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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32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5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32화

 

132화

 

 

 

 

 

 

강매설은 이마를 찡그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결론을 내린 듯 담담히 말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밤을 보내고 내일 아침 출발할까 해요.”

 

풍천은 어깨를 으쓱하며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

 

“하긴 나와 당신들은 상황이 다르니까. 좋습니다. 그럼 우리 먼저 출발하죠.”

 

그때 해동산이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놈들이 또 공격하면 어떡하지? 차라리 이곳에서 이들과 함께 하루 지내고 내일 아침에 떠나는 게 낫지 않겠나?”

 

“걱정 마쇼. 만약 놈들이 우리를 또 공격한다면 결국 자신들이 호 대협을 죽였다는 걸 자인하는 꼴이 되는 거죠. 안 그렇습니까, 공손 공자?”

 

갑작스런 질문에 공손선우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호은명의 죽음에 얽힌 사연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맞는 말이오.”

 

풍천은 공손선우를 향해 씩 웃어주고는 포권을 취했다.

 

“그럼 다음에 봅시다.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죠.”

 

‘오냐, 이놈. 나도 그러길 바란다!’

 

공손선우도 풍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포권을 취했다.

 

“잘 가시오.”

 

 

 

 

 

제3장. 기왕이면 령주가 낫겠지!

 

 

 

 

 

1

 

 

 

북동쪽으로 오십 리가량을 빠르게 달려간 풍천과 해동산은 제법 높은 고개를 넘어가서 걸음을 멈췄다.

 

외길이었던 길이 그곳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해 형, 날이 샐 때까지 이쪽 길로 쉬지 말고 달리쇼.”

 

“자넨?”

 

“전 아직 볼일이 남아 있습니다.”

 

“천의맹에서 나를 잡으려고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놈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서 가야죠.”

 

풍천은 친형을 염려하듯 다정하게 말하며 해동산을 안심시켰다. 그러자 해동산이 넌지시 한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저기, 인피면구라도 사서 쓰면 좀 더 나을 것 같은데. 돈이 없다면 별수 없고…….”

 

풍천은 해동산을 빤히 바라보았다.

 

간절한 눈빛. 안 사줄 거면 네 것이라도 떼어달라는 표정이다.

 

풍천은 웃는 얼굴로 품속에 손을 넣었지만 속이 쓰렸다.

 

‘후우, 괜히 일을 시켰어.’

 

해동산이 벼룩의 간을 빼 먹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면 절대! 천풍장에 보내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어쩌랴! 이미 밥은 목구멍으로 넘어가서 거름이 되었는데.

 

풍천은 머뭇거리는 손길로 은자 열 냥을 꺼내서 해동산에게 내밀었다.

 

“이 돈이면 천풍장 다섯 달 치 생활비요. 알아서 아껴 쓰시고 도착하면 인피면구를 장 노인 갖다 주쇼. 그럼 장 노인이 제값 받고 팔아서 생활비로 쓸 거요.”

 

“알겠네.”

 

은자 열 냥을 꼭 거머쥔 해동산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는 천의맹이나 천외처럼 무시무시한 세력 사이에 끼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리고 장 노인의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남창으로 돌아갈 거네. 미안하네, 잠풍. 내 마음을 이해해주게나.’

 

 

 

2

 

 

 

금천문이 하룻밤 만에 무너졌다는 충격적인 소식은 일파만파로 퍼져서 안휘성과 강소성을 뒤흔들었다.

 

신검문에 그 소식이 전해진 것은 금천문이 무너진 지 이틀이 지난 후였다. 금천문의 멸망 소식을 접한 회남의 적련방이 구룡회의 나머지 일곱 세력에 긴급 전서구를 띄운 것이다.

 

백무천은 전서를 받아 들고 태사의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금천문이 신마성에게 무너져?”

 

백유현은 그러한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돌덩이처럼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룻밤을 견디지 못했다 합니다, 형님!”

 

백무천의 두 눈에서 신광이 쏟아졌다.

 

신마성이 구룡회를 공격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이렇게 전격적으로 공격할 줄은 예상을 못 한 터였다.

 

“놈들의 전력은?”

 

“혁련후가 총지휘를 하고 일천의 정예 무사들이 움직였다 합니다.”

 

“천혈궁은?”

 

“끼어들지 않은 것 같습니다.”

 

“놈들이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거라고 보느냐?”

 

“구룡회의 아홉 세력 중 두어 곳을 단숨에 무너뜨리면 그만큼 유리할 거라는 계산이겠지요.”

 

단순하지만 확실한 이유다. 하기에 백무천은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설마…… 혁련궁이 천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알고 있다면 무리를 하면서까지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신마성이 전력을 다 기울인다 해도 상대할 수 없는 곳이 천외가 아닌가 말이다.

