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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62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3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62화

 

162화

 

 

 

 

 

 

3

 

 

 

아침이 되자 백초령이 객당으로 찾아왔다.

 

왠지 몰라도 이전과 달라진 듯 보였다. 말투도 사근사근하고 바라보는 눈빛도 부드럽고.

 

속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정말 오늘 떠날 거야?”

 

“응, 잠깐 집에 들렀다가 회남으로 갈 생각이야.”

 

“아버지에게 가려고?”

 

“음하하, 당연히 가서 도와드려야지. 이것저것 다 떠나서 초령이의 아버지잖아?”

 

비록 백무천을 도와주기 위해서 가려 했던 건 아니지만 그것도 그리 나쁠 것은 없어 보였다. 초령이에게 생색도 낼 수 있고.

 

백초령은 풍천이 백무천을 돕겠다고 하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풍천으로? 아니면 대풍으로?”

 

“내 정체는 문주님께만 말씀드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할 거야. 정체가 알려지면 천외천과 신마성이 죽이려고 할지 모르잖아.”

 

백초령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천외천은 어떻게 나올지 몰라도 위태곤은 분명히 그럴 것이었다. 풍천이라면 이를 갈고 있으니까.

 

벽라동의 일을 모르는 그녀로선 신마성보다 천외천이 더 풍천을 죽이고 싶어 할지 모른다는 걸 알지 못했다.

 

“알았어. 몸조심해.”

 

“내 걱정 말고 너나 조심해.”

 

“나야 이곳에 있으면 신검문 사람들이 지켜줄 텐데 뭐.”

 

풍천은 그쯤에서 귀수괴의에 대한 말을 꺼냈다.

 

“참, 누구에게 들으니까 귀수괴의가 신검문에 들어왔다던데 혹시 지금도 안에 있는지, 아니면 떠났는지 좀 알아봐 줘.”

 

“귀수괴의? 그 사람은 왜?”

 

“뭐 좀 알아볼 게 있어서.”

 

“알았어. 한번 알아볼게.”

 

그때 밖에서 백초령과 함께 온 시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신무전주님께서 찾으신다고 합니다.”

 

“용 백부님이?”

 

백초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봐야겠어. 귀수괴의에 대한 것은 떠나기 전에 알려줄게.”

 

풍천은 반쯤 돌아선 그녀에게 머뭇거리며 물었다.

 

“저기 말이지…… 초령이 너…… 공손천우와 정말 혼인할 거 아니지?”

 

백초령은 풍천을 흘겨보며 얼굴을 붉혔다.

 

“어제 저녁에…… 내 마음 알려줬잖아.”

 

‘흐으으으.’

 

풍천은 입이 귀까지 찢어졌다.

 

‘대가 조금 세서 그렇지 사실 초령이만 한 여자도 드물지.’

 

백초령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바보같이. 그걸 몰라서 물어? 풍천 넌 내 거야.’

 

 

 

백초령이 귀수괴의에 대한 소식을 가져온 것은 객당을 나선 지 한 시진가량 지난 후였다.

 

“귀수괴의가 둘째 사형의 상처를 치료했나 봐. 그리고 둘째 사형의 상처가 거의 다 나은 이후에 떠났대.”

 

“언제쯤?”

 

“한 달 전쯤.”

 

“어디로 간 줄은 모르고?”

 

“몰라. 왜 그렇게 그 사람을 찾으려고 하는 거야?”

 

풍천은 대충 둘러댔다.

 

“우리 집에 지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한번 부탁해보려고. 그런데 한 달 전에 떠났으면 찾기가 어렵겠네.”

 

“아픈 사람이 누군데?”

 

“장 노인이라고…….”

 

풍천은 졸지에 장 노인을 병자로 만들고 말을 돌렸다.

 

“문주님께 전할 말 없어? 내가 전해줄게.”

 

“내 걱정하지 마시고 무사히 돌아오시라고 전해줘.”

 

“그렇게 하지. 근데 공손천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도 될까?”

 

“그건 내가 나중에 말씀드릴게.”

 

풍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저기…… 초령아.”

 

“응? 왜……?”

 

풍천은 돌처럼 굳은 다리를 놀려 백초령에게 다가갔다.

 

“오늘 떠나면 언제 볼지 모르는데…….”

 

백초령은 풍천이 뭘 원하는지 알고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상기되었다.

 

서로 간의 거리가 두 자로 줄어들자 서로의 숨소리가 귀청을 울릴 정도로 들렸다.

 

백초령의 어깨를 잡은 풍천은 손에 힘을 주고 당겼다.

 

“초령아…….”

 

“아이, 지금은 낮인데…….”

 

백초령은 못 이긴 척 딸려가며 풍천의 가슴에 안겼다.

