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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51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3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51화

 

151화

 

 

 

 

 

 

제1장. 마침내 허락은 떨어지고

 

 

 

 

 

1

 

 

 

풍천은 실망감과 아쉬움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머리 꼭대기에서 활화산처럼 분노의 불길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조금만 더, 더도 말고 숨 두 번 쉴 정도의 시간만 있었으면 탄유를 흉내라도 내봤을 텐데!

 

해본 것과 해보지 못한 것과는 그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크거늘!

 

하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몸을 단숨에 두 조각으로 갈라버릴 것 같은 예리한 기운이 대기를 가르며 밀려들고 있는 것이다.

 

‘대체 어떤 늙은이가……?’

 

대경한 풍천은 미끄러지듯이 이 장을 물러서며 일단 상대의 공격을 피했다. 어찌나 그 움직임이 빨랐는지 본래의 자리에 잔상이 남을 정도였다.

 

찌이이익.

 

바위처럼 단단한 바닥이 반 자 깊이로 파이며 일 장가량 갈라졌다.

 

“흥, 문오 녀석 말대로 제법 날쌘 놈이로구나.”

 

문오? 화문오를 말하는 건가?

 

하지만 풍천은 생각할 틈이 없었다. 바닥을 가른 예리한 기운이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붙고 있어서 조금만 방심해도 몸이 두 쪽 날 판이었다.

 

그는 결국 암습자의 공세를 벗어나기 위해서 천풍무영류를 펼쳤다. 일단 공세를 벗어나고 적이 누구지 알아야 반격을 하든가 말든가 할 것이 아니겠는가.

 

“허어, 천하에 그런 신법이 있다니!”

 

암습자는 천풍무영류를 대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는 풍천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똥파리처럼 악착같이 따라붙었다.

 

풍천은 그런 암습자의 능력에 속이 탔다.

 

‘아 씨발, 무슨 놈의 고수가 이렇게 많아?’

 

상대의 신법이 자신을 능가할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그가 자신하는 천풍무영류를 펼쳤는데도 위치를 파악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신술을 펼칠까?

 

그러나 이곳은 천외천이 아닌가. 자신이 펼친 환신술을 저들이 알아보기라도 하면 문제는 더욱 커질 것이었다.

 

대공은 물론이고 천외천의 모두가 자신이 불귀곡에 들어온 의도를 의심할 테니까.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천풍무영류를 펼치며 피하기만 할 수도 없는 일. 풍천은 이를 악물고 방법을 바꾸기로 작정했다.

 

일단 상대와의 거리를 벌린 그는 우뚝 서서 검에 모든 공력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상대가 이 장 거리로 접근하자 검을 쭉 뻗으며 승광을 펼쳤다.

 

일순간 열여덟 줄기의 검광이 그물처럼 뻗어가며 암습자를 뒤덮었다.

 

“어헛!”

 

화들짝 놀란 암습자는 지팡이로 땅을 찍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풍천은 재차 공격을 하지 않고 암습자를 노려보았다.

 

천상선원의 원로인 화문오를 무려 ‘녀석’이라고 부른 사람이었다. 끝까지 싸워서 이긴다 해도 좋을 게 없었다.

 

그런데 삼 장 앞에 내려서는 암습자를 노려보던 그는 고개를 모로 꼬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암습자는 괴상하게 생긴 노인이었다.

 

다섯 자나 될까 싶은 키에 붉은 장포를 걸치고 불그스름한 머리카락은 둘둘 말려서 머리 위에 뿔처럼 세워져 있었다. 기다란 수염은 어찌나 긴지 배꼽까지 늘어져 있고 작은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일 만큼 커다란 눈에선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꼭…… 붉은 도마뱀 같군. 크, 큭.’

 

풍천은 노인을 본 순간 분노가 봄눈 녹듯 수그러들고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오려 했다.

 

하지만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고 노인을 다그쳤다.

 

“노인네는 누군데 남의 수련을 방해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거요? 나하고 웬수 진 일이라도 있어요? 예? 누구냐니까요? 천외천 사람이 맞긴 맞아요? 한참 중요한 순간에 어디서 이상한 노인네가 나타나서…….”

 

풍천이 쉬지 않고 다그치자 뿔 머리가 달린 노인은 눈을 치켜떴다.

 

“이놈이……!”

 

“나이가 너무 들어서 귀가 먹었어요? 제 말 안 들려요?”

 

“들려, 이놈아!”

 

“그런데 왜 대답을 안 해요?”

 

그에 대해선 뿔 머리 노인도 할 말이 있었다. 툭 튀어나올 것처럼 눈을 치켜뜬 노인은 벌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이놈아, 네가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말했잖아!”

 

“그거야 노인네가 나를 죽이려고 하니까 화나서 그런 거잖아요!!”

 

“내가 네놈을 죽이려고 공격한 줄 알아? 그냥 시험해본 거야, 이놈아!”

 

“저 땅 갈라진 거 안 보여요? 제가 공격을 막아냈으니까 망정이지 실력이 조금만 모자랐어도 죽었을걸요?”