 

“금천문이 놈들 손에 넘어갔다면 동부의 세 곳은 당장 움직이기가 힘들겠군.”

 

“놈들도 그걸 노린 것 같습니다. 비룡방과 만경방과 삼도맹이 움직이지 못하면 다섯 세력이 신마성을 상대해야 한다는 말인데, 솔직히 말씀드려서 다섯 세력의 힘만으로는 신마성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뿐이 아니었다. 금천문이 무너진 지 이틀이 지났다. 다른 곳도 무사하다는 보장이 없었다.

 

“으으음…….”

 

백무천의 잇새로 침음이 흘러나왔다.

 

백유현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아홉 세력이 힘을 합해도 신마성에 밀리는 판이었다. 하물며 다섯 곳만으로 신마성과 싸운다는 것은 목검을 들고 진검 든 자와 싸우는 격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신마성이 모든 전력을 동원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점이었다.

 

‘혁련후와 일천 무사라면 절반 정도의 무력이 동원되었다는 말. 그럼 아직 절망할 단계는 아니다.’

 

백무천은 이를 지그시 악물고 백유현을 직시했다.

 

“비상을 걸고 모든 무사들을 모아라. 그리고 즉시 대회의를 소집해.”

 

“예, 형님.”

 

“분명히 말하지만 어느 누구든 명을 거역하는 자는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 점을 모두에게 알려라. 예외는…… 단 한 사람도 없다.”

 

반쯤 숙여졌던 백유현의 고개가 살짝 들렸다.

 

“예외가 없다 하심은……?”

 

백무천의 눈에서 흘러나오던 신광이 더욱 강해졌다.

 

“말 그대로다. 설령…… 사부님이 살아서 돌아오셨다 해도 문주인 내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백유현의 고개가 더욱 깊숙이 숙여졌다.

 

“알겠습니다.”

 

순간적으로 그의 눈빛이 깊게 침잠되었다. 하지만 그는 곧 평상시의 모습으로 고개를 들고 몸을 돌렸다.

 

백무천은 그의 등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우형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일만큼은 내 뜻대로 행할 것이다. 다시는, 다시는 전과 같은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야.’

 

 

 

3

 

 

 

백무천의 우려는 단순 우려로 끝나지 않았다.

 

신마성이 금천문을 무너뜨린 후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 시간을 보낼 거라 모두가 생각할 때 혁련후는 정예 팔백을 이끌고 삼도맹이 있는 무석까지 이동한 것이다.

 

삼도맹주 전만위는 금천문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몸이 굳었다가 신마성이 몰려온다는 소식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놀랐다.

 

“뭐야? 놈들이 이곳으로 온다고?”

 

“그렇사옵니다, 맹주! 이미 지척에 도착했다 하옵니다!”

 

“이 미친놈들이……! 뭐하느냐? 나가서 무사들을 모두 모아라!”

 

하지만 삼도맹의 무사들이 모두 집결하기도 전에 신마성의 정예들이 담장을 넘었다.

 

신마성의 움직임은 가히 폭풍이었다.

 

더구나 신마성 정예의 무력은 일반 사람들이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했다.

 

폭풍에 휩쓸린 삼도맹의 거대한 장원은 이 각 만에 시신으로 뒤덮이고, 수로에서 흘러나온 피가 태호를 붉게 물들였다.

 

 

 

4

 

 

 

해동산과 헤어진 풍천은 별과 달을 보며 방향을 잡고 웅이산의 드넓은 품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천의맹 사람들을 데려온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한 상태였다. 그들에게 천외에 대한 경각심을 주었고 의심을 품게 했으며, 천외천의 감시가 그들에게 집중되도록 하지 않았는가.

 

이제 불귀곡을 찾아가 백초령을 구하는 일만 남았다.

 

그녀를 구해서 최대한 빨리 신검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쯤 신마성이 움직였을 테니까.

 

물론 그들이 당장 하남으로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남으로 곧장 밀고 들어오면 천의맹이 움직일 터. 구룡회와 천의맹을 동시에 상대한다는 것은 신마성이 아무리 강해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늙은 너구리는 구룡회의 몇 군데를 무너뜨려서 대항할 힘을 약화시킨 후 본격적으로 안휘와 하남을 잠식해 들어갈 거야.’

 

그 선두에 천혈궁이 설 것은 분명한 사실. 놈들이 신검문을 치기 전에 복귀해야 형의 복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전에 형의 죽음에 얽힌 내막을 알아봐야 하는데…….’

 

그래야 자신 혼자 놔두고 먼저 저 세상으로 도망친 바보 같은 형의 마음이 편해질 테니까.

 

 

 

새벽 어스름이 밀려들 무렵, 암봉을 하나 넘어가자 거산준봉 사이로 자욱한 안개가 끼어 있는 계곡이 저 멀리 나타났다.

