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8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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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3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89화
89화
풍천은 전음의 주인공이 유광을 물리친 청삼 중년인이라는 걸 알고는 두 손에 공력을 집중시켰다.
‘지미, 누가 신마성의 개야?’
풍천은 불만이 많았지만 변명할 시간이 없었다. 우측에서 상관경의의 공격이 섬뜩한 기세로 밀려들고 있었다.
후우우웅!
상관경의는 소란이 일어서 신마성의 무사들이 몰려드는 걸 원치 않았다. 하기에 상대를 최대한 빠르게 제압할 요량으로 평소 함부로 쓰지 않는 봉마인(封魔刃)을 펼쳤다.
풍천은 지붕을 왼손으로 밀고 허공으로 이 장을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오른손을 휘둘러 상관경의의 공격을 막았다.
사실 피하는 게 더 간단했다. 전이었다면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름 천라신수에 자신이 생긴 풍천은, 네가 세면 얼마나 세랴, 하는 오기로 정면대결을 펼쳤다.
다섯 자의 간격을 둔 채 두 사람의 기운이 부딪치고, 퍽! 모래포대를 후려치는 둔탁한 소리가 대기를 떨어 울렸다.
상관경의는 허공에 떠오른 상태에서 다섯 자가량 뒤로 밀렸다. 풍천도 뒤로 주르륵 물러나며 인상을 찡그렸다.
‘젠장, 아직은 안 되나?’
벽혼계의 인연 덕분에 일반 무공을 펼칠 때도 내공을 쓸 수 있다지만, 천라신수는 이제 겨우 오성의 경지에 이른 상태, 아무래도 제 위력이 나오지 않았다.
공연한 고집으로 손해를 본 풍천은 재빨리 검을 빼들었다.
상관경의는 지붕을 박차고 풍천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어느새 빼들었는지 그의 손에도 검이 들려 있었다.
상관경의는 적수공권보다 검에 더 능통한 고수. 풍천도 그의 검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직접적인 정면대결을 피하며 귀환신법으로 상관경의의 검세를 피했다.
상관경의는 봉마인에 상대가 밀렸을 때만 해도 삼사 초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그러나 풍천의 신법이 워낙 신출귀몰해서 오 초가 지나도록 옷자락 하나 자를 수 없었다.
상관경의는 상황이 예상과 다르게 흐르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미꾸라지 같은 놈!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흥, 어디 미꾸라지가 얼마나 무서운지 맛 좀 봐라!’
풍천은 천풍무영류를 펼치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순간 그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녹아들며 사라졌다.
빤히 보면서도 풍천을 놓친 상관경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마 자신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신법이 있다니.
그래도 그는 다른 사람처럼 당황하지 않았다. 일체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데도 그는 감각만으로 풍천의 공세를 감지해냈다.
어느 순간, 어둠 속에서 풍천의 검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뇌전처럼 날아들었다.
쩌저정!
상관경의는 그 자리에 선 채 번개처럼 검을 휘둘러서 풍천의 공격을 세 번 모두 막아냈다.
비록 완벽하게 막아낸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도 풍천은 바짝 긴장 되었다.
‘진짜 무서운 사람이네.’
하지만 경악은 그보다 상관경의가 몇 배 더했다.
그는 소름이 돋았다. 단 세 번의 공격에 옷자락이 찢겼다. 만약 상대가 지금보다 조금만 더 강했다면 찢긴 것은 옷자락이 아니었을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상대의 위치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상관경의는 풍천의 공세도 막고 위치도 파악하기 위해서 공력을 모조리 끌어올리고 감각을 극대화했다.
천외천의 서열 오위인 자신이 이름도 없는 청년을 상대하면서 전 공력을 사용한다는 게 어이가 없었지만, 당장 다른 방법이 없었다.
쏴아아아!
일순간 그의 몸 주위로 강력한 기의 회오리가 일어났다.
풍천은 바로 달려들지 않고 빈틈이 나기를 기다렸다. 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무리한 공격으로 위험을 자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다섯을 셀 시간이 지날 즈음, 여기저기서 호각 소리가 들렸다. 풍천과 상관경의의 싸움을 신마성 무사들이 눈치채고 사람을 불러 모으는 듯했다.
상관경의와 승부를 내겠다고 신마성 무사들에게 포위될 수는 없는 일. 풍천은 바람을 타고 지붕을 떠나며 상관경의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만 가야겠수. 나중에 정식으로 붙어보죠.”
상관경의는 눈살을 찌푸리며 진기를 가라앉혔다.
‘신마성 놈이 아니었던가?’
그러고 보니 신마성의 무사라면 복면을 할 이유가 없다.
