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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39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5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39화

 

139화

 

 

 

 

 

 

“천우 공자님께서 폐관을 하셔서 한동안 나오시지 못한다는 전갈이에요.”

 

백초령은 표정을 활짝 펴며 반색했다.

 

“그래? 그럼 나는 여기 떠나도 되겠네?”

 

“천우 공자님께서 나오실 동안 편히 모시라는 말씀이 있으셨어요.”

 

“뭐? 떠나면 안 된다는 거야?”

 

“불귀곡은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에요. 이해하시고 편히 지내세요.”

 

“싫어! 나는 이곳을 떠날 거야! 며칠만 지내면 내보내 주겠다고 공자가 약속했단 말이야!”

 

백초령이 빽 소리를 지르자 홍련은 간절한 표정으로 사정했다.

 

“그에 대해선 제가 결정할 수 없어요, 아가씨. 천우 공자님이 나오시면 그때 말씀하세요, 예?”

 

“언제 나오는데?”

 

“저도 모르겠어요. 갑자기 폐관을 하셔서…….”

 

“그럼 기약도 없이 기다리란 말이야?”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공자님께선 지금까지 한 달 이상 폐관한 적이 없거든요.”

 

“한 달? 그럼 최악의 경우 한 달이나 더 있어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건 제일 길었을 때고요, 아마 아가씨가 보고 싶어서라도 그 전에 나오실 거예요.”

 

“왜, 왜 나를 붙잡아놓는 거지? 공손 공자가 나와 혼인하겠다고 한 것은 다 거짓말이란 말이야.”

 

“저희 같은 시비가 어찌 그에 대한 걸 알겠어요.”

 

“좋아, 그럼 천주님을 만나겠어. 그분을 만나서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하겠어. 가서 그분께 말씀드려. 신검문의 둘째 딸 백초령이 독대를 원한다고 말이야.”

 

“소녀에게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어요, 아가씨. 하지만 일단 윗분께 말씀은 드려볼게요.”

 

“그래? 좋아. 그럼 당장 그 말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을 불러줘.”

 

 

 

잠시 후, 공손무헌이 백초령을 찾아왔다.

 

공손천우와 함께 만난 적은 두어 번 있지만 단 둘이 대면하기는 처음이다 보니 백초령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되었다.

 

“그래, 떠나고 싶다고?”

 

공손무헌이 먼저 편안하게 보이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백초령은 긴장감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공손 대협. 제가 이곳에 온 것은 처음부터 제 의지가 아니었어요.”

 

공손무헌은 다 알고 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나도 들었다. 천우가 너를 납치했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래요? 그럼 저를 집으로 보내주실 수 있겠네요?”

 

“나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상황이 좋질 않구나.”

 

“상황이 좋지 않다니요?”

 

“너에게 이런 말하기가 창피스럽다만 본천은 지금 격변을 겪고 있단다. 해서 네가 밖으로 나가면 해를 입을지 모른다.”

 

“예? 누가 저를 해친단 말이에요?”

 

“천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들은 네가 뭐라 해도 천우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서 너를 해칠 거다. 어쩌면 인질로 삼아서 천우를 협박할지도 모르고 말이다.”

 

백초령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공손 공자는 조부님께 혼나기 싫어서 거짓으로 저와 혼인한다고 한 것뿐이에요. 그런데 제가 인질로서 무슨 가치가 있겠어요?”

 

공손무헌은 빙그레 웃으며 담담히 말했다.

 

“너는 모를지 모르겠다만 천우가 거짓으로라도 혼인을 하겠다고 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었다. 자기 방 옆에 여자를 머물게 한 것도 처음이고, 음식이 그 여자의 입에 맞을까 걱정하며 주방을 들락거린 것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놈이 사흘에 한 번씩 목욕하고 머리가 제대로 묶였는지 고민한 것도 아마 철이 든 이후로 처음이었을 것이다. 너는 천우가 왜 그랬을 거라 생각하느냐?”

 

백초령은 멍한 표정으로 공손무헌을 바라보았다.

 

“설마…… 공손 공자가 정말 저를 좋아한단 말……?”

 

“나는 혼인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녀석을 자식처럼 생각하며 지켜봤지. 그 녀석, 지금쯤 네가 걱정되어서 안절부절못할 거다.”

 

“말도 안 돼요. 그 사람은 저를 납치했어요. 납치가 무슨 말인지 아시죠? 그리고 며칠 도망 다니다가 이곳으로 바로 왔어요. 좋아하고 말고 할 겨를도 없었다구요.”

 

“그 정도면 남녀가 좋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야.”

 

“좋아요, 그랬다 쳐요. 하지만 저는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니 저를 집으로 보내주세요, 공손 대협.”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당장 보내줄 수는 없다. 대신 너에 대한 소식을 신검문에 알려줄 테니 천우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마음 편히 지내도록 해라.”

