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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42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8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42화

 

142화

 

 

 

 

 

 

등가위는 눈살을 찌푸리고서 고개를 저었다.

 

“몸매는 영락없는데 행동이나 얼굴은 딴판이네.”

 

당시만 해도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이었으니 신예와 장난치고 있는 모습이 같게 보일 리 없었다.

 

생각지 못한 대답에 교비은의 눈이 커졌다.

 

“상관경의와 함께 있었던 놈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등가위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한참 동안 풍천을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묘한 감정이 그의 가슴을 들쑤셨다.

 

피가 끓고 손 안에 땀이 고이고 당장 뛰쳐나가서 찢어 죽이고 싶었다.

 

지독한 살심이 솟구친 등가위는 대풍이란 자가 바로 상관경의를 구하려 했던 그 기분 나쁜 애송이임을 확신했다.

 

“사람은 같은 것 같아. 아무래도 변장을 했거나, 강호에서 은밀히 거래된다는 인피면구를 쓴 것 같군.”

 

“그래요?”

 

“놈이 왜 얼굴을 가렸는지 몰라도 좋은 목적은 아닐 거네. 어떻게 할 건가? 우리가 처리해도 되겠나?”

 

교비은은 방으로 들어가는 풍천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대공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안 됩니다, 단주. 조금만 참으시지요.”

 

그리고 입술을 비틀며 조소를 지었다.

 

‘약점을 쥐고도 이용하지 못하면 병신이지. 등 단주가 죽이면 시체 구경하는 것밖에 더하겠어?’

 

 

 

2

 

 

 

풍천은 저녁이 되자 공손량에게 받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탐독했다.

 

 

 

[광양검결(洸揚劍訣)]

 

 

 

승광(昇光), 탄유(彈柔), 무진(無盡).

 

책에는 단 삼 초의 검법이 적혀 있었는데 장수는 삼십 장이 넘었다. 하나의 그림에 열 장의 설명. 게다가 설명이 어찌나 애매모호하며 이해하기가 어려운지 꼭 경전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검법은 달랑 삼 초면서 뭐가 이렇게 두껍고 복잡해?’

 

처음에는 그리 생각하며 그냥 뇌정천결이나 익힐 생각이었다. 상관경의가 익힌 검이라면 뇌정천결만 못할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심심풀이로 몇 장 넘기다 보니 자꾸만 빠져들었다.

 

그가 낙성천류검과 비월신검을 익혔기에 그 내용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탓도 있고, 뇌정검결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느껴진 이유도 있었다.

 

 

 

삼매경에 빠진 풍천을 교비은이 찾아온 것은 자시가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안에 있는가?”

 

풍천은 세 번에 걸쳐서 완독한 광양검결을 한쪽에 내려놓고 밖을 향해 물었다.

 

“누구쇼?”

 

“천궁전의 교비은이라 하네. 대공의 말씀을 전할 게 있어서 왔네.”

 

그 말에 풍천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침상 깊숙이 책을 집어넣고 교비은을 들어오게 했다.

 

“들어오쇼.”

 

교비은은 함께 온 두 명의 위사를 밖에 남겨놓고 혼자만 안으로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며 의자에 앉은 그는 중요하지 않은 일처럼 가벼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오늘 오후에 이공께서 여길 들렸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천상선원에 가던 길이었는데 물어볼 게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가?”

 

“가재를 구워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죠. 그런데 왜 그게 궁금한 거요?”

 

가재를 구워 먹어? 공손무헌과?

 

교비은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지 않는 이공께서 자네의 집에 한참 머물렀다는 말을 듣고 의아해서 말이야.”

 

“가재를 구워 먹다 보니 이야기가 조금 길어진 것뿐이죠. 지금 그걸 알아보시려고 오신 겁니까?”

 

“그건 아니네.”

 

“그럼 본론을 말해보쇼. 밤도 늦었는데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도 없잖습니까?”

 

“그럴까? 좋아, 그럼 본론을 말하지. 자네 혹시 천주님이나 다른 사람에게 상관경의를 공격한 사람들에 대해서 자세히 말한 적이 있는가?”

 

“제가 그걸 뭐하러 말합니까? 잘못하면 저만 곤란해질지 모르는데.”

 

“그래? 흐음, 잘했군.”

 

‘눈치는 제법인데?’

 

눈치도 없이 나대는 놈보다는 눈치 빠른 놈이 부려먹기에 나았다.

 

내심 만족한 교비은은 손가락으로 풍천의 얼굴을 가리켰다. 그리고 칼로 심장을 후비듯이 전격적으로 몰아붙였다.

 

“그런데 말이야…… 자네의 지금 얼굴, 진짜 얼굴이 아니지?”

 

풍천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헛, 어떻게 아셨죠?”

 

“흐흐흐, 내 눈을 속일 생각 말게. 말해보게나. 왜 얼굴을 감췄지?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지옥을 구경하게 될 게야.”

