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18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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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186화
186화
“어? 그래요, 수고 좀 해주쇼. 공손 소저는 뭐 걱정되는 거 없어요?”
“예?”
공손이향은 뜬금없는 질문에 눈을 크게 떴다.
“제 느낌으로는 뭔가 걱정거리가 있는 것 같은데요.”
있었다. 하지만 풍천에게는 말할 수 없는 걱정거리였다.
“아, 아뇨.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하, 하. 있긴 있나 보군요. 역시…….”
풍천은 자신의 뛰어난 육감에 감탄하며 고개를 돌려 허무정을 바라보았다.
허무정은 눈이 마주치기 전에 슬며시 일어났다.
“방에 가서 운기조식이라도 해야겠소. 아무래도 엊그제 무리를 했더니…….”
그러고는 풍천이 붙잡기 전에 방을 나섰다.
마동춘도 어물거리며 따라가고.
“허 형에게 물어볼 게 있어서…….”
풍천은 혼자 남은 공손이향을 바라보았다.
둘만 남으니 기분이 묘했다. 그때 문득 남녀 둘이 있으면 자주 한다는 놀이가 떠올랐다.
“저기, 공손 소저, 제가 손금이라도 봐줄까요?”
공손이향은 못 이긴 척 손을 내밀었다.
“볼 줄 알아요?”
제5장. 공포(恐怖)의 실수(?)
1
제운당 사람을 만나러 갔던 남궁도영은 한 시진 만에 돌아왔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굳은 표정이었다.
풍천은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질문부터 던졌다.
“안 좋은 소식이라도 있습니까?”
“천혈궁에 신마성 사람들이 도착한 것 같소.”
풍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신마성이? 흠, 결국 문주님이 우려했던 대로 흐르는군요.”
“동마부주 신월마신 좌궁화가 직접 나섰고, 총단에서도 다수의 장로들이 나온 것 같소. 숫자는 사오백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가늘어진 풍천의 눈빛이 싸늘하게 반짝였다.
공손이향만 태연할 뿐, 허무정과 마동춘은 남궁도영의 말이 길어질수록 표정이 굳어졌다.
“좌궁화가 움직였다면 동마부의 정예들이 모두 따라왔다고 봐야겠군요.”
“그 정도면 천혈궁의 전력이 배는 더 강해졌겠는데요?”
“그들이 정말 하남을 치려나 봅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풍천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을 꾹 다물고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모두가 입을 다문 채 그를 바라보자 그제야 말문을 열었다.
“이상하군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남을 치기에는 과한 전력입니다.”
전이었다면 과하다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검문과 경천산장, 검각의 정예들이 정원으로 가 있는 상황이었다.
하남을 쳐서 구룡회를 흔드는 것은 천혈궁만으로도 충분하거늘, 지원 무사를 패웅보로 보내지 않고 천혈궁으로 보내다니.
남궁도영이 풍천을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하남을 쳐서 정원에 모인 구룡회를 흔들려는 것 아니겠소?”
“어찌 되었든 하남을 치는 전력으로는 과하단 말이죠. 동마부만 합류해도 충분한데, 총단의 고수들마저 동원했어요. 그리고 혁련궁은 약한 자들을 상대하면서 간계를 펼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희생이 커도 정면으로 쳐서 부수고 말지.”
구룡회는 신마성에 비해서 약자다. 구룡회를 무너뜨리겠다고 이런저런 계책을 꾸미는 것은 혁련궁답지 않았다.
그럼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단 말인데…….
풍천은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남궁도영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지금도 천혈궁에 있다고 합니까?”
“어제 천혈궁 총단에서 오십여 명이 움직였다고는 하는데, 어떤 자들이 움직였는지는 아직 정확히 모르는 상황이오.”
오십여 명?
‘어제라면 동암 분타의 일 때문에 움직인 건가?’
만약 그들이 동암 분타에 도착했다면?
풍천은 구시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젠장, 동암에 간 사람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동암으로 가보죠.”
신마성에서 온 고수들 중 몇 명만 동암으로 갔어도 악진표 등에게는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다.
그제야 다른 사람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표정이 굳어졌다.