 

신검문에 소식을 전해준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녀가 빨리 돌아가려 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식구들이 걱정할까 봐 그런 것 아니던가.

 

“천우 공자가 나오려면 얼마나 걸리죠?”

 

“목표한 경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누구도 모른다. 며칠 만에 이룰 수도 있고, 몇 달이 걸릴 수도 있지. 단 이것만은 말해줄 수 있다. 천우가 게으름을 피워서 그렇지, 그 아이의 자질은 천하에서 짝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대단하단다.”

 

“결국 그 사람에게 달렸단 말이네요?”

 

“맞다. 해서 하는 말인데, 네가 서신을 하나 써주었으면 좋겠구나.”

 

“서신요?”

 

“열심히 해서 목표한 경지를 빨리 완성하라고 해라.”

 

“자극을 주란 말인가요?”

 

“그래. 그러면 더 빨리 완성하지 않겠느냐?”

 

힘들 것도 없는 일이다. 오히려 자신이 먼저 닦달하고 싶은 일이다.

 

“그런 거라면 백 장이라도 써드릴게요.”

 

백초령은 공손무헌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제6장. 천상선원(天上仙園)과 장부석(丈夫石)

 

 

 

 

 

1

 

 

 

중천의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가는 미시 말.

 

감능하는 개울가의 전각이 보이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휴우우우우, 어쩌다 그때 곡구의 경비를 맡아가지고…….”

 

그 바람에 대풍을 만났고 대주는 아예 자신에게 대풍을 전담하게 했다. 안면이 있으니 서먹하지 않을 거라면서.

 

그는 대풍을 만나는 게 싫었지만 대주의 명령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거부했다가는 맞아 죽을지 모르니까.

 

‘다른 부서로 옮겨볼까?’

 

감능하가 신중하게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며 전각으로 다가가는데 갑자기 개울 쪽에서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어쩐 일이쇼?”

 

고개를 돌린 감능하는 바지를 무릎까지 걷고 있는 풍천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서 뭐하고 계셨습니까?”

 

“하, 하. 신예하고 가재를 잡고 있었죠. 저 위쪽에 가재가 많지 뭡니까?”

 

“가재는 뭐하려고……?”

 

“그야 구워 먹으려고 잡지, 뭐하러 잡겠수?”

 

활짝 웃으며 대답한 풍천은 고개를 돌리고 개울을 향해 소리쳤다.

 

“신예야, 그만 잡고 나와라!”

 

“예, 령주님!”

 

신예가 바구니를 들고 개울 쪽 움푹 들어간 곳에서 나왔다. 옷이 반쯤 물에 젖었는데도 신이 난 표정이었다.

 

“그 정도면 한참 구워 먹겠지?”

 

“예, 백 마리도 넘어요.”

 

신예도 풍천과 비슷하게 환한 웃음을 지었다.

 

감능하는 두 사람을 보고 머리가 아파왔다.

 

‘정말 그 령주에 그 시비군.’

 

그는 일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바로 본론을 꺼냈다.

 

“천상선원에서 모시고 오라는 전갈입니다.”

 

“천상선원? 아, 노인네들이 사는 곳?”

 

윽! 천상선원의 원로들을 노인네라니!

 

감능하는 어이가 없어 풍천을 멍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근데 그 노인네들이 왜 나를 부른 거죠?”

 

풍천의 질문이 있고서야 정신을 차린 감능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야 단천무령의 신임 령주가 어떤 분인지 보고 싶은 거겠죠.”

 

그런데 그렇게 말하고 보니 원로들이 이 엉뚱한 령주를 보고 무슨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졌다.

 

“가시지요, 령주.”

 

“이 가재 좀 구워 먹고 가면 안 될까요?”

 

갑자기 목에 뭔가가 꽉 찬 기분이 든 감능하는 목과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 됩, 니, 다.”

 

“안 된다면 별수 없죠 뭐. 몇 마리라도 구워 먹고 가면 좋겠는데…… 신예야, 그럼 너 혼자 구워 먹어라.”

 

“예, 령주님. 반만 구워 먹고 반은 남겨놓을게요. 뚜껑을 닫아서 물에 담가놓으면 안 죽을 거예요.”

 

“그래? 그럼 너만 믿고 갔다 오마.”

 

풍천은 천상선원에 가는 것보다 가재가 더 중요한 듯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바구니를 보고 몸을 돌렸다.

 

“가죠?”

 

감능하는 목구멍을 뚫고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참았다.

 

‘후우,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야.’

 

그때 풍천이 그를 재촉했다.

 

“뭐하쇼? 안 갈 거요?”

 

감능하는 자신도 모르게 홱 몸을 돌리며 약간 뒤틀린 목소리로 대꾸했다.

