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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22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0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22화

 

122화

 

 

 

 

 

 

갑작스런 상황에 조양경이 소리쳤다.

 

“조심하십시오!”

 

상관경의가 죽은 이상 거칠 것이 없는 풍천이었다. 전력을 다해서 천풍무영류를 펼친 그는 때마침 불어 닥친 황사 바람에 몸을 실었다.

 

어차피 천응단원 전부를 혼자서 상대할 수는 없는 일, 상대의 가슴에 공포를 심어줄 정도만 되면 충분했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천응단원들의 머리 위까지 날아간 풍천은 쾌검인 비월탄(飛月彈)을 펼쳐 천응단원을 노렸다.

 

기겁한 천응단원이 홱 몸을 돌리며 막으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풍천의 검이 그의 이마에 혈점을 찍은 후였다.

 

“끄윽!”

 

“저기다!”

 

감각을 극대화시킨 채 바짝 긴장해 있던 조양경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가 소리치기도 전에 등가위가 이미 풍천을 향해서 두 손을 휘두르고 있었다.

 

“어림없다, 이놈!”

 

풍천은 독수리발톱처럼 예리한 조영(爪影)이 덮쳐오자 허공에서 두 번이나 방향을 틀고 다른 자를 공격했다.

 

등가위는 풍천의 기운을 쫓아가며 이를 갈았다.

 

“족제비 같은 놈!”

 

풍천은 바람 속에 몸을 숨긴 채 다시 자리를 이동했다.

 

하지만 등가위는 상관경의의 말대로 쉽지 않은 상대였다. 그는 감각에 의지한 채 풍천의 움직임을 쫓아왔다.

 

풍천은 검으로 허공에 세 개의 점을 찍었다.

 

낙성삼혼(落星三魂). 낙성천류검의 일곱 번째 검이었다.

 

세 줄기 검영이 등가위를 노리고 유성처럼 떨어져 내렸다. 등가위는 두 손을 엇갈려 휘두르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쩌저정!

 

두 사람의 공세가 정면으로 얽혀들면서 황사 바람이 요동쳤다.

 

풍천의 신형은 허공으로 튕겨지고 등가위는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풍천이 약간 밀린 듯했지만 등가위는 정면대결로도 확실한 우세를 점하지 못하자 가슴이 서늘해졌다.

 

반면 풍천은 그 차이가 크지 않자 더욱 자신감이 붙었다.

 

“이제 보니 상관 노형의 발바닥도 못 따라갈 자였군!”

 

“네 이노오오옴!”

 

등가위는 머리꼭대기까지 분노가 솟구쳐서 눈알이 시뻘게졌다.

 

그때 기회만 노리던 조양경이 풍천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서 몸을 날렸다.

 

동시에 천응단 무사 다섯이 함께 달려들고 나머지는 눈을 번들거리며 풍천의 퇴로를 막았다.

 

풍천은 더 이상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허공 높이 날아올랐다.

 

바로 그때 허공을 선회하던 독수리가 풍천을 향해서 내리꽂혔다. 사람들의 눈은 속였어도 독수리의 눈은 속이지 못한 것이다.

 

꾸에엑!

 

“오냐 잘 됐다, 이 빌어먹을 놈의 참새 새끼!”

 

설마 독수리가 자신을 공격할 줄 몰랐던 풍천은 버럭 욕을 퍼부으며 검을 휘둘렀다. 독수리만 없다면 천응단도 더 이상 자신을 추적할 수 없을 것이었다.

 

“응아야! 물러서!”

 

휘이이익!

 

등가위가 다급히 소리치며 휘파람을 불었다.

 

독수리가 아무리 하늘의 제왕이라 해도 절정고수의 공격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풍천이 내뻗은 검은 독수리의 한쪽 발을 잘라버리고 날개까지 반쯤 갈라버렸다.

 

하지만 철저히 훈련을 받은 독수리는 그 와중에도 성한 한쪽 발로 풍천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풍천은 왼손으로 독수리의 발목을 잡고 뼈를 부러뜨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얼굴도 못생긴 참새 새끼가 주인을 닮아서 성질 하나는 지독하군!”

 

꽈아아악!

 

천응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자 등가위의 얼굴이 흉신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찢어 죽일 놈! 감히 내 천응을……!”

 

그는 욕설을 퍼부으며 풍천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풍천은 천응을 던져버리고 지체 없이 뒤로 몸을 뺐다. 상관경의가 숨을 거둔 이상 천응단 전체와 목숨을 걸고 싸울 이유가 없었다.

 

“바람 부는 날을 조심해! 밤거리도 조심하고! 언제 내 검이 당신들 심장을 파고들지 모르니까!”

 

스르르르.

 

허공을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풍천의 신형이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독수리가 없는 이상 그를 잡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등가위는 풍천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이만 빠드득 갈았다.

 

그때 한 줄기 바람이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갔다. 섬뜩한 기분이 든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얼굴이 벌게졌다.

