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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41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0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41화

 

141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몸을 돌린 장천운은 빠르게 정원을 벗어났다.

 

당황한 원로들이 전각을 나왔을 때 이미 풍천은 정원을 벗어나서 천상선원의 입구로 가고 있었다.

 

원로들은 멍하니 서 있는 화문오를 흘겨보았다.

 

“허어, 정말 화가 단단히 났나 보군.”

 

“문오, 어째 그리 경망하게 손을 쓰나? 에잉, 팔십이 다 되어가는 늙은이 성격이 어째 젊은 놈만도 못하누?”

 

화문오는 고개를 돌려서 풍천이 사라진 곳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여우 같은 놈! 그 사이 늙은이들을 홀려놓다니…… 어디 두고 보자, 이놈. 내 오늘의 일을 얼렁뚱땅 그냥 지나칠 줄 알고?’

 

 

 

3

 

 

 

천상선원을 나선 풍천은 콧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노인네들이 계곡 안에서만 주로 살아서 그런지 순진한 면이 있군. 잘만 구슬리면 든든한 원군이 되겠어.’

 

그런데 그가 거처를 사십 장 정도 남겨놓았을 때였다.

 

저만치에서 백의를 입은 쉰 살 전후의 중년인이 정면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누구지?’

 

공손무헌은 천상선원 쪽에서 걸어오는 풍천을 보고 이채를 반짝였다.

 

이십 대의 나이, 조금은 가벼워 보이는 표정, 자신을 빤히 보면서 의아해하는 눈빛.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그 세 가지만으로도 풍천의 신분을 짐작한 것이다.

 

‘저 친구가 대풍인가?’

 

서로 마주 보며 걷는 사이 거리가 십 장 이내로 줄어들었다.

 

풍천은 그제야 공손무헌이 예사롭지 않은 고수임을 알고 표정이 굳어졌다.

 

‘지미, 상관 노형보다도 강한 거 아냐?’

 

게다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위엄은 풍천조차 가슴이 무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도대체 천외천에는 저런 자들이 얼마나 있는 걸까?

 

순간 머릿속에서 이름 하나가 번쩍 떠올랐다.

 

‘공손무헌?’

 

천외천이 아무리 대단한 곳이라 해도 저런 위엄을 지닌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공손무백과 닮은 얼굴을 지닌 사람은 더욱 적을 것이었다.

 

풍천은 공손무헌과의 거리가 일 장으로 줄어들자 걸음을 멈췄다.

 

기다렸다는 듯 공손무헌도 걸음을 멈추었다.

 

“자네가 단천무령의 신임 령주인 대풍인가?”

 

“그렇습니다, 이공.”

 

풍천은 ‘이공’이라 부르며 공손무헌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공손무헌은 자신의 정체를 부정하지 않고 계속 질문을 던졌다.

 

“남창에서 경의를 구해주었다고?”

 

“그것도 틀림없는 사실이죠.”

 

“경의와 함께 이곳으로 오다가 공격을 받았다던데, 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나?”

 

원하던 바다.

 

이번에는 풍천이 씩 웃으며 물었다.

 

“천상선원에 가시는 길입니까?”

 

“그렇다네.”

 

“바쁘십니까?”

 

“그리 바쁜 일은 아니네.”

 

“그럼 장소를 옮겨서 가재나 구워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죠?”

 

“가재?”

 

“천상선원으로 가기 전에 잡아놓은 게 있는데 신예가 남겨놓는다고 했거든요.”

 

공손무헌의 입술이 묘하게 비틀어졌다.

 

그는 소문을 믿지 않았다. 상관경의가 소문처럼 별 볼 일 없는 사람에게 반지를 건네주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어떻게 보면 소문이 사실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또 어떻게 보면 두꺼운 껍질을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풍천이 자신에게 그런 마음을 들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상관경의가 사람을 잘못 보낸 것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가재라…… 흠, 그것도 괜찮겠군.”

 

 

 

4

 

 

 

풍천은 신예가 구워온 가재의 껍질을 벗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한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것도 몇 번 했더니 이제는 막힘없이 줄줄 나왔다.

 

다만 내용을 좀 더 자세하게 말했는데 그것은 상대가 이공 공손무헌이기 때문이었다. 상관경의가 모든 걸 걸고서 보호하고자 했던 사람.

 

물론 하지 않아야 할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아직 때가 아니니까.