 

풍천은 주위에 뭐라도 있는 것처럼 눈알을 굴려 사방을 살펴보고는 나직이 말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내 진짜 얼굴을 보여주죠.”

 

“흠, 좋아. 내 말만 잘 따른다면 악속을 지키지.”

 

풍천은 별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쉬고는 품속에서 작은 병을 하나 꺼내서 노란 액체를 손바닥에 따랐다. 그리고 조금씩 얼굴에 바르며 인피면구를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후우, 이게 제법 비싼 거라서 표가 안 나는 대신 떼어내기가 쉽지 않은데 할 수 없죠. 대신 다 떼면 다시 붙여도 표가 날지 모르니 대충만 보쇼. 저도 사실 잘생긴 제 얼굴을 교 대협께 보여주고 싶긴 한데…….”

 

풍천은 뺨 한쪽만 보여주었다.

 

교비은도 전부 떼라고는 하지 못하고 그 정도에서 만족했다.

 

중요한 것은 인피면구를 썼다는 걸 확인하는 것이었다. 얼굴이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는 눈곱만큼도 중요하지 않았다. 정확히 알고 싶으면 등가위와 조양경에게 물어봐서 초상화를 그리면 될 것이고.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댄 교비은은 눈을 반짝이며 칼날처럼 날카롭게 질문을 던졌다.

 

“이제 이유를 말해보게. 얼굴을 왜 감췄지?”

 

“잠깐만요. 누가 보면 안 되니까 다시 붙이고요.”

 

풍천은 다시 인피면구를 꼼꼼히 붙이고 확인까지 했다.

 

“어때요, 어디 이상한 데 없어요?”

 

“흠, 없는 것 같군. 정말 대단한 인피면구군. 나도 하마터면 속을 뻔했어.”

 

“하, 하. 은자 오십 냥이냐 주고 산 겁니다. 조금 깎으려고 했는데 쩨쩨하게 한 푼도 안 깎아주더군요. 혹시 교 대협도 필요하면 말하십시오. 제가 사다드릴 테니까.”

 

엉뚱한 이야기에 조금 짜증이 난 교비은은 미간을 찡그리고 풍천을 재촉했다.

 

“나는 그런 것 필요 없네. 그보다 얼굴을 감춘 이유나 말해봐.”

 

“거참, 오십 냥이면 굉장히 싼 건데…….”

 

“자네 정말!”

 

풍천은 교비은이 발끈하자 목소리를 낮춰서 대답했다.

 

“아, 교 대협도 생각해보십쇼. 불귀곡이 어딥니까?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곳 아닙니까? 그런데 어디 맨 정신으로 들어올 수 있겠어요?”

 

“그래서 얼굴을 가렸다?”

 

“왜,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 가면을 쓰면 사람의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자신을 못 알아보니까 나중에 무슨 일이 있어도 안심이 되고요.”

 

“흠, 그건 그렇지.”

 

“더구나 저는 암습자에게 죽을 뻔했던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 판에 얼굴을 드러내고 다니는 건 ‘나 죽여줍쇼!’ 하는 거나 같죠.”

 

교비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풍천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게다가 쉽게 얼굴을 드러내는 걸 보니 악의적인 목적으로 인피면구를 쓴 것은 아닌 듯했다.

 

한편으로는 자신들만 대풍의 본얼굴을 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아니다 싶으면 그때 죽여도 되겠지.’

 

그렇게 결정 내린 교비은은 편한 마음으로 본론을 꺼냈다.

 

“좋아, 그럼 그건 그 정도로 하고…… 천외천에 들어와서 아는 사람도 없고 믿을 만한 사람도 없어 힘들 텐데, 어떤가?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 대공을 따르지 않겠나?”

 

“대공을? 제가 천주님을 따르는 게 곧 대공을 따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교비은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나직이 말했다.

 

“아무래도 천주님을 따르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지. 자네가 따르기만 한다면 섭섭지 않은 대우를 해줄 거네.”

 

“어떤 대우를 해준다는 거죠?”

 

“먼저 황금 오백 냥을 줄 것이네. 그리고 자유롭게 강호를 오갈 수 있는 권한을 주지.”

 

황금 오백 냥!

 

풍천은 입이 찢어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열 냥만 해도 손이 벌벌 떨리는데 오백 냥이라니!

 

‘흐흐흐흐, 이제 황금을 들고 다니기도 힘들겠는데?’

 

머릿속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든 풍천은 배부른 표정으로 교비은을 바라보았다.

 

“교 대협보다 높은 지위인가요?”

 

“내 바로 밑에쯤 된다고 봐야겠지.”

 

그 말에 풍천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그럼 생각해봐야겠는데요? 지금만 해도 단천무령주의 지위가 귀하보다 높은 거 아닌가요?”

 

이 자식이!