 

“그래서? 나한테 화풀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곧 죽게 생긴 노인네에게 무슨 화풀이를 해요? 내가 뭐 노인네처럼 경우 없는 사람인 줄 알아요?”

 

“뭐야? 이놈이!”

 

“이놈이고 저놈이고, 저를 왜 죽이려고 했는지 그 이유부터 말씀해보시라니까요? 제가 노인장 때문에 얼마나 큰 손해를 본 줄 알아요?”

 

뿔 머리 노인은 코를 씰룩이며 풍천을 응시했다.

 

그리고 천천히 숨을 고르더니 짧게 물었다.

 

“네가 문오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며?”

 

그 이야기?

 

천상신문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 같다.

 

‘보기에는 안 그래 보이던데 입이 되게 가볍네.’

 

풍천은 짜증을 내듯이 툭 쏘아붙였다.

 

“했죠. 왜요?”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한 거지?”

 

풍천은 슬쩍 말을 돌리며 별것 아니라는 투로 대답했다.

 

“그냥 한번 장난으로 해본 말 가지고 왜 그렇게 정색하쇼?”

 

“장난으로 그냥 한번 해본 말이라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본천을 모욕하는 말을 그냥 해봤단 말이지?”

 

‘그렇다니까요?’ 그렇게 대답하려던 풍천은 슬쩍 노인의 눈치를 봤다. 어감이 이상했다.

 

그는 말을 돌려서 노인의 뜻을 떠봤다.

 

“그럼 안 되나요?”

 

“안 될 것은 없지. 몸이 다섯 조각으로 갈라져서 죽어도 괜찮다는 마음이라면 무슨 짓을 못 할까?”

 

헉!

 

“어디 확실히 말해봐라. 정말 그런 마음으로 한 거냐? 아니면 뭘 알고서 한 말이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장난으로 한 말이라고 하면 천외천 모욕죄로 처벌받고, 진짜라고 하면 의심을 받을 판이다.

 

‘이놈의 입이 문제라니까. 좀 더 참았어야 하는데…….’

 

말할까, 말까? 한번 모험을 해봐?

 

노인의 표정을 보니 악심은 없는 것 같다. 혼자 온 걸 보니 일을 크게 벌일 것 같지도 않고.

 

하긴, 상관경의의 말대로라면 공손무헌도 천외천이 벽라족에게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지 않던가.

 

그렇다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또 없으란 법도 없었다.

 

풍천은 뿔 머리 노인을 직시한 채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만약 제가 뭔가를 알고서 한 말이라면 어떻게 할 건데요?”

 

이번에는 뿔 머리 노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정말 네가…… 뭘 알고 있단 말이냐?”

 

그때였다. 무심헌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풍천은 대답을 미루고 고개를 돌렸다. 신예가 건물을 돌아 나오고 있었다.

 

“령주님, 거기서 뭐하세요? 또 무슨 일 저지른 거예요?”

 

‘저것이! 내가 뭐 매일 일만 저지르는 사람인가?’

 

그런데 풍천이 신예를 향해 눈을 부라릴 때였다. 마저 건물을 돈 신예가 눈을 크게 뜨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

 

“어마? 고조 할아버지이이이!”

 

뿔 머리 노인도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 활짝 웃었다.

 

“이게 누구야? 우리 귀여운 신예가 여기에 있었구나!”

 

풍천은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두 조손의 만남을 지켜보았다.

 

‘문제가 있는 집안이군.’

 

 

 

풍천은 뿔 머리 노인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신예가 차를 가져왔다. 그런데 전에 마시던 것보다 향기가 훨씬 더 좋은 차였다.

 

‘이게 꿍쳐두고 저만 마셨나 보군.’

 

신예는 귀신처럼 풍천의 속마음을 읽고 밝은 웃음을 지었다.

 

“어제 조금 얻어왔어요. 안 그래도 령주님 끓여드리려고 했는데 마침 할아버지까지 오셨으니 잘됐지 뭐예요, 호호호호.”

 

아무래도 거짓말 같았다. 하지만 풍천은 더 따지지 않고 일단 두 잔을 비웠다.

 

방 안에 머쓱한 침묵이 맴돌자 뿔 머리 노인이 말했다.

 

“신예야, 잠깐 나가 있으려무나. 잠깐 령주와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신예는 눈치 빠르게 웃는 얼굴로 일어섰다.

 

“예, 할아버지.”

 

신예가 나가자 뿔 머리 노인은 찻잔을 내려놓고 풍천을 직시했다.

 

“나는 신원창이라고 한다. 저 아이의 고조부가 되지. 문오에게는 외숙부가 되고 말이야.”

 

‘백 살은 됐겠군. 진짜 오래 살았네.’

 

“이제 말해봐라. 뭘 알고 있는 거지?”

 

“먼저 약속을 해주시죠. 오늘 들은 이야기로 인해서 저에게 어떤 불이익도 주지 않는다고요.”

 

“이 늙은이의 모든 것을 걸고 약속하마.”

