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1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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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112화
112화
제5장. 사신도(死神刀)
1
장강을 건넌 풍천과 상관경의는 천혈궁의 세력권을 우회하기 위해 서북쪽으로 올라갔다.
풍천은 길을 가면서도 상관경의를 편히 쉬도록 놔두지 않았다. 잠깐 쉴 때는 물론이고 걸음을 걸으면서도 집요하게 검에 대한 걸 물었다.
상관경의는 조금도 짜증 내지 않고 묻는 말에 일일이 답해주었다. 때로는 자신이 직접 펼쳐 보이면서.
덕분에 풍천은 상관경의가 가르쳐 준 두 가지 검법을 수주에 도착할 때쯤 육성의 경지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상관경의는 그걸 보고 회의감이 들었다.
검로를 익히는 거야 어느 정도 자질만 있으면 가능하다. 하지만 진정한 상승검공의 오의는 하루아침에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풍천은 단 보름 만에 상승검법 두 가지를 육성의 경지까지 익혀버린 것이다.
‘내가 멍청한 거야, 잠풍이 특별한 거야?’
물론 이제부터가 진짜 어렵고 힘든 단계인 만큼 섣불리 판단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관경의는 풍천이 그조차도 쉽게 올라갈 것처럼 느껴졌다.
‘곧 뇌정천결을 시작해도 되겠군.’
낙성천류검과 비월신검이 칠성의 경지에 오르면 뇌정천결을 익혀도 좋다고 했다.
뇌정천결의 구결에 대한 풀이는 이미 모두 해주었고, 남은 것은 그 안에 든 오의를 깨달아서 하나하나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만이 남은 상태였다.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상관경의는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뇌정천결 역시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두 눈으로 뇌정천결의 위용을 직접 보고 싶었다.
‘죽기 전에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2
풍천과 상관경의가 수주에 도착한 것은 장강을 건넌 지 닷새 만이었다.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 때부터 날씨가 수상하더니 그들이 객잔에 들어가자마자 장대비가 쏟아졌다.
“휴우, 하마터면 비 맞은 생쥐가 될 뻔했군요.”
“그러게 말이네. 아무래도 여기서 하루 묵어가야겠군.”
아직 해가 지려면 두 시진 정도 더 남았다. 그러나 풍천도 쏟아지는 빗속을 걷고 싶진 않았다.
두 사람은 일단 방을 하나 잡아놓고 오랜만에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식사를 즐겼다.
그런데 식사를 마칠 즈음 주렴이 걷히고 한 사람이 비를 흠뻑 맞은 채 객잔 안으로 들어왔다.
비에 젖어서 진한 밤색으로 변한 갈색장포와 머리에 쓴 챙 넓은 죽립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그는 무심한 눈빛으로 객잔 안을 둘러보았다.
나이는 서른 중반 정도. 조금 마른 것처럼 보이는 몸매에 키는 풍천보다 서너 치 정도 작았는데 거친 수염과 날카로운 눈빛이 인상적인 자였다.
그는 좌우를 둘러본 후 창문가의 탁자로 걸음을 옮겼다. 풍천은 그가 옆모습을 보인 후에야 등에 매달린 도를 볼 수 있었다.
길이는 도신만 석 자 정도. 도신은 한 뼘에 가까운 넓이였는데 손잡이의 길이가 한 자는 되었다.
‘특이한 도군.’
풍천은 그 도를 보고 머릿속의 강호인 명부를 뒤져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렸다.
‘사신도(死神刀) 관추양?’
별호만 보면 마도인 같지만 그는 마도 정도 아닌 중도의 위치에 서 있는 자였다.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 생각하면 손속에 인정을 두지 않는 자. 그래서 정도인들은 그를 멀리하고 마도인들은 그를 두려워했다.
‘허무정은 살았는지 모르겠군.’
풍천은 관추양을 보자 허무정의 안위가 궁금했다. 허무정과 관추양, 둘의 분위기가 비슷해 보인 것이다.
죽립을 벗어 한쪽에 내려놓은 관추양은 고개를 돌리다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풍천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저놈은 뭐지?’
풍천은 그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그의 발밑에 흥건한 물기를 내려다보았다.