 

“……그래서 백초령도 구할 겸 대공을 막는 데 한쪽 팔이 되어달라는 상관 노형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 여기까지 온 거죠.”

 

풍천은 이야기를 맺고 마지막 가재의 껍질을 바구니에 던졌다. 바구니에는 가재의 붉은 껍질이 가득 쌓여 있었다.

 

공손무헌은 손을 털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 그렇게 된 일이었어. 어쩐지 경의가 너무 쉽게 당했다 했더니…….”

 

“천응단을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건가요?”

 

“그들이 형님의 명을 받고 움직인 이상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네. 경의가 연이어서 임무를 실패하고 수하마저 모두 잃었으니 형님은 분명 그걸 물고 늘어질 거야. 물론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았으니 아버님께서도 그걸 빌미로 형님을 야단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 이상은 힘든 상황이네. 형님의 힘이 너무 커져버렸거든.”

 

“왜 천주님께선 그렇게 많은 힘을 대공께 얹어주신 거죠?”

 

“형님의 야망이 큰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독한 일을 벌일 거라고는 나도, 아버님도 생각지 못했네. 본래 성정이 악한 분은 아니거늘…….”

 

공손무헌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풍천은 그런 공손무헌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로선 천외천이 서로 싸우다 망하든 말든 별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되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마저 가지고 있었다. 그럼 벽라족의 한이 어느 정도 풀릴 테니까.

 

그런데 막상 공손무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상관경의의 말대로 공손무헌은 공손무백과 다른 사람이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상대의 눈높이에 맞춰서 행동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더구나 충격적인 이야기에도 눈빛 한 점 흔들리지 않으니 원…… 이거 보통 어려운 상대가 아닌걸?’

 

그때 공손무헌이 풍천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자네, 천외천에 대해서 경의에게 어디까지 들었는가?”

 

풍천은 공손무헌의 눈을 피하지 않고 담담히 입을 열었다.

 

“하늘 밖에 머물면서 강호의 안녕이 흔들리면 그걸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리 틀린 말은 아니군.”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저는 그게 진짜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음?”

 

예기치 못한 풍천의 말에 공손무헌의 눈이 커졌다.

 

풍천은 못 본 척하고 말을 이었다.

 

“흐르는 물을 억지로 막으면 반드시 다른 곳으로 흐르게 되죠. 그런데 그것이 꼭 옳게만 흐르는 건 아니거든요. 더구나 가두어진 물이 한꺼번에 터지면 더욱 큰일이 벌어지고요. 한마디로 천외천이 하고 있는 일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라는 거죠.”

 

이마를 좁힌 공손무헌은 풍천이 천외천을 비하하는 데도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풍천의 말을 인정했다.

 

“으음,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군. 그러나 나쁜 길로 가지 않게 관리만 잘하면 막지 않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네.”

 

“그것도 정도껏 해야지, 지나치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기게 되죠.”

 

“지금처럼 말인가?”

 

“뭐 지금도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문제는 이 일이 결코 천외천 내부의 일로만 끝나지 않고 강호로 번질 거라는 거죠. 피를 부르면서 말이죠.”

 

공손무헌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부끄럽군. 들어온 지 하루밖에 되지 않는 자네가 그리 봤다는 건 분명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고 봐야겠지.”

 

풍천은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공손무헌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사람처럼 느껴졌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아랫사람에게 진실된 마음으로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이거,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거꾸로 내가 넘어가겠는데?’

 

숨을 길게 들이쉬며 마음을 가다듬은 풍천은 공손무헌에게 넌지시 말했다.

 

“일단 백초령을 신검문에 데려다 줘야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돌아와 상관 노형의 부탁대로 이공을 돕죠.”

 

그런데 공손무헌이 난감한 표정으로 반대하는 것이 아닌가.

 

“당장은 곤란하네.”

 

생각지도 못한 반대에 부딪친 풍천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요? 공손천우가 내주지 않을까 봐서요?”

 

“천우는 지금 폐관한 채 수련중이네. 백초령이 이곳을 떠난 걸 알게 되면 그놈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네.”

 

풍천은 공손무헌의 말에 들어 있는 뜻을 하나 깨닫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설마…… 그가 정말로 백초령을 좋아하기라도……?”

 

풍천의 마음을 모르는 공손무헌은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그렇다네. 천우는 그 아이를 정말로 좋아하고 있다네.”

 

순간 풍천의 반쯤 감겼던 눈이 동그래졌다.

