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1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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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3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153화
153화
“내일 강호로 나간다고?”
“그러라고 하더군요.”
“밖으로 나가게 되면 할 일이 많아질 거야. 물론 천주님이 내리신 임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네. 무슨 말인지 모르진 않겠지?”
“흐흐흐, 그 정도야 저도 알죠.”
“어쩌면 힘든 임무가 떨어질지도 모르네. 하지만 나와 대공께선 그대의 능력을 믿고 있으니 열심히 해서 대공께 충성을 다하도록 하게. 그럼 그대에게도 적잖은 대가가 돌아갈 거야.”
풍천이 허리를 바짝 세우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걱정 마십쇼! 제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약속 하나만큼은 철저하게 지키는 놈입니다. 나중에 아시겠지만 저에게 준 돈이 절대 아깝지 않을 겁니다.”
“자네의 확고한 의지를 알게 되니 나도 마음이 놓이는군. 하지만 너무 자신하진 말게. 세상일이란 것은 언제 어느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하, 하. 걱정 마시라니까요? 천재지변이 없는 한 저는 반드시 약속을 지킬 겁니다. 그리고 오늘의 결정을 절대 후회하지 않게끔 만들어드리죠.”
“그 정도 자신이 있다니 일단 믿어보지.”
“감사합니다. 아, 혹시라도 걱정되시면 나머지 칠백 냥은 임무를 완수한 후에 받는 것으로 하죠.”
교비은은 칠백 냥이라는 말에 흠칫해서 되물었다.
“칠백 냥? 무슨 말인가? 남은 것은 이백 냥 아닌가?”
“아하하, 저는 계약금으로 삼백 냥을 주셔서 그 정도는 주실 줄 알았죠. 근데 제가 잘못 생각했나 보죠?”
풍천은 조금 실망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교비은은 어차피 자신의 돈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었기에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알겠네, 대공께 말씀드려보지. 자네가 열심히 한다면 대공께서도 그 정도는 생각하고 계실 거야.”
“그럼 문서 작성이라도…….”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건가?”
“그럴 리가요? 하, 하, 하. 뭐 좋습니다. 교 대협을 믿고 구두로만 약속하지요. 대신! 약속을 어기시면 안 됩니다. 저는 약속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누가 약속을 어기면 참지 못하거든요.”
“걱정 말게! 커험, 그럼 이만 가보겠네.”
교비은은 더 있어봐야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풍천은 그런 교비은을 보며 웃는 얼굴로 화답했다.
“멀리 나가지 않겠습니다.”
풍천은 교비은이 나간 뒤에 칠채 구슬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흠 하나 없었다. 황금 삼백 냥짜리라는 게 실감 날 정도로 아름다운 광채가 눈을 황홀하게 했다.
‘이게 황금 삼백 냥짜리란 말이지?’
서서히 정신이 들자 구슬을 들고 있는 손이 떨렸다.
‘흐으, 이 작은 구슬이 천풍장 몇 채 가치라니.’
그때 문득 자신이 지닌 청광석은 어느 정도 값어치가 나갈지 궁금해졌다.
벽라동에 지천으로 깔려 있어서 크게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칠채 구슬과 비교해보니 제법 비쌀 것 같았다.
‘주인만 잘 만나면 두 개 합해서 황금 백 냥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돈주머니에 있는 거 다 합하면 얼마나 되는 거야?
풍천은 하나하나 계산을 해보고는 오뉴월에 배부른 강아지처럼 축 늘어져서 실실 웃었다.
‘크크크, 장 노인이 알면 뒤로 넘어져서 뒤통수가 깨질 거야.’
5
공손무헌은 백초령을 만나 밖으로 나갈 거라는 말을 해주었다.
“내일 오전에 너를 호위할 사람들이 올 것이다. 그들과 함께 가도록 해라.”
“고마워요, 대협.”
“내게 고마워할 것 없다. 어차피 혼인을 하려면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허락을 받아야 할 테니까.”