물기에 붉은빛이 보였다. 옷에 묻은 피가 빗물과 섞여서 흘러내린 것인데, 다른 사람의 눈에는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였지만 풍천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어디서 한바탕하고 왔나 보군. 비를 그대로 다 맞은 것도 피 때문에 그런 것 같아.’
그때 관추양이 입을 열었다.
“뭘 그렇게 보는 건가?”
“누가 사신도의 비위를 건드렸나 궁금해지는군요.”
관추양의 눈빛이 칼날처럼 번뜩였다. 그는 상대가 자신을 알아본 것보다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아는 것에 신경이 더 쓰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풍천은 눈짓으로 바닥에 흥건한 빗물을 가리켰다.
“설마 저걸 옷감의 염료가 빠진 거라고 말하실 생각은 아니겠죠?”
관추양은 자신의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시력을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희미한 붉은기가 보였다.
‘눈이 좋은 놈이군.’
시선을 든 그는 냉랭하게 말했다.
“자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니 식사나 하게.”
“하긴 뭐, 제가 신경 쓸 일은 아니죠.”
‘그럼 고개 돌리라니까.’
관추양은 신경 쓸 일 아니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풍천을 보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하지만 풍천은 관추양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관추양의 어깨 너머로 객잔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대로에 수십 명의 무사들이 나타났는데 아무래도 관추양과 관련된 자들처럼 보였다.
‘광마방 놈들이군.’
광마방(廣魔幇)은 대홍산에 근거지를 둔 마도방파로 호북에서 열 손가락에 들어가는 제법 큰 세력이었다.
풍천은 그들과 관추양 사이의 일에 끼어들어서 휴식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광마방의 간부 하나와 조금 불편한 사이였다.
풍천은 관추양이 원하는 대로 고개를 돌리고 상관경의에게 말했다.
“시끄러워질 것 같은데 그만 방으로 가죠?”
상관경의도 창밖으로 보이는 광경을 보고 상황을 짐작했다.
“그러지.”
관추양은 그제야 밖에서 흐르는 기운을 감지하고 표정이 굳어졌다. 그런데 풍천과 상관경의가 객방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갈 때였다.
촤르르륵!
주렴이 세차게 젖혀지고 무사 네 명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객잔을 둘러싼 수십 명의 무사들 중 십여 명이 창문을 통해서 뛰어들어 왔다.
와장창! 우당탕탕!
왁자지껄 떠들며 식사를 하던 사람들은 느닷없는 상황에 놀라서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때 입구로 들어온 네 사람 중 얼굴에 기다란 도상이 있는 장한이 검지를 뻗어서 관추양을 가리켰다.
“바로 저놈이 본방의 무사 다섯을 죽였습니다, 당주!”
얼굴이 탁자처럼 네모진 중년인이 코웃음을 쳤다.
“흥, 본방의 순찰무사들을 죽여놓고 태연히 객잔에 들르다니 용기가 가상하구나.”
그가 말을 할 때마다 턱에 매달린 염소수염이 묘하게 흔들렸다.
입술과 눈은 탁자에 칼로 금을 그은 것처럼 얇았고 코는 엽차 잔을 엎어놓은 것처럼 뭉툭했는데, 그래서인지 코웃음 치며 무게를 잡아도 그리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가려던 풍천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모로 꼬았다. 그리고 웃음을 겨우 참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말로만 들었던 오정각이라는 양반이군. 정말 희한한 얼굴이네.”
“모두 저놈을…….”
막 공격 명령을 내리려던 중년인은 눈알만 굴려서 풍천을 째려보았다.
“너도 저놈과 한패냐?”
“상관없는 사람이니 볼일 보쇼.”
광마방의 진마당주 오정각은 풍천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그걸 떠나서 자신을 비웃은 놈을 그냥 둘 생각이 없었다.
“자신을 도둑이라고 하는 도둑놈이 어디 있더냐? 저놈들을 모두 잡아들여라!”
“어허! 나는 아니라니까!”
“저놈의 말은 상관할 것 없다! 반항하면 죽여버려!”
광마방의 무사들은 일제히 관추양과 풍천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관추양은 무표정한 얼굴로 칼을 뽑아 들고는 의자를 발로 차서 뒤로 날려 보내고 탁자를 손으로 밀쳤다.