‘대체 어떤 놈이지?’
강호의 청년고수 중 자신과 자웅을 겨룰 자가 있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두어 명은 능히 그럴 만한 실력이 되었다.
그러나 그자들 중 조금 전 싸운 자처럼 방정맞고 제멋대로인 데다가, 귀신이 곡할 정도의 신법을 지닌 자는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정체가 궁금한 것일지도 몰랐다.
‘유령총에서 단천무령이 만났다는 놈과 비슷하군. 하지만 그놈은 단천무령 둘을 상대하지 못하는 실력이라고 했는데…….’
그때 아래쪽에서 덩치 큰 자, 진호령이 다급히 말했다.
“형님, 놈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만 떠나지요.”
상관경의는 풍천에 대한 생각을 뒤로 미루고 신형을 날렸다.
제6장. 조우(遭遇)
1
공손천우는 백초령의 수혈을 짚어서 눕혀놓고 지하 밀실에서 나왔다.
호각 소리가 요란한 걸 보니 한바탕 싸움이 벌어진 듯했다.
현재 남창에서 신마성을 자극할 수 있는 사람들은 천의 사람들과 신검문 사람들뿐. 그런데 신마성의 움직임이 다급한 걸로 봐서 천의 사람들과 부딪친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천이 하는 일에 반감을 가졌다 해도 형제들의 어려움까지 외면할 수는 없는 일. 더구나 천의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상관 숙부도 와 있지 않던가.
공손천우는 마음이 씁쓸했지만 그들을 돕지 않을 수 없었다.
혁련궁이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 상관 숙부가 신마성에 당할 일은 없지만, 세상일이란 것은 예측대로 흐르는 것이 아니었다.
건물을 나선 그는 담장의 어둠을 이용해 몸을 숨기고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백여 장을 가자 호각 소리가 더욱 커졌다. 숙부 일행이 신마성 놈들에게 꼬리를 잡힌 듯했다.
공손천우는 담장에 바짝 몸을 붙이고 신경을 곤두세운 채 소란이 벌어진 곳으로 접근했다.
풍천은 신마성 무사들의 포위망을 벗어난 후 길가의 나무 꼭대기에 앉아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가슴이 뻐근했다. 아무래도 일수 격돌 때 작은 내상을 입은 듯했다.
‘끄응, 천라신수나 뇌정천결을 제대로 익히기만 했어도 이런 꼴을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제기랄.’
백초령을 구하면 어디 가서 그 두 가지 무공을 제대로 익혀야 할 것 같다. 솔직히 신법으로 상대의 눈을 현혹한 후 제압하는 것보다 정면대결로 이기는 게 더 멋져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바람 부는 초원에 마주 서서 머리카락을 날리며 정면대결을 벌이는 거야. 멋지게 이긴 다음 이렇게 말하는 거지. 노형, 내가 운이 더 좋았던 것 같소! 그럼 강호의 여자들이 멋진 데다가 겸손하기까지 하다고 감탄하지 않겠어?’
그런데 백초령도 감탄할까?
바보같이 잔뜩 멋만 낸다고 하지 않을까?
‘쳇, 초령이 고것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야.’
턱을 괴고 아련한 표정으로 백초령을 생각하던 풍천은 나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한 사람이 엉덩이 아래에서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신마성 사람이 아닌가 본데?’
등에 검을 메고 있는데, 나이는 자신보다 두어 살 많을 것 같았다.
이런 날 밖으로 나와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사람은 두 부류밖에 없었다. 간덩이가 부어서 잠도 자지 않고 싸움구경 나온 놈이든지, 아니면 신마성에 안 좋은 마음을 먹고 있는 수상한 놈이든지.
그런데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두 가지 다 해당될 것 같았다. 이 시간에 싸움구경 나온 걸 보니 간덩이가 큰 것이야 틀림없을 것 같고, 살귀들을 향해 포위망을 좁혀가는 신마성 사람들을 뒤에서 노려보는 걸 보니 신마성에 안 좋은 마음을 먹고 있는 것도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안에 품고 있는 기운도 만만치 않게 느껴졌다.
‘저것도 제법 강하네. 아니, 무슨 고수들이 이렇게 흔해? 남창이 원래 이런 곳인가?’
상대의 정체가 궁금해진 풍천은 슬쩍 몸을 날려 그자의 머리 위쪽 나뭇가지에 깃털처럼 가볍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일 장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며 속삭이듯 물었다.
“거기서 뭐하쇼?”
‘헉!’
온몸이 싸늘히 식은 공손천우는 덜컥 떨어지려는 간덩이를 간신히 붙잡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면사로 눈 밑을 가린 놈이 나뭇가지 위에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앉아서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재빨리 대여섯 걸음 물러선 공손천우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생각해보고 가슴이 싸늘하게 식었다.
