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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49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7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49화

 

149화

 

 

 

 

 

 

형제간에 피를 보는 건 그도 원치 않았다. 자신의 앞을 막지만 않는다면 그 역시 공손무헌에게 칼을 들이댈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앞을 막는다면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나름 생각을 정리한 그는 교비은에게 명을 내렸다.

 

“비은, 대풍이 바라는 대로 보석을 줘라. 백 냥이 아니라 삼백 냥짜리를 줘. 그리고 그의 능력을 치켜세운 다음 그만큼 중요한 일을 맡길 거라 하고 허파에 잔뜩 바람을 불어넣어라. 놈이 단천무령을 이끌고 강호에 나가서 그만한 가치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예, 대공. 그놈은 천둥벌거숭이 같아서 조금 치켜세워주면 알아서 날뛸 것입니다.”

 

대답하는 교비은의 입가로 교활함이 물씬 풍기는 미소가 진하게 떠올랐다.

 

그때 한쪽에서 입을 꾹 다물고 앉아 있던 등가위가 이마를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대공, 그놈에게 그럴 만한 가치가 있겠습니까?”

 

공손무백의 눈이 그를 향했다.

 

“등 아우, 너무 신경 쓸 것 없네. 잠시 쓰고 버릴 패니까.” 

 

등가위는 그래도 불만인 듯 표정이 풀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자식처럼 키운 천응을 죽인 놈에게 손을 뻗다니.

 

더구나 놈은 상관경의를 친형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호하던 놈이 아닌가?

 

그는 대풍의 변심을 믿을 수 없었다.

 

“솔직히 그놈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쉽게 마음이 변할 놈이라면 목숨을 걸고 상관경의를 구하려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 일에 대해선 걱정할 것 없네. 놈은 상관경의와의 계약 때문에 죽기 살기로 나선 것이라더군. 전적으로 믿기에는 미진한 말이지만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네. 생각해보게. 상관경의와 아무런 관계도 없던 놈이 갑자기 왜 목숨을 걸고 나섰겠는가? 하는 행동과 말투를 봐도 삼류건달 같은 놈이 말이야.”

 

‘그놈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판단해선 안 되는 놈입니다.’

 

등가위는 할 말이 많았지만 속으로 삭였다. 그 말을 하려면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 밤에는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걸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공손무백은 등가위가 입을 닫고 있자 담담히 웃으며 몇 마디 덧붙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도 그놈의 말을 완전히 믿고 있는 건 아니네. 놈이 무헌에게 붙을까 봐 미리 손을 쓴 것뿐이야. 단천무령주라는 지위만 해도 황금 삼백 냥 가치는 충분하지 않은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단천무령주와 단천무령들의 가치는 황금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찢어 죽이고 싶은 대풍이란 놈이 령주여서 문제일 뿐.

 

“그건 저도 이해합니다.”

 

“나중에 그놈을 버릴 때가 오면 뒤처리는 반드시 자네에게 맡기겠네. 그 전까지는 놈에게서 신경 끄게. 천응단도 놈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하고. 혹시라도 놈이 천응단을 보게 되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잖은가?”

 

“알겠습니다, 대공.”

 

그로 인해서 등가위는 풍천을 만나려던 마음을 완전히 접어야만 했다.

 

공손무백은 등가위가 엉뚱한 일을 하지 못하도록 다시 한번 다그쳤다.

 

“애지중지 키우던 천응이 죽었으니 마음이 많이 상했겠지만 그까짓 독수리 한 마리 때문에 대계를 망치는 일이 없길 바라겠네.”

 

등가위는 그 말을 듣고 이를 악물었다.

 

그까짓 독수리라고?

 

대공은 자신의 마음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

 

천응은 단순한 독수리가 아니었다. 자신의 자식과 같았다.

 

그는 자식을 죽게 만든 놈이 활보하고 다니는 꼴을 보고만 있을 생각이 없었다.

 

‘일단은 대공의 뜻에 따르겠소. 하지만 언제든 기회만 오면 반드시 내 손으로 죽여버릴 거요.’

 

 

 

 

 

제10장. 불귀곡(不歸谷)에 낀 구름은 점점 짙어지고

 

 

 

 

 

1

 

 

 

무련곡은 불귀곡의 맨 끝에 있었다. 입구는 이 장 넓이밖에 안 되었는데 그 안쪽은 깎아지른 암벽으로 이루어진 절곡으로 제법 넓었다.

