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1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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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109화
109화
3
지하 밀실에서 지낸 지 열흘째.
상관경의의 몸이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왼손을 쓸 수 없고 내상의 회복이 더뎌서 내공의 삼 할도 되찾지 못했지만, 어차피 그것은 한두 달 안에 회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동안 상관경의는 풍천에게 두 가지 검법을 가르쳤다.
낙성천류검(落星天流劍)과 비월신검(飛月神劍).
비록 자신이 지닌 최고의 검법은 아니나 두 가지 다 풍천이 익힌 검법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상승의 검이었다. 그리고 상관경의가 현재의 경지에 올라서는 데 많은 도움을 준 검이기도 했다.
상관경의는 그 검을 풍천에게 가르치면서 두 번 놀랐다.
한 번은 풍천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두 가지 검법을 소화해내는 것에 놀랐고, 또 한 번은 아무리 힘들어도 일체의 내색을 하지 않는 걸 보고 놀랐다.
심지어 같은 검초를 연속으로 백 번 펼쳐내면서도 지루한 표정을 짓지 않는 걸 보고는 ‘세상에 저런 놈도 있구나’ 했다.
풍천은 그렇게 검을 배우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소득을 얻었다. 유혼으로 인해 생긴 진기통로가 더욱 완벽하게 자리 잡은 것이다.
풍천은 그곳으로 자신의 전 공력을 쏟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결국 자신의 몸속에 있는 진기를 움직이는 일이 아니던가.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았다.
‘내 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면 남들이 비웃을 거야.’
그날 저녁, 해동산의 집을 나온 풍천은 남창 일대를 돌아다니며 신마성의 감시상황을 살펴보았다.
돌아다니는 신마성 무사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든 상태였다. 자신의 그림자도 찾지 못하니 지친 듯했다.
‘하긴 놈들도 지칠 때가 됐지.’
풍천은 선창 쪽으로 가보았다.
그나마 선창 쪽에 무사들이 많이 깔려 있었는데 이전의 삼엄함은 보이지 않았다.
신마성 무사들은 풍천이 옆으로 걸어가는데도 자기들끼리 농담을 즐겼다. 그들은 풍천이 검도 차지 않았고 몸에 안 맞는 칙칙한 옷을 입고 있는 걸 보고 대부분이 무식한 촌놈으로 여겼다.
“대체 언제까지 이곳을 지켜야 하는 거야?”
“도망친 놈은 지금쯤 천 리 밖에 있을 거네. 그러니 대충 시간이나 때우고 교대하세.”
“신검문 놈들이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른다던데…….”
“그놈들이야 덤으로 갇힌 놈들이지. 낄낄낄, 지금쯤 쥐새끼처럼 구석에 숨어서 간을 졸이고 있을걸?”
풍천은 귀를 쫑긋 세웠다.
‘화 공자가 아직도 남창에 있다고?’
여태 뭐하느라 남창에 남아 있단 말인가?
‘설마 초령이가 아직도 남창에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때 신마성 무사 중 하나가 풍천을 노려보았다.
“이봐! 너는 누군데 여기서 얼쩡거리는 거냐?”
풍천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주사위 놀이를 하다 돈을 잃었는데 술을 사오면 개평을 준다고 해서 나왔습죠.”
피식, 입술을 비틀어 풍천을 비웃은 무사가 턱을 쳐들고 물었다.
“얼마나 잃었는데?”
“은자 두 냥이나 잃었습니다요. 한 달 치 생활비인데……· 제길.”
“그 자식, 겨우 두 냥 잃어 죽을상이군. 통 좀 크게 살아라. 스무 냥도 아니도 두 냥 잃었는데 왜 그리 기가 죽었어?”
옆에 있던 다른 무사가 낄낄거리며 한마디 했다.
“불쌍하면 자네가 돈 좀 주지그래?”
“미쳤어? 내가 저런 놈에게 돈을 왜 줘?”
풍천은 우둔한 사람처럼 실실 웃으며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무사님들은 왜 여기 계십니까? 요 며칠 동안 고생하시던데요.”
“그야 도망친 놈 때문에 그러지. 좌우간 그건 네가 신경 쓸 것 없고 빨리 가서 술이나 사가라. 늦었다고 혼나지 말고.”
“예, 예.”
풍천은 굽실거리며 근처의 주루로 들어갔다.
뒤에서는 신마성 무사들의 잡담이 계속 들려왔다.
“이봐, 우리도 일 끝나면 한잔 하자고.”
