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1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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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3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131화
131화
‘저놈이!’
마음이 다급해진 나기응은 더 이상 숨어 있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
“놈을 죽여라!”
그의 말이 떨어진 순간 좌우에 서 있던 두 사람이 빨랫줄처럼 날아갔다.
하지만 그들의 가공하리만치 빠른 신법으로도 풍천을 잡지 못했다. 커다란 바위를 뛰어넘은 풍천의 모습이 어느 순간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향주님, 놈이 사라졌습니다.”
수하의 굳은 목소리에 나기응의 표정도 개울가의 바윗돌처럼 굳어졌다.
“뭐야?”
집채만큼 커다란 바위는 개울가 한가운데 있었다. 주위에는 몸을 숨길 곳도 거의 없고, 숲과의 거리는 십오륙 장 이상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어디로 갔단 말인가?
급히 커다란 바위 근처로 간 나기응은 정말로 풍천이 사라졌다는 걸 알고 이를 갈았다.
네 사람의 공세를 피할 때 놈의 신법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아봤어야 하거늘. 잠깐 방심한 것이 실수였다.
“이 날다람쥐 같은 놈이……! 모두 근처를 샅샅이 뒤져라!”
풍천은 집채만 한 바위를 뛰어넘은 즉시 천풍무영류와 환신술을 함께 펼쳐서 종적을 바람에 감추고 곧장 숲까지 날아갔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숨어 있던 놈들이 튀어나오는 게 보였다. 모두 셋이었는데 그들이 처음부터 자신을 합공했다면 지금처럼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 같았다.
‘경험이 없는 놈들이군. 호랑이도 토끼를 잡을 때 최선을 다하는 법인데 말이야.’
바로 그때 마을 쪽에서 몇 사람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천의맹의 무사들이었는데 숫자가 여섯이나 되는 걸 보니 방 안에 있던 자들도 모두 나온 듯했다. 거기에 공손선우도 있었고.
‘나왔군!’
풍천은 쾌재의 미소를 지은 채 다시 개울가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객잔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본 나기응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이런, 빌어먹을!’
천의맹 무사들에게 잡히면 일이 복잡하게 흐를지 모르는 일. 그는 천의맹 무사들이 도착하기 전에 그곳을 벗어나려 했다.
그런데 그가 명령을 내리기 직전, 풍천이 검을 빼 들고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이놈들! 어딜 가려고!”
느닷없는 풍천의 역습에 앞이 막힌 자들은 후퇴하지도 못한 채 풍천을 공격했다.
어차피 후퇴할 수 없다면 대공자의 명대로 대풍이라는 놈을 죽이기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풍천은 조금 전과 달리 강력하게 저항하며 그들의 공격을 막았다.
‘교활한 놈! 실력을 숨기고 있었군!’
사기당한 기분에 분노가 솟구친 나기응은 풍천을 향해서 신형을 날렸다.
그러나 풍천은 다른 자들 사이를 누비며 교묘하게 나기응의 공세를 벗어났다.
그 사이 황보안과 강매설 등이 십여 장 거리까지 다가왔다.
나기응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이를 갈듯이 명을 내렸다.
“모두 후퇴해!”
풍천은 그들이 무사히 도주하도록 놔둘 마음이 없었다.
도주해도 천의맹 무사들과 한바탕 드잡이를 벌인 다음의 일이었다. 그래야 천의맹 무사들이 천외에 대해서 믿을 테니까.
“어림없다! 공격할 땐 언제고 도망가겠다는 거냐? 비겁한 천외 놈들!”
풍천을 공격했던 자들 중 세 사람이 풍천에게 가로막혔다.
풍천은 황보안과 강매설 등이 도착하자 뒤로 빠지며 소리쳤다.
“이 사람들은 당신들이 상대하시오! 나는 저놈들을 쫓을 테니까!”
황보안과 강매설, 송구가 각기 한 사람씩 맡았다.
그리고 대주와 명진이 도주로를 차단하고, 공손선우는 속으로 이를 갈면서 금방이라도 도와줄 것처럼 소리쳤다.
“조심하시오, 보통 놈들이 아닌 것 같소!”
풍천은 속으로 코웃음 치면서도 공손선우를 부추겼다.
“공손 공자, 놈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잘 막아주시오!”
그러고는 도주하는 자들을 쫓아서 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는 숲 속으로 십여 장 들어간 뒤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서 개울가의 싸움을 구경했다.
‘공손선우, 이제 어떻게 할 거냐?’
황보안은 일대일로 싸우면서도 자신이 밀리자 이를 악물었다.
황보세가의 아들이며 비룡당의 오향주 중 하나인 자신이 일개 수하에게 밀리다니!
