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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30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2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30화

 

130화

 

 

 

 

 

 

“집안의 어른이 아프셔서 이곳에서만 난다는 약초 몇 가지를 구입해보려고 왔지요. 저야 그렇다 치고, 두 분은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이곳에는 특별히 무가라 할 곳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확인할 것이 하나 있어서 왔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드릴 수 없으니 이해해주세요.”

 

“비밀이라면 당연히 말을 아끼셔야지요. 혹시 제가 도와드릴 것은 없겠습니까, 소저? 하하하, 이래 봬도 실력은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답니다.”

 

번드르르한 공손선우의 말에 풍천은 눈을 흘겼다.

 

‘제법 주둥이를 굴릴 줄 아는군. 당신을 보니까 대공이란 자가 어떤 자인지 알 만해.’

 

하지만 공손선우의 정체를 모르는 황보안과 강매설의 눈에는 그가 매우 호탕한 자처럼 보였다.

 

“오늘 처음 본 분께 어찌 도움을 청할 수 있겠습니까?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이곳에 몇 번 와본 적이 있어서 이 근처의 상황에 대해선 제법 알고 있습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십시오.”

 

바로 그때 강매설이 고개를 돌려서 공손선우를 똑바로 쳐다보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럼 하나만 묻겠어요. 공손 공자는 혹시 천외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천외, 하늘 밖이라…….”

 

공손선우의 눈빛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흔들렸다. 강매설 등이 설마 ‘천외’를 알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한 듯했다.

 

그러나 워낙 찰나 간의 일이어서 똑바로 쳐다보고 있던 강매설조차 그의 흔들림을 눈치채지 못했다.

 

“무슨 일로 그곳을 찾는지 알아도 되겠습니까?”

 

“그런 곳이 있긴 있나요?”

 

“있다고 할 수도 있고,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강호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소문이고 전설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강 소저가 원하신다면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단, 왜 그곳을 묻는지 이유를 확실히 알았으면 좋겠군요.”

 

강매설은 풍천을 쳐다보았다. 말해도 되냐는 듯.

 

풍천은 네가 말했으니 네가 알아서 하라는 듯 붕어처럼 엽차만 들이켰다.

 

강매설은 그걸 풍천이 그녀의 말에 관여치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공손선우에게 말했다.

 

“강호에서 존경받는 한 분이 살해당하셨어요. 그런데 그분을 살해한 범인을 쫓던 중 천외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천외라는 곳이 혹시 그분을 살해한 자들과 연관되어 있는지 알아보려는 거예요.”

 

“흐으음, 비록 소문과 전설뿐입니다만 소생이 아는 천외는 강호의 안녕을 위해 암중에서 움직일 뿐 함부로 세상사에 끼어들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 일은 뭔가 착오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순간 풍천이 툭 던지듯이 물었다.

 

“강호인 누구도 모르는 사실을 어찌 그렇게 잘 아쇼?”

 

“그저 오가다가 소문으로 들었을 뿐이지요.”

 

“그럼 이곳 백하의 사람들 중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겠군요.”

 

“그렇지는 않을 거요. 워낙 알려지지 않은 일이어서…….”

 

“이상하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소문을 강호에서 활동도 하지 않은 분이 그리 잘 알고 있다니. 혹시…… 공손 형이 천외라는 곳과 잘 아는 사이 아닙니까?”

 

풍천의 직격탄에 공손선우의 입매가 미미하게 비틀렸다.

 

“소생이 어찌 그들을 잘 알겠소? 그저 전설일 뿐인데.”

 

“그럼 천외라는 곳이 강호의 안녕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처럼 말하면 안 되죠. 그들이 흉악무도한 마도잡종들인지, 사기꾼 같은 놈들인지 아니면 좋은 사람들인지는 만나 봐야 아는 것 아니겠습니까? 안 그래요?”

 

공손선우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건 그렇구려.”

 

“사실 얼마 전부터 천외라는 곳에 사는 놈들이 마도 놈들처럼 함부로 사람을 죽인다는 소문이 돌았죠. 그래서 정파보다 마도사파에 가까운 놈들이 아닐까,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사악한 마음을 지닌 더러운 놈들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데 공손 형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하니 이상하게 생각한 거요. 너무 신경 쓰지 마쇼.”

 

천외천에 대해서 실컷 욕하고는 신경 쓰지 말라고?

 

공손선우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억지로 화를 눌렀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오?”

 

“나도 듣기만 했으니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실히 모르죠. 그래도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판단을 조심해야 한다고 보는데, 공손 형은 어떻게 생각하쇼?”

 

“옳은 말이오. 매사에 신중하지 않으면 강호에서 살아가기가 힘든 법 아니겠소?”

 

공손선우는 서늘한 눈으로 풍천을 바라보며 반문하듯이 말을 맺었다.

 

풍천은 말미에 협박의 뜻이 담겨 있다는 걸 알고 내심 코웃음 치며 몇 마디 더 받아쳤다.

