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1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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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8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137화
137화
“응? 어, 그건 아니고…….”
풍천은 오락가락하는 신예의 반응에 말문이 막혔다.
예쁘다고 하면 수상하게 보고,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삐지고.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여자는 애나 어른이나 다들 이상해. 초령이 고것도 변덕이 죽 끓듯 하더니…….’
말하기가 어색해진 그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냥 네 나이가 아직은 어리다는 거지 뭐. 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나머지는 다음에 이야기하자. 그만 가서 쉬어.”
그때 신예가 일어서며 물었다. 이야기를 오래 나누며 긴장이 풀렸는지 조금도 거침이 없었다.
“저, 령주님은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그게 왜 궁금한데?
풍천은 의아한 표정으로 신예를 바라보며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서 대답했다.
“나? 어…… 스물여섯.”
“고생 많이 하셨나 보네요. 저는 스물여덟이나 아홉쯤 될 거라 생각했는데. 그럼 나가볼게요.”
‘그래, 나 고생 많이 했다. 자식이 별걸 다 걱정해주네.’
풍천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가는 신예를 바라보며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보통 아이는 아닌 것 같았다.
‘저러다 오빠라고 부르는 거 아냐?’
정들면 안 되는데…….
제5장. 여우와 토끼의 차이는?
1
풍천은 신예와 함께 선요당(仙料堂)으로 내려가서 점심을 해결했다. 하지만 저녁 식사는 직접 내려가서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 사이 풍천의 성격을 반쯤 꿰뚫어 본 신예가 식사시간이 되자 말했다.
“내려가는 게 귀찮으시면 여기 계세요. 제가 가져올게요.”
그녀가 부지런해서, 령주를 모시려는 마음이 갸륵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풍천과 함께 앉아 있는 자신을 불쌍하다는 듯 바라보는 게 싫었다. 마치 험악한 일이라도 당한 것처럼 여기는 듯했다.
그런 눈빛을 받으며 식사를 하느니 조금 귀찮더라도 자신이 식사를 배달하는 게 나았다.
신예의 마음도 모른 채, 풍천은 흐뭇한 마음으로 식사를 마치고 신예가 끓여준 차로 입을 헹궜다. 그리고 빈 그릇을 챙겨 나가는 신예에게 말했다.
“다음부터는 양을 조금 더 가져와라.”
“적어요?”
“내가 원래 뭘 많이 안 먹는 사람인데 입맛에 딱 맞으니까 조금 더 먹고 싶어서 그래.”
“더 먹고 싶다고 해서 적정량 이상 먹으면 살찌는데…….”
“나는 살찌는 체질이 아니어서 괜찮아.”
“알았어요. 그럼 다음에는 조금 더 가져올게요.”
많이 가져와도 괜찮아.
풍천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신예가 먹보로 생각할까 봐 참았다.
‘시비가 있으니 역시 편하군. 천풍장으로 돌아가면 시비를 하나 둬야겠어.’
이제 가난했던 지난날의 자신이 아니었다. 품속의 돈주머니에는 금자가 가득 차 있고 앞으로도 돈 들어올 건수가 몇 건이나 남아 있었다.
백초령을 데려다 주면 선가장에서 황금 오십 냥을 줄 것이고, 이공을 구해주는 대가로 황금 이백 냥을 받게 되면…….
‘흐흐흐흐, 금산의 유지가 되는데 까짓 거 시비 하나 두는 게 문제겠어?’
풍천은 신예가 나가자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침상에 몸을 반쯤 눕혔다. 팔베개를 한 채 눈을 감은 그는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지금은 사람들의 관심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어서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걸어가기만 해도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는 판이었다. 하물며 밤에 움직이다 들키면 자신이 불귀곡에 들어온 의도를 의심할지 몰랐다.
‘초령아, 조금만 더 기다려라.’
2
온 세상이 고요한 어둠에 잠긴 시각.
스스스스.
바람결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방문 밖에서 나는가 싶더니 희끗한 그림자가 풍천의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림자는 모두 셋. 그들 중 가운데 서 있던 자가 좌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좌우의 두 사람은 나직한 코골음이 울리는 침상을 향해 접근했다. 빠르게 걸어가는데도 발자국 소리는커녕 옷자락 흩날리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가운데 서 있던 자는 두 사람이 다가가는 것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상관 령주가 저런 자를 차기 령주로 임명할 리가 없어. 천주께 죄를 짓는 한이 있어도 확실한 것을 밝혀내고야 말겠다.’