자존심이 상한 그는 세가의 비전무공인 패황권을 펼쳐 상대의 공세를 막았다.
하지만 초수가 흐를수록 형세는 점점 더 불리하게 흘렀다.
황보안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송구는 이미 두어 군데 부상을 입은 상태였고, 그나마 강매설이 상대의 공세를 철저히 차단하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유리한 것도 아니었다.
상황이 어렵게 흐르자 대주가 황보안을 돕기 위해 뛰어들었다.
“아미타불. 황보 공자, 빈승과 함께 그자를 잡도록 합시다.”
명진도 검을 빼 들고, 송구를 몰아붙이는 자를 향해 매화칠검을 펼쳤다.
“송구 도우, 빈도가 도와주겠소이다!”
소림과 화산의 촉망받는 두 사람이 끼어들자 접전은 막상막하의 상황으로 치달렸다.
공손선우가 나선 것은 그들의 싸움이 이십 초를 넘어갈 무렵이었다.
그는 제일 먼저 강매설과 접전을 벌이고 있는 자를 향해 손을 썼다.
쾅!
번개처럼 내뻗은 일장에 강매설의 공격을 막던 자가 이 장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강 소저, 괜찮소?”
“저는 괜찮아요. 고마워요, 공손 공자.”
“별말씀을. 일단 나머지 둘도 처리한 다음에 이야기합시다.”
그 사이 이 장 밖으로 나가떨어진 자는 몸을 굴리며 공격권에서 멀어졌다.
강매설과 공손선우는 그를 쫓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도왔다.
먼저 공손선우가 황보안과 대주의 협공을 받던 장한에게 노성을 내지르며 쌍장을 휘둘렀다.
“감히 백하에서 강도짓을 하려 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놈들이구나!”
공손선우의 강맹한 장력은 장한을 멀찌감치 날려버렸다.
바로 그때 송구와 명진의 협공을 받던 자가 강매설마저 달려들자 견디지 못하고 공손선우가 있는 쪽으로 밀려났다.
공손선우는 차갑게 굳어진 표정으로 그를 향해 두 손을 휘둘렀다.
이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마의 무사는 눈빛을 파르르 떨며 공손선우의 공세에 정면으로 부딪쳐왔다.
공손선우의 눈빛도 찰나 간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일말의 인정도 두지 않고 마의 무사의 훤히 드러난 가슴을 향해 좌수를 뻗었다.
그의 좌수에서 은은한 백광이 번뜩인 순간!
퍽!
가슴을 정통으로 가격당한 마의 무사는 뒤로 튕겨져서 떼굴떼굴 굴렀다. 그리고 부들거리며 몸을 떨면서 선혈을 한 움큼 쏟아내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공손선우는 절명한 그를 놔두고 천의맹 무사들을 돌아다보았다.
다른 두 명의 마의 무사들은 이미 어둠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괜찮습니까?”
황보안과 강매설 등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고마움을 표했다.
“우리는 괜찮습니다.”
“정말 무서운 자들이군요. 일개 하수인이 이토록 강하다니…….”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어요. 고마워요, 공손 공자.”
그들이 숨을 몰아쉬며 공손선우에게 고마워할 때 풍천이 날듯이 뛰어왔다.
“어떻게 됐습니까?”
황보안이 대답했다.
“두 사람은 놓쳤지만 여기 공손 공자 덕분에 한 사람은 쓰러뜨릴 수 있었소.”
풍천은 쓰러져 있는 마의 무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가 이미 죽었다는 걸 알고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죽었군요. 어떤 놈이 시켰는지 알아보려고 했는데…….”
“그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왜 저들이 대공자를 공격한 거죠?”
강매설이 다그치듯이 물었다.
그녀의 옷은 두어 군데가 찢겨져 있었는데 허리 쪽은 길게 찢어져서 잡고 있지 않으면 속살이 보일 지경이었다.
풍천은 힐끔 그녀의 모습을 살피고는 이를 뿌드득 갈며 대답했다.
“개울가에서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데 놈들이 갑자기 공격하지 뭡니까? 아무래도 우리가 가까이 접근하니까 천외에서 사람을 보낸 것 같수.”
그러고는 공손선우를 바라보았다.
“손을 좀 살살 쓰시지. 살려놓아야 취조를 할 것 아닙니까?”
어쩔 수 없이 수경대의 무사를 죽인 공손선우는 분노를 삼키고 표정을 갈무리했다.
“워낙 다급해서 급히 손을 쓰다 보니 어쩔 수 없었소.”
“하긴 그 상황에서 이것저것 가리며 손을 쓸 순 없었겠죠. 그래도 조금만 더 머리를 쓰시지. 살려뒀으면 많은 걸 알아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은근히 신경을 거슬리는 말투다. 멍청해서 죽인 것이 아니라 생포되면 안 될 것 같아서 죽인 것이거늘.