 

“이런, 빌어먹을! 도대체 어디서 저런 놈이…….”

 

조양경은 그 모습을 보고도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고는 눈빛을 파르르 떨었다.

 

‘제기랄, 이러다 정말 바람 부는 날만 되면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 아닐지 모르겠군.’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미소를 짓고 있는 상관경의가 보였다. 이미 숨이 끊어졌는데도 그렇게 편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제9장. 불귀곡(不歸谷)으로

 

 

 

 

 

1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날 오후.

 

남경에서 오십 리 떨어진 작은 마을에 다섯 척의 커다란 상선이 정박했다.

 

마을 사람들이 뜬금없는 상선의 정박에 의아한 눈길을 보낼 때 상선 위에서 각종 무기를 지닌 무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척당 이백 명, 모두 일천에 이르는 무사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겁에 질려서 모두 집 안으로 들어가 숨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을 사람들이 기어나왔을 때는 상선도 무사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날 저녁, 금천문의 정문위사는 저녁 식사 때 이 사이에 낀 고기 쪼가리를 손톱으로 깔짝이다 말고 눈을 깜박였다.

 

저 멀리서 검은 구름이 밀려들고 있었다. 달빛 아래 희미하게 보이는 검은 구름은 마치 메뚜기떼가 밀려오는 것 같았다.

 

“어이, 저게 뭐지?”

 

한쪽에서 목소리를 죽인 채 전날 저녁 기루에 갔던 이야기를 나누며 킬킬거리던 두 명의 위사가 고개를 돌렸다.

 

“뭔데그래?”

 

“왜? 예쁜 처자라도 지나가?”

 

하지만 그들 역시 입을 닫고 정면을 주시했다. 곧 그들 중 밤눈이 밝은 자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더듬거렸다.

 

“서, 설마 적은 아니겠지?”

 

처음 그들을 발견한 자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적? 안에 가서 알려! 어서!”

 

그 사이 검은 구름과의 거리가 이십여 장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는 사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멈춰라!”

 

“누가 감히 대금천문을 치려는 것…… 컥!”

 

두 명의 정문위사는 목이 달아나기 직전에서야 상대의 정체를 알고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경악했다.

 

“시, 신마성?”

 

신마성의 일천무사는 목이 잘린 채 쓰러진 정문위사를 보지도 않고 일제히 담장을 넘었다.

 

 

 

2

 

 

 

남양(南陽)에 도착한 풍천은 하오문의 지부를 찾기 위해서 홍등가가 밀집한 뒷골목으로 갔다.

 

아직 석양이 지지도 않았는데 술에 취한 자들이 제법 보였다. 그리고 속이 보일 듯 말 듯 얇은 옷을 입은 기녀들이 이층 창가에 기대앉아서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손짓했다.

 

“오라버니, 한잔하고 가시어요!”

 

“호호호, 제가 확실하게 모실 테니 이리 오세요!”

 

풍천은 입맛을 다시면서 몇 개의 주루를 지나쳤다.

 

옆구리에서 달랑거리는 검, 여기저기 찢어진 채 피까지 묻어 있는 옷. 특히 왼쪽 어깨 쪽, 갈고리로 잡아뜯은 것처럼 찢어진 옷자락 사이로 시뻘건 천이 보인다.

 

기녀들 중 몇은 그걸 보고는 풍천을 부르다 말고 눈길을 돌렸다.

 

‘겉모습이 아니라 속을 봐야지 말이야. 장사 하루 이틀 하나?’

 

풍천이 속으로 구시렁거릴 때였다. 맞은편에서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장한 둘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건들거리는 몸짓, 어디 물주 없나 두리번거리며 바쁘게 돌아가는 눈알, 거기다 옆구리에 끼워진 커다란 칼까지.

 

굳이 직업을 물어볼 것도 없었다. 상흔이 만개한 얼굴이 ‘나 이 동네 건달이오.’ 라고 외치고 있었다.

 

‘적당하군.’

 

풍천이 나름 목적을 가지고 만족한 표정을 지을 때 건너편의 장한들도 풍천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삼류낭인인가 보군. 홍등가에 왔다면 몇 푼이라도 있겠지?’

 

풍천과 그들의 거리가 일 장으로 줄어들자 장한들이 먼저 함박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젊은 친구, 술 마실 곳 찾나?”

 

풍천은 순박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데요?”

 

“좋은 곳이 있는데, 술값도 싸고 아가씨들도 예쁘고. 어때? 어딘지 알려줄까?”

 

“정말 그런 곳이 있습니까?”

 

“그러엄! 우리를 따라오게. 진짜 멋진 곳으로 안내해줄 테니까.”

 

“이런 고마울 데가. 좋습니다, 가시죠!”

 

“하하하, 정말 시원시원한 친구군. 오랜만에 남자다운 친구를 보니 기분이 좋구먼. 가세!”