그런데 그들이 막 방을 나섰을 때 누군가가 그들을 향해 달려오며 소리쳤다.
“도영 숙부님!”
남궁도영이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달려오는 사람은 이제 스물이 갓 넘었을 것처럼 보이는 청년이었는데, 남궁세가 제운당의 서성지부에 있는 남궁도영의 조카였다.
“너 용화가 아니냐? 무슨 일인데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냐?”
남궁용화는 풍천 일행을 슬쩍 둘러본 후 남궁도영에게 말했다.
“조금 전 두 가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부장님께서 혹시 모르니 급히 전하라고 하셔서…….”
“두 가지 소식? 어디 말해보거라.”
“하나는 숙부님께서 물어보셨던 것과 연관된 일인 것 같습니다. 오늘 오전, 동암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합니다. 아직 정확한 상황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만, 전해온 말로는 천혈궁에서 상당한 고수들이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빌어먹을!’
풍천은 그 일이 악진표와 관계된 일임을 확신하고 이를 악물었다.
그때 남궁용화가 두 번째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두 번째 소식은 구룡회가 비원장을 치다가 거꾸로 크게 당했다고 합니다.”
“뭐야? 비원장을 치다가 당해?”
대경한 남궁도영이 다그치듯 되묻자 남궁용화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탁 성주와 구양 각주, 담 방주께서 직접 정예를 이끌고 공격했는데, 혁련후와 신마성의 정예 고수들이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포위 공격을 했다고 합니다.”
풍천과 단천무령도 모두가 대경해서 남궁용화를 주시했다.
탁능한과 구양곤, 담청이 직접 정예를 끌고 갔는데도 패했다면, 구룡회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풍천이 다급히 상황을 물어보았다.
“탁 성주와 구양 각주, 담 방주는 어떻게 되었죠?”
“탁 성주는 경상을 입으셨고, 담 방주는 중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양 각주께선 퇴로를 만들기 위해 뒤를 막아섰다가 그만…… 혁련후의 검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래도 구양 각주님이 막은 덕에 칠백 무사 중 삼백이 살아서 돌아갔다고 하는데…….”
남궁도영은 풍천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시겠소?”
위기에 처한 구룡회를 도울 것이냐, 아니면 쫓기고 있는 악진표 등을 구할 것이냐. 그걸 묻는 것이었다.
풍천은 대답을 미루고 남궁용화에게 하나만 더 물어보았다.
“신마성의 피해는 얼마나 되죠?”
“함정이라는 낌새를 친 탁 성주가 재빨리 뒤로 물러나서 역공하는 바람에 신마성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탁능한이 그렇게 눈치 빠른 사람이었나?’
탁능한은 열화 같은 성격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담청의 성격이 더 신중하고 세밀했다.
풍천은 미심쩍은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굳이 토를 달지 않았다.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는 것이다.
“일단 동암으로 가죠.”
풍천이 정원이 아닌 동암행을 택하자 남궁도영이 이마를 좁히며 물었다.
“정원으로 가지 않아도 괜찮겠소?”
항상 세가의 일원으로 움직이던 그였다. 무의식중에 개인보다 단체를 더 중시하는 생각을 지니고 있던 그에게 풍천의 선택은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풍천은 남궁도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채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신마성도 피해가 많다면 당장 정원을 공격하진 않을 겁니다. 문주님도 지금쯤 정원으로 갔을 것이고. 그러니 우리는 계속 주어진 임무에나 충실하면 됩니다. 설령 정원으로 간다 해도 다섯 사람을 구한 이후의 일이죠. 우리에게는 정원의 구룡회보다 그 사람들이 더 중요하니까요.”
마지막 말에 남궁도영의 눈 깊은 곳에서 잔물결이 출렁였다. 그 말이 마치 천하보다 내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말처럼 들린 것이다.
자신은 과연 이들을 남궁세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2
서성을 출발한 풍천 일행은 제운당의 정보원이, 추적하는 무리를 마지막으로 봤다는 오송이라는 마을로 달려갔다.
오송은 서성에서 서쪽으로 칠십 리 거리였다.
쉬지 않고 오송까지 달려간 풍천은 좌우로 오 리를 오가더니 마을 옆 야산에서 추적자들의 흔적을 찾아냈다.