“그거 좋지. 가만, 조장님께 말해서 지금 마실까? 어차피 교대시간도 다 되었잖아?”
“죽으려면 무슨 짓을 못해? 대공자와 이공자님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조금만 실수해도 치도곤 낸다는 말 못 들었어?”
“지미, 구룡회를 친다는 소문이 있던데 중책을 못 맡을까 봐 그러나? 하긴 소성주께서 총지휘를 맡으신다고 하니 그 밑에서 일하려면 뭐…….”
“쉿, 함부로 말하지 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으니까.”
“제기랄, 개도 주인을 잘 만나야 배부르게 사는 법인데 말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돈을 좀 써서라도 소성주를 미는 분들 밑으로 들어갈걸 그랬어. 이러다가는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궂은일만 도맡아서 하게 생겼으니 원…….”
“자네가? 크큭, 조장들도 연줄 없는 사람은 어림도 없다네. 꿈 깨고 나중에 술이나 한잔 하자고.”
주루로 들어선 풍천의 눈 깊은 곳에서 이채가 반짝였다.
‘구룡회를 친다고? 소성주라면 강호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이름만 돌던 자인데, 그가 총지휘란 말이지?’
오 년 전부터 은천삼마영(隱天三魔英)으로 불렸던 마도의 세 젊은 고수 중 하나가 바로 신마비영(神魔秘英) 혁련후다.
이름만 알려져 있을 뿐 강호에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아서 얼마나 강한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 그럼에도 신마성주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은천삼마영 중 하나로 불렸던 자. 그를 총지휘에 내세울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혁련후의 무위가 팔대신마보다 강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사실인가 보군.’
어쨌든 중요한 것은 신마성이 정말로 구룡회를 칠 계획인 것 같다는 것이다.
신검문에서는 알고 있을까?
‘골치 아프게 생겼군. 어떻게 된 게 일이 줄어들 생각은 하지 않고 자꾸만 늘어나네.’
풍천은 화주를 한 병 사들고 주루를 나왔다. 그가 술병을 들고 걸어가니 영락없이 술에 취한 파락호처럼 보였다.
그런데 해동산의 집에서 백여 장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막 좁은 길로 들어서려는데 길 건너편 어둠 속에서 봇짐장수처럼 보이는 자 셋이 나왔다.
풍천은 힐끔 그들을 쳐다보고 얼굴을 와락 구겼다.
‘남창도 되게 좁군. 길이 이 길밖에 없나?’
나타난 세 사람. 그들은 화청백과 악진표와 신검문의 장로 진양이었다.
세 사람은 고개를 푹 숙이고 빠르게 선창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뒤이어 네 사람이 더 나타났다.
그들도 신마성의 감시가 소홀해졌다는 걸 알고 이제야 남창을 빠져나가려는 듯했다.
풍천은 그들이 가든가 말든가 그냥 해동산의 집으로 가기 위해 골목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채 열 걸음도 옮기지 못하고 한숨을 쉬며 걸음을 멈췄다.
‘후우우우, 젠장. 난 마음이 너무 약해서 탈이야.’
그는 고개를 흔들며 돌아섰다.
골목을 나서려는데 어깨에 힘을 잔뜩 준 건달 하나가 도끼눈을 뜬 채 그에게 다가왔다.
“너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냐?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와? 여긴 오어(烏魚-가물치) 형님의 구역이란 걸 몰라?”
퍽!
풍천은 들고 있던 술병으로 건달의 이마를 내려치고 눈을 뒤집어 깐 채 쓰러지는 그의 옆을 스쳐 골목을 나섰다.
“촌스럽게 가물치가 뭐야, 가물치가? 짜증나는데 확 회를 떠버릴라.”
4
화청백 등은 신마성 무사가 보이지 않는 선창 쪽으로 나가서 배에 접근했다.
그런데 그들이 배 앞에 있는 사공과 협상을 하고 있을 때 옆쪽의 다른 배에서 누군가가 몸을 일으켰다.
한 사람이 아니었다. 모두 다섯. 빌어먹게도 신마성의 무사들이 배 안에서 몰래 잠을 자다가 화청백의 목소리를 듣고 일어난 것이다.
“뭐하는 놈들인데 이 밤에 배를 띄우겠다는 거냐?”
악진표가 나서서 굽실거리며 말했다.
“급히 전해야 할 물건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한 번 봐주십시오.”
“그래? 그 물건이 뭐지? 어디 보따리를 풀어봐라.”
악진표는 슬쩍 화청백을 돌아다보았다.