 

“그런데 그들이 정말 존재한다면 왜 숨어서 행동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비겁한 겁쟁이나 위선자여서? 아니면 하늘을 보기가 부끄러울 정도의 큰 죄를 지어서? 거참, 좌우간 말 못 할 사연이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말이죠.”

 

은근히 천외천을 비꼬는 말투. 공손선우는 탁자 아래에 있는 손을 움켜쥐고 마음을 최대한 안정시켰다.

 

‘미친놈! 네놈이 죽고 싶어서 발광을 하는구나.’

 

풍천은 공손선우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차를 홀짝거린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좋은 이야기 더 나누시죠. 저는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풍천이 대화를 엉뚱한 곳으로 끌어가는 바람에 분위기가 이상하게 흐르던 터였다. 황보안과 강매설은 차라리 잘되었다는 표정으로 풍천의 외출을 반겼다.

 

“바람 쐬는 건 좋은데 너무 오래 돌아다니지는 마시오. 당신 동료에 대한 의심이 다 풀린 것은 아니니까.”

 

“객잔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지 않았으면 해요.”

 

“걱정 마쇼. 요 앞 개울가에 가서 하늘의 별을 벗 삼아 잠시 걷다 올 생각이니까.”

 

풍천은 나름 낭만적인 투로 말하고는 공손선우를 향해 씩 썩은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을 본 순간 속이 느끼해진 공손선우는 두 눈 깊은 곳에서 한광을 번뜩였다.

 

대화를 들어보니 대풍이라는 놈은 천의맹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굳이 참을 이유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저놈만큼은 반드시 죽여버리겠어.’

 

 

 

4

 

 

 

객잔을 나온 풍천은 개울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개울은 객잔에서 백여 장 떨어진 곳에 있었다.

 

개울가에 도착하자 졸졸졸 흐르는 맑은 개울 물소리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상쾌함이 오래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참으면 이 공자님께서 정말로 인정해주지.’

 

풍천의 입가에 가느다란 조소가 맺혔다.

 

천외천의 무리를 끌어내기 위해서 공손선우의 성질을 건드렸다. 떠받듦을 받고 자란 자일수록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법. 그가 본 공손선우라면 분명 뭔가 조치를 취할 것이었다.

 

풍천은 공손선우가 발작하길 기다리며 개울가의 바위에 앉았다. 문득 실소가 나왔다.

 

‘훗, 그가 직접 나타나다니…….’

 

공손선우가 직접 나타난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하마터면 깜짝 놀라서 자신의 속마음을 들킬 뻔했다.

 

문제는 그가 왜 얼굴을 드러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는 황보안과 강매설이 천의맹 사람들이라는 걸 알고 접근했어. 그럼 뭔가 목적이 있다는 말인데…….’

 

죽이려 했다면 굳이 모습을 드러낼 것도 없다. 자칫 한 사람이라도 살아서 도주하면 자신의 얼굴이 알려질 것이고 그러면 강호에서 운신의 폭이 그만큼 줄어들 테니까.

 

대공은 암중에 강호를 조종하던 여태까지의 방법을 버리고 세상에 자신을 알리려는 자. 다시 말해 영웅이 되고 싶어 안달 난 자이다.

 

그의 아들인 공손선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터. 그러한 자라면 절대 천의맹과 적이 되는 걸 바라지 않을 것이다.

 

풍천은 개울을 따라 흐르는 물결을 바라보았다. 달빛을 받은 잔물결이 그의 눈 속에서 황금빛 비늘처럼 반짝였다.

 

‘천의맹 사람들을 이용하겠다는 건가?’

 

왜?

 

‘천의맹에 들어가서 이름을 날리기 위함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생각이었다.

 

무턱대고 천의맹에 가는 것보다 천의맹 무사들과 친분을 쌓은 다음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것이 의심도 피할 수 있고 명성을 쌓는 데 훨씬 더 유리할 테니까.

 

그의 무위라면 천의맹에 들어가자마자 뛰어난 활약을 보일 것이다.

 

신비의 문파, 천외천의 후계자!

 

‘그러한 소문이 도는 것만으로도 그는 천하의 주목을 받겠지.’

 

그리고 신마성과 구룡회의 싸움을 대공과 그가 억제할 수 있다면?

 

한순간에 영웅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가, 대공이 그 정도로 만족할까?

 

그들의 욕망이 그뿐이라면 상관경의가 죽어가면서도 걱정할 리가 없다.

 

만약 대공이 더 큰 욕심을 낸다면? 천외천의 모든 힘을 외부로 드러내고 본격적으로 강호를 좌지우지하려고 한다면?

 

‘그럼 천외천의 행사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우후죽순 들고 일어나겠지 뭐.’

 

그리고 강호의 대지와 하늘이 핏빛으로 붉게 물들어갈 것이다.

 

풍천은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상관경의처럼 오지랖 넓은 사람은 그게 걱정이 되었던 것 같다. 자신이 정의라 믿고 있는 천외천이 욕망에 물드는 것도 원치 않았을 것이고.

