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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38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5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38화

 

138화

 

 

 

 

 

 

3

 

 

 

풍천이 고복사 등과 만나고 있던 그 시각.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는 전각 안에서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단천무령의 신임 령주가 임명되었다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백부님?”

 

“오늘 오전에 천주님께서 인정하셨다.”

 

“상관 숙부는요? 혹시 그분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공손무헌은 공손천우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여는 데 격정이 치미는지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

 

“상관 아우가…… 죽은 것 같다.”

 

“예?”

 

“신임 령주는 그의 반지를 들고 왔다. 그가 반지를 넘겼다는 건 곧 그가 죽었다는 말과 같다. 그 반지는 그의 선친이 남긴 것이니까.”

 

“어, 어떻게…… 누가, 누가 상관 숙부를 살해한 겁니까?”

 

“짐작 가는 바가 없는 건 아니다만 아버님께서 입을 다물고 있는 이상 나도 함부로 말할 수가 없구나.”

 

“백부님!”

 

“경의는 아버님의 제자다. 그럼에도 아버님이 분노를 터트리지 않으시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니라.”

 

“대백부십니까? 그분이 손을 쓴 겁니까? 둘째 백부님께 가장 강력한 원군이 될 것 같으니까 그분이 사람을 보내 상관 숙부님을 제거한 겁니까?”

 

공손천우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러더니 끝에서는 악을 쓰듯이 말했다.

 

공손무헌은 그런 공손천우를 향해 눈을 부릅뜨며 나직이 소리쳤다.

 

“이놈!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지 마라.”

 

“백부님, 저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왜, 무엇을 위해서 본천의 사람들끼리 피를 흘려야 한단 말입니까? 세상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말도 이제는 위선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형제의 가슴에 칼을 겨누면서 무슨 염치로 정의를 외칠 수 있단 말입니까?”

 

공손천우는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조부님과 백부님께서 말을 못 한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죽이려면 죽이라 하지요.”

 

“네놈이 정녕 이 백부의 말을 우습게 듣는구나!”

 

“백부님……!”

 

“잔소리 말고 함부로 나서지 마라. 세상에는 젊은 혈기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니라.”

 

공손천우는 고개를 들고 이를 악물었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참아야만 합니까? 백부님께선 언제까지 마음을 감추고만 계실 겁니까?”

 

공손무헌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천우에게 다가갔다.

 

“난들 어찌 네 마음을 모르겠느냐?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감정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상태니라. 나는 이 모든 게 우리 공손가의 업보라 생각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업보. 하늘이 우리 공손가에 벌을 주려는 게지.”

 

공손천우는 처음 듣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섰다.

 

“그게 무슨 말씀……?”

 

공손무헌은 처연한 표정을 지은 채 공손천우의 어깨를 짚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온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구나. 천우야, 이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 이 백부는 네가 잘해내리라고 믿는다.”

 

“예? 억!”

 

공손천우는 눈을 크게 뜬 채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공손무헌은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짚은 손을 내렸다.

 

“언젠가는 이 백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네가 묻고 싶었던 것에 대한 대답 역시.”

 

담담히 말을 맺은 그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데려가게.”

 

순간 오른쪽 벽이 문처럼 열리고 무표정한 얼굴을 한 중년인이 걸어 나왔다.

 

그는 별다른 말도 없이 공손천우의 몸을 어깨에 걸치고 공손무헌을 향해 목례를 취했다.

 

공손무헌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무표정한 중년인의 어깨에 걸쳐진 공손천우에게 말했다.

 

“네가 하도 엉뚱한 일을 잘 벌여서 이러는 것이니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그리고 한 가지 더, 이번 일은 아버님께서도 허락하신 일이니라.”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게 된 공손천우는 밀려드는 수많은 의문으로 머리가 쪼개질 것 같았다.

 

백부님의 말은 대체 무슨 뜻일까? 왜 갑자기 자신을 제압한 걸까?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

 

가만? 이렇게 사라지면 백초령은 어떡하지?

 

그때 벽 안으로 들어가는 그에게 공손무헌이 말했다.

 

“백초령에 대해선 걱정할 것 없다. 이 백부가 잘 보살펴줄 테니까.”

 

 

 

4

 

 

 

다음 날. 풍천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신예와 함께 불귀곡 탐방에 나서기로 했다.