각오를 다진 그는 두 사람에게 전음을 보냈다.
[하찮게 보인다 해서 방심하지는 말게.]
상대는 새로이 단천무령주가 된 자, 천주의 허락을 득한 자다. 그만한 실력이 있다는 말. 찰나의 방심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상대가 반항할 때를 생각해서 두 손에 공력을 집중하고는 한 걸음 뒤처진 채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때 침상 앞에선 두 사람 중 하나가 풍천의 마혈을 짚기 위해 손을 뻗었다.
옆에 있던 자는 동료의 손가락이 다가가는데도 풍천이 꿈쩍을 않자 긴장이 풀리는지 참았던 숨을 가늘게 내쉬었다.
그런데 손가락이 풍천의 어깨를 짚었다 싶은 순간 침상 위의 풍천이 안개처럼 흩어지며 사라져버렸다.
“엇?”
“헉!”
당황한 두 사람은 반사적인 몸놀림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순간 짜증 가득한 목소리가 허공에서 울렸다.
“아 정말, 짜증 나는 첫날밤이네.”
뒤이어 어둠 속에서 튀어나오는 커다란 손바닥 하나.
두 사람은 재빨리 몸을 틀며 감각적으로 손을 휘둘렀다. 절정고수답게 빠르고 강력한 반격이었다.
하지만 기다렸다가 작정하고 펼친 천라신수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어둠은 풍천의 세상, 두 사람은 풍천의 모습조차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천라신수로 단숨에 상대의 방어막을 무너뜨린 풍천은 당황한 두 사람의 몸을 두들겼다.
퍼벅!
“흡!”
“컥!”
천라신수에 어깨와 등을 두들겨 맞은 두 사람은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뒤로 튕겨졌다.
그때였다. 뒤로 처져 있던 자는 튕겨 나가는 두 사람 사이에서 희미한 그림자가 일렁이자 그곳을 향해 쌍장을 뻗었다.
후우웅!
바위도 뭉개버릴 강력한 장력이 다섯 자 이내의 공간을 짓이겼다.
하지만 풍천의 움직임은 유령 그 자체였다.
상대의 장력이 밀려들 때 그는 이미 상대의 옆으로 돌아가서 옆구리를 천라신수로 후려쳤다.
퍽!
“크억!”
검을 든 자는 억눌린 신음을 터트리며 허리를 굽히고 꼬꾸라졌다.
단순히 옆구리를 한 대 맞았을 뿐인데 강렬한 충격이 온몸을 강타했다.
몸이 북처럼 울리고 숨은 아예 쉴 수도 없고…….
입을 쩍 벌린 그는 온몸의 뼈가 분해되는 고통에 손, 발가락까지 덜덜 떨었다.
‘끄으으으, 어떻게 이런 장력이…….’
풍천은 떨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눈을 부라렸다.
“개도 잠잘 때는 안 건드린다는데…….”
응? 맞나? 밥 먹을 때던가?
‘에이, 그게 그거지 뭐.’
“좌우간! 왜 사람 잠도 못 자게 밤중에 찾아와서 난리요?”
그때였다. 다용도실 건너편 방에서 자던 신예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물었다.
“령주님, 무슨 일 있어요?”
“아냐, 별일 아니니까 너는 더 자.”
풍천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고는 삼매진화로 등잔에 불을 붙였다.
바닥에 널브러졌던 자들이 비틀거리며 억지로 일어나고 있었다.
삼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자가 둘, 사십 대 초반이 하나. 생각보다 쉽게 제압하긴 했지만 약한 자들은 아니었다.
적의 침입을 미리 알고 환신술을 펼쳐서 세 사람의 눈을 속였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고 정면으로 싸웠다면 싸움이 길어졌을 것이었다. 방도 많이 부서졌을 것이고.
‘지미, 여기는 지나가는 개 새끼도 절정고수 아닌지 몰라.’
풍천은 세 사람을 쓱 돌아보고는 턱을 쳐들었다.
이곳은 천외천. 당연히 외부사람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대공이 보낸 사람일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보낸 걸까?
들어올 때 살기가 없었던 것으로 봐서 죽이려는 것보다는 다른 목적이 있는 자들 같았다. 아마 살기가 느껴졌다면 저들은 지금쯤 염라대왕 앞에서 이름을 읊조리고 있을 것이었다.