 

사람의 발길을 거부하는 험준한 산세로 둘러싸인 계곡.

 

그곳을 본 순간 풍천의 본능이 외쳤다.

 

―불귀곡이다!

 

소문만 무성하고 전설을 겹겹이 두른 채 천 년간 모습을 감춘 불귀곡이 마침내 눈앞에 있다.

 

풍천은 숨을 가다듬고 그때부터 조심스럽게 계곡으로 접근했다.

 

가까운 것처럼 보이지만 거리가 이십 리나 되었다. 나무와 바위를 적절히 이용하며 산 중턱을 가로지른 풍천은 날이 환하게 밝아올 즈음 계곡의 입구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우거진 소나무 위에 올라간 풍천은 숨을 가다듬고 계곡 안쪽을 살펴보았다.

 

얼핏 보면 평범한 계곡처럼 보였다. 깊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계곡 사이로 마차 한 대가 지날 수 있을 만큼 제법 넓은 길이 뻗어 있었다. 풍천이 아니면 알아보지도 못할 만큼 수풀로 교묘하게 감춰진 길이.

 

깊지도 않은 계곡에 마차가 드나들 일이 뭐 있을까?

 

더구나 계곡 안쪽 깊숙한 곳은 희미한 안개로 뒤덮여서 풍천의 매보다 더 밝은 눈으로도 안쪽의 광경을 볼 수가 없었다.

 

‘절대 자연적인 안개는 아니다. 세상에 일 년 사시사철 안개 끼는 곳이 어디 있어?’

 

풍천은 나무 위에서 운기를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정면으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밤까지 기다려서 어둠을 틈타 들어갈 것인가.

 

일 각이 넘어가자 동쪽에서 태양이 떠올랐다.

 

몸을 일으킨 풍천은 나무에서 내려와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밤이든 낮이든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다면 불귀곡의 비밀이 천 년이나 이어지지 않았겠지. 좋아,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그는 정면 돌파를 시도하기로 했다. 마침 그에게는 명분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인피면구에 대해선 많은 생각을 해봤지만 결국 벗지 않기로 했다. 혹시라도 백초령이 멀리서 알아보고 아는 체라도 하면 일이 요상하게 흐를지 모르니까.

 

‘누가 알아채면 대충 둘러대지 뭐.’

 

인피면구 하나 썼다고 죄 될 것은 없잖아?

 

의심이야 하겠지만, 그거야 어차피 쓰나 안 쓰나 마찬가지고.

 

‘죽이려는 놈들이 있어서 썼다고 하면 될 거야.’

 

그럼 지들이 어쩌겠어?

 

 

 

어깨를 편 풍천은 길을 따라서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안개가 워낙 짙어서 일 장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더구나 무성하게 자란 풀이 발목을 덮고 무릎까지 올라와서 발밑도 조심해야 했다.

 

그렇게 백여 장을 들어갔을 때, 풀 밑으로 마차가 지나간 자국이 희미하게 보였다.

 

‘며칠 되지 않은 자국이다. 천외천 사람들이 평소 마차를 타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고…… 혹시 백초령을 마차에 태워서 데려온 건가?’

 

풍천은 냉소를 지었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 마차를 이용했다면 백초령의 행방이 알려지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된다.

 

어쨌든 백초령이 천외천에 있을 확률이 높아진 상황. 힘이 난 그는 짙은 안개 속을 걸어가며 모든 감각을 극대화시켰다.

 

그의 걸음이 멈춘 것은 일 각가량이 지난 후였다.

 

우뚝 멈춰선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 각가량 걸었는데도 주위 상황에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안개가 낀 지역이 넓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단순히 그런 것만은 아닌 듯했다.

 

‘기문진이 만든 안갠가? 그럼 곤란한데…….’

 

그때였다.

 

풍천은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일 각 전에 봤던 마차 바퀴 흔적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제길, 다람쥐 쳇바퀴 돌듯 뱅뱅 돌았나 보군.’

 

고개를 든 그는 품속에서 진호량이 남긴 가죽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철패들을 꺼내 손에 쥐고 주머니만 다시 품속에 넣었다.

 

휙!

 

‘삼(三)’자가 써진 철패가 날아가 일 장 옆에 서 있는 나무에 깊숙이 꽂혔다.

 

풍천은 양손에 철패를 나누어 쥐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스무 걸음을 걸을 때마다 철패가 하나씩 나무에 꽂혔다.

 

그가 열 개째 철패를 나무에 꽂고 열한 번째 철패를 쥐었을 때 처음에 던졌던 삼자가 써진 철패가 보였다.

 

풍천은 철패를 나무에서 빼내며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이 철패가 어떤 것인지 모르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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