 

그때였다. 공손이향이 방문을 유난히 세게 두들기며 말했다.

 

“떠날 준비 다 되었어요.”

 

딱 두 치 거리를 두고 움직임을 멈춘 두 사람은 슬쩍 입술만 대고 뒤로 물러났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그만 가봐야겠다.”

 

“어? 어…….”

 

 

 

공손이향과 함께 신검문을 나온 풍천은 여남의 영화 객잔으로 가서 이곡을 만났다.

 

이곡은 귀수괴의가 신검문을 떠났다는 말을 듣더니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탄식했다.

 

“후우, 이제 또 언제 꼬리를 잡을 수 있을지…….”

 

“일단 저와 함께 움직이죠. 만약 귀수괴의의 행방에 대해서 알게 되면 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까.”

 

이곡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귀수괴의를 찾기 전까지는 돌아갈 생각이 없는 그였다. 단천무령이 되면 한 달에 은자 이십 냥씩 준다고 하니 그 돈이면 마누라의 배를 채워주고도 남을 터. 자신에게도 나쁠 것이 없었다.

 

“좋소. 단 일 년이 지나도록 찾지 못하면 떠나겠소.”

 

 

 

 

 

제6장. 습격(襲擊)

 

 

 

 

 

1

 

 

 

풍천은 금산에 들어서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떠나올 때와 많은 것이 달라진 상태였다. 특히 벽라동과 천외천의 일은 그를 완전히 뒤바꾸어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개 가난한 해결사에서 강호를 좌지우지하는 신비단체, 천외천의 단천무령주가 되었으니…….

 

비록 본인의 의지로 인해서 그리 된 것도 아니고 목적이 있어서 단천무령주가 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벼락출세한 것만큼은 분명했다.

 

게다가 황무지 같은 가슴에 한 떨기 사랑의 꽃이 피어나지 않았는가 말이다.

 

풍천은 가슴을 만지작거리며 흐뭇하게 웃었다.

 

손에 붉은 모란이 든 함이 잡혔다.

 

‘이것이면 예물로 충분하겠지?’

 

황금 삼십 냥짜리다. 눈이 뒤집힐 정도로 비싼 예물.

 

하지만 좋아하는 여인을 얻는데 황금이 문젠가?

 

전이었다면 남이 그런다고 하면 미쳤냐고 하겠지만 자신에게 그런 상황이 닥치자 그리 아까운 것 같지도 않았다.

 

물론 배가 부르다 보니까, 돈주머니가 두둑하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지만.

 

그리고 초령이가 시집올 때 그냥 오겠는가? 붉은 모란이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면 아까울 것도 없었다.

 

‘자식은 몇이나 낳을까? 셋? 다섯? 일곱? 홀수가 좋다는데…….’

 

풍천이 아직 잡지도 않은 닭을 향해 젓가락을 들이대며 입맛을 다실 때였다.

 

“령주, 저곳이 천풍장이오?”

 

히죽거리는 풍천을 힐끔거리던 이곡이 턱짓으로 앞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멀리 계곡 안쪽에 작고 허름한 장원이 서 있었다. 언뜻 봐선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처럼 보였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그곳을 제외하고는 사람 살 만한 곳이 없었다.

 

풍천은 허름한 장원을 보며 감회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저기가 바로 내 집이오.”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군.’

 

자신은 많은 것이 변했는데 천풍장은 여전하다.

 

초령이가 저런 천풍장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혹시 싫어하지 않을까?

 

하지만 걱정하지는 않았다.

 

‘이제부터 바꾸면 되지 뭐.’

 

돈은 충분했다. 상구에서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부자가 되어서 돌아오지 않았는가.

 

“자, 갑시다.”

 

풍천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풍천은 굳게 잠긴 문 앞에 서서 고개를 모로 꼬았다.

 

부서질 것처럼 낡은 문은 예전 그대로였다. 퇴색되어서 글자조차 알아보기 힘든 현판도 떠날 때와 다름없이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달라진 점이라면 문에 종이가 한 장 붙어 있다는 것이었다.

 

 

 

[출입자 사(出入者 死)]

 

 

 

들어오는 자는 죽이겠다는 말.

 

‘누가 쓴 것이지?’

 

장 노인은 게을러서 하지 않았을 것이고 어릴 때부터 산적질을 했던 초웅이 썼을 리도 없다.

 

‘그럼 해 형이 쓴 건가?’

 

하지만 해동산의 글씨는 자신이 잘 안다. 술에 취한 지렁이가 기어간다면 아마 해동산이 쓴 것과 비슷한 글씨가 써질 것이다.

 

‘누구에게 부탁해서 쓴 것인가 보군.’