‘네놈이 어찌 내 마음을 알겠느냐!’
그러잖아도 마음이 씁쓰름한 공손선우는 말투가 절로 싸늘해졌다.
“그럼 다른 사람을 쫓을 게 아니라 이곳에 남은 자들을 그대가 잡지 그랬소?”
“나도 그러고 싶었죠. 그런데 도망친 놈들 중에 제법 높은 놈이 있는 것 같지 뭡니까? 좌우간 객잔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나눕시다. 보아하니 부상을 입은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
풍천은 그 말을 하면서 송구를 쳐다보았다.
그게 마치 비웃는 것처럼 느껴진 송구는 눈에 힘을 주었다.
‘왜 나만 쳐다봐? 다른 사람도 다쳤잖아!’
풍천은 그의 눈빛에 아랑곳하지 않고 혀를 찰 것 같은 표정으로 송구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거, 조심 좀 하시지.”
불끈, 검을 쥔 손에 힘을 준 송구가 발작하기 직전 명진이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만하고 놈들이 몰려오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는 게 좋겠소.”
풍천이 제일 먼저 몸을 돌렸다.
“해 형은 괜찮은지 모르겠네?”
일행이 객잔으로 돌아왔을 때 해동산은 일층으로 내려와 있었다.
풍천은 마침 탁자 위에 있는 주전자를 들어 통째로 꿀꺽꿀꺽 마시고는 탕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그리고 입을 쓱 닦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제 진정되는군.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공손선우는 풍천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이를 갈았지만 겉으로는 천만다행이라는 듯 말했다.
“정말 다행이외다. 몸은 괜찮소?”
“멍청한 놈들이어서 다행히 공격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놈이 나를 죽이라고 지시했는지 몰라도 그놈은 분명 천하에서 제일 대가리가 멍청한 놈일 거요. 공손 형 같은 고수와 천의맹 사람들이 근처에 있는데 무턱대고 손을 쓰다니.”
공손선우의 눈 가장자리가 붉게 물들었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일단 죽이고 볼까? 그런 강렬한 유혹이 그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저런 놈도 죽이지 못하다니. 내가 너무 믿었나?’
하지만 풍천은 못 본 척 눈을 돌리고 황보안과 강매설에게 말했다.
“나는 이곳을 떠날 생각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할 거요?”
강매설이 신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들이 정말 천외 사람들이었나요?”
“정체를 밝히지는 않았수. 하지만 천외 놈들이 아니고서야 이곳에서 나를 공격할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요?”
황보안이 이마를 찌푸리고 신중하게 말했다.
“한번 공격을 받았다고 바로 떠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소? 객잔에 있을 때 공격하지 않은 걸 보니 안에만 있으면 별일 없을 것 같소만.”
“여러분이 가시지 않겠다면 나와 해 형이라도 떠나겠습니다.”
황보안이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해 형은 용의자인데…….”
강매설과 대주, 명진과 송구의 눈이 풍천을 향했다.
풍천의 냉랭한 말투가 그들의 고막을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내가 전부터 말했지만 해 형은 그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만약 정말로 죄를 지었다면 내가 당신들과 여기까지 올 일도 없었을 거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설마 모르진 않겠죠?”
천의맹 사람들은 그의 말뜻을 모르지 않았다.
풍천이 힘으로 해결하려 했다면 자신들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었으니까.
“흥, 가려면 가시오. 못 가게 막지 않으니까.”
송구가 쏘듯이 말했다. 그도 성격이 조금 편협할 뿐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다.
해동산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곳까지 함께 온 것은 천외라는 신비 단체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로 조금 전, 천외의 무리로 의심되는 자들과 싸웠고 그들의 강함을 자신의 몸으로 직접 겪어보았다.
대풍의 말이 헛소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자신과 싸운 자들이 천외의 무리가 아닐 수도 있었다. 대풍의 심경에 갑자기 변화가 생겨서 떠나려는 것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더는 따지지 않을 생각이었다. 꼴 보기 싫은 놈과 더는 함께 있기가 싫었으니까.
“아미타불, 빈승 역시 이번 일은 다시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소이다.”
송구에 이어 대주마저 해동산이 범인이 아닐지 모른다는 식으로 말하자 황보안과 강매설도 부담이 덜어졌다.
“좋소. 모두가 그렇게 말하니 두 분을 더 이상 붙잡아두지 않겠소.”
“정말 지금 떠날 건가요?”
풍천은 굳은 표정으로 반문했다.
“더 있어봐야 위험해질 뿐이요. 우리야 그렇다 치고, 당신들은 어떻게 하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