 

두 장한 중 하나가 앞장서고 하나는 풍천보다 한 발짝 뒤로 처져서 따라갔다.

 

기루의 이층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유혹하던 기녀들은 혀를 차며 풍천의 명복을 빌었다.

 

하지만 풍천은 세상모르는 천둥벌거숭이처럼 즐거운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두 장한을 따라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골목을 두어 번 꺾어서 걸어가던 장한은 자신들이 자주 애용하던 장소가 나타나자 걸음을 멈췄다.

 

“아직 더 가야 합니까?”

 

풍천이 멋모르는 애송이처럼 물었다.

 

장한은 못생긴 얼굴로 씩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렇다네. 바로 이곳이 내가 말한 곳이지.”

 

“농담을 정말 재미있게 하시는군요. 사방이 꽉 막힌 이곳에 기루가 어디 있습니까?”

 

뒤따라오던 장한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하, 걱정 말게. 자네가 가진 돈을 내놓으면 우리가 술과 아가씨를 데려오지. 어떤가?”

 

풍천이 빙그레 웃으며 되물었다.

 

“그보다 제가 몇 가지 물을 게 있는데 말이죠,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그래? 어디 물어보게. 내가 아는 것은 뭐든 대답해주지. 홍월이 속곳 색깔이 궁금한가? 아니면 애향이 가슴 크기가 궁금해?”

 

“그보다 먼저 뻣뻣한 몸을 좀 손보죠.”

 

“뭐?”

 

풍천은 한 발 앞으로 나아가며 주먹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휘익! 퍽!

 

앞에 서 있던 장한은 머리를 번쩍 쳐들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턱이 얼얼하고 머릿속에서 별이 반짝였다.

 

땅 위에서 돌덩이가 솟구쳐서 자신의 턱을 때린 것인가?

 

뒤에 서 있던 장한은 풍천의 몸이 흐릿해지자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닌가 생각하며 눈을 깜박였다. 그때 어디서 돌덩이가 날아왔는지 띵한 충격과 함께 머리가 홱 돌아갔다.

 

두 장한은 만취한 사람처럼 사이좋게 비틀거렸다.

 

“어때요? 몸이 좀 부드러워지죠?”

 

두 장한은 그제야 자신들이 풍천에게 맞았다는 걸 알고 이를 갈았다.

 

“어, 이, 이 새끼가…….”

 

“너, 이 새끼 죽었…… 끄윽!”

 

퍽! 퍼벅!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컥.”

 

“우린 흑성회의…… 켁!”

 

“흑도무사님들이시라고? 이거 한참 맞아야 심신이 부드러워지겠는데?”

 

풍천은 장한들이 입을 열 때마다 적당하게 힘을 넣은 주먹으로 온몸을 두들겨주었다.

 

오래갈 것도 없었다. 십여 번의 손발 짓이 오가는 사이 두 장한의 뻣뻣한 몸이 부드럽게 변했다.

 

“나는 마음이 약해서 탈이란 말이야.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말씀들 하셔. 그때까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테니까. 어? 벌써 쓰러지면 안 되죠.”

 

뻐억! 퍼버벅!

 

자칭 남양 흑도를 주름잡는다는 흑성회의 두 건달들은 인내심이 풍천의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다.

 

쓰러지지도 못한 채 철퇴로 얻어맞는 충격이 계속되자 그들은 이대로 서서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도, 도대체 왜 이러시는…… 끄허헉.”

 

“호, 혹시 대마회의 형님……?”

 

“아직 멀었나 보군요. 내가 분명히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다고 했는데 그에 대한 대답은 없잖아요?”

 

풍천은 안타까워하는 눈으로 두 장한을 쳐다보며 주먹을 쓰다듬었다.

 

두 다리를 달달 떨면서도 안간힘으로 버티던 두 장한은 털썩 무릎을 꿇고 고개를 처박았다.

 

“흑흑, 미처 몰라뵈었습니다, 형님. 한 번만 용서를…….”

 

“대마회 형님인 줄도 모르고…… 제발…….”

 

풍천도 그런 두 장한을 더 때릴 정도로 독한 성격은 아니었다. 솔직히 순순히 대답만 했어도 절대! 저렇게 얼굴을 몰라볼 정도로 심한 구타는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정말이었다.

 

“내가 원래 남 때리는 걸 즐기는 사람은 아닌데 말이죠. 사정이 있다 보니 그만 주먹이 나가고 말았군요. 하, 하, 이해들 하쇼.”

 

두 장한은 그렇게 말하는 풍천이 더 무서웠다.

 

때리면서도 자신은 원래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고 계속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말만 안 했어도 순순히 대답하겠다고 말하고 반은 덜 맞았을 것이었다.

 

“뭐든, 뭐든 말하겠습니다. 물어보십시오, 대형!”

 

“궁금한 것이 뭔지 말씀만 하십시오!”

 

“아직 날도 안 어두워졌는데 몇 대 더 맞고 들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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