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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00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8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00화

 

100화

 

 

 

 

 

 

소지환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일반 장로들도 신마비원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그저 자질이 있는 무사들이 수련하는 곳 정도로만 알고 있었을 뿐, 설마 유광 같은 자들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지. 그걸 알고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성주의 철저함에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신마비원요?”

 

되묻는 풍천의 눈빛이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흠, 그거 쓸 만한 정보군. 돈 좀 되겠는데?’

 

소지환은 풍천의 속도 모르고 자신이 아는 바를 말해주었다.

 

“성주가 비밀리에 고수들을 모집해서 힘을 키운 것 같다. 팔대신마나 최측근들만 알고 있었나 보더군.”

 

“몇 명이나 됩니까?”

 

“정확한 인원은 아직 모른다. 어쨌든 문이 열렸으니 이제 곧 모두 나오겠지.”

 

풍천은 소지환의 말을 들으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신마비원의 존재를 장로들조차 모르고 있다니. 왜 그렇게 철저히 감추었을까?

 

단순히 타 세력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서? 아니면 천외의 첩자가 신마성에 있다는 걸 알고?

 

어떤 이유든, 그토록 철저히 세력을 감추었던 세력을 드러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

 

풍천의 머리가 빠르게 굴렀다.

 

‘천외하고 한바탕 붙어서 둘 다 망하면 좋을 텐데…….’

 

그때 소지환이 풍천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제 세 가지 질문이 모두 끝났군. 설마 약속을 어기지는 않겠지?”

 

“물론이죠. 제가 약속 하나는 칼처럼 지키거든요.”

 

풍천은 세상에서 약속을 가장 잘 지키는 사람처럼 말하고는 말끝에 한마디 덧붙였다.

 

“들어가시면 설추교 장로님께 이리 좀 오시라고 전해주시죠.”

 

“그게 무슨……?”

 

“그게 싫으시면 방을 알려주시던가요.”

 

질문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약속을 어긴 것도 아니다.

 

‘정말 거머리 같은 놈이군.’

 

소지환은 상관경의가 불쌍하게 여겨졌다.

 

수하들이 죽은 것만 해도 통한의 일일 것이거늘, 이놈에게 도움을 받고 얼마나 시달렸을까?

 

‘상관 령주도 정말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군.’

 

어쨌든 직접 설추교에게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 자신이 외부와 통하고 있다는 게 알려질 테니까.

 

“설 장로의 방은 입구에서 좌측으로 두 번째 건물 이층 끝 방이다. 절대 나와의 관계에 대해선 함구해야 한다. 알겠느냐?”

 

“걱정 마쇼. 저도 그 정도 머리는 있으니까.”

 

더 이상 풍천을 상대하기 싫은 소지환은 몸을 돌렸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다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상관 령주를 만나게 되거든, 진호량의 일은 어쩔 수 없었다고 말씀드려라.”

 

“그러죠. 그런데 언제쯤 처리하실 겁니까?”

 

“날이 새면 고문이 시작될 것이다. 그 전에 해결해야겠지.”

 

소지환은 웅얼거리듯 나직이 말하고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풍천은 그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쳐다보고는 허공으로 솟구쳤다.

 

 

 

4

 

 

 

설추교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쥐새낀가?’

 

차를 마시는지 쩝쩝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내가 찻잔에 차를 남겨놓았나?’

 

그때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젊은 청년의 목소리였다.

 

“달짝지근하니 괜찮은데?”

 

‘응? 어떤 놈이 감히……!’

 

설추교는 상체를 일으키고 침상에서 내려왔다. 방 안은 칠흑처럼 어두웠는데, 침상에서 삼 장가량 떨어진 탁자 옆에 시커먼 그림자가 앉아 있었다.

 

“웬 놈이냐?”

 

“접니다.”

 

너무 태연한 풍천의 대답에 설추교는 야단도 못치고 의아해하는 말투로 물었다.

 

“누구……?”

 

“두 달 전에 회하의 강변 갈대숲에서 만난 잘생긴 청년 기억 안 나세요?”

 

두 달 전, 회하의 강변 갈대숲, 잘생긴 청년?

 

설추교의 얼굴이 송충이를 씹은 것처럼 일그러졌다. 절대 기억하기 싫은 그날의 일이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만나기 싫은 어떤 놈의 얼굴도.

 

“서, 설마 자네가……?”

 

“쉿, 경비 무사들이 들을지 모르니 목소리 낮추고 이리 오시죠.”

 

설추교는 몸을 덜덜 떨며 탁자로 다가갔다.

 

시력을 집중하자 그림자의 모습이 확연히 보였다.

 

정말 그놈이었다. 갈대숲의 유령.

 

“어, 어떻게 여길? 아니 왜 나를 찾아온 건가?”

 

“몇 가지 알아볼 게 있어서 왔죠.”

 

“뭘……?”

 

“오 개월 전, 구룡회의 사람들과 유령총에서 싸울 때 설 장로도 그곳에 갔었습니까?”

 

“갔었네.”

 

제대로 찍었군!