화청백은 품에서 은자 두 냥을 꺼내 내밀었다.
“이것 받으시고 사정을 봐주십시오.”
“호오!”
신마성 무사들 중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배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화청백에게서 은원보를 받아 들고는 품속에 넣고 씩 웃었다.
“이거 진짜 수상한 놈들이군. 일개 봇짐장수가 은자 두 냥을 선뜻 내놓다니. 그 봇짐을 풀어봐라. 길쭉한 걸 보니 무기가 든 것 같은데?”
그 사이 배 위에 있던 신마성 무사들이 모두 밖으로 나왔다. 게다가 또 다른 배에서 다섯 사람이 더 나타났다.
화청백은 조용히 해결할 상황이 아님을 알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냥 조용히 보내주었으면 되었을 것을…….”
스릉.
봇짐 속에서 검이 빠져나왔다.
악진표와 진양도 화청백의 생각을 짐작하고 봇짐에 숨겨두었던 검을 빼 들었다.
그들은 검을 빼 든 즉시 신마성의 무사들을 공격했다.
순간적으로 신검문 무사들 중 셋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신마성의 무사들은 화청백 등이 고수임을 알고 정면으로 상대하지 않았다.
“이제 보니 신검문 놈들이구나!”
“모두 포위하고 철저히 방어만 해라!”
삐이이익!
그들 중 하나가 호각을 불었다. 삼십여 장 떨어진 곳에 있던 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마음이 다급해진 화청백은 전력을 다해서 신검문 무사들을 공격했다.
신검일수 화청백의 검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신마성에서도 장로급 이상 되는 고수여야 했다. 일개 감시조의 무사들이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화청백에게 은자를 받아 챙긴 자는 밀리면서도 쉽게 당하지 않았다. 그는 바로 마혼신마대의 부대주로 선창 감시의 책임자인 소문광이었던 것이다.
“정말 대단한 놈이구나!”
소문광은 이를 악물고 화청백의 검을 막았다.
신검문에서 어떤 자들이 왔는지 대충 파악이 된 상태였다. 모두가 절정에 이른 고수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설마하니 자신이 이리 밀릴 줄이야!
반면 화청백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삼검을 받아낼 수 있는 자가 일개 평무사일 리 없었다. 더구나 악진표와 진양을 상대하는 자들도 제법 강하게 버텼다.
‘빌어먹을! 어쩐지 배에서 잠이나 퍼 자고 있다 했더니 지위가 높은 놈들이었군.’
하지만 지금은 놈들의 정체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는 팔성의 공력을 구성으로 끌어올렸다. 그의 검에서 시퍼런 검기가 일렁이는가 싶더니 상대의 도세를 난자했다.
검강 직전의 단계인 검기성형의 경지.
소문광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이를 악물고 대항했다. 공을 세우기는커녕 죽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때마침 호각소리를 들은 신마성 무사들 십여 명이 소리치며 몰려왔다.
“부대주! 괜찮습니까?”
“웬 놈들이냐? 모두 저놈들을 쳐라!”
그때 뒤처져 있던 신검문의 고수 네 사람이 그들을 공격했다. 몇 번의 공방이 오가기도 전에 신마성 무사들 반수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하지만 선창가는 물론이고 남창 전체에 신마성 무사들이 깔려 있는 상황이었다.
싸움이 벌어지면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고함소리가 어둠을 뒤흔들자 신마성 무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화청백의 눈빛이 흔들렸다.
당장 앞에 있는 자들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문제는 적들이 계속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곳을 빠져나갑시다!”
화청백은 소문광을 향해 검을 강하게 휘두른 후, 소문광이 비틀거리며 물러서자 뒤로 몸을 날렸다.
진양과 악진표를 비롯한 신검문 사람들도 신마성의 지원무사들이 당도하기 전에 몸을 뒤로 뺐다.
그런데 바로 그때 화청백의 고막에 언젠가 들었던 칼칼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냥 그들을 치고 그대로 배에 타쇼!]
화청백은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뒤는 나에게 맡기고 그냥 타라니까! 지금이 아니면 빠져나가기가 더 어려워질 거요!]
화청백은 이를 지그시 악물고 신검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화청백이 머뭇거리자 도주하다 말고 엉거주춤한 상태였다.
이판사판이라는 마음이 든 화청백은 신검문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앞에 있는 놈들을 치고 배에 타시오!”
“화 공자?”
“시간이 없소! 어서!”
화청백은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십성 전력을 다해서 소문광을 공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