 

그는 보다 자세한 대답을 듣기 위해서 신예의 손에 은자 한 냥을 쥐어주었다.

 

“나중에라도 백하에 나가게 되면 이걸로 예쁜 노리개도 사고 맛있는 것도 사먹고 해.”

 

신예는 처음 받아보는 은자에 얼굴이 활짝 펴졌다.

 

불귀곡 안에서만 살았다고 해서 은자가 뭔지 모를 정도로 꽉 막힌 것은 아니었다. 비연당의 선배들 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은자였으니까.

 

“정말 그냥 주는 거죠? 혹시 나중에 이상한 일 시키려고 주는 것 아니죠?”

 

그놈의 의심은.

 

‘아니, 어떤 나쁜 놈이 순진한 애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거야?’

 

풍천은 얼굴 없는 상대를 향해 욕을 퍼붓고 씩 웃었다.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안심해. 나와 함께 다니면서 이것저것 알려주려면 힘들 것 같아서 주는 거니까.”

 

“고마워요, 령주님. 그럼 아무 대가 없는 거라 믿고 받을 게요. 그런데 금은 없어요?”

 

 

 

풍천은 신예와 함께 불귀곡의 중앙을 가로지른 길을 걸었다.

 

그의 얼굴은 조금 굳어 있었는데 긴장되어서 그런 게 아니라 신예에게 두 돈짜리 금두를 빼앗긴(?) 것 때문에 기운이 빠진 것이었다.

 

물론 금두와 은자를 동시에 챙긴 신예는 마냥 즐겁기만 했다.

 

“령주님, 저기가 천궁전이에요. 대공께서 머무시는 곳이죠. 그리고 저곳은 제가 살았던 비연당이에요. 당주님은 어머니처럼 저를 잘 보살펴주셨는데…….”

 

신예는 손을 뻗어서 건물에 대해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그렇게 십여 채를 지날 때 신예가 말했다.

 

“저기가 이공께서 머무시는 천승전이에요. 말이 별로 없으신 분인데 마음이 좋으셔서 시비 언니들이 가장 좋아하는 어른 중 한분이세요. 그리고 저기는 천수전인데 원래 삼공께서 사시던 곳이에요. 지금은 돌아가셔서 그분의 아드님이신 천우 공자께서 머무시죠.”

 

풍천이 눈을 반짝이며 지나가듯이 물었다.

 

“천수전에 여자가 하나 들어왔다던데.”

 

“어머? 어떻게 아세요?”

 

“어, 감 향주가 말해주었어.”

 

“이상하네. 왜 다른 것은 알려주지 않고 그것만 알려주셨죠? 혹시 령주님이 그것만 물어본 것 아니에요?”

 

풍천은 좌우를 슬쩍 둘러보고 신예에게 나직이 말했다.

 

“남창에서 공손천우가 여자를 한 사람 납치했거든. 그래서 물어본 거야.”

 

“어마? 그게 정말이에요?”

 

“물론이지. 전임 단천무령주이신 상관 노형이 말씀하신 거니까.”

 

“천우 공자님, 그렇게 안 봤는데…….”

 

신예는 실망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들으니까 납치한 여자하고 혼인하기로 했다고 하던데, 사실이야?”

 

“예, 저도 그렇게 들었어요.”

 

“혼인을 언제 한다는 말은 못 들었어?”

 

“당장은 하지 않으려나 봐요. 혼인이 어디 며칠 사이에 뚝딱 해치울 수 있는 건가요?”

 

그건 그렇지.

 

풍천은 상황이 자신의 예상에서 빗나가지 않자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신예가 말했다.

 

“그래도 뭐 이미 일은 치렀을지 모르죠.”

 

일?

 

헉! 그건 절대 안 돼!

 

발끈한 풍천은 천수전을 노려보았다.

 

신예의 추측도 전혀 엉뚱한 것만은 아니었다. 어느 누구라도 그리 생각할 것이었다.

 

‘아냐! 초령이처럼 대가 센 여자가 쉽게 몸을 허락할 리 없어! 아암! 그럴 리가 없지!’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진정시킨 풍천은 신예에게 넌지시 말했다.

 

“신예야,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천우 공자가 그 여자랑 어떤 사이인지 자세히 알아볼 수 있겠어?”

 

“왜 그걸 궁금해하세요?”

