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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59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6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59화

 

159화

 

 

 

 

 

 

백서령이 말한 ‘용 가가’는 다름 아닌 신무전주 용후정의 둘째 아들인 용원명이었다.

 

그녀와 용원명은 어릴 때 정혼한 사이였는데 사마공유로 인해서 몇 년간 서먹서먹했었다. 남들은 그걸 보고 백서령의 마음이 변했으니 두 사람의 정혼은 깨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백초령은 아무도 모르는, 아니 하늘 아래에서 단 세 사람밖에 알지 못하는 어떤 일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슴이 아팠다. 아무것도 모른 채 죽은 사마공유가 불쌍해서.

 

‘죄송해요, 공유 오빠. 차마 말할 수가 없었어요.’

 

그럼 사마공유의 성격에 따지지도 못하고 혼자서 슬퍼했을 테니까.

 

백초령은 속마음을 감추고 최대한 밝은 웃음을 보이려 노력하며 언니의 혼인을 축하해주었다.

 

“축하해요, 언니.”

 

“아버님이 돌아오시면 바로 할 거야.”

 

“아버지도 아셔요?”

 

“아셔. 떠나시기 전에 말씀드렸거든.”

 

백초령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백서령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 거지? 함께 온 사람들은 누구야?”

 

“말하기 조금 복잡한 사정이 있었어요, 언니. 저를 구해준 사람과 천라지망을 뚫고 강서를 빠져나온 후 그 사람 집에 머물렀거든요. 바로 오고 싶었는데 신마성의 위태곤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는 말을 듣고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제야 온 거예요. 그리고 함께 온 사람들은 저를 보호하기 위해서 따라온 사람들이에요.”

 

백초령은 대충 얼버무렸다.

 

공손무헌은 그녀에게 어딜 가서든 불귀곡에 대한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만약 그 말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그와 관련된 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면서.

 

그게 누구든.

 

하지만 백서령의 입장에선 당연히 많은 것이 궁금했다.

 

“누가 너를 구해준 거야?”

 

“천우라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남창에서 죽었을 거예요.”

 

“천우? 신마성과 정체불명의 괴인들 손에서 너를 구했다면 대단한 실력을 지닌 사람 같은데 어느 문파의 사람이지?”

 

“천수전이라고 저도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어요.”

 

“후우, 좌우간 정말 다행이다. 그분이 누군지 몰라도 은혜를 입었구나.”

 

‘은혜를 입긴 했는데 솔직히 좋은 사람은 아니에요.’

 

백초령은 속으로 공손천우를 깔아뭉개고는 화제를 돌렸다.

 

“아버지가 구룡총회에 가셨으면 이곳은 누가 지휘해요?”

 

“장로원주님과 용 전주님이 통솔하고 있어. 영호 사형은 몸이 아직 완전치 못해서 그분들을 돕는 역할만 하시고.”

 

바로 그때였다. 밖에서 시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둘째 공자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래? 안으로 모셔.”

 

방문이 열리고 영호관이 안으로 들어섰다.

 

“무사했구나, 이 망아지 같은 말괄량이.”

 

둘째 사형은 항상 자신을 망아지 같다며 놀렸다. 전이었다면 입을 삐죽이며 반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그 말을 들으니 두 눈에 물기가 가득 찰 정도로 반가웠다.

 

“이사형!”

 

 

 

3

 

 

 

야심한 밤. 한 줄기 그림자가 비검당원들의 거처로 스며들었다. 객당을 나온 풍천이었다.

 

마침 비검당원들은 대부분 백무천을 따라가서 건물에 남아 있는 사람은 비상 대기조 다섯 명밖에 없었다.

 

소리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간 풍천은 사조의 거처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는 조장의 침상 옆에 있는 커다란 장으로 다가갔다.

 

장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떠날 때 채워놓은 게 아니었다.

 

주인이 바뀌었다는 말. 아무래도 그가 죽은 줄 알고 새로운 조장을 뽑은 듯했다.

 

그렇다면 형의 유품이 든 상자도 없을 터. 실망한 풍천은 눈을 좁혔다.

 

누가 가지고 있을까?

