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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64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0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64화

 

164화

 

 

 

 

 

 

컥!

 

“뭐, 뭐?”

 

“진짜 예쁘다. 그치?”

 

“초웅아, 그게 아니고…….”

 

말 몇 마디로 풍천의 얼을 반쯤 빼버린 초웅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히죽거리며 말했다.

 

“맛있는 거 만들어줄게 조금만 기다려, 형. 나 요리 잘하거든.”

 

풍천이 급히 변명을 하려 했지만 초웅은 듣지도 않고 몸을 돌려서 부엌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저 자식이 사람 곤란하게 만드네.’

 

그런데 묘했다. 공손이향에게 조금 미안하긴 한데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자신이 정말 공손이향을 좋아하는 거 아닐까? 그냥 좋아하는 거 말고 사랑 같은 감정 말이다.

 

‘초령이에게는 절대 아니라고 했는데…… 에이, 짜식이 이상한 말을 해서…….’

 

한편 이곡과 공손이향은 걸어가는 초웅의 뒷모습을 각양각색의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곡은 초웅의 거대한 몸집에 놀랐고, 처음 보는 커다란 칼에 놀랐고, 그런 초웅이 식사 준비를 한다는 말에 한 번 더 놀랐다.

 

그리고 공손이향은 형수냐는 말에 충격을 받아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형수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울렁거린 것이다.

 

‘형수라…….’

 

난생 처음 듣는 말.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젖어들었다.

 

자신이 변하기 전에 정식으로 그 말을 들어볼 수 있을까?

 

입가에 절로 쓴웃음이 걸렸다. 공연한 욕심이었다. 품어봐야 마음만 아프게 하는 욕심.

 

 

 

3

 

 

 

산들바람이 불어대는 밤. 악진표는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장원을 보고 이를 갈았다.

 

‘저곳에 들어가서 네 사람이나 죽었단 말이지?’

 

자신의 수하들은 약하지 않았다. 어지간한 절정고수는 둘이 상대할 수 있고 셋이면 이길 가능성이 컸다. 하물며 넷이면 질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다섯이 들어가서 넷이 죽고 하나만 살았다.

 

천풍장이 용담호혈이라도 된다면 순순히 수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천풍장은 용담호혈이 아니었다. 금방 죽을 것 같은 늙은이와 곰 같은 놈만 사는 삼류 살수의 집일 뿐.

 

살아남은 수하는 늙은이가 예상치 못했던 고수라고 했지만 그는 믿지 않았다. 풍천이란 놈의 집을 지키는 총관 따위가 강하면 얼마나 강하겠는가.

 

유령총의 일로 인해서 풍천이 알려진 것보다 강하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 역시 믿지 않았다.

 

그런 놈이 절정고수라면 자신은 절대고수였다.

 

‘풍천이 죽으니까 미안해서 그런 말을 한 거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병신 같은 놈들. 그런 늙은이에게 당하다니.’

 

짜증이 난 그는 좌우에 늘어서 있는 흑의인들을 둘러보았다.

 

자신까지 모두 여섯이었다. 이 인원으로도 그 늙은이와 곰 같은 놈을 죽이지 못한다면 전주가 머리를 부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머리를 앞세우고 바위로 돌진해야 할 것이었다.

 

더구나 수하는 늙은이도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하지 않던가.

 

“들어가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죽여버려라. 늙은이를 죽이는 자에게는 특별히 은자 오십 냥의 상금을 줄 것이다.”

 

옆에 서 있던 흑의인들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가자.”

 

 

 

흑의인 둘이 먼저 담장을 넘었다.

 

그들이 엉성한 정원에 막 착지한 순간 뭔가가 바로 앞에서 벌떡 일어섰다.

 

쉬이익.

 

둘 중 하나는 반사적인 움직임으로 몸을 뺐지만 하나는 뒤에 바위가 있어서 피하지 못했다. 그자는 달려드는 것을 향해서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촘촘히 엮인 대나무발의 상단이 단숨에 잘려나갔다.

 

그러나 아랫부분의 대나무창이 가슴과 복부를 꿰뚫었다.

 

푹!

 

“크윽, 이…… 개 같은…….”

 

다른 하나는 빨리 움직인 덕에 겨우 대나무창을 피하고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동료를 바라보았다. 동료의 가슴에 꽂힌 대나무창에서 붉은 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그때 또다시 두 사람이 담장을 넘어오는 게 보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조심해, 덫이 있다!”

 

막 땅에 내려선 자들은 흠칫하며 좌우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내려선 곳에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직후 마지막으로 악진표와 흑의인 하나가 담을 넘어왔다.

 

악진표는 대나무창에 가슴이 뚫린 수하를 보고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절정에 근접한 일류 고수란 놈이 저 따위 조잡한 덫에 걸려서 당하다니.

