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1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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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5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155화
155화
풍천은 섬뜩한 기운의 주인들이 공손무헌을 공격하는 걸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들이 왜 공손무헌을 공격하는지, 누구의 명령을 받고 그러는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놈의 권력욕이 뭔지…….’
우르르릉, 쩌저저적.
공손무헌과 사유의 격돌이 삼 초를 넘어가자 벽이 무너지고 천장이 완전히 부서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막상막하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공손무헌이 불리해지고 있었다.
상처도 상처지만 공손무헌은 그동안 자신의 진재절학을 숨기려 했기에 실전의 경험이 부족했다.
반면 사유는 목숨을 건 실전으로 단련된 자들이었다. 그들은 탈출로를 완벽히 틀어막은 채 공손무헌을 압박하고 있었는데 이대로 조금만 더 지나면 공손무헌도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 누구도 바로 옆에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콰르르릉! 콰광!
굉음과 함께 또 한쪽의 벽이 무너졌다.
정면격돌의 여파로 유이와 유사가 밀려나고 한 발 뒤로 처져 있던 유일과 유삼이 공손무헌을 공격했다.
공손무헌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한쪽으로 미끄러지면서 상대의 공격을 막았다.
풍천은 사유가 두 패로 갈라진 틈을 놓치지 않고 숨어 있던 곳에서 몸을 날리며 전음을 보냈다.
[그 둘만 맡으쇼!]
공손무헌은 목소리의 주인이 풍천임을 알고 정광을 번뜩였다.
그 사이 풍천은 밀려난 두 사람을 덮쳤다.
밀려났던 두 사람은 본능적인 감각으로 뭔가가 다가온다는 것을 눈치채고 흠칫하며 어둠을 주시했다.
순간 풍천의 천라신수가 유이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대경한 유이는 급히 몸을 틀면서 반사적으로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유사도 유이를 돕기 위해서 감각적인 공세로 허공을 난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자신들의 공격이 허공을 갈랐다는 걸 직감하고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유이는 깊게 침잠된 눈을 번뜩이며 나직이 말했다.
“조심해라, 아우. 환술을 익힌 놈 같다.”
유사도 검을 움켜쥐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어디로 갔지?’
그들은 어둠을 대낮처럼 볼 수 있었다. 몸을 숨기고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기술이라면 천하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섬뜩한 기운만 느껴질 뿐이었다. 놓치면 절대 안 될 것 같은 그런 기운이!
천외천에 자신들의 눈을 완벽히 속일 수 있는 자가 있었던가?
긴장한 두 사람은 전신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적을 찾으려 했다.
그 사이 풍천은 유령처럼 움직여서 그들의 뒤로 돌아갔다.
은밀함과 빠름이 사유의 장점이었다. 그로 인해서 공손무헌이 고전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장점은 어느 것도 풍천보다 나은 게 없었다. 그 바람에 장점은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버렸다.
‘그 정도로는 나를 막지 못해! 죽었다고 복창해, 두 사람!’
풍천은 벽을 향해 손을 저었다.
반쯤 무너진 벽에 장식처럼 걸려 있던 단창 하나가 소리 없이 손 안으로 빨려들었다.
그 직후 흠칫하며 몸을 돌리려던 유이가 눈을 부릅뜨고 억눌린 신음을 토해냈다.
“끄억.”
동시에 등을 뚫고 가슴으로 삐져나온 뾰족한 창날을 타고 핏물이 뿜어졌다.
유사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며 유이의 뒤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한 자가량 뻗어 나온 검강이 유이의 등을 뚫은 창대는 물론 일 장 반경을 수십 조각으로 갈랐다.
그러나 풍천은 이미 그 자리를 벗어나서 유사의 뒤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손바닥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흠칫한 유사는 번개처럼 몸을 틀었지만 이미 마음이 흔들린 그는 천라신수를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퍼벅!
어깨가 함몰된 유사는 신음을 삼킨 채 이를 악물고 정신없이 뒤로 물러섰다.
풍천은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유사는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검을 내지르며 반격했다.
하지만 한쪽 어깨가 함몰되면서 중심이 흐트러지고 검세도 전에 비해서 현격히 약해진 상태였다.
풍천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상대의 검세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는 좌수로 천라신수를 펼쳐서 유사의 팔을 잡아 부러뜨리고, 우수를 칼날처럼 뻗어 유사의 목을 직격했다.
푹!
“끄으으으.”
