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9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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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90화
90화
신마성의 무사들은 엉뚱한 소란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정말로 풍천이 신마성 무사의 머리를 발로 차고 공손천우를 쫓아가자 무기를 뽑아들고 풍천을 공격했다.
“어디서 감히!”
“저놈도 한 패거리다! 죽여라!”
풍천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저 비겁한 자식이!”
그러나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면 일이 엉뚱하게 꼬일지도 모르는 일, 그는 꾹 참고 신마성 무사들의 공격을 피해 어둠 속으로 숨었다.
그 사이 공손천우는 전력을 다해서 신마성 무사들이 밀집해 있는 곳을 벗어났다.
그때 위태곤이 달려오며 소리쳤다.
“왜 이리 우왕좌왕이냐! 적이 서쪽으로 도주했다! 그들을 쫓아라!”
풍천은 위태곤의 목소리가 들리자 이를 뿌드득 갈았다. 하지만 지금은 위태곤을 처리하는 것보다 납치범을 잡는 게 더 급했다.
놈을 어떻게 찾았는데, 절대 놓칠 수 없지!
‘나쁜 자식, 지옥 끝까지 쫓아가주마!’
건물을 단숨에 뛰어넘은 그는 공손천우가 사라진 곳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그가 지붕을 넘어 제법 넓은 도로에 내려섰을 때였다. 대로 가에 있는 객잔에서 몇 사람이 나오는 게 보였다.
그들의 정체를 확인한 풍천의 이마에서 열이 확 뻗쳤다.
‘저 양반들은 왜 또 기어 나온 거야?’
객잔에서 나온 사람들은 화청백과 신검문 사람들이었다.
짜증 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풍천은 그들 중 한 사람을 보고 눈빛을 빛냈다.
‘어? 저 사람도 왔네?’
신검문 무사들 중에 악진표가 섞여 있었던 것이다. 자신에게 황금 이십 냥을 털린 자가.
풍천은 재빨리 몸을 숨겼다.
다른 사람도 그렇지만, 그는 더더욱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알아선 안 될 자였다.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알면 돈을 돌려달라고 할지 몰라.’
돌려달란다고 해서 줄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잠시 화청백 일행을 바라보며 망설이던 풍천은 그들의 운명에 관여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솔직히 말해서, 형만 아니면 자신이 신검문을 위해 위험한 일에 나설 이유가 없잖은가 말이다.
게다가 지금은 백초령을 찾는 게 무엇보다 급했다.
그런데 상황이 묘하게 흘렀다. 대로와 연결된 골목 안쪽에서 신마성 무사로 보이는 자들이 달려오는 게 보인 것이다.
그대로 놔두면 화청백 일행과 마주칠 게 뻔한 상황. 그는 목소리를 살짝 바꿔서 화청백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보쇼, 신마성 무사들이 몰려오고 있소. 어서 피하시오!]
화청백은 갑자기 들려온 전음에 멈칫했다.
풍천은 바로 움직이지 않는 화청백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 바람에 목소리를 변성시키지 않고 버럭 소리쳤다.
[진짜 말 드럽게 안 듣네. 어서 피하라니까!]
화청백은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에 들려온 전음은 칼칼한 목소리여서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들려온 전음은 어디선가 꼭 들어본 말투처럼 느껴졌다.
‘누군지 몰라도 꼭 죽은 풍천처럼 말하는군.’
그 즈음에는 골목 안쪽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기운을 그도 느꼈다. 일행 중 두어 사람도 느꼈는지 화청백에게 말했다.
“화 공자, 신마성 놈들이 오는 것 같네.”
“일단 객잔 안으로 피하고 보지요.”
화청백은 일행들과 함께 다시 담을 넘어 객잔으로 들어갔다. 그 와중에도 전음의 말투가 자꾸 떠올랐다.
‘설마 진짜 풍천은 아니겠지? 그는 유령총에서 죽었는데…….’
풍천은 화청백 일행이 간발의 차이로 몸을 피하자 신형을 날려 공손천우를 다시 쫓기 시작했다.
‘젠장,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화청백 일행 때문에 머뭇거리지만 않았어도 잡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았거늘. 빌어먹을 일이었다.
2
공손천우는 백초령을 숨겨둔 곳으로 곧장 달려갔다.
그는 수혈이 짚인 채 잠들어 있는 백초령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
‘그냥 풀어줄까?’