 

‘멍청한 놈!’

 

그러나 다섯만 있어도 늙은이 하나 죽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안을 뒤져서 늙은이를 찾아내라.”

 

흑의인들은 악진표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건물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날아간 자는 셋뿐이고 한 사람은 이 장쯤 날아가다 말고 몸이 홱 뒤집어지며 위로 떠올랐다.

 

“헉!”

 

당황한 흑의인은 다리를 휘감은 올무를 자르기 위해 다급히 칼을 휘둘렀다.

 

그 순간 활대처럼 휘어진 채로 한쪽 나무 끝에 살짝 걸쳐져 있던 대나무가 펴지면서 그의 등 뒤로 날아들었다.

 

문제는 대나무에 창날처럼 뾰족한 대나무살이 대여섯 개나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쒜에엑.

 

흑의인은 소리만으로도 상황을 짐작하고 급히 몸을 틀었다.

 

하지만 거리가 워낙 가까워서 온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푹!

 

뾰족한 대나무살이 찰나 간의 차이로 흑의인의 옆구리를 관통했다.

 

“크억.”

 

또다시 억눌린 비명이 터져 나오며 어둠이 붉게 물들었다.

 

앞서 나갔던 세 사람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걸음을 멈추고 좌우를 둘러보았다.

 

악진표는 상대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두 명의 수하가 당하자 이를 갈며 분노를 토해냈다.

 

“이 개 같은 놈들이!”

 

그때였다.

 

“뒈지고 싶으면 장강에 뛰어들지 왜 여기 와서 지랄이야?”

 

다시 인피면구를 뒤집어쓴 풍천이 비아냥거리며 건물을 돌아서 걸어나왔다.

 

악진표는 홱 고개를 돌려서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한 놈이 건물을 돌아 나오고 있었다.

 

건들거리는 걸음걸이.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가 기억을 떠올릴 틈도 없이 좌우에서 두 사람이 나타났다. 대나무처럼 빼빼 마른 놈과 오밤중에 면사가 달린 모자를 쓰고 있는 미친놈이.

 

‘아니, 여잔가?’

 

이 판국에 여자든 남자든 무슨 상관이랴. 적이라는 게 중요하지.

 

“흥, 천풍장의 살수들인가? 겁대가리 없는 놈들. 이놈! 네놈이 덫을 설치했느냐?”

 

악진표는 먼저 이곡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그는 생김새만 보고 이곡이 덫을 설치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이곡은 간단하게 그의 말을 부정했다.

 

“눈이 삐었군.”

 

어릴 때 사팔뜨기라고 놀림을 받았던 악진표는 그 말에 갑자기 핏대가 섰다.

 

“저 죽일 놈이! 뭐해! 놈들을 죽여라!”

 

어차피 물러날 곳이 없는 그였다. 용후정은 더 이상 그를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수하도 셋, 적도 셋. 늙은이가 안 보이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했으니 크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

 

자신의 수하는 모두 일류 고수들. 천풍장의 살수들쯤은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수하들이 달려드는 걸 보며 검을 빼들었다. 그리고 건물에 기대서 있는 풍천을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왠지 모르게 볼 때마다 기분이 나빴다. 죽었다던 그놈을 닮은 것 같아서 더 그런 듯했다.

 

‘닮을 놈이 없어서 그놈을 닮나 그래.’

 

그는 건물에 기대어 있는 놈만큼은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싶었다. 수하의 손에 먼저 죽는다면 어쩔 수 없고.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놈은 수하의 공격을 제법 민첩하게 피해내고 있었다.

 

‘신법이 제법이군. 풍천이란 놈도 신법 하나는 기가 막혔는데 이곳 놈들은 모두 신법이 저렇게 뛰어난가?’

 

그는 상대의 다리 근맥부터 잘라버리기로 작정했다.

 

바로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쾅!

 

굉음이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공손이향을 향해 공격하던 자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튕겨진 것이다.

 

절정고수의 공격을 이십 초식 이상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이 오 초식도 받아내지 못하다니!

 

악진표는 튀어나올 것처럼 커진 눈으로 공손이향을 바라보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가슴이 서늘해졌다.

 

“당신은 누구요?”

 

빙백한천장으로 흑의인을 튕겨낸 공손이향은 자신의 손에 누군가가 죽어간다는 생각을 하자 마음이 우울해졌다.

 

“미안해요. 사람을 상대로는 무공을 처음 펼치다 보니 그만 힘을 너무 쏟아냈나 봐요.”

 

‘뭐, 뭐야?’

 

악진표는 괴이하게 일그러진 눈으로 공손이향을 노려보았다.

 

말투만 따지면 놀리는 것 같은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컥!”