 

풍천은 차를 한 잔 더 따라 마셨다. 그리고 신원창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천상신문과 벽라족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신원창의 찻잔을 잡은 손이 잘게 떨렸다.

 

“어디…… 자세히 말해봐라.”

 

 

 

신원창은 반 시진 후에 방을 나섰다.

 

어깨가 축 처진 것이 십 년은 더 늙은 것처럼 보였다.

 

풍천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천외천에도 천상신문이 벽라족에게 한 짓을 아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숫자가 적고 대부분 노인들이어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없을 뿐.

 

하지만 결정적인 상황이 닥치면 그들만 도와줘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터. 풍천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아수비, 잘하면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날 것 같아.’

 

 

 

2

 

 

 

신원창이 다녀간 다음 날 점심 무렵.

 

“령주니이이이임!”

 

풍천은 점심을 가지러 갔던 신예가 헐떡이며 달려오는 걸 보고 눈을 껌벅였다.

 

“왜 그렇게 호랑이에게 쫓기는 강아지처럼 뛰어오는 거냐? 식사는 어떻게 하고?”

 

“천주님께서 즉시 입궁하시래요.”

 

“입궁? 아직 점심도 안 먹었는데…….”

 

“가서 드시면 되잖아요.”

 

“천주님하고?”

 

“그래요. 그러니 빨리 가보세요. 늦으면 령주님 것을 안 남겨놓을지도 몰라…… 응? 어디 가셨지?”

 

신예는 말을 하다 말고 두리번거렸다. 앞에 있던 풍천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그녀가 풍천의 뒷모습을 발견했을 때 그는 이미 이십여 장 밖을 달려가고 있었다.

 

 

 

풍천은 천상궁에 식사가 차려진 직후 도착했다.

 

‘휴우, 다행히 늦지는 않은 것 같군.’

 

내심 안도한 그는 환한 표정을 지으며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구수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지금까지 자신이 먹었던 음식과는 질이 달랐다.

 

“부르셨습니까, 천주님?”

 

풍천이 코를 벌름거리며 다가가자 공손량이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어서 와라. 할 이야기가 있어서 불렀느니라.”

 

천상궁에는 공손량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공손무백과 공손무헌, 양곽연, 그리고 정체 모를 노인 셋이 함께 있었다.

 

아무래도 단순한 이야기나 나누자고 부른 것이 아닌 것 같다.

 

풍천은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도 구수한 향기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탁자로 다가갔다.

 

그가 탁자 앞에 섰을 때 공손량의 오른쪽에 있던 노인이 무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떡 벌어진 어깨, 가슴을 거의 다 덮은 하얀 수염, 굵은 눈썹 아래에 일자로 뻗은 눈매. 이마의 굵은 주름과 상관없이 매우 강인한 인상을 풍기는 노인이었다.

 

“나는 용가의 가주인 용무경이라 한다. 네가 단천무령주인 대풍이더냐?”

 

“그렇습니다.”

 

“흠, 들었던 대로 아주 젊군.”

 

“젊다는 건 좋은 거죠. 칭찬으로 알아듣겠습니다.”

 

풍천은 씩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때 칼날처럼 날 선 눈으로 풍천을 쏘아보던 또 다른 노인이 입매를 비틀며 말했다.

 

“능글능글한 성격이군. 젊은 놈이 어째 패기가 없어.”

 

용무경과 달리 빼빼해서 눈빛이 더욱 날카롭게 보이는 노인이었다.

 

풍천은 고개를 반쯤 들고 그 노인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묻는 분은 뉘신지요?”

 

“내 이름은 등소봉이다. 들어봤느냐?”

 

“아, 등가의 가주님이셨군요.”

 

“소문을 듣자니까 남과 어울리지도 않고 혼자서 시비하고 놀기만 한다더니 귀가 아주 막힌 건 아니었나 보군.”

 

“바로 그 시비에게 들었죠.”

 

풍천은 가볍게 대꾸하고 마지막 노인을 향해서 고개를 돌렸다.

 

공손량의 왼쪽에 앉아 있던 오십 대 중반의 초로인은 풍천과 시선이 마주치자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은천원을 맡고 있는 공손문이라고 하네. 자네에 대한 말은 천주께 들었지. 경의의 뒤를 이었다니 기대가 크군.”

 

“너무 기대를 크게 가지진 마십쇼. 그러다 기대에 못 미치면 저만 욕먹을 거 아닙니까?”

 

“좀 전의 자네 말대로 젊은 건 좋은 거지. 세월은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너무 조급할 건 없네.”

 

“그건 그렇죠. 하, 하, 하. 그럼 식사들 하시죠. 이러다 음식 다 식겠습니다.”

 

풍천은 요리를 가리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다 양곽연의 불길 같은 눈빛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양 대주님은 식사 안 하십니까?”

 

양곽연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먹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오늘에서야 알았다. 조카인 공손이향이 단천무령으로 뽑혔다는 걸.

 

마음 같아선 대풍을 쳐 죽이고 싶었다.

 

이곳이 천상궁만 아니었어도, 천주의 앞만 아니었어도 그랬을지 몰랐다.

 

‘때려죽일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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