“양처럼 순한 사람 만난 걸 다행으로 아쇼. 도둑놈처럼 밤에 몰래 들어와서 자신을 해치려는 놈들을 누가 한 대만 때리고 만단 말입니까? 안 그래요? 그걸 생각하면 여러분은 복 받은 거요.”
세 사람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술만 씹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천주가 인정한 만큼 어느 정도 실력이 있을 거라는 건 짐작했지만 설마하니 자신들 셋이 한순간에 당할 정도라니.
아무리 느닷없는 반격에 당황했다 해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때 풍천이 목에 힘을 주어 물었다.
“누가 보내서 왔수? 솔직히 말해보쇼.”
이를 악물고 있던 사십 대 초반의 중년인이 잇새로 목소리를 씹어뱉었다.
“나는 은천단의 고복수요. 상관 령주께서 계실 때 단천무령이었소.”
풍천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부상당해서 상관 노형과 함께 움직이지 못하고 천외천에 남았다는 자들인가 보군.’
그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지닌 풍천이었다. 아니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원수처럼 생각하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사정이야 어떻든 이제 수하가 아닌가.
기분이 묘해진 풍천은 태연하게 자리를 권했다.
“일단 앉으쇼.”
세 사람은 앉지 않고 풍천을 응시했다.
풍천도 더 권하지 않고 고복수의 옆을 바라보았다.
키가 작고 날 세운 칼날처럼 눈썹이 날카롭게 뻗은 자가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비응대(飛鷹隊)의 응초요.”
이마에 커다란 점이 박힌 장한도 눈을 잘게 떨며 자신을 밝혔다.
“도룡단(屠龍團)의 사공수라 하오.”
풍천은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대고 느긋한 태도로 물었다.
“그래,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거요?”
나이가 가장 많은 고복수가 대표로 말했다.
“상관 령주께선 어떻게 되셨소? 만약 돌아가셨다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고 싶소.”
풍천은 고복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채 대답했다.
“귀하가 생각한 대로 상관 노형은 돌아가셨수. 이곳으로 돌아오다가 암습자들에게 당했거든요.”
“암습자? 어떤 자들인지 아시오?”
“암습자가 어디 ‘나 이런 사람이오.’ 하면서 암습합니까?”
풍천은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아직 세 사람을 확실하게 모르는 한 사실을 밝힐 순 없었다.
고복사 등은 풍천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풍천은 눈썹 한 올 흔들리지 않고 그들에게 되물었다.
“근데 천외천에 남아 있는 단천무령은 셋뿐이오?”
“그렇소. 나머지는 강호에 있소이다.”
“그래요? 아, 상관 노형에게 들으니까 예씨를 지닌 사람도 있다던데 혹시 아는 사람 있어요?”
사공수가 대답했다.
“칠환검 예지명 형 말이오?”
“맞아요, 그 사람. 상관 노형 말로는 그 사람이 괜찮다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쇼? 계속 단천무령으로 기용해도 좋겠수?”
“실력도 좋지만 그보다 마음 씀씀이가 더 괜찮은 사람이오. 강호에서 그만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을 거요.”
그런 사람이 왜 유령총에서 함부로 사람을 죽여?
풍천은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도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 물었다.
“그분은 어디에 살죠?”
“부양(阜陽) 칠성산 중턱의 칠성장에 살고 있다 들었소.”
“아, 예…… 그럼 쟁천도 조광이란 분은……?”
“조 형은 이전 임무가 끝난 후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강호를 돌아다니고 싶다 했소. 아마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오.”
“그렇군요.”
그때였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풍천의 머릿속에서 진호량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혹시 진호량이라는 분의 아들이 어디 사는지 아쇼? 전해줄 말이 있는데.”
“청군이 말이오? 그 아이는 무련곡의 수련방에서 폐관수련 중이오. 아마 밖으로 나오려면 서너 달은 더 있어야 할 거요.”
“가서 만나 볼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폐관수련할 때는 아무도 못 만나게 하외다.”
못 만나게 한다?
‘만날 수 없는 것은 아니군.’
그렇다면 그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하면 될 것이고…….
풍천은 그쯤에서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뭐 이건 그냥 한번 물어보는 건데…… 여러분은 대공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