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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15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0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15화

 

115화

 

 

 

 

 

 

“예, 사부님.”

 

“어떻게 생각하느냐?”

 

영호관은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마성이 구룡회를 친다는 소식에 마음이 다급해진 듯합니다. 아무래도 전쟁이 벌어지면 본문의 모든 지휘권이 사부님께 집중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럼 곧 마각을 드러내겠군.”

 

“저에게 많은 것을 주겠다더군요. 몇 달 전의 그때처럼…….”

 

목소리가 잦아들며 영호관의 깊은 눈빛이 보일 듯 말 듯 흔들렸다.

 

백무천은 영호관의 말에 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제자의 마음을 잘 알았다.

 

“어떻게 할 것이냐?”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 호굴로 들어갈 생각입니다.”

 

“너무 위험해…….”

 

“그러지 않고는 단칼에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없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백무천은 고개를 돌려 영호관을 직시했다.

 

“자신 있느냐?”

 

“성패는 하늘에 맡기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으음, 네 뜻이 정 그렇다면…… 모든 책임을 내가 질 것이다. 뒤는 걱정 말고 깨끗하게 정리해라. 그렇다고 해서 너무 서두르지는 말고.”

 

“예, 사부님.”

 

백무천은 영호관의 대답을 들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반쯤 열린 창문으로 보이는 정원을 바라보며 눈빛을 깊게 가라앉혔다.

 

‘칼을 뺀 이상 철저히 정리해야겠지.’

 

죽은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2

 

 

 

풍천과 상관경의는 수주를 벗어나 북쪽으로 올라갔다. 관추양은 별다른 말이 없었는데도 두 사람의 뒤를 따라왔다.

 

풍천은 뒤를 힐끔 돌아보고는 그가 따라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만 전진했다.

 

북쪽으로 삼십 리 정도 올라갔을 때 어둠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구름이 걷히긴 했지만 밤 날씨가 어떨지 아무도 모르는 만큼 비를 피할 만한 장소를 찾아야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관추양이 말했다.

 

“전에 이 길을 와본 적이 있는데 저 산 아래에서 허름한 산신당을 본 적이 있었소.”

 

 

 

오 리 정도 가자 관추양의 말대로 산 아랫자락에 산신당이 있었다. 허름하긴 해도 하룻밤 지내기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풍천은 객들이 깔고 누웠던 마른풀을 모아서 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관추양에게 지나가듯이 물었다.

 

“왜 따라오신 겁니까?”

 

“어차피 나도 북쪽으로 가던 길이었네.”

 

그랬나?

 

머쓱했다. 같은 길을 가는 줄도 모르고 따라온 줄 알았으니.

 

그러나 풍천이 누군가? 그는 그 정도야 이미 짐작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태연하게 말했다.

 

“역시 그랬군요. 그런데 어딜 가시던 길이십니까?”

 

“당하에 가는 길이네.”

 

“거기는 무슨 일로 가는 거죠?”

 

관추양은 슬쩍 풍천을 쳐다보았다.

 

만약 풍천이 그의 상처를 치료해주지 않았다면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닫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신세를 진 건 분명한 만큼 그는 풍천의 질문에 짜증 내지 않고 순순히 말해주었다.

 

“친구가 그곳에 사네.”

 

“아, 친구를 만나러 가시는 길인가 보군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함녕에서 당하까지는 굉장히 먼 길인데, 중요한 일인가 보죠?”

 

‘궁금한 것도 많군.’

 

관추양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꼬박꼬박 대답해주었다.

 

“자세한 것은 말할 수 없네만 중요하다면 중요한 일이지.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군요. 근데 친구 분의 성함은……? 하, 하. 뭐 말하기 싫으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그냥 심심해서 물어본 것뿐이니까요.”

 

반드시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풍천은 관추양을 처음 본 순간부터 묘한 느낌을 받았다.

 

비에 젖은 옷에서 떨어지는 핏물은 중요하지 않았다. 관추양의 표정, 눈빛, 말투, 그 모든 것이 그의 감각을 자극했다.

 

호북에서 알아주는 도객이 끈 떨어진 연처럼 느껴지다니.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사실 관추양에게 무슨 일이 있든 그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관추양이라는 사람 자체에 흥미가 동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강호를 돌아다니며 들은 소문이 모두 사실이라면 사신도 관추양은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풍천은 나무를 모아서 작게 모닥불을 피웠다. 그리고 음식 보따리를 푼 다음 그 안에서 구운 오리 두 마리를 꺼내더니 나무에 꿰어서 숯불 위에 올렸다.