 

그가 공손이향을 바라보는 사이 한쪽에서 또 비명이 들렸다. 불안한 생각이 든 그는 고개를 돌려 비명이 들린 곳을 돌아다보았다.

 

흑의인이 목에서 핏줄기를 뿜어내며 비틀거리고 있었다. 이곡의 꼬챙이 같은 검이 흑의인의 목을 꿰뚫어버린 것이다.

 

‘그럼 나머지 하나는?’

 

악진표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서 건물이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풍천은 악진표가 쳐다보는 순간 흑의인의 두 다리를 부수고 천라신수로 사혈을 두들겼다. 그러고는 멱살을 잡아 아래로 짓눌렀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인 그 모습은 마치 흑의인이 풍천에게 죄를 청하는 것 같았다.

 

불안감이 커진 악진표는 좌우를 둘러보며 검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주르륵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엉덩이까지 흘렀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천풍장이 뭐하는 곳인데 저런 놈들이 몇 놈이나 있는 거야?’

 

흑의인 셋이 순식간에 제압되자 풍천은 악진표를 느긋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왜? 더 해보시지.”

 

악진표는 눈알을 굴려서 재빨리 좌우를 둘러보았다.

 

셋이서 삼재의 형태로 포위하고 있었다. 수하를 죽인 놈들인 만큼 실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은 수하들과 달랐다. 놈들을 이기진 못해도 도망가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풍천은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조소를 지었다.

 

“훗, 도망가려고? 쉽지 않을걸?”

 

그래도 악진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존심은 상했지만 일단 사는 게 먼저였다.

 

수하들과 함께 이곳에서, 그것도 자신이 극히 싫어하는 풍천의 집에서 죽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는 기회를 얻기 위해 사력을 다해서 머리를 굴렸다.

 

“너는 풍천이란 놈과 무슨 사이냐?”

 

“잘 아는 사이지.”

 

“그놈은 우리가 제안한 청부를 실패했다. 그래서 우리는 위약금을 받으려고 온 것일 뿐이다. 설마 해결사 세계의 불문율인 신의를 어기지는 않겠지?”

 

“그거야 당연하지. 그래서 오늘 당신 수하들을 죽인 거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우리 규칙을 잘 알면서 왜 그래? 청부자는 청부를 이행하는 자에 대해서 깊이 파고들면 안 된다. 청부를 이용해 상대를 해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서로 간의 불간섭에 대한 원칙을 어기면 그 즉시 계약은 파기된다. 몰라?”

 

“우리가 언제 간섭했단 말이냐? 우리는 단지 청부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했을 뿐…….”

 

“프하하하하, 웃기고 있네. 그래서 몰래 습격한 거야?”

 

헤프게 웃는 것이 영락없는 풍천이다.

 

어쩌면 저렇게 비슷할까? 잘 아는 사이라고 했는데 혹시 형제가 아닐까?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악진표는 악착같이 부인했다.

 

“습격한 것이 아니라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했을 뿐이다.”

 

“죽인 다음에? 훗, 헛소리 말고 묻는 말에 솔직히 대답해봐. 누가 시켰지?”

 

악진표는 입을 꾹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수하들만 죽이고 돌아가 봐야 당신 주인이 가만두지 않을 텐데 잘 생각해봐. 순순히 협조하면 살려줄 생각도 있으니까.”

 

악진표는 뒤로 물러나며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나더러 주군을 배신하란 말이냐?”

 

“그렇게 죽고 싶어?”

 

악진표의 눈빛이 흔들렸다.

 

풍천은 더욱더 그를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뭐 그래도 죽고 싶다면 할 수 없지. 죽여주는 수밖에.”

 

뒤로 물러서던 악진표는 담장과의 거리가 오 장 정도로 가까워지자 두 발에 힘을 주고 땅을 박찼다.

 

“어딜 가려고!”

 

이곡이 먼저 그를 향해 몸을 날리며 꼬챙이검을 뻗었다.

 

악진표는 검을 휘둘러 대여섯 개의 검영을 쏟아냈다. 줄기줄기 검기가 뻗어 나가며 이곡의 검을 쳐냈다.

 

따다다당!

 

이곡이 그 충격에 한쪽으로 밀리자 악진표는 허공에서 몸을 뒤집으며 담장 위로 날아갔다.

 

앞에 아무도 없었다. 풍천을 닮은 놈은 설마 자신이 바로 도주할 거라 생각을 못 한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말이다.

 

포위망에서 벗어났다 생각한 그는 담장 위에 내려서서 냉랭히 코웃음을 쳤다.

 

“흥! 내가 네놈 말을 들을 줄 알았느냐, 병신 같은 놈!”

 

그런데 그의 말이 다 끝나자마자 바로 옆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귀찮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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