머리가 뒤로 젖혀진 유사는 붕 떠서 일 장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풍천은 그쯤에서 손을 멈추고 한쪽이 무너진 천장 위로 올라갔다.
쾅!
그때 공손무헌의 혼천무령기에 정통으로 가슴을 맞은 유삼이 붕 날아가서 반쯤 무너진 벽에 틀어박혔다.
공손무헌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마지막 남은 유일을 향해 쌍장을 들어올렸다. 그의 손에서 흘러나온 혼천무령기가 유일을 압박했다.
“크크크,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군. 우리를 이해해달라고는 하지 않겠소, 이공.”
유일은 참담한 표정으로 큭큭 대더니 칼을 던지고 스스로 천령개를 내려쳤다.
풍천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죽음으로써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 자가 대공이라는 증거가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공손무헌은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는 어차피 유일을 심문할 생각이 없었다.
유일의 입에서 공손무백의 이름이 나와봐야 형제들의 피만 더 많이 흐를 뿐.
‘이 일은 나와 형님이 책임져야 할 일이거늘…….’
무심한 눈으로 유일의 주검을 바라본 공손무헌은 풍천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만 가보게. 사람들에게 들키면 자네도 형님의 표적이 될 거네.]
공손무헌은 크고 작은 상처를 십여 군데나 입은 상태였다.
온몸이 피로 젖고 얼굴이 해쓱해진 상태. 내상도 제법 심한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남 걱정부터 하다니.
‘그냥 놔두어도 죽진 않을 것 같군. 아픈 척하면 어디 덧나나? 상관 노형이나 이 양반이나…….’
[킁, 걱정 마쇼. 갈 테니까.]
풍천은 한마디 툭 던지고 지붕 위를 빠져나왔다. 싸움이 끝났다는 걸 안 호위무사들이 천승전 안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공손무헌의 말대로 그들에게 들켜봐야 좋을 게 없었다.
그런데 그가 환신술을 펼쳐서 어둠에 몸을 숨기고 천승전을 빠져나가는데 공손무헌의 목소리가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오늘, 고마웠네.]
‘쳇! 그래도 고마운 줄은 아는군.’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 풍천도 전음으로 한마디 했다.
[조심하쇼.]
공손무헌은 무심한 눈으로 풍천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예상보다 빨랐어. 대풍이 나가고 난 후 일을 벌일 줄 알았거늘…….’
그때 세 사람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천승전 안의 상황과 피로 물든 공손무헌을 보고는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눈을 부릅떴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대체 이게 어찌 된 일……!”
공손무헌은 비틀거리며 한 손을 뻗어서 기둥을 붙잡았다. 긴장이 풀리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조용히 하게. 벌어질 일이 벌어진 것뿐이니까.”
시기가 조금 빨랐을 뿐.
그들 중 삼십 중반의 장한이 안타까움과 분노와 자책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상처가 심하십니다. 일단 선약당으로 가시지요.”
그는 공손무헌이 가장 신임하는 수하 중 하나로 사군명이라는 자였다.
사군명은 자객이 난입했음에도 감지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공손무헌은 그의 마음을 알기에 쓴웃음을 지으며 자객들의 정체를 말해주었다.
“사유가 모두 왔네. 자네들의 잘못이 아니야.”
사군명은 물론이고 옆에 있던 두 사람도 경악했다.
“저들이 사유란 말씀입니까?”
“천주의 명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자들이 어떻게……?”
“맙소사!”
공손무헌은 급한 대로 서너 곳을 지혈하고 흐트러진 진기를 안정시켰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후 명을 내렸다.
“먼저 위사들을 단속해서 누구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 그리고 명 아우는 직접 아버님께 가서 내 말을 전해라.”
무심헌으로 돌아온 풍천은 투덜거리며 자신의 옷을 살펴보았다. 피가 튀거나 이상이 있으면 신예가 이상하게 생각할지 몰랐다.
“제길, 그놈들 때문에 시간만 버렸네.”
그래도 자신이 달려간 덕에 공손무헌이 목숨을 구했으니 그게 어딘가.
엄밀히 따지면 상관경의의 청부를 해결한 셈이 아닌가 말이다. 비록 공손무백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어서 위험이 다 가시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백 냥 중 백 냥은 번 셈이지 뭐.’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공손무헌이 설마 떼어먹겠어?
그는 좋아진 기분을 그대로 살려서 운기조식을 했다. 그리고 운기를 하는 김에 다시 진기를 두 갈래로 운용해보았다.
왠지 이번에는 잘 될 것 같았다.