머리 바로 위에 올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니. 만약 자신을 죽이려고 마음먹었다면?
그는 풍천을 잔뜩 경계하면서 되받아쳤다.
“그러는 당신은 거기서 뭐하는 거요?”
“나야 답답해서 바람 좀 쐬고 있는 중이죠. 당신은 담에 붙어 있는 걸 보니 바람 쐬러 나온 것도 아닌 것 같은데…….”
풍천은 속삭이듯 대답하며 공손천우를 꼭 도둑놈 보듯이 훑어보았다.
그 눈빛과 말투가 어찌나 기분 나쁘게 느껴지는지 공손천우는 자신도 모르게 울컥해서 욕을 퍼부을 뻔했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하지만 소란을 피우면 신마성의 무사들이 몰려올지 모르는 일. 그는 차마 화를 내지는 못하고 풍천을 노려보며 목소리를 나직이 깔았다.
“복면을 쓴 사람이 할 말이 아닌 것 같은데? 나에 대해선 신경 끄고 그만 가서 당신 일이나 보시지?”
“나도 그러고 싶은데, 남창의 공기가 하도 수상해서 말이죠.”
풍천은 훌쩍 몸을 날려서 공손천우의 앞에 내려섰다.
공손천우는 뒤로 일 장가량 더 물러나서 거리를 이 장으로 벌이고 검을 잡았다.
단순히 검을 잡은 것만으로도 싸늘한 검기가 밀려든다. 풍천은 상대가 자신의 짐작보다 더 강하다는 걸 알고 공력을 팔성까지 끌어올렸다.
‘확실히 요즘은 고수가 흔해졌어. 문제군, 이러면 갈수록 영업하기가 힘들어질 텐데.’
그때 호각 소리가 더욱 급박하게 울리며 고함이 터져 나왔다.
삐이익! 삑! 삐이이익!
“놈들이 도주한다! 쫓아라!”
마음이 다급해진 공손천우는 더 이상 풍천을 상대하지 않았다.
“그럼 나는 이만 갈 테니, 당신은 나무 위에서 계속 졸고 있으셔.”
조롱하듯이 툭 쏘아붙인 그는 담장으로 뛰어오른 뒤 담장을 박차고 지붕 위로 날아갔다.
신마성과 살귀들의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은 풍천은 서두르지 않았다. 두 세력이 실컷 싸우면서 서로를 죽이면 그것으로 족했다.
나중에 남은 놈만 처리하면 되는데 뭐하러 힘을 뺀단 말인가. 귀찮게 말이지.
‘천천히 쫓아가서 싸움이나 붙여야지.’
그런데 입맛을 다시던 그의 눈이 어딘가를 향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바라보는 곳은 공손천우가 떠난 자리였는데, 거기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잘 보이지도 않는 공손천우의 희미한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일자 걸음에 발가락 앞쪽으로 땅을 콕 찍은 흔적. 백초령을 납치해간 놈과 똑같은 발자국이었다.
“저, 저, 저 자식이 바로 그놈?”
그러고 보니 몸매도 비슷했다. 위에서 바라보다 보니 바로 못 알아본 것뿐.
풍천은 공손천우가 사라진 곳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빌어먹을! 코앞에 두고도 몰라보다니!
“이봐! 당신 거기 서봐!”
이제는 풍천이 다급해졌다. 놓치면 이 난리 통에 언제 또 찾아낸단 말인가.
그런데 백초령은 어디다 두고 혼자 온 걸까? 혹시 저 자식도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백초령을 어디다 콕 처박아놓고 혼자 구경나온 것 아닐까?
잡아놓고 두들겨 패면 알 수 있겠지!
건물 두 개를 넘자 장원을 향해 우르르 몰려가는 신마성 무사들이 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를 날아 넘는 풍천을 보고 소리쳤다.
“저기 수상한 놈이 있다!”
“복면을 한 걸 보니 도둑놈 같은데? 이 판국에 도둑질이라니, 미친놈이 따로 없군.”
풍천은 신마성 무사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비웃든 말든 공손천우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가끔씩 멋모르고 달려드는 놈들은 면상에 발자국을 내주고 오직 공손천우의 뒤만 쫓았다.
“거기 서라니까!”
공손천우는 무식하게 뒤를 쫓아오는 풍천을 보고 기겁했다.
‘뭐 저런 무식한 놈이 다 있어?’
그는 풍천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신마성의 무사들이 있어도 피하지 않았다.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뒤쫓아 오는 풍천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 자식이 대 신마성의 무사들을 발로 차고 다닌다! 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