달려들던 광마방의 무사 셋이 주춤거렸다.
관추양은 찰나의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칼을 휘둘렀다.
쉬이익!
단 일 도에 세 사람의 몸이 갈라지고 핏줄기가 뿜어졌다.
“크억!”
“조심해!”
“거리를 두고 상대해라!”
반면 풍천은 일단 상관경의를 계단 위로 올라가게 했다. 그리고 코앞까지 다가온 자의 팔을 잡아서 그자를 몽둥이처럼 휘둘렀다.
“나는 저 사람과 상관없다고 했잖아!”
“으헉! 피해!”
어떤 자는 구르듯이 뒤로 물러나고, 어떤 자는 납작 엎드렸다. 그리고 어떤 자는 몽둥이가 된 자에게 얻어맞고 탁자를 부수며 나뒹굴었다.
퍽! 우당탕탕!
풍천은 두어 번 더 그자를 휘둘러서 달려드는 자들을 멀찍이 떼어놓고 오정각에게 던졌다.
오정각 옆에 있던 자들이 나서서 날아드는 자를 받아냈다.
잠시 주위가 한가해지자 턱을 치켜든 풍천이 오정각에게 소리쳤다.
“이봐, 사각 머리 양반. 사신도만 상대해도 버거울 텐데 왜 나에게 신경을 쓰셔?”
“뭐, 뭐야? 사각 머리? 네놈이 감히……!”
오정각은 풍천의 입에서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흘러나오자 얼굴이 벌게졌다.
하지만 귀까지 막힌 것은 아니었기에 풍천의 입에서 흘러나온 별호를 듣고 뒷말을 흐렸다.
“그, 그게 무슨 말이냐? 사신도라니?”
그러다 홱 고개를 돌려 관추양을 바라보았다.
벌써 수하 일곱이 관추양에게 당해서 피를 뿌리고 쓰러진 상태였다. 밖에 있던 수하들이 안으로 뛰어들었지만 그들 역시 함부로 덤벼들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객잔 바닥의 흥건한 핏물을 바라본 그는 돌덩이처럼 굳은 표정으로 다급히 물었다.
“그대가 사신도 관추양인가?”
관추양이 칼을 홱 뿌려서 피를 털어내고 무심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렇소.”
풍천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오정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것참, 그럼 그것도 모르고 공격했단 말이야?”
얼굴이 벌게진 오정각은 이를 악물었다.
검문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치려는 놈을 공격했다가 다섯이 죽었다고 했다. 누군지는 알 수 없고 번개처럼 빠르게 칼을 휘두른다고 했다.
그래서 삼십이 명의 수하들을 데리고 쫓아왔거늘, 범인이 다른 사람도 아닌 손속이 사납기로 소문난 사신도 관추양이라니!
‘빌어먹을!’
그러나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 관추양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자신에게는 아직 스무 명의 수하들이 남아 있었다.
스릉!
검을 빼 든 그는 관추양을 향해 다가갔다. 그의 좌우에 서 있던 자들도 거리를 벌리며 관추양에게 접근했다.
그때 광마방의 무사 중 하나가 풍천을 힐끔거리며 물었다.
“당주, 저놈은 어떻게 합니까?”
오정각은 이를 지그시 악물고 풍천 앞에 서 있는 자들에게 명을 내렸다. 그는 관추양보다 풍천을 더 죽이고 싶었다.
“너희 넷이 잘근잘근 다져줘!”
그러고는 관추양을 공격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풍천은 자신을 둘러싸는 광마방 무사들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죽고 싶어 환장한 놈만 덤벼. 전기추의 얼굴을 봐서 사정을 봐주려고 했는데 죽고 싶다면 별수 없지.”
광마방 무사들이 움찔했다.
전기추라면 나이 스물일곱에 마령당의 당주가 된 자로 광마방의 젊은 무사들에게 우상과 같은 존재였다.
“전 당주님을 아시오?”
“아냐고? 잘 알지. 함께 술을 마시며 밤을 샌 적도 있으니까.”
정말이었다. 비록 정보를 빼내기 위해서 만취할 때까지 술을 퍼 먹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 덕에 자신은 중요한 정보를 빼내서 청부를 해결했고, 전기추는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했다.
설마 저놈들이 그걸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