제3장. 신예는 무서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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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는 아침이 되어서야 서서히 멎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의 방을 나선 신예는 풍천의 방을 바라보았다.
풍천의 방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신예는 고개를 모로 꼬고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왜 이렇게 조용하시지?”
곡을 떠나기 위해서 준비할 것이 많다고 했다. 그런데 아침 식사 시간이 다 되도록 나올 생각을 하지 않다니.
졸다가도 식사 시간만 되면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령주님께서 말이다.
참다못한 그녀는 방문을 두들기며 풍천을 불렀다.
“령주님.”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가슴이 섬뜩해진 신예는 방문의 고리를 잡고 슬며시 잡아당겼다.
‘서, 설마…… 옷을 다 벗고 주무시는 건 아니겠지?’
신예는 문이 반쯤 열리자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이밀며 풍천을 불렀다.
“령주님…….”
찰나였다.
번쩍!
방 안이 환해지는가 싶더니 눈앞이 하얗게 변하면서 알 수 없는 힘이 그녀를 밀어냈다.
“어멋!”
뒤로 주르륵 밀린 신예는 비 젖은 땅에 털썩 주저앉아서 멍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하얗던 눈앞이 제대로 보인 것은 다섯을 셀 시간이 흐른 후였다.
엉덩이가 시원한 느낌. 자신이 젖은 땅에 주저앉아 있다는 것을 깨닫고 화들짝 놀란 신예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때 고개를 사선으로 꺾은 풍천이 머리를 내밀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너 왜 거기 앉아 있냐?”
‘령주님이 밀었잖아요!’
그렇게 소리치려던 신예는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아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울상이 된 그녀는 입술을 삐죽이며 엉덩이를 털었다.
“눈앞이 갑자기 하얗게 변하는 바람에…….”
“하얗게? 왜?”
“저도 몰라요. 방문을 여니까 방 안이 환해졌어요.”
신예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풍천은 기쁨에 겨워서 찢어지려는 입을 간신히 붙잡았다.
‘그럼…… 성공한 건가?’
신예가 그를 부를 때쯤 이원심법을 따라 운용된 두 기운이 손끝을 향해 달려갔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은 그는 박수를 치듯이 두 손바닥을 마주쳤다.
바로 그때 문이 열리고 신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있는 상태에서 검었던 앞이 일순간 붉게 변했다. 마치 눈을 감고 빛을 보면 앞이 붉게 보이는 것처럼.
눈을 뜬 그는 주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 싶어서 방 안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기대했던 바와 달리 그의 주위에선 아무런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실망한 그는 침상에서 내려와 열려 있는 방문 밖을 바라보았다. 저만치 주저앉아 있는 신예가 보였다.
‘왜 저러고 있지? 땅도 젖어 있는데 옷 다 버리게 무슨 짓이야? 미끄러져서 넘어졌나?’
의아하게 생각한 그는 머리를 내밀고 신예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방 안에서 느닷없이 환한 빛이 쏟아졌다고 하질 않는가 말이다.
두 진기의 충돌로 전광이 번쩍였다는 뜻!
‘드디어 뇌정천결을 익힐 수 있게 됐어!’
심장이 두근거린 풍천은 자신의 기쁜 마음을 최대한 감추고 태연한 표정으로 신예에게 말했다.
“신예가 아무래도 몸이 많이 약해졌나 보다. 가서 맛있는 거 많이 먹어라. 그리고 돌아올 때 내 것도 두 배로 가져와라. 마지막 식사니 배부르게 먹고 가야지.”
신예는 힐끔 풍천을 흘겨보고는 몸을 돌렸다.
“예, 령주님.”
볼이 통통하니 부풀었다.
‘령주님은 내 생각도 안 해주고 자기 먹을 것만 따져. 두 배를 가져오려면 얼마나 힘든데, 쳇.’
하지만 풍천도 가끔은 신예를 생각해주었다.
“신예야, 아무리 급해도 옷은 갈아입고 가라. 누가 보면 옷 입은 채 일봤다고 놀리겠다. 크크크.”
얼굴이 벌게진 신예는 씩씩대며 자신의 방으로 뛰어갔다.
‘씨이, 숙녀에게 그딴 소리를 하다니. 두고 봐.’
반 시진 후. 신예는 맛있는 음식으로 배불리 먹고 풍천의 명대로 식사를 평소보다 두 배나 가져왔다.
그런데 잠시 후 요리를 뒤적거리던 풍천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신예야, 양은 많은데 왜 고기는 한 점도 없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