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18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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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7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185화
185화
자신이 본 대풍은 가볍게 취급할 수 있는 놈이 아니었다.
나중에 등가위에게서 천응단이 그놈에게 당했다는 걸 알고 얼마나 놀랐던가.
백하에서는 본신의 실력을 다 드러내지 않았다는 말. 만약 목적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면 머릿속에 능구렁이가 몇 마리 들어 있는 놈이었다.
그런 놈을 어찌 무시한단 말인가?
‘그런 놈은 최대한 빨리 제거하는 게 상책이지.’
곧 자신의 뒤를 따라서 천응단이 도착한다. 등가위는 대풍에게 이를 갈고 있는 사람. 조금만 부추기면 굳이 자신이 말할 것도 없이 놈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아버님도 단천무령주를 죽인 일에 대해서 나를 추궁할 수 없어.’
그놈 하나 죽이기 위해서 등가위와 천응단을 소모해야 하는 게 아깝긴 하지만, 미래의 위험을 방치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공손선우는 호자충에게 좀 더 자세한 것을 물어보았다.
“단천무령은 몇이나 됩니까?”
“령주까지 모두 여덟이었소이다.”
단천무령은 절정고수로 이루어져 있다.
천응단이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대풍을 죽이려면 방해가 될지 모른다. 그럼 사람이 더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그때 호자충이 말했다.
“대공께서 곧 곡을 나오실 거라는 연락이 오늘 오전에 도착했소이다, 공자.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곳에서 기다리실 겁니까, 아니면 정원으로 천의맹 사람들과 함께 가실 겁니까?”
공손선우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래요?”
아버지는 대풍을 이용하려고 한다. 자신이 죽이는 것을 마뜩치 않게 생각할지도…….
‘그럼 무리가 가더라도 서둘러야겠군.’
등가위가 천응단원 열다섯을 데리고 회남에 도착한 것은 석양이 지기 직전이었다.
공손선우는 호자충으로부터 그들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밤늦은 시각에 적련방을 나섰다.
그리고 곧장 등가위를 만나 대풍에 대한 이야기를 건넸다.
짐작했던 대로 등가위는 대풍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살기를 흘리며 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아버님은 놈을 이용하려고 합니다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그런 놈 잘못 이용하면 없느니만 못하지요. 숙부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손선우는 넌지시 등가위의 마음을 떠보았다.
등가위는 자신의 생각을 간단하게 표현했다.
“흥, 그놈은 천외천에 들어왔을 때 죽여버렸어야 했어.”
그렇다면 굳이 더 물을 것도 없다.
“숙부께서 처리해주시지요.”
“나도 그러고 싶네. 하지만 대공께서 원하지 않으니…….”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정말인가?”
“제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요.”
등가위는 겉으로 드러내진 못했지만, 공손무백이 말려도 기회가 되면 손을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공손선우가 책임져준다면, 그야말로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었다.
“좋네. 그럼 내가 그놈을 처리하지.”
“남궁세가로 가서 잠영 십이호를 만나십시오. 그럼 단천무령의 행방을 알 수 있을 겁니다.”
4
석양이 지기 직전, 동암 분타에 오십여 명의 무사들이 들이닥쳤다.
동암 분타의 무사들은 그들이 총단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만 알 뿐, 정확한 정체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설령 아는 사람이라 해도 철저히 함구령이 내려진 상태여서 죽고 싶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악진표를 비롯한 다섯 명의 단천무령은 동암 분타에 총단에서 온 무사들이 도착했다는 소문을 듣고, 인근 객잔과 주루로 흩어져서 오가는 소문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정보가 차단되어서 자시가 다 되도록 총단에서 온 자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접할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정예고수라거나, 굉장한 고수가 섞여 있다는 게 떠돌아다니는 정보의 전부였다.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일. 마음이 답답해진 그들은 올 때부터 계획했던 대로 직접 동암 분타에 잠입하기로 결정했다.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설령 들킨다 해도 도주는 할 수 있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고.
새벽이 되자 악진표와 이곡이 먼저 동암 분타로 접근했다. 뒤는 감능하와 고복수와 응초가 맡기로 했다.
담장을 넘은 악진표와 이곡은 총단에서 온 자들 중 중심인물들이 있을 법한 중앙으로 접근했다.
경비는 예상했던 것보다 삼엄하지 않았다.
악진표와 이곡은 그 바람에 긴장이 조금 풀어졌다.
‘그리 중요한 인물들은 아닌 모양이군.’
그렇게 생각한 두 사람은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안평의 거처였던 별원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응? 뭐지?’
이곡은 그림자에 몸을 숨긴 채 몇 걸음 옮기다 말고 걸음을 멈췄다.
바람이 몸을 스칠 때마다 바늘 끝처럼 예리한 기운이 살을 파고드는 듯했다.
불안함을 느낀 그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바로 그때였다.
“후후후, 눈치가 제법이군.”
“겨우 두 마리뿐인가?”
이곡은 그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즉시 몸을 뒤로 튕겼다.
‘제기랄! 함정이었어!’
악진표도 발바닥을 불에 덴 사람처럼 펄쩍 뛰어서 별원을 벗어났다.
그때였다.
스스스스.
몇 사람이 지붕 위에서 떨어져 내리며 그들의 앞을 막았다.
악진표와 이곡은 추호도 망설이지 않았다. 검을 빼든 두 사람은 전력을 다해서 쇄도했다.
쩌저정! 따다다당!
전력을 다한 두 사람의 공격에 앞을 가로막은 자들 서넛이 주르륵 밀려났다.