 

무련곡 앞에 도착한 풍천은 입구를 지키고 있는 위사들 중 수장에게 진청군을 만나기 위해서 왔다고 하고는 허가서를 내밀었다.

 

천주의 친필 허가서는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했다.

 

턱을 치켜든 채 절대 안 될 것처럼 말하며 손을 젓던 위사장은 허가서를 보더니 태도가 백팔십도로 바뀌었다.

 

“이곳으로 오시죠, 령주. 제가 직접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풍천은 조소를 지으며 위사장의 뒤를 따라갔다.

 

‘하여간 사람들이 참 간사해. 밖이나 이곳이나 다를 게 없다니까.’

 

위사장은 그를 절곡 안쪽의 암벽을 파서 만든 석실로 안내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곧 진청군을 데려오겠습니다.”

 

위사장은 그곳에서 풍천을 기다리게 하고 다른 위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즉시 안으로 들어가서 진청군을 찾아와라. 신임 단천무령주께서 만나 뵙고자 하신다.”

 

일 각 후.

 

십칠팔 세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석실로 들어왔다.

 

잔뜩 굳은 표정, 굳게 닫힌 입술. 왠지 모르게 긴장한 듯했다.

 

“제가 진청군입니다. 신임 단천무령주라 들었습니다만.”

 

뭔가를 짐작하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다.

 

풍천은 착잡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신임 단천무령주다.”

 

“그럼 전임 령주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풍천은 사실대로 모두 말했다.

 

“돌아가셨다, 네 부친도.”

 

진청군은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곧 눈을 뜨고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식을 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더 할 말이 없으시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와 더 이상 상관없는 분의 이야기 같군요.”

 

냉정한 목소리. 상관경의가 말한 대로 진청군은 아직도 부친을 원망하고 있는 건가?

 

풍천은 진호량이 왜 그런 부탁을 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진 형도 불쌍하군. 어쩌다 저런 걸 자식새끼라고 낳아서 그런 마음고생을 했는지 원.”

 

몸을 돌리던 진청군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령주,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령주가 우리 부자에 대해서 뭘 안단 말입니까?”

 

“맞아. 나는 너와 진 형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몰라.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아무래도 느끼는 감정이 다를 수밖에 없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부친이 돌아가셨다는데 너처럼 말하는 놈은 욕을 처먹어도 싸다는 생각이야.”

 

이를 악다문 진청군은 풍천을 노려보며 이를 갈듯이 말했다.

 

“당신이 뭘 안다고……!”

 

순간 한 걸음 앞으로 내딛은 풍천이 손을 뻗어서 진청군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진청군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서려 했을 때는 이미 풍천의 두 눈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풍천은 진청군을 바짝 끌어당긴 채 으르렁거렸다.

 

“솔직히 말할까? 나는 상관 노형의 말을 듣고 나서 너를 네 부친이 죽기 직전의 상태로 만들어놓고 이 말을 전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진 형이 원망할 것 같아서 하지 않았어. 고문을 받아서 팔다리 다 부서지고, 온몸이 갈기갈기 찢긴 상태에서도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던 아버지야, 이 새끼야! 알아? 그렇게 고통스러워도 눈물을 흘리지 않던 사람이 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달라며 눈물을 흘렸어, 인마! 그런데 뭐? 나와 상관이 없어? 이런 나쁜 새끼!”

 

그는 진청군을 한쪽에 처박아버렸다.

 

사정없이 널브러진 진청군은 엎드린 채 몸을 덜덜 떨었다.

 

풍천은 그런 진청군을 한 번 째려보고는 몸을 돌렸다.

 

“배부른 투정 그만해, 인마. 나처럼 아버지 얼굴 한 번 보고 싶어서 미치도록 발버둥치는 사람이 들으면 짜증 나니까.”

 

그가 몇 마디 더하고 밖으로 나가는데 뒤에서 가슴을 쥐어짜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몇 대 패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았거늘, 막상 그 소리를 들으니 입맛이 썼다. 진호량에게도 미안했고.

 

‘아, 짜식이 말이야. 그러게 왜 얌전한 사람 열 받게 만들어.’

 

그래도 가슴을 쥐어짜며 우는 걸 보니 눈곱만큼이라도 마음이 변한 것처럼 보여서 다행이었다.

 

‘사실 내가 사람 감복시키는 재주는 있지 뭐.’