 

상자에 형의 유품이 들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문주가 가져갔을까? 아니면 백서령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석초산과 조환이 보관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백무천을 따라서 적련방으로 갔으니 당장 알아볼 수가 없었다. 조환을 만나서 형에 대한 것도 더 알아볼 생각이었거늘.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한 풍천은 일단 사조의 거처를 나왔다.

 

‘초령이에게 알아보라고 해야지.’

 

아침에 만나서 알아보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떠나는 게 늦어질 것이었다. 백초령이 아침에 바로 찾아올 것인지 알 수도 없고.

 

그는 백초령을 만나기 위해서 검향원이 있는 방향으로 신형을 날렸다.

 

 

 

정예무사들이 삼 할 이상 빠져나가긴 했어도 경비는 별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정예무사들이 없는 만큼 더욱 긴장된 분위기였다.

 

하지만 누구도 어둠 속에 녹아든 채 움직이는 풍천을 발견하지 못했다.

 

비검당을 나선 풍천은 단숨에 다섯 채의 건물을 지났다. 달빛 아래 고요히 누워 있는 검향원이 이십여 장 앞에 보였다.

 

풍천은 일단 움직임을 멈추고 검향원 일대의 경비를 살펴보았다.

 

경비무사야 두려울 것이 없지만 자칫 소란이라도 일면 이곳까지 찾아온 목적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었다.

 

백초령이 알게 되면 보나 마나 눈을 치켜뜨고 한소리 해댈 것이고.

 

‘잔소리 듣느니 조심하는 게 낫지 뭐.’

 

한 사람이 눈에 들어온 것은 그가 검향원으로 몸을 날리기 위해서 지붕 끝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자는 단층 건물의 뒷마당에서 뒷짐을 진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공을 수련하는 것은 아닌 듯했다.

 

뭔지 모를 고뇌에 찬 표정.

 

그는 그 상태에서 한참이 지나도록 손끝 발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풍천은 자신도 모르게 움직임을 멈추고 그를 주시했다.

 

처음 본 순간부터 예사롭지 않더니 보면 볼수록 기이한 감정이 느껴졌다.

 

‘누구지?’

 

처음 보는 자였다. 누군데 신검문의 중요 인물들이 기거하는 곳에서 저 정도로 자연스런 태도를 취하고 있는 걸까?

 

바로 그때 한 사람이 뒷마당으로 들어왔다.

 

새롭게 나타난 자는 뒷짐 지고 서 있는 자의 뒤로 다가가더니 고개를 살짝 숙이고 나직이 입을 열었다.

 

“전주께서 이공자를 찾으십니다.”

 

“지금 말이오?”

 

“아무래도 초령 아가씨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만 부른 거요,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부른 거요?”

 

“속하가 알기로는 이공자님만 부른 것 같습니다.”

 

지붕 위에 몸을 숨기고 대화를 듣던 풍천은 미간을 좁히고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이공자? 그럼 저자가 영호관인가?’

 

전주라 불릴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셋이다. 신무전주 용후정, 철검전주 군위청, 검웅전주 장산화.

 

누가 이 밤중에 영호관을 찾는 걸까? 왜?

 

사실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누가 영호관을 찾든 무슨 상관이랴.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신경이 쓰였다. 영호관이란 자 때문이었다. 분명 오늘 처음 보는 자이거늘 언젠가 봤던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거기다 더해서 본능을 자극하는 끈적끈적한 느낌이 그의 발걸음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이상해. 왜 저렇게 심각한 표정이지?’

 

마치 중대사를 앞둔 사람처럼.

 

그가 바라보는 사이 영호관이 나중에 나타난 자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슬쩍 바람에 몸을 싣고 지붕을 하나 넘은 풍천은 영호관이 어디로 가는가 알아보았다.

 

무사와 함께 신무전 쪽으로 간 영호관은 위사와 몇 마디 나누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풍천은 영호관이 신무전 안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용후정과 영호관이 밤중에 만나서 초령이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가까웠나?’

 

두 사람이 밤에 만나 초령이 이야기를 나누든, 멱살 잡고 싸우든 자신이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다만 낮에도 충분히 시간이 있는데 왜 하필 늦은 밤에 만나느냐 하는 것이 의문일 뿐.