 

교비은은 눈썹 끝을 치켜올리고 풍천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날 선 칼로 무를 자르듯이 또박또박 말했다.

 

“곧 세상은 대공의 위대함을 알게 될 거네. 자네도 동참하면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게 될 거야. 단천무령의 령주라는 지위 따윈 아무것도 아니지. 무슨 말인지 알겠나?”

 

“대공께서 밖으로 나가실 거라는 말씀인가요?”

 

“어지러워진 세상을 구하시기 위해서 나가시는 거지.”

 

“제가 이곳으로 올 때만 해도 조용했는데 그동안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나요?”

 

“신마성이 안휘에서 전쟁을 일으켰네. 그들에 의해서 금천문과 삼도맹을 비롯해서 중소문파 몇 군데가 무너지는 바람에 구룡회가 어려움에 처했다고 하더군.”

 

“그럼 대공께서는 구룡회를 돕기 위해서 나가시는 건가 보군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 어떤가? 우리와 함께 세상을 질타해보지 않겠나?”

 

“저도 그러고 싶은데…….”

 

“하고 싶으면 하면 되지 뭐가 두려워서 망설이는 건가?”

 

“그래도 천외천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대공에게 달라붙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거 아닙니까? 저는 남에게 의심받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말이죠.”

 

‘그 자식, 생긴 것답지 않게 성격이 예민하군.’

 

교비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대공께서는 천외천의 후계자시네. 누가 감히 대공의 수하를 함부로 한단 말인가? 공연한 걱정이네. 자네가 얼굴을 가린 것도 대공의 한마디면 다 용서가 되지, 허허허허.”

 

‘쪼잔한 인간. 그걸로 협박해보겠다고?’

 

풍천은 교비은의 수작을 알고도 한 번 더 뺐다. 던져진 미끼를 덥석 무는 것은 피라미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그래도 천주님이 계신데 천주님의 말을 듣지 않고 대공을 따르면 사람들이 저를 욕할지 모르잖습니까? 그렇게 미움받다가 단천무령의 령주 자리에서 쫓겨나면 교 대협이 책임지실래요? 교 대협 자리를 제게 주실 수 있어요? 예?”

 

풍천이 나직한 목소리로 은근하게 계속 다그치자 교비은의 가늘어진 눈매가 잘게 떨렸다.

 

‘내가 왜 네놈 쫓겨나는 걸 대신 책임져?’

 

은근슬쩍 짜증이 치민 그는 풍천을 째려보면서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풍천이 고개를 쑥 앞으로 내밀고는 도둑놈들이 모의를 꾸미듯 조용조용 말했다.

 

“이렇게 하죠. 잠시 동안은 천주님을 따르는 척하겠습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때가 되면 그때 가서 대공을 돕도록 하죠. 그럼 저도 남의 눈치 안 봐도 되니까 좋고, 대공께선 항상 등을 찌를 수 있는 비수를 하나 지닌 것과 같으니까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교비은은 코웃음이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비수? 비수는 무슨! 막대기라도 되어주면 다행이지.’

 

그래도 겉으로는 아주 멋진 계획을 들은 사람처럼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것도 나쁘진 않군.”

 

“그렇죠? 사실 저 같은 사람은 정의네 뭐네 그런 거 모릅니다. 그저 저에게 누가 큰 이득을 주느냐, 그게 중요할 뿐이죠. 사실 상관경의를 도와준 것도 그 사람이 저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고, 거기다 황금 이백 냥까지 준다고 해서 도와준 것이거든요. 뭐 무공을 가르쳐 준 것도 부상을 치료해준 대가로 얻은 것이긴 하지만요.”

 

풍천은 그렇게 말하고 씩 웃었다.

 

상관경의에게는 조금 미안했다. 하지만 그가 부탁한 일 때문에 그런 것이니 저승에서 들었어도 다 이해할 것이었다.

 

교비은도 마주 웃었다.

 

등가위는 풍천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상관경의의 무공을 익힌 데다가 목숨을 걸고 그를 살리려 했던 걸로 봐서 예사롭지 않은 사이처럼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교비은이 알기로는 얼마 전만 해도 상관경의의 곁에는 대풍이란 놈이 없었다.

 

그럼 두 사람이 알게 된 것은 기껏해야 한 달 안쪽이란 말. 해서 등가위가 천응을 잃은 것 때문에 대풍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대풍이란 놈의 말을 들어보니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랬군. 생판 모르는 놈이 어떻게 상관경의의 무공을 익히고, 왜 상관경의를 악착같이 도와주었나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어.’

 

그런 이유였다면 걱정할 것도 없었다. 물론 사실여부를 더 알아봐야겠지만 자신의 생각으로는 다른 이유가 더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좋아, 그럼 그렇게 알고 그만 돌아가겠네.”

 

교비은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풍천이 재빨리 따라 일어나며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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