 

문제는 왜 저런 걸 써서 붙였냐는 것이다.

 

‘혹시 백무천을 청부한 놈들이……?’

 

청부를 맡은 해결사가 무려 황금 삼십 냥이나 떼먹고 사라진 판이다. 입을 막고 돈을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손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 더구나 악진표는 천풍장이 자신의 집인 걸 알고 있지 않던가.

 

마음이 급해진 풍천은 문을 두들겼다.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약하게.

 

탕탕.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없나?’

 

미간을 찌푸린 풍천은 안에 대고 소리쳤다.

 

“장 노인! 해 형! 초웅! 나야, 문 열어!”

 

열을 셀 동안 기다려봤지만 여전히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장 노인과 해동산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 그럼 초웅이라도 있어야 할 것 아냐?’

 

풍천은 힐끔 뒤를 돌아다보았다.

 

면사가 달린 모자를 쓴 공손이향과 이곡이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당신 집이 맞느냐고 묻는 눈빛들이었다.

 

제길, 명색이 자신의 집인데 담장을 넘어갈 수도 없고…….

 

‘문을 부숴? 어차피 낡아서 갈아야 할 것 같은데…….’

 

그가 망설이는데 이곡이 간단하게 고민을 해결했다.

 

천풍장은 그의 집도 아니었고 담장을 넘는 것은 직업상 자주하는 일이어서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제가 들어가서 문을 열지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곡은 담장을 넘어갔다.

 

그때였다.

 

후우웅.

 

뭔가가 휘둘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이곡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풍천은 안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지?’

 

안쪽에서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지도 않았는데 누가 공격을 한단 말인가?

 

그런데 그때 문의 빗장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풍천은 문을 밀고 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위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무심코 위를 올려다보던 풍천의 두 눈이 한껏 커졌다.

 

‘이크.’

 

풍천은 재빨리 옆으로 일 장가량 물러났다.

 

동시에 그가 서 있던 곳으로 다섯 자 크기의 통나무가 떨어졌다. 뾰족뾰족한 대나무창이 박혀 있는 통나무는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아마 방심한 상태에서 정통으로 맞았다면 그의 피부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었다.

 

‘대체 어떤 놈이……!’

 

화가 난 풍천은 눈을 치켜떴다.

 

그런데 그때 이곡이 넘어갔던 담장 쪽이 보였다.

 

눈을 휘둥그렇게 뜬 그는 입을 반쯤 벌렸다.

 

그물처럼 엮어진 대나무발이 흔들거리고 있었는데 발에는 십여 개의 뾰족한 대나무창이 솟아 있었던 것이다.

 

‘뭐야? 누가 천풍장에 저런 조잡한 덫을 설치한 거지? 여기가 사냥터인 줄 아나?’

 

장 노인이 설치했을 리는 없고, 해동산은 설치할 줄도 모를 것이고, 그럼 초웅인가?

 

산적 생활을 하던 초웅은 사냥도 곧잘 했다고 했다. 덫을 설치했다면 초웅의 짓일 가능성이 제일 컸다.

 

그런데 왜 저런 걸 설치했을까?

 

그럴 만한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침입자를 물리치기 위해서!

 

풍천은 장원 안을 좀 더 세세히 살펴보았다.

 

예전과 다른 곳이 눈에 들어왔다.

 

지붕의 기와도 몇 군데 더 깨져 있고 기둥에는 전에 없던 칼자국이 나 있었다. 그리고 군데군데 핏방울이 떨어져 있었다. 제법 핏물이 많이 고였을 것으로 보이는 곳은 흙으로 덮어져 있었고.

 

“안을 살펴봐야겠수. 잠깐 여기서 기다리쇼.”

 

풍천은 공손이향과 이곡을 놔두고 급히 안쪽으로 들어갔다.

 

건물이라고 해봐야 달랑 세 채뿐이었다. 오래 걸릴 것도 없었다.

 

그런데 건물 세 채의 문을 열어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시신도 없다는 것이었다.

 

‘대체 어딜 간 거야?’

 

그때 이곡이 그를 불렀다.

 

“령주, 여기에 뭔가를 파묻은 것 같소이다.”

 

이곡은 아무렇게나 자라는 나무 몇 그루밖에 없는 정원에 서 있었다.

 

풍천은 그가 부른 곳으로 가보았다. 이곡의 말대로 뭔가를 파묻은 듯 흙이 뒤집어져 있었다.

 

공력을 손에 집중한 그는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땅이 한 자 깊이로 파이면서 검은 옷자락이 드러났다.

 

“뭐, 뭐야? 들어내 보쇼.”

 

눈이 휘둥그레진 풍천이 말하자, 이곡이 옷자락의 주인을 땅속에서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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