 

“따라오십쇼.”

 

‘왜 저래? 올 때부터 얼굴이 구겨져 있던데, 대주에게 혼났나? 하긴 그 양반 얼굴 보면 심술이 잔뜩 묻어 있어서 수하들이 고생 좀 할 거야.’

 

그렇게 생각한 풍천은 손을 뻗어서 감능하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달래주었다.

 

“힘들어도 참으쇼. 내가 곧 구해줄 테니까.”

 

순간 감능하는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싸한 느낌에 몸을 잘게 떨었다.

 

‘무, 무슨 뜻이지?’

 

 

 

2

 

 

 

감능하는 풍천을 불귀곡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고풍스런 전각으로 안내했다.

 

수백 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전각은 천상선원으로 통하는 입구나 마찬가지였는데 기둥과 처마는 물론이고 벽에도 온갖 그림이 빽빽하게 그려져 있었다.

 

용(龍), 호(虎), 표(豹), 사(獅), 사(蛇), 학(鶴), 구(龜), 록(鹿) 등 각종 동물과, 구름과 태양, 산, 소나무 등등…….

 

“누가 그렸는지 고생 좀 했겠는데?”

 

감능하는 풍천의 감상평을 못 들은 척하고 재촉했다.

 

“빨리 따라 오십시오.”

 

두 사람이 전각 안으로 들어가자 사십 대로 보이는 두 중년인이 앞을 막아섰다.

 

“단천무령의 령주이신 대풍 공이시오?”

 

“그렇습니다. 제가 단천무령의 신임 령주인 대풍이지요. 하, 하, 하. 정말 반갑습니다.”

 

두 중년인은 묘한 눈빛으로 풍천을 쳐다보았다.

 

천상선원의 경비를 맡은 지 십 년, 이곳에 와서 실없는 표정으로 웃은 사람은 풍천이 최초였다.

 

좌측에 있던 중년인이 감능하를 바라보았다. 정말 맞느냐는 뜻이 담긴 눈빛으로.

 

감능하는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두 중년인 중 키가 조금 큰 중년인이 헛기침을 하는 척하며 풍천을 재빨리 살펴보고 말했다.

 

“허험, 그럼 우리를 따라오시오. 선원으로 안내해드리겠소.”

 

풍천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전각 안쪽도 그림이 가득했다.

 

“와아, 정말 멋지군요. 저기 저 그림은 뭐죠? 용쟁호투를 그린 건가요? 아니, 표범인가? 이상하네, 용과 호랑이가 싸우는 건 봤어도 표범과 싸우는 건 처음 보는군. 어? 저 사람들은 뭐죠? 이상하게 생겼군요. 눈도 파랗고 피부는 하얗고. 색목국 사람들인가?”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풍천의 두 눈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휘돌았다.

 

‘흥, 양심도 없군. 벽라동 사람들을 죽인 게 무슨 자랑이라고 여기다 그 사람들을 그려? 나쁜 놈들.’

 

그랬다. 전각 안쪽 벽에는 벽라동에서 벌어진 일이 그려져 있었다. 유령총의 벽화와 달리 이곳에서는 천상신문의 행동을 영웅적인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풍천은 그 그림을 보며 속이 뒤틀렸다.

 

자신에게 지독한 금제를 한 아극사를 생각하면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지만 아수비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대체 이걸 누가 다 그린 거죠? 오백 년도 더 된 것 같은데. 몰라요? 하긴 뭐 그림에 관심이 없으면 모를 수도 있죠. 너무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마십쇼.”

 

앞서 가던 두 사람은 귀를 막고 싶었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단천무령의 령주만 아니면 그냥……!’

 

짜증이 난 그들은 걸음을 빨리 해서 전각을 통과했다.

 

전각을 통과해서 삼십여 장 정도 걸어가자 넓은 정원이 나타났다. 기기묘묘한 바위와 나무들로 장식된 정원은 정말 선원에 온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앞서 가던 두 중년인은 뒤에서 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순간 키가 작은 중년인이 눈을 치켜뜨고 소리쳤다.

 

“뭐하는 거요?”

 

신임 단천무령주가 사람처럼 생긴 바위의 머리를 들고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원래 몸과 붙어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들고 있다는 것은 목이 부러졌다는 말.

 

그 바위를 정원에 세워놓은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음이거늘,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더구나 그 바위를 좋아하는 원로가 한 사람 있는데 그 원로는 매일 아침 그 바위에 아침 인사까지 하는 판이었다.

 

‘큰일 났군. 화 노야께서 아시면 난리가 날 텐데…….’

 

하지만 풍천으로선 억울했다.

 

“나보고 뭐라 하지 마쇼. 머리가 옆으로 기울어져서 바로 세우려고 했더니 그냥 들어진 것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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