 

“상관 노형, 이리 오쇼. 식사나 합시다.”

 

상관경의는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래도 거절하지 않고 엉덩이를 움직여 다가갔다.

 

그는 풍천의 배가 얼마나 큰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있을 때 먹지 않으면 풍천의 배로 다 들어갈 것이었다. 보따리 안의 음식이 십 인분이나 될지라도.

 

“관 형도 이리 오쇼. 아까 객잔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잖아요.”

 

관추양은 대뜸 ‘관 형’이라 부르는 풍천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에게도 노형이라 부르거늘 자신에게 ‘관 형’이라 부르지 못할 것도 없었다.

 

“내가 먹으면 모자라지 않겠나?”

 

“걱정 마쇼.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나누어 먹는 거죠, 뭐.”

 

풍천이 크게 인심 쓰듯이 말하는데 상관경의가 초를 쳤다.

 

“객잔 주인이 십 인분이나 줘서 모자라지는 않을 거 같군.”

 

풍천은 상관경의를 째려보며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제가 동생으로 삼은 곰 같은 놈이 하나 있는데 말이죠, 그놈은 한 끼에 십 인분도 더 먹죠. 아마 마음껏 먹으라고 하면 이십 인분도 먹을걸요? 그러니 몇 인분이냐 하는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단 말입니다.”

 

‘하긴 자네도 오 인분 정도는 가볍게 해치우더군.’

 

상관경의는 그 말이 목구멍까지 솟구친 것을 가까스로 누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호오, 그게 정말인가?”

 

“정말이라니까요? 전에도 십일 인분이나 먹어서 음식값만 은자 한 냥이 넘게 나왔죠.”

 

관추양은 그 말을 듣고는 앞에 있는 오리고기를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십 인분을 한 끼로 생각하는 사람이 걱정 말고 먹으라는 말을 믿어야 할까?

 

잘못하면 뼈다귀가 목에 걸릴 것만 같았다.

 

그때 풍천이 오리 반쪽을 쭉 찢어서 내밀었다.

 

“드쇼, 돈 달라고 안 할 테니까.”

 

줄 돈도 없었다. 품에 있던 은자 여덟 냥을 치료비 조로 다 내주었으니까.

 

관추양은 오리를 받아 들고 아무 말 없이 씹었다.

 

‘당하까지 갈 경비는 남겨놓을 걸 그랬나?’

 

 

 

잠시 후.

 

절반이 남은 음식을 다시 보따리에 싼 풍천은 아쉬운 듯 손가락을 빨며 객잔 주인을 욕했다.

 

“망할, 뭐? 십 인분? 오 인분도 안 될 것 같네. 공짜만 아니었다면 수주까지 돌아가서 한바탕 뒤집어놓을 텐데…….”

 

그러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할 뿐 상관경의와 관추양의 생각은 달랐다.

 

‘정말 대단한 식성이군.’

 

‘오리 한 마리와 삶은 돼지고기 한 근을 혼자서 게 눈 감추듯 해치우다니…….’

 

그때 풍천이 고개를 돌리더니 상관경의에게 말했다.

 

“좌우간 식사도 했으니 이제 소화 좀 시켜보죠.”

 

“지금 말인가?”

 

“달도 떴겠다, 분위기도 좋잖아요.”

 

상관경의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산신당 앞으로 나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고 마주 섰다.

 

관추양이 지켜볼지 모르는데도 두 사람 모두 개의치 않았다.

 

뇌정천결은 본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구결만 안다 해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무공이었다면 상관경의가 도와줄 것도 없이 풍천 혼자서 진즉 익혔을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을 떠올리고 천둥소리와 벼락이 어떤 관계인지 아는 대로 말해보게.”

 

벼락이 떨어지면 천둥이 친다. 벼락의 위력이 크면 그만큼 천둥소리도 크고 위력이 작으면 소리도 작다. 구름 안에서만 번쩍이다 마는 경우도 있고.

 

또한 벼락과 천둥의 간격이 짧으면 그만큼 가까운 곳에 벼락이 떨어지고 느껴지는 충격도 크다.