 

만족한 풍천은 사마공유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신검문의 사마공유가 어떻게 죽은지 아시죠?”

 

“사마공유? 죽었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군. 그 일에 대해서라면 신검문 사람인 자네가 더 잘 알 것이 아닌가?”

 

알면 미쳤다고 여기까지 와서 묻겠어?

 

풍천은 설추교를 째려보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러니까, 묻는 말에나 대답해주쇼. 듣기로는 그가 천혈궁 독귀의 독에 당해서 죽었다던데, 맞습니까?”

 

설추교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독귀의 독에 중독된 건 맞네. 하지만 독 때문에 죽었는지는 모르겠군.”

 

“부상이 심각했습니까?”

 

“심하긴 했지만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니었네. 그래도 그는 유령곡을 빠져나갔으니까. 자신에게 독상을 입힌 독귀까지 죽이고 말이야. 정말 대단한 놈이었지.”

 

놈?

 

‘음, 좋아, 오늘은 할 일이 많으니까 그 정도는 참지.’

 

풍천은 인내심을 발휘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계속 질문을 던졌다.

 

“독 때문에 죽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고 보쇼?”

 

“글쎄…… 신검문까지 가는 동안 해독하지 못했다면 독으로 인해 죽을 수도 있겠지. 더구나 천혈궁에서도 그들을 가만 놔두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확실하게 독 때문에 죽었다고는 말하기가 애매하군.”

 

풍천은 이마를 찡그렸다.

 

위태곤과 설추교는 독에 대해서 큰 비중을 두지 않는데, 정무당주 조환은 사마공유가 심한 독상을 입어서 하루 만에 심장이 녹았다고 했다.

 

누구 말이 맞는 걸까?

 

신검문에 독을 해독할 사람이 없어서 죽은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절정에 이른 고수가 그 정도의 독상을 입었다고 하루 만에 심장이 녹다니.

 

물론 심한 부상과 독상이 겹쳐서 상태가 급격히 나빠질 수는 있었다. 신검문으로 돌아가던 중 천혈궁 놈들에게 죽었을 수도 있고.

 

문제는 왜 그 상황을 말해주지 않고 모든 것을 독 때문에 죽은 것처럼 말했느냐 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독기가 너무 심해서 바로 화장을 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상해. 형의 죽음에 뭔가 수상한 일이 얽혀 있는 것 같은데…….’

 

풍천은 구겨진 이마 한가운데를 문질렀다. 하지만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조 당주를 닦달해볼까? 그게 빠를 것 같은데.’

 

사이가 조금 껄끄러워질지 몰라도 형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밝힐 수만 있다면 못 할 것도 없었다.

 

“뭐 좋습니다. 자세한 건 제가 알아보죠.”

 

그는 찻주전자에서 차를 가득 따른 다음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고는 설추교를 바라보았다.

 

“이청사란 분을 만나고 싶은데, 지금 어디 계시죠?”

 

“그분은 왜 만나려고 하는 건가?”

 

“확인할 게 있어서요.”

 

설추교는 갈등하는 표정으로 머뭇거렸다.

 

사람 목숨 우습게 여기는 그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사람이 바로 이청사였다. 젊은 적 나락에 빠져 있던 그를 구해준 사람이니까. 하기에 아무리 풍천이 두렵다 해도 그의 거처를 무작정 알려줄 수는 없었다.

 

“이유를 확실하게 알려주게. 아니면 자네가 아무리 내 목줄을 쥐고 있어도 만나게 해줄 수 없네.”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일도 아닙니다.”

 

“그분은 기력이 쇠해서 오래전부터 일선에 나서지 않으셨네. 정 만나고 싶다면, 먼저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게.”

 

“약속하죠. 대신 설 장로가 황금 스무 냥을 만들어주쇼.”

 

“황금 스무 냥?”

 

“제가 대신 그 많은 위약금을 물어줄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그게 무슨……?”

 

의아해하던 설추교의 두 눈이 커졌다.

 

그는 이청사가 왜 심각한 내상을 입고 수십 년 동안 고생하는지 그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설마…… 청부?”

 

“해결사가 돈을 받고도 일을 완수하지 못했다면 위약금을 물어내야 합니다. 그게 아무리 오래된 일이라 해도 말이죠.”

 

“위약금을 주지 않으면, 그 어른에 대한 청부를 지금이라도 집행하겠단 말인가?”

 

풍천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잘 아시는군요. 바로 그겁니다.”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청부가 완결되지 않았으면 백년 후라도 후예가 나서서 해결해야 합니다. 한번 체결된 청부는 매듭이 지어지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된다, 그게 저희 사문의 신조죠.”

 

징그러운 놈들!

 

‘하긴 그런 곳쯤 되니 저런 요상한 괴물을 만들어냈겠지.’

 

설추교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풍천을 노려보며 침음을 흘렸다.

 

“으음, 좋네. 내 만들어보지.”

 

“지금이 아니면 시간이 없는데…….”

 

“지금 어떻게 황금 이십 냥을 만든단 말인가?”