 

“어? 아, 그거? 그냥 납치당한 여자와 납치한 남자가 혼인한다고 하니 궁금해서 그래. 그런 관계면서 정말 사이가 좋다면 이상한 일이잖아.”

 

“어지간하면 신경 쓰지 마세요. 천우 공자님은 성격이 괴팍해서 잘못하면 큰일 나요.”

 

자신도 그러고 싶었다. 그럴 수 없어서 문제지. 빌어먹을!

 

“왜, 자신 없어? 하긴 너처럼 어린아이에게 그런 일을 부탁하는 나도 그렇지.”

 

풍천은 슬쩍 신예의 자존심을 건드려봤다. 어려도 여자였다. 여자는 자존심이 상하는 걸 싫어하지 않던가.

 

아니나 다를까, 신예가 머뭇거리며 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알아보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잘못하면 혼날지 모르는데…….”

 

풍천은 내심 흐뭇해하며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누가 우리 신예를 혼내? 말만 해, 내가 다 막아줄 테니까.”

 

“정말요?”

 

“그러어어엄.”

 

“그럼 제가 알아볼게요. 천수전의 시비인 홍련 언니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고맙다. 역시 주인의 마음은 시비가 알아주는구나.”

 

“그런데 홍련 언니에게 뭘 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뭘?”

 

“은자든, 금자든요. 홍련 언니는 선물 받는 걸 좋아하거든요.”

 

“어, 얼마나?”

 

신예가 커다란 눈을 깜박이고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한테 준 것만큼만 줘보세요. 그럼 더 확실한 것을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언뜻 봤지만 가죽주머니가 아주 두툼했었다. 그 정도는 령주님께 부담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풍천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여우를 토끼로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그냥 윽박질러서 명령을 내리는 게 나으려나?

 

하지만 그는 신예처럼 연약한 여자아이를 윽박지를 정도로 마음이 강하지 못했다. 차라리 백초령처럼 강한 여자라면 함께 눈을 부라릴 수 있지만.

 

이리저리 머리를 굴린 그는 결국 절충해서 돈을 깎기로 했다.

 

“너무 많은 거 아닐까? 너라면 몰라도 다른 시비에게 그렇게 많은 돈을 주긴 싫은데. 은자만 주자.”

 

신예는 밝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그 언니에게 은자만 주고 금두는 제가 가질게요. 그럼 되죠?”

 

“응? 어, 뭐 그거야…….”

 

 

 

5

 

 

 

‘저 사람은 뭐지?’

 

백초령은 창문을 통해서 보이는 두 사람을 보고 아미를 찌푸렸다.

 

시비로 보이는 소녀와 청년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었다. 소리가 들리지는 않지만 소녀가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 나누는 걸 보니 사이가 아주 좋은 것 같았다.

 

‘누군지 몰라도 꼭 풍천처럼 걷네.’

 

얼굴만 다를 뿐 키와 몸집도 비슷했다. 아마 뒷모습만 봤다면 풍천인 줄 착각하고 소리쳐 불렀을지도 몰랐다.

 

‘하아아, 여기에 풍천이 있을 리가 없지.’

 

풍천처럼 걷는 청년을 보니 그녀는 풍천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창문을 닫고 몸을 돌린 그녀는 탁자 위에 있는 차를 따라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방 안을 둘러보며 공손천우에 대한 원망만 늘어놓았다.

 

“제기랄, 내가 언제까지 여기 갇혀 있어야 하는 거야? 이 인간은 어딜 가서 안 오는 거지? 대체 언제 나를 밖으로 보내주려는 거야?”

 

기회를 틈타 도망가고 싶어도 전각에서 이십 장 이상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공손천우가 무슨 명령을 내려놨는지 경비 무사들이 보내주지 않는 것이다.

 

‘나쁜 새끼! 납치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나를 여기에 감금해? 두고 보자! 나중에 아버지를 만나면 모두 일러버릴 거야!’

 

그런데 신검문이 이들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녀가 본 천외천은 상상도 못 했던 세상이었다. 천하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어지지 않았다.

 

결론은, 신검문의 힘으로는 이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쳇, 풍천이 있으면 혼내줄 수 있을지 모르는데…….’

 

그때 누군가가 방문을 두들기며 말했다.

 

“아가씨,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자신을 시중드는 시비 홍련의 목소리였다.

 

“들어와.”

 

이제 십칠팔 세가량 되어 보이는 소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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