“따라오쇼.”
침중한 표정으로 한마디 내뱉은 풍천은 추적자들의 흔적을 쫓아서 달려갔다.
정말 추적자들의 흔적을 찾아낸 걸까?
단천무령들은 미심쩍어하면서도 풍천의 뒤만 따라갔다.
“셋이 뒤쫓고 있는데 오래 되지는 않은 것 같수.”
그 말도 믿기가 힘들었다. 뭘 보고 셋이라고 하는 거지?
그러다 십 리를 달린 후에는 골치 아프게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그냥 따라가기만 했다.
“쫓기고 있는 사람은 이 형이군요. 어쩐지 이 형이 왜 놈들을 떨치지 못했나 했더니, 부상을 당한 것 같수.”
명패를 걸어놓은 것도 아니고, 어떻게 쫓기고 있는 사람이 이곡이라는 걸 아는 걸까? 부상을 입었다는 것도 그렇고.
신기한 일이었다.
“헉, 헉, 후우욱, 훅, 제기랄!”
이곡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협곡의 좌우를 둘러보았다.
반나절 동안 놈들의 추적을 겨우 따돌리며 도주했거늘, 하필 절벽으로 가로막힌 곳이라니.
그의 신법이라면 어지간한 절벽쯤은 방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리에 부상을 입은 데다, 삼십 장가량 직각으로 뻗은 절벽은 물기마저 있어서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추적자들이 오기 전에 협곡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협곡을 반쯤 빠져나갔을 무렵, 입구 쪽에 흑의인 셋이 나타났다. 동암에서부터 지겨울 정도로 쫓아온 추적자들이었다.
‘빌어먹을! 부상만 안 입었어도 진즉 떨쳤을 텐데…….’
재빨리 좌우를 둘러본 그는 그나마 경사가 조금이라도 덜 심한 우측으로 몸을 날렸다. 그곳은 높이도 이십 장 정도여서 잘하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흥! 쥐새끼 같은 놈! 더는 도망갈 수 없다!”
코웃음 치는 소리와 함께 세 줄기 흑영이 빠르게 날아들었다.
이곡은 그들과 싸울 마음을 버리고 전력을 다해서 우측 절벽으로 솟구쳤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과 대등한 무위를 지닌 자들. 셋을 혼자서 상대한다는 것은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상책은 최선을 다해서 도주하는 것뿐.
칠 장을 솟구친 그는 절벽에서 움푹 파인 곳을 발로 짚고 튀어 올랐다. 절벽에 거의 붙다시피 한 채로 단숨에 오 장을 더 솟구쳤다.
이제 반 정도 올라왔다. 문제는 위로 갈수록 경사가 더 심하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곡은 희망을 가지고 세 번째 도약을 위해서 발끝에 진기를 모으고 힘껏 절벽을 찼다.
순간, 발끝에 이끼가 벗겨지면서 쭉 미끄러졌다.
대경한 그는 급히 꼬챙이검으로 절벽을 찍었다.
푹!
뾰족한 검첨이 절벽을 두 치가량 파고들었다.
하지만 몸무게를 이기지 못한 바위가 부서지면서 검첨이 빠져나왔다.
이곡은 사력을 다해서 다시 한번 절벽을 찍었다. 그리고 미끄러지던 몸이 찰나 간 멈춘 틈을 이용해서 다시 절벽을 발끝으로 밀고 위로 솟구쳤다.
바로 그때 아래쪽에서 날카로운 소성과 함께 뭔가가 날아들었다.
쉬이이익!
흠칫한 이곡은 이를 악물었다. 뒤를 돌아다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저 날아드는 뭔가가 자신을 피해가기만 바라는 수밖에!
‘한 번만 더!’
순간이었다.
푹! 옆구리에 뭔가 박히는가 싶더니 불로 지지는 통증이 밀려들었다.
‘크윽!’
제기랄! 한 번만 더 도약하면 되거늘!
기운이 쭉 빠진 그는 이를 악물고 꼬챙이검으로 절벽을 찍었다.
찌이이이익!
검첨이 절벽을 주욱 그으면서 밑으로 미끄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