 

“그에 합당한 다른 물건이라도 주시면 되잖습니까? 설마 신마성의 장로쯤 되는 분이 기보 한 점 없진 않겠죠?”

 

너무 비싼 것이면 거슬러줄 수도 있는데.

 

그러나 그 말은 하지 않고 설추교의 반응을 기다렸다.

 

설추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적당한 것이 생각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주지.”

 

그는 한쪽 벽으로 걸어가더니 족자를 젖히고 고리를 잡아당겼다.

 

그의 손짓을 따라서 서랍 하나가 딸려 나왔다.

 

‘쯔쯔쯔, 숨겨도 꼭 저런 곳에 숨긴다니까? 도둑들이 제일 먼저 살펴보는 곳인데.’

 

풍천이 혀를 차며 바라보는 동안, 설추교는 서랍 안에서 손바닥만 한 작은 함을 하나 꺼내들고 탁자로 다가왔다.

 

탁자 위에 함을 내려놓은 그는 고리를 풀고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붉은 빛을 발하는 핏빛의 모란이 한 송이 들어 있었다. 물론 진짜 모란은 아니었다.

 

“웬 꽃입니까?”

 

“십여 년 전 무창에 갔다가 골동품점에서 산 것이네. 정확한 재질은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마음을 끌어당기더군. 당시 가진 것 탈탈 털어서 황금 삼십 냥을 주었지. 아무리 값을 후려친다 해도 자네가 말한 금액에서 부족하진 않을 거네.”

 

황금 삼십 냥? 이게 정말 그런 거금을 주고 살 정도의 보물인가?

 

풍천은 붉은 모란꽃을 꺼내서 만지작거렸다. 창문을 통해 스며든 화톳불 불빛으로 인해서 붉은 빛이 은은하게 퍼지는데, 진짜 모란꽃처럼 아름다웠다.

 

‘이걸 보면 초령이가 좋아하겠군.’

 

바로 그때, 무심코 꽃받침을 돌리자 모란꽃이 활짝 벌어졌다. 그리고 다시 꽃받침을 반대로 돌리자 꽃이 원상태로 오므라들었다.

 

‘좋긴 한데…….’

 

그럼 황금 열 냥을 거슬러 줘야 하잖아?

 

주머니 안에 황금 사십 냥이 들어 있다. 선가장에서 준 이십 냥과 악진표에게 받은 이십 냥이 그대로 있으니까.

 

열 냥을 내준다 해도 삼십 냥이 남는다. 그리고 은자도 있고. 자신이 물어야 할 또 다른 위약금까지 딱 떨어지는 금액.

 

풍천은 그것도 운명이라 생각하고 붉은 모란을 받기로 했다.

 

“좋습니다. 이걸 받고 나머지 열 냥은 거슬러 드리죠.”

 

“필요 없네.”

 

“예?”

 

“황금 열 냥은 거슬러주지 않아도 되네. 대신 그분을 대할 때 무례를 범하지 말게.”

 

정말 마음이 후한 사람이군!

 

풍천은 흐뭇한 표정으로 별 걱정 다한다는 듯 말했다.

 

“걱정 마시라니까요. 제가 이래봬도 예의하나는 깎듯 합니다.”

 

그걸 누가 믿어?

 

설추교는 눈곱만큼도 믿을 수 없었지만 믿는 척했다.

 

“좋아, 자네를 믿지.”

 

“그럼 이제 말씀해 주시죠. 그분은 어디 계십니까?”

 

“그분은 와우산 서쪽 끝자락에 있는 잠마원에 계시네.”

 

“잠마원(潛魔院)?”

 

신마성에 그런 곳도 있던가?

 

‘하긴 신마비원이란 곳도 십 년 이상 감춰져 있었는데…….’

 

의아해하던 풍천은 신마비원을 떠올리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설추교는 자신이 직접 안내하겠다고 나섰다.

 

“잠마원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네. 내가 안내할 테니 뒤를 몰래 따라오게.”

 

풍천은 설추교를 올려다보았다.

 

‘당신을 어떻게 믿고 따라가?’

 

설추교는 풍천의 마음을 눈치채고 쓴웃음을 지었다.

 

“걱정 말게. 나도 소란스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원치 않으니까.”

 

그렇다면 뭐…….

 

풍천은 함을 품속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습니다. 가시죠.”

 

그런데 몸을 돌린 그가 방문을 향해 막 걸음을 옮길 때였다.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던 설추교가 무심코 질문을 던졌다.

 

“자네가 풍천이지? 다들 유령총에서 죽은 것으로 알고 있던데, 살아 있을 줄 몰랐군.”

 

순간, 멈칫한 풍천이 천천히 돌아섰다. 

 

어둠 속에서 귀기(鬼氣)처럼 번뜩이는 푸르스름한 눈빛!

 

‘아차! 괜한 말을…….’

 

뒷덜미가 서늘해진 설추교는 본능적인 감각으로 한 발을 뒤로 뺐다. 

 

하지만 채 반 걸음을 옮기기도 전, 푸른 불꽃이 넘실대는 눈동자와 커다란 손이 그의 코앞에 나타났다.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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