 

풍천은 그 모든 것을 뭉뚱그려서 간단하게 말했다.

 

“벼락이 근처에 떨어지면 천둥소리가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그런 날은 함부로 싸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끄응.’

 

상관경의는 한숨이 새어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고 설명을 이어갔다.

 

“그냥 본론으로 들어가지. 인간의 몸속에는 크든 작든 음양의 기운이 존재하네. 그런데 억지로 두 기운을 일으켰다가 음양이 충돌하면 벼락에 맞은 것 같은 충격이 느껴지는 게 일반적이지. 잘못하면 그로 인해서 심각한 내상을 입거나 죽기도 한다네. 그러나 음양의 기운을 적절히 조화시킬 수만 있다면 보다 더 안정된 힘을 얻을 수 있네. 자네도 그 정도는 알겠지?”

 

“그거야 알죠.”

 

심법을 처음 배울 때 듣는 말이니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상관경의가 서두부터 그 말을 꺼낸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뇌정천결은 음양의 기운을 일순간에 극대화시키고 그 기운을 충돌시켜서 융합한 다음 쏟아내는 방법이네. 간단하지? 하지만 설명이 간단하다고 해서 익히는 게 간단하다는 말은 아니네. 깨달음이 극의에 이르지 못하면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니까. 아마 무공을 익힌 사람 누구든 그 말을 들으면 미쳤다고 할 거야. 그런데도 난 그 구결을 본 순간 눈을 뗄 수가 없었네. 그 일이 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대부분의 사람은 음양의 두 가지 기운 중 하나만을 이용해서 무공을 수련한다. 그리고 극에 이를수록 상극의 기운을 더 멀리한다.

 

이유는 하나다. 두 가지를 다 익히려 했다가는 몸속의 기혈이 터져 죽을지 모르니까.

 

실제로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났다. 또한 상극의 기운을 지닌 자들을 천적처럼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마디로 뇌정천결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바로 그 방법을 이용해서 무공을 펼치는 방법인 것이다.

 

“하지만 뇌정천결이 아무리 절대경지의 상승무공이라 해도 함부로 익히면 절대 안 되네. 잘못하면 큰일 날 수 있거든. 그러니 만약 익히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즉시 중단하게.”

 

뇌정천결 네 개의 구결 하나하나에 각기 다른 운기법이 있고, 각자의 운기법에 따라 융합된 기운이 외부로 표출되면서 사초의 무공이 펼쳐진다.

 

삐끗하면 무공을 펼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죽을 것이다.

 

풍천도 뇌정천결이 얼마나 위험한 무공인지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뇌정천결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무공을 익힌 사람이 있기 때문이 아니던가.

 

질 순 없지!

 

“걱정 마쇼. 나도 혈맥이 터져서 죽고 싶진 않으니까.”

 

“그런 마음이라니 다행이군.”

 

문제는 뇌정천결을 익히기 위해선 기의 운행통로인 혈맥이 최대한 깨끗해야 한다는 것인데…….

 

‘무공을 십오 년 정도는 수련했겠지? 그래도 아직 젊은 몸이니 잘하면 칠성까지는 익힐지도…….’

 

그는 생각도 못 했다. 풍천의 진기통로가 만들어진 기간이 아직 두 달도 안 되었다는 걸. 그만큼 깨끗하고 지금도 계속 넓어지고 있다는 걸.

 

“내가 그 동안 해독해준 것을 모두 기억하겠지? 그럼 이제부터 마음을 비우고 오직 구결만 떠올리면서 몸이 스스로 반응할 때까지 기다리게. 반응이 없어도 후회하지 말고. 어차피 하루아침에 얻어질 게 아니니까.”

 

 

 

풍천은 눈을 반쯤 감은 채 검을 늘어뜨리고 네 가지 구결 중 첫 번째인 뇌정명(雷霆鳴)을 끊임없이 떠올렸다.

 

한 시진쯤 지났을까, 양기와 음기가 서로 얽혀드는가 싶더니 머릿속에서 우렛소리가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반 시진이 더 지나자 그 느낌이 그대로 기혈을 타고 흘러서 검으로 흘러들었다.

 

우우우우웅.

 

검이 울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울음이었다.

 

보일 듯 말 듯 풍천의 입가에 미소가 매달렸다.

 

상관경의는 그 모습을 보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

 

‘왜 저런 표정이지? 설마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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