백초령을 납치한 것은 어떤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천의 행사에 대한 불만 때문에 욱해서 저지른 일일 뿐.
그런데 남창을 떠날 생각을 하니 괜히 짐만 되었다.
그렇다고 죽이고 갈 수도 없고…….
공손천우는 결정을 망설이며 백초령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렇게 반 각이나 지났을까, 그의 눈빛이 묘하게 반짝였다.
‘보면 볼수록 괜찮게 보인단 말이야.’
자신도 이제 혼인할 때가 되었다. 조부님도 왜 혼인을 하지 않느냐며 자신을 볼 때마다 귀찮을 정도로 재촉했다.
‘백초령을 데리고 가서 혼인한다고 할까?’
문득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무천의 딸이라면 조부님도 흡족해할 것 같고.
성격이 조금 별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거야 자신도 마찬가지니 애교로 넘길 수 있었다.
‘좋아, 백초령을 데려가면 더 이상은 혼인 때문에 잔소리하지 않겠지.’
그는 결심을 굳히고 백초령의 수혈을 풀어주었다.
잠에서 깬 백초령은 후다닥 일어나 앉아서 눈을 치켜떴다.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죠?”
“걱정 마라. 잠만 재웠을 뿐이니까. 그만 일어나. 남창을 떠날 생각이니까.”
“정말이에요?”
“물론이지. 남창을 떠나서 북쪽으로 갈 생각이다.”
“다시 갈 걸 왜 돌아온 거죠?”
“숙부님 때문에 왔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 뭐해? 안 갈 거야?”
백초령은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변태 위태곤이 있는 남창을 떠나고 싶었다.
“빨리 가요.”
공손천우는 자신보다 더 서두르는 백초령을 보고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러다 문득 자신을 악착같이 쫓아오던 풍천을 떠올리고 이마를 찌푸렸다.
‘그런데 그 자식은 나하고 무슨 원수를 졌다고 악착같이 쫓아온 거지? 미친놈인가?’
3
사우는 남창 성내의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신마비원이 열리고 비원의 고수들이 세상에 나갔다. 그들이 과연 유령총의 살귀들을 잡아올 수 있을까?
유령총의 살귀들, 그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잡아오기만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아낼 수 있을 텐데…….’
남창성에서 전서구가 날아든 것은 그가 차를 마시며 유령총의 살귀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유광을 비롯한 비원의 고수들이 정체불명의 고수들에게 근소한 차이로 밀렸다는 보고를 받고 눈살을 찌푸렸다.
운조평과 등청에게 들었을 때만 해도 세상에 그런 자들이 있다는 것을 온전히 믿지 않았었다. 그런데 비원의 고수들마저 그들에게 밀렸다면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성주님이 의심하고 있는 사안이 사실일지도 모르겠군.’
어쨌든 남창에 보낸 자들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
고개를 돌린 그는 밖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요원, 흑운각으로 가서 운 장로님을 모시고 와라.”
“예, 전주.”
운조평은 사우가 자신을 부른다는 말을 듣고 축시가 넘었는데도 마유전으로 달려왔다. 그런 시간에 불렀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무슨 일인데 아직까지 잠을 못 자고 있나? 혹시 남창의 일 때문에 그러는 건가?”
“그렇습니다, 장로. 이제와 말씀입니다만, 어제 저녁 성주님의 명으로 비원을 열고 비원에 계시던 분들을 출도시켰습니다.”
운조평의 눈이 커졌다.
“음? 성주님께서 비원을 여셨다고? 그게 사실인가?”
“성주님께서는 작금의 상황을 적기라 보신 듯합니다.”
“으음, 성주님께서 그리 결정 내리셨다면 따라야겠지. 그런데 그들을 출도시켰다면 임무가 주어졌을 것 같은데……?”
운조평이 넌지시 물었다.
사우는 순순히 말해주었다.
“어제 석양이 지기 직전, 남창 성내에 침입한 자들이 등왕각에서 이공자와 백초령 일행을 공격했습니다. 해서 유 령주를 보내 그들을 처리하라 했습니다.”
“결과는?”
“아직 처리를 못 하고 있습니다. 처리는커녕 오히려 그들에게 밀렸다는 보고가 왔습니다.”
운조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라고? 대체 어떤 자들인데 비원 사람들이 밀렸단 말인가?”
사우는 경악한 운조평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들은 유령총에서 살겁을 자행한 자들입니다, 장로.”
운조평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두 눈에서 살기가 피어났다.