 

하지만 자신은 천외천이 천하를 집어삼키든 망하든 하등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강호가 혼란스러워지면 해결사에게는 좋은 일이다. 일이 그만큼 많아질 테니까.

 

당장만 해도 신마성이 백초령을 납치한 것 때문에 자신의 가슴에는 금덩이들이 잔뜩 들어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들이 건들지만 않는다면 나는 본문의 업에 충실할 거야.’

 

자신은 해결사다. 남들은 청부업자라고도 부르지만.

 

그런 자신이 무슨 천하대협객이라고 정의 운운하며 목숨을 걸고 싸운단 말인가?

 

미쳤지!

 

그래도 두 가지와 관련된 것에 대해선 예외였다.

 

형을 죽게 만든 신마성과 천혈궁에게는 피의 대가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신검문만큼은 자신의 능력 한도 내에서 지켜줄 생각이었다. 모른 척하고 있으면 초령이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그 성질에 잡아먹으려고 할걸?’

 

뭐 그것도 초령이를 구하고 함께 산다는 가정 하에서 일이지만.

 

문득 풍천은 고개를 모로 꼬았다.

 

‘가만? 내가 왜 초령이와 함께 살아?’

 

곱상하고 고분고분한 여자들이 세상에 널려 있는데 말이지.

 

그런데…… 초령이가 천풍장까지 쫓아오면 어떡하지? 그 고집에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텐데.

 

사실 백초령도 다른 여자보다 떨어지지는 않았다. 입술도 부드럽고 얼굴도 그만하면 예쁜 편이고. 거기다 가슴과 몸매도…….

 

‘으음, 생각해보니 괜찮은 구석이 제법 많네.’

 

풍천은 생각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끝까지 따라다니면 할 수 없지. 내가 많이 손해보더라도 데리고 사는 수밖에. 남자라면 자신이 안은 여자를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겠어?’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고 포기(?)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초령이도 사나운 성질만 빼면 그럭저럭 괜찮긴 한데…….’

 

유령총에서의 일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촉촉한 입술, 등을 짓누르던 부드러운 가슴, 품 안에 착 달라붙은 초령이의 몸에서 나던 그 향기…….

 

갑자기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었다.

 

눈을 게슴츠레 뜬 풍천은 입맛을 다셨다.

 

‘쩝, 빨리 구해야지…….’

 

 

 

‘저 자식, 저기서 뭐하지?’

 

나기응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대풍이라는 놈이 바위에 앉아서 입을 헤 벌린 채 하늘을 보고 있었다.

 

왠지 덜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저놈을 왜 대공자께서 신경 쓰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흔적 없이 제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으니 불만이 있어도 명대로 행해야만 했다.

 

‘불쌍한 놈. 그러게 왜 대공자님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냐?’

 

나기응은 속으로 혀를 차며 옆을 향해 손짓했다.

 

곧 오륙 장 떨어진 곳에서 마의를 입은 네 사람이 앞으로 나아갔다.

 

일체의 기척도 없는 움직임으로 단숨에 십여 장을 전진한 그들은 풍천과 삼 장의 거리가 되자 유령처럼 떠올랐다.

 

“웬 놈들이냐?”

 

풍천은 갑작스런 습격에 놀란 것처럼 급박한 소리를 내지르며 네 사람의 공격을 교묘하게 벗어났다.

 

네 사람은 재빨리 방향을 틀어서 다시 풍천을 덮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풍천은 좌우로 정신없이 오가며 네 사람의 공격망을 벗어났다.

 

연이은 실패에 공격자 중 하나가 이를 갈았다.

 

“미꾸라지 같은 놈이군.”

 

‘나처럼 큰 미꾸라지 봤어? 느림보 같은 놈들이 자신들 느린 것은 생각도 않고…….’

 

풍천은 한 발만 써도 네 사람의 공격을 벗어날 자신이 있었다. 그럼에도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쪽을 택했다.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온 자들은 앞에 있는 자들만이 아니었다. 개울가의 숲에 서너 명이 더 있었다. 그중 천응단 놈들이 있다면 자신의 신법을 알아볼지도 몰랐다.

 

‘용꿈 꾼 줄 알아라, 이놈들! 이 공자님이 피 보는 걸 즐기지 않는 성인군자라는 걸 고맙게 생각해!’

 

풍천은 성인군자가 들었으면 핏대가 솟을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네 사람의 공세 사이를 누볐다.

 

마음 같아서는 빤히 보이는 약점에 콱 검을 쑤셔 박고 싶었지만 좀 더 중요한 일을 위해서 참았다.

 

그렇게 십여 초가 흐르도록 네 사람이 풍천을 잡지 못하자 나기응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멍청한 놈들! 그따위 엉터리 신법을 펼치는 놈도 잡지 못하다니!’

 

그런데 바로 그때 네 사람의 협공에 갇혀 있던 풍천이 포위망에서 빠져나와 반대편을 향해 내달리는 게 보였다.

 

“네놈들은 누군데 나를 공격하는 것이냐!”

 

그의 목소리가 어둠을 흔들며 백하의 하늘에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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