 

그때였다. 경비무사 하나가 고개를 쳐들고 지붕 위를 바라보았다. 달빛에 늘어진 지붕 그림자가 마당을 반쪽으로 가른 상태였는데, 그 한쪽에 커다란 호박처럼 둥근 그림자가 하나 불쑥 솟아 있는 게 아닌가.

 

“지붕 위에 누구냐?”

 

풍천은 귀찮은 일이 벌어지기 전에 신형을 날려서 지붕을 벗어났다. 그리고 경비무사들의 발걸음 소리를 뒤로 한 채 검향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풍천이 사라진 직후 신무전 안에서 한 사람이 잔뜩 인상을 쓰며 나왔다. 다름 아닌 악진표였다.

 

‘제길, 되는 일이 없군.’

 

그는 조금 전에 나누었던 용후정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천풍장의 늙은이는 처리했느냐?”

 

“사람을 보냈으니 곧 처리될 것입니다.”

 

“멍청한 놈. 처리하라 한 지가 언젠데 여태 지체하고 있단 말이냐?”

 

“얼마 전에 사람을 보냈습니다만 웬 곰 같은 놈만 하나 있을 뿐 정작 그 늙은이가 없어서 사흘 동안 지켜보다가 그냥 돌아왔다고 합니다. 해서 이번에는 늙은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처리하라 했습니다.”

 

“혹시라도 그 늙은이가 백무천에게 청부사실을 알리면 곤란해지니 확실하게 처리하도록 해라.”

 

“예, 주군.”

 

“곧 대공께서 세상으로 나오실 것이다. 그전까지 그곳을 정리하지 못하면 네놈의 머리부터 부숴버릴 것이니라.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내가 직접 가봐야겠어. 그 자식하고는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았는데…….’

 

악진표는 짜증이 났지만 이참에 풍천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야겠다고 다짐했다.

 

 

 

4

 

 

 

신무전의 직속 호위무사들은 일절 입을 열지 않고 영호관을 방 안으로 안내했다. 방 안에는 중후한 인상의 용후정이 혼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어서 오게나.”

 

영호관은 포권을 취하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러고는 용후정의 맞은편에 앉은 다음 입을 열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초령이가 그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아는가?”

 

“확실하게는 알지 못합니다. 뭔가 감추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부담을 주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용후정은 찻잔을 내려놓고 영호관을 직시했다.

 

“자네 혹시…… 하늘 밖에 하늘이 있다는 걸 알고 있나?”

 

“무슨 말씀이신지……?”

 

영호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용후정은 영호관의 한 점 흔들림 없는 눈빛을 보고 입술을 비틀었다.

 

“사람들은 강호가 저절로 굴러가는 줄 알고 있지.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네.”

 

“그럼 누가 인위적으로 조종하기라도 한단 말씀이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말도 안 됩니다. 어느 누가 강호를 조종할 수 있단 말씀입니까? 그런 일은 오패천조차 불가능합니다.”

 

용후정의 입가로 묘한 웃음이 번졌다. 조소처럼 보이기도 했고 놀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조금 전에 말하지 않았나? 하늘 밖에 하늘이 있다고.”

 

“그럼 정말로 그런 곳이 있단 말씀입니까?”

 

“우리는 그곳을 천외천이라 부르지.”

 

‘천외천?’

 

영호관은 용후정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나직이 물었다.

 

“설마…… 초령이가 그곳에 있었단 말씀이기라도……?”

 

“그런 것 같더군.”

 

“전주님께선 그걸 어떻게 아신 겁니까?”

 

용후정은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찻물로 입술을 축였다. 영호관은 석상처럼 굳어진 채 용후정의 대답을 기다렸다.

 

찻잔을 내려놓은 용후정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조금 전 연락을 받았는데 백초령이 지금까지 천외천에 있었으며 천주의 둘째 손자와 혼인할 사이라고 하더군.”

 

영호관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전주님과 천외천은 어떤 사이기에 그런 연락을 주고받는 겁니까?”

 

용후정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맺혔다.

 

“문주가 말해주지 않던가? 내가 천외천의 사람이란 걸.”

 

영호관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사부님께서도 아시고 계셨단 말입니까?”

 

“그러고 보면 참 대단한 사람이야. 제자들에게까지 말하지 않았다니.”

 

영호관은 입을 꾹 닫고 용후정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때 용후정이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 천외천의 사람이 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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