백초령은 ‘혼인은 할 수 없어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억지로 눌러 꿀꺽 삼켰다. 혼인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보내주겠다는 말을 취소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공손무헌이 백초령의 마음을 눈치채고 쓴웃음을 지었다.
“불만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시간을 가지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해라. 일찍 부모를 여의는 바람에 성격이 조금 비뚤어져서 그렇지 천우도 그리 나쁜 아이는 아니란다.”
움찔한 백초령은 공손무헌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그건 저도 알아요. 천우 공자가 아니었으면 남창에서 죽었을지 모르니 신세진 것도 있구요.”
그것 때문에 못 이긴 척 별다른 반항을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혼인이라는 건 마음이 중요한데 아직 천우 공자를 받아들일 만한 상황이 안 돼 있어요.”
“네 마음 이해한다. 집으로 돌아가거든 시간을 가지고 차분하게 생각해보도록 해라.”
백초령은 더 이상 반발해봐야 역효과만 있을 거라는 생각에 순순히 공손무헌의 말을 받아들였다.
“예, 대협.”
결정은 어차피 자신이 내리는 것. 생각해보는 것쯤이야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네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본천에 대해서 말하면 안 된다. 명심해라.”
“걱정 마세요. 절대 말하지 않을게요.”
공손무헌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손천우가 왜 백초령에게 빠져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백초령은 보편적인 여인처럼 고분고분한 성격이 아니었다. 아양도 떨 줄 몰랐다. 오히려 톡 쏘아대기가 일쑤고 반항적으로 보일 만큼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그 대신 직설적이고 솔직했다. 또한 성격이 강하긴 하지만 그 안에 교활함과 표독함이 일절 내포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순수한 반항기일 뿐.
그리고 반항적으로 행동하고 말하면서도 남을 피곤하게 하지 않았다.
거기다 아름다운 외모까지.
새삼 백초령의 매력을 하나하나 뜯어본 공손무헌은 내심 만족했다.
‘보면 볼수록 괜찮은 아이야.’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웃음 띤 표정으로 말했다.
“필요한 것 있으면 미리 챙겨놓도록 해라.”
“예, 대협.”
제2장. 천상선원 입구의 벽화(壁畵)에 숨겨진 비밀(秘密)
1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날 밤.
기분이 한껏 좋아진 풍천은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세 시진째 움직이지 않고 운기행공을 했다.
이제 날이 새면 천외천을 떠나게 된다.
우습게도 외인인 자신이 폭풍의 핵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절대 바라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졸고 있는 배부른 강아지처럼 한가로이 살고자 했던 자신이 어쩌다가 복잡한 강호의 싸움 한가운데로 던져졌는지…….
물론 그렇다 해서 저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때리는 대로 맞아줄 생각도 없고, 혼자 열 받아서 미친 듯이 날뛸 생각도 없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 거야.’
강호가 홱 뒤집어지든, 푹 꺼져서 땅 밑으로 사라지든 말든.
물론 단천무령주로서 받는 돈은 철저히 챙겨야겠지만. 공짜로 일해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근데 두 갈래 진기를 함께 움직이는 것도 쉽지가 않네.’
천풍심법의 기운을 일으킨 상태에서 자신이 벽라진기(碧羅眞氣)라 이름 붙인 또 한 줄기의 진기를 움직이려니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거꾸로 해도 마찬가지였고.
그리고 저항이 크다 보니 두 진기를 끌어올린 상태에서 검을 펼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두 기운 중 한쪽을 현저히 약하게 운용하면 그나마 나았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벼락을 흉내 낼 수조차 없었다.
‘제길, 몸을 두 개로 나누어서 따로따로 운기 할 수도 없고…….’
그때 문득 번개처럼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응? 몸을 두 개로 나눠?’
몸을 정말로 나눌 재주는 없지만 그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잠을 자면서도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익혔던 이원심법. 그것이라면 서로 다른 두 가지 심법을 동시에 운기할 수 있을지도.
