 그때만큼은 소지환도 어쩔 수 없었다.

 

쿠구구궁! 콰광! 우르르릉!

 

뇌옥이 무너질 것처럼 울렸다.

 

금귀옥과 지하 일층 뇌옥이 이 장 두께의 암벽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면 천장이 무너졌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풍천은 폭풍처럼 밀려드는 거센 기운을 보고 안색이 해쓱하게 질렸다.

 

소지환의 공격은 그에게 별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단리욱과 악초당의 공세는 그가 정면으로 상대하기에는 큰 부담이 되었다. 거기다 지민민의 독기가 서려 있는 공격은 맞받기가 여간 껄끄러운 게 아니었다.

 

공간의 여유가 없으니 환신술도 천풍무영류도 별 도움이 안 되는 상황. 결국 천라신수와 검으로 막아내긴 했는데 가슴이 턱턱 막히고 피가 목구멍으로 솟구치는 듯했다.

 

그나마 유등불을 먼저 꺼놓은 게 다행이었다. 만약 불빛이 있었다면 보다 더 정확한 공격이 이어졌을 것이었다.

 

‘지미, 내 두 번 다시는 좁은 지하에서 안 싸운다!’

 

넓이가 두 배만 되었어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텐데…….

 

신음소리 한 번 안 내고 정신없이 네 사람의 공세를 벗어난 풍천은 바닥에 바짝 몸을 붙인 채 제비가 물 위를 스치듯 날아갔다.

 

단리욱은 풍천에게서 느껴지는 진기의 흐름을 따라가며 자신의 절기인 혈광구도(血光九刀)의 아홉 초식을 연속으로 펼쳤다.

 

“흥! 어딜 빠져나가려고! 어림없다!”

 

분노가 치민 도세였다. 더구나 좁은 장소라는 걸 생각하고 도기를 밖으로 뿜어내는 대신 도신에 집중한 터여서 오히려 도세의 직접적인 위력은 더 강했다.

 

쩌저저적.

 

벽이 두부처럼 쩍쩍 갈라지고 바닥이 깊게 파였다.

 

풍천은 이를 악물고 혼신을 다해 환신술을 펼쳤다.

 

어차피 공격해봐야 적에게 자신의 위치만 알릴 뿐. 천풍무영류를 거둔 그는 마주 부딪칠 생각을 버리고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서 단리욱의 광폭한 도세를 가로질렀다.

 

시큰한 통증이 서너 군데서 동시에 느껴졌다.

 

도기가 안으로 갈무리된 칼날인데도 서너 치 간격을 두고 스치기만 하면 옷이며 살이 갈라졌다.

 

어지간한 도검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질긴 살가죽도 단리욱의 도에는 소용이 없었다.

 

등 쪽은 제법 깊게 베인 듯했고 가슴도 옷자락이 길게 베어진 느낌이 들어 섬뜩했다.

 

하지만 풍천은 이를 악물고 단리욱의 도세를 벗어났다.

 

그때 단리욱이 풍천을 공격하느라 문에서 멀어지자 악초당이 악을 쓰듯 외쳤다.

 

“문을 닫아라!”

 

입구 쪽에 서 있던 안자도가 황급히 손을 뻗어서 문을 잡아당겼다.

 

쾅!

 

굉음과 함께 철문이 닫혔다. 안자도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걸쇠까지 걸었다.

 

“후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오리 알 굵기의 쇠로 된 걸쇠를 걸어서 문을 잠근 안자도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철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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