그가 어찌 잊을까, 그날의 치욕을!
운조평은 이를 으드득 갈며 되물었다.
“그놈들이 남창에 들어왔단 말이지?”
“장로님을 모신 것은 그들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장로님께서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등 형도 불러야겠군. 등 형도 그들에게 받을 빚이 있으니까 말이야.”
등청이 그 이야기를 듣는다면, 꿈속에서 천하절색의 미인을 품고 있어도 내팽개치고 일어날 것이었다.
사우는 운조평이 등청과 함께 가려 하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지금 귀혼대와 마혼대, 유혼대가 비원의 고수들을 도와서 놈들을 쫓고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등 장로님과 함께 바로 출발해주시지요.”
“알겠네. 그렇게 하지.”
4
풍천은 날이 샐 때쯤 공손천우의 흔적을 다시 찾아냈다. 공손천우가 백초령과 함께 떠난 지 한 시진 만이었다.
반쯤 열린 문 앞에 선 풍천은, 몇 시진 동안 땅을 훑어보느라 시뻘게진 눈을 깜박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손천우의 흔적이 해동산의 집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놈이 왜 여기에……?”
그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뭔가를 이곳에 놔두었다는 뜻. 그리고 그것은 백초령일 게 분명했다.
풍천은 득달같이 해동산의 집으로 들어갔다.
세 개의 방을 다 뒤져봤지만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내실로 들어가자 바닥에 고여 있던 피가 시커멓게 굳어 있었다.
풍천은 고개를 돌려서 지하 밀실로 향하는 벽을 바라보았다.
미미하지만 밀실로 향하는 문이 열렸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놈이 어떻게 저곳까지 알아낸 걸까?
풍천은 의아해하면서 지하 밀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누군가가 누워 있었던 흔적을 발견했다.
풍천은 그 흔적을 보자마자 백초령이 그곳에 누워 있었다는 걸 알아냈다.
그 순간, 의문이 더 강해졌다.
놈은 해동산의 집이 비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지하 밀실까지 들어와서 백초령을 숨겨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풍천의 머리가 게으른 그의 성격과 정반대로 부지런히 굴렀다.
‘놈은 누군가가 이곳에서 해동권을 죽였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살귀들이 등왕각에서 위태곤을 죽이려 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놈은…… 살귀들과 아주 잘 아는 사이거나, 한패가 분명해!’
그게 사실이라면, 살귀들이 납치범을 조급하게 쫓지 않은 이유가 설명되었다.
‘그럼 해 형의 동생을 죽인 게 그놈들인가?’
하지만 그것으로 의문이 완전하게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살귀들은 위태곤을 죽이려 했다. 백초령을 살려두겠다는 마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놈은 왜 살귀들 손에서 백초령을 납치했을까?
그들이 잘 아는 사이이거나 한패인 것은 분명한데, 그들 사이에 뭔가 묘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살귀들에게 뭔가 못마땅한 게 있나 보군.’
그렇게 결론을 내린 풍천은 지하 밀실에서 나왔다.
놈이 백초령을 데리고 떠난 지 적어도 한 시진이 지났다. 전처럼 백초령을 옆구리에 끼고 간 것도 아니고 함께 걸어서 갔다.
더구나 자신이 쫓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서두를 것이고 백초령도 남창을 빨리 떠나고 싶어서 안달하고 있을 터, 지금쯤 상당한 거리를 갔을 것이다.
그래도 육로를 이용하고 있다면 못 따라갈 것도 없다. 하지만 놈은 신마성의 추적을 생각해서 수로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럼 문제가 달라진다. 추적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빌어먹을!
‘살귀들에게 물어보면 놈의 정체를 알 수 있을지도…….’
이제 어쩔 수 없다. 만약 놈을 놓치면,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더라도 살귀들에게서 놈의 정체를 알아내야 한다. 그래야 추적해서 백초령을 구할 수 있을 테니까.
‘빌어먹을 자식, 잡히기만 해봐라.’
5
해동산의 집을 나온 풍천은 동포동의 주루로 갔다.
동포동은 풍천이 온 것을 알고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해동산이 수고했다며 자신이 마시던 술을 한 잔 따라주었다.
하지만 풍천이 동포동의 주루에 간 것은 해동산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포동에게 볼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풍천은 동포동이 기거하는 내실을 향해서 조용히, 최대한 사람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 때려 부수기 전에 나와보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