 

풍천은 그렇게 자화자찬하며 무련곡을 빠져나왔다. 지금쯤 천수전으로 간 신예가 돌아와 있을 것이었다.

 

 

 

2

 

 

 

천수전으로 홍련을 만나러 간 신예가 풍천의 거처로 돌아온 것은 유시 무렵이었다.

 

무련곡에서 돌아와 삼매진화로 차를 데워 마시던 풍천은 폴짝거리며 뛰어오는 신예를 가자미눈으로 흘겨보았다.

 

“령주님, 다녀왔어요.”

 

“왜 이제 온 거야?”

 

“저는 빨리 오려고 했는데 홍련 언니가 자꾸 잡지 뭐예요. 그래서 조금 더 이야기 나누고 오느라 늦었어요. 화나셨어요?”

 

“화? 아니? 내가 왜 화를 내?”

 

풍천은 무슨 소리냐는 듯 멀뚱한 표정을 짓고는 넌지시 본론을 꺼냈다.

 

“홍련이 뭐라고 그래?”

 

신예는 조금도 급한 표정이 아니었다.

 

“잠깐만요. 가서 옷 좀 갈아입고요.”

 

풍천은 당장 붙잡아놓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러면 약점을 잡힐 것 같아서 가볍게 대꾸했다.

 

“그래? 알았다. 바쁠 것도 없는데 뭐…….”

 

 

 

신예는 반 시진이 넘어서야 자신의 방을 나왔다.

 

‘여자는 방 안에만 들어가면 왜 저렇게 시간이 걸리는지 모르겠어. 얼씨구? 볼 사람이 누가 있다고 분까지 바르고…….’

 

풍천은 불만이 많았지만 참은 김에 더 참고 신예가 입을 열기만 기다렸다.

 

‘해결사는 인내심이 최고의 덕목이지. 성질 급한 놈은 절대 뛰어난 해결사가 될 수 없어.’

 

그때 신예가 찻주전자를 들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령주님. 제가 괜찮은 차를 조금 얻어왔으니까 금방 끓여올게요.”

 

풍천은 신예의 뒷덜미를 잡아채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고 눈을 감았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사부님은 인내심을 기르는 방법으로 불경을 외는 걸 최고로 쳤는데 내가 생각해도 옳은 생각이야.’

 

그런데 이 각이 지나도록 신예가 들어오지 않자 슬슬 엉덩이가 들썩여졌다.

 

‘……근데 얘는 왜 이렇게 안 와? 나무가 떨어져서 나무하러 갔나?’

 

그럴 리가 없다. 전날 뒷마당에 있던 나무가 화문오의 화운장에 모조리 부러지고 가루가 되면서 반쯤은 땔감으로 변했으니까.

 

풍천이 신예를 부를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신예의 목소리가 들렸다.

 

“령주님, 홍련 언니가 은자를 보더니 굉장히 좋아하지 뭐예요. 그런데 다음에는 두 개를 달래요. 그래서 말씀드려보겠다고 했는데 괜찮겠어요? 너무 부담가시면 안 된다고 할게요.”

 

백초령의 근황에 대해서 처음으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판에 지금 은자 두 냥이 문젠가?

 

풍천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를 악문 채 방문을 쏘아보았다.

 

신예가 왜 시간을 끄는지 그제야 눈치챈 것이다.

 

“줄 테니까 어서 들어와!”

 

 

 

잠시 후.

 

신예에게서 백초령에 대한 이야기를 다 들은 풍천은 입 끝이 귀에 걸릴 만큼 찢어지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백초령이 천우 공자를 좋아하지 않는단 말이지?”

 

“그런가 봐요. 그런데 왜 령주님이 좋아하세요?”

 

“내가 뭘 좋아해? 그냥 공손천우가 불쌍해서 한숨이 나오려고 한 거지.”

 

‘한숨 쉬는데 왜 입이 찢어져요?’

 

신예는 그게 의문이었지만 묻지는 않았다.

 

대신 입술을 삐죽이며 풍천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주인이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건 그래요. 공자님도 참, 왜 하필 자신을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와 혼인하려는지 모르겠어요.”

 

풍천은 그런 신예를 보며 고개를 모로 꼬았다.

 

“너 혹시…… 천우 공자를 좋아하는 거 아니냐?”

 

“무슨 말씀이세요, 령주님!”

 

“왜 갑자기 소리를 질러? 이거 강하게 부정하는 거 보니까 수상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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