 

‘내가 미쳐! 그런 말괄량이가 뭐 그리 좋다고 다들 난리야?’

 

구양종, 위태곤, 공손천우. 모두들 눈이 사팔뜨기인가?

 

자신도 백초령 이야기만 나오면 방방 뜨면서, 풍천은 그들의 멍청함만 욕했다.

 

그리고 자신의 단호한 마음을 공손무헌에게 내비쳤다.

 

“좌우간 저는 백초령을 데려다 주지 않고선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공손천우가 정말 백초령을 좋아한다면 신검문으로 가서 그녀를 얻으라고 하십쇼. 어차피 둘이서 진짜로 혼인을 하려고 한다면 신검문에 가야 할 것 아뇨?”

 

공손무헌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차로 입술을 적시며 잠깐 시간을 번 그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풍천을 쳐다보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공손천우가 정말 백초령을 얻고자 한다면 그녀를 신검문에 보내는 게 옳았다. 지금처럼 납치해온 상태에서는 어차피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없을 테니까.

 

문제는 백초령이 잘못될 경우 공손천우가 자신의 곁을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런 모험을 할 정도의 가치가 대풍에게 있을까?

 

불현듯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때 풍천이 공손무헌을 삐딱한 시선으로 쳐다보며 쏘아붙였다.

 

“왜요? 공손천우가 난리를 피울까 봐 그러쇼? 그래서 백초령을 보내주는 게 옳다는 걸 알면서도 망설여져요? 에이, 내가 상관 노형에게 들었던 이공과 다르시네. 옳은 것을 알고도 망설이는 건 사나이 대장부가 취할 태도가 아니죠. 안 그래요?”

 

충격을 받은 듯 찻잔을 쥔 공손무헌의 손이 잘게 떨렸다.

 

엄벙덤벙하게 보이는 풍천이지만 그의 말은 독사의 이빨보다 더 날카로웠고, 거기에 담긴 뜻은 살모사의 독보다도 더 독했다.

 

“허, 허, 허. 자네 말이 맞네. 그건 사나이 대장부가 취할 태도가 아니지. 내가 그걸 몰랐군.”

 

공손무헌은 쓴웃음을 지으며 내려놓으려던 찻잔을 다시 입으로 가져가 식은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풍천을 직시한 채 고저 없는 목소리로 자신의 뜻을 밝혔다.

 

“좋네, 백초령은 신검문에 돌려보내지.”

 

“정말이죠? 한 번 한 말을 뒤집으면 자라 새끼가 되는 겁니다?”

 

자라 새끼?

 

공손무헌은 차마 화는 내지 못하고 땡감을 베어 문 표정으로 눈을 부라렸다.

 

“걱정 말게.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말을 뒤집은 적이 없으니까.”

 

“좋습니다. 그럼 이공의 말씀을 믿죠.”

 

“다만 백초령의 안전을 위해서 오늘내일 사이에는 움직이지 말게.”

 

“그럼 언제……?”

 

“사나흘쯤 지나면 자네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질 거네. 아버님께 말씀드려놓을 테니 겸사겸사 단천무령이 될 사람들을 고르기 위해서 밖으로 나간다고 하게.”

 

“좋습니다. 그런데 저, 단천무령을 움직이는 데 제 돈을 써야 하는 건 아니죠?”

 

“걱정 말게. 단천무령의 활동비는 모두 본천에서 대주니까. 그리고 단천무령 개개인에게도 그만한 수당이 지급되네. 혹시라도 밖에 나가서 단천무령을 뽑거든 그 점을 말해주게.”

 

미처 몰랐던 이야기다.

 

풍천은 돈 이야기가 나오자 눈빛이 반짝였다.

 

“그럼 령주인 저도 받는 겁니까?”

 

“당연한 일 아닌가? 단천무령은 임무 때만 수당을 받지만 령주에게는 매달 은자 삼십 냥이 지급되네.”

 

풍천의 입이 양쪽으로 길게 늘어졌다.

 

진작 말해주지!

 

‘그냥 령주를 계속 할까?’

 

 

 

 

 

제7장. 기왕이면 보석으로

 

 

 

 

 

1

 

 

 

교비은은 무심헌 앞마당에서 신예와 장난치고 있는 풍천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놈이 맞습니까?”

 

그의 옆에는 풍천을 확인하기 위해서 함께 온 등가위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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