‘요즘은 자주 펼칠 일이 없어서 깜박 잊었어.’
이원심법이 도움이 될지, 아니면 별무소용일지는 해봐야 알 일.
풍천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원심법을 펼쳐서 정신을 둘로 나누었다.
평소라면 한쪽은 자고 한쪽은 정신이 반쯤 깨어서 주위 상황을 살피는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잠을 자야 할 정신으로 천풍심법을 운기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벽라진기를 움직여보았다.
운기를 하는 게 조금 어색하고 기운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풍천은 실망하지 않고 진기를 움직이기 위해서 계속 노력했다.
2
풍천이 기를 쓰고 이원심법을 운용하고 있을 즈음 공손무백이 혼자서 천상궁으로 들어섰다.
양곽연은 공손무백이 좋은 뜻으로 찾아오지 않았다는 걸 직감하고도 그의 앞을 막지 못했다.
“대공께서 오셨습니다, 천주. 어찌하오리까?”
공손량은 공손무백이 왔다는 말에 표정이 굳어졌다.
“들어오너라.”
공손무백은 양곽연을 향해 냉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양 대주는 철저해서 좋아. 언제 한번 깊은 이야기 좀 나눠보세.”
양곽연은 공손무백의 뒤통수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고개를 내밀었다.
‘혼자 벽 보고 이야기 나누시지!’
공손량을 만난 공손무백은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았다. 그럴 것도 없었다.
어차피 구구절절 이야기 해봐야 모든 게 몇 마디 말로 귀결될 뿐이었다.
―제 뜻대로 하겠습니다.
―세상으로 나가 천하를 움켜쥐겠습니다.
그는 간단하게 자신의 의향을 밝히고 부친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제 아버님만 허락하시면 됩니다. 본천의 영광을 위해서 이 아들이 뜻대로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아버님.”
“어리석은 놈, 강호를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라.”
“저는 한 번도 강호를 우습게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본천의 힘이 강호를 좌우할 수 있다고 믿을 뿐이지요.”
공손량은 자신을 압박하는 공손무백을 노려보았다.
“그만 돌아가라. 그 일에 대해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자.”
공손무백도 더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자신의 뜻을 직접적으로 밝힌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아버님, 소자를 불효자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님도 아시다시피 신마성이 본격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오래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 같으니 부디 빠른 결단을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공손무백이 나가자 공손량은 의자의 손잡이를 잡고 힘들게 앉았다.
온몸이 무력감으로 축 늘어진 그는 한참 만에야 고개를 들고 힘없이 명을 내렸다.
“은양, 가서 무헌이를 오라고 해라.”
“예, 천주.”
반 각 후. 공손무헌이 찾아오자 공손량은 공손무백과 나눈 이야기를 모두 해주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공손무헌은 눈을 들어 공손량을 직시했다. 그리고 미리 준비라도 한 듯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형님의 뜻을 받아주십시오. 그리고 망혼과 천상선원만 남기고 나머지 세력에 대한 명령권을 형님에게 모두 넘기십시오.”
공손량은 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정도 가지고는 무백이를 견제할 수 없을 텐데?”
“그래서 그들만 남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형님도 더 이상의 피를 보려 하지 않을 테니까요.”
“으으음, 네 말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만 그럼 무백이를 어떻게 견제한단 말이냐?”
“형님이 세상으로 나갈 게 확실한 이상 결국 그 일은 밖에서 해결해야 할 일, 모자라는 힘은 밖에서 구하면 됩니다. 그리고 일이 잘 해결되면 천상선원의 어르신들께서 뒷정리를 하는 거지요.”
“우리까지 조상님들께서 남기신 유훈을 어기잔 말이더냐?”
“저는 그분들의 유훈이 모두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서 잘못된 것은 이 기회에 바꾸었으면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아버님은 천상신문의 숨겨진 전설에 대해서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