두 사람은 상대가 물러난 틈을 놓치지 않고 지체 없이 신형을 날렸다.
하지만 방해물은 그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클클클, 독 안에 든 쥐새끼들이 어딜 도망가겠다는 거냐?”
늙수그레한 목소리와 함께 섬뜩한 기운이 밀려들었다.
이곡은 상대를 떨치기가 쉽지 않음을 알고 악진표에게 소리쳤다.
“악 형은 오른쪽으로 가시오! 나는 왼쪽으로 가겠소!”
이대로는 상대를 떨칠 수 없다. 둘 중 하나라도 피하는 수밖에.
악진표는 이곡의 말뜻을 눈치채고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서 전력을 다해 몸을 날렸다.
그 순간, 뿌연 그림자 하나가 악진표를 따라서 흘러갔다.
“클클클, 감히 내 앞에서 도망가려 하다니, 귀여운 놈이군.”
밖에 있던 감능하와 고복수와 응초는 이곡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바로 도망갔어야 했다.
그러나 퇴로를 만드는 게 임무인 그들은 바로 도주하지 않고 오히려 악진표와 이곡을 돕기 위해서 담장을 넘어왔다.
이곡이 그 모습을 보고 악을 썼다.
“넘어오지 말고 도망가!”
그때였다. 담장을 넘은 감능하의 눈에 이곡을 그물처럼 감싼 채 밀려드는 검은 그림자들이 보였다.
‘헉!’
대경한 그는 즉시 땅을 박차고 다시 담장을 넘었다.
멈칫한 고복수와 응초는 감능하보다 한 발 늦게 몸을 날렸다.
그 직후 수십 개의 검은 그림자가 그들을 바짝 뒤쫓으며 담장을 넘어갔다.
이곡은 좌측으로 방향을 틀고서 혼신을 다해 경공을 펼쳤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쭉 날아간 그는 단숨에 건물 하나를 넘어갔다.
그런데 그가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세 줄기 인영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모두 흑의를 입은 자들. 마흔 정도로 보이는 그들은 조소를 흘리며 이곡의 삼면을 막아섰다.
“크크크, 어딜 도망가려고!”
이곡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전면으로 내려선 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쉬이익!
꼬챙이검이 상대의 목을 향해 번개처럼 뻗어갔다.
“흥! 어림없다!”
앞을 막아선 자는 냉랭히 코웃음 치며 이곡의 검을 쳐냈다.
쩡!
하지만 이곡은 처음부터 정면으로 싸울 마음이 없었다. 검이 밀리는 힘을 이용해서 방향을 튼 그는 즉시 땅을 박찼다.
“이 여우 같은 놈이!”
좌우에서 두 사람이 그를 향해 도검을 휘둘렀다.
이곡은 가까스로 두 사람의 공격을 피하고 포위망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적은 셋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가 포위망을 빠져나왔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또다시 흑의인 둘이 날아들며 그를 공격했다.
“신법이 뛰어난 놈이다! 다리부터 잘라버려!”
‘이번에 막히면 다시는 떠날 수 없을지 몰라.’
이를 악문 이곡은 상대의 공격을 맞받지 않고 포위망을 벗어나려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의 공세를 거의 다 빠져나왔을 때, 검기 한 줄기가 그의 허벅지를 훑고 지나갔다.
‘크읍!’
신음을 삼킨 그는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고, 오 장 떨어진 곳의 담장을 향해서 몸을 날렸다.
“저놈이 어디서!”
“잡아!”
흑의인들은 노성을 내지르며 이곡을 쫓았다.
이곡은 허벅지의 상처를 아랑곳하지 않고 동암 분타의 담장을 넘었다.
5
남궁도영은 떠난 다음 날 정오가 되기 직전에 돌아왔다. 단천무령들은 남궁도영이 돌아오자 모두 풍천의 방으로 모였다.
남궁도영은 가타부타 길게 말하지 않고 간략하게 보고했다.
“허락이 떨어졌소.”
풍천은 남궁도영의 표정을 보고 일이 쉽지 않았음을 눈치챘다.
“어느 선까지 이용할 수 있죠?”
“신마성과 천혈궁에 관계된 일에 한해서 정보를 건네주기로 했소.”
“우리가 신검문의 별동대라는 말을 순순히 믿던가요?”
남궁도영은 속이 훤히 드러난 것 같아 쓴웃음을 지었다.
“믿지 않았소. 하지만 천혈궁 동암 분타가 무너진 것은 사실이니 세가에서도 무조건 반대하지만은 않았소.”
특히 정보를 총괄하는 제운당주 남궁혁이 그를 강력히 옹호해주었다.
현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풍천 일행의 정확한 정체가 아니라 신마성과 천혈궁의 야욕을 막는 일이라면서.
아마 그가 아니었다면 결정이 내려지는 데 하루 이틀은 더 걸렸을 것이었다. 풍천 일행에 대한 것을 먼저 알아보려고 했을 테니까.
대신 제운당과의 연락은 남궁도영이 전담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조금 아쉬운 감이 없진 않지만, 그 정도면 일단 눈과 귀가 뚫린 셈이군요.”
가능하면 천외천의 움직임까지 알아보려고 했다.
물론 남궁세가는 천외천에 대해서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시기가 시기인 만큼 수상한 자들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는 수집하고 있을 터. 그러한 정보를 종합해보면 천외천으로 의심되는 움직임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뭐 벌써부터 실망할 필요는 없지. 조건이라는 것은 언제든 변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좋은 쪽으로 생각한 풍천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 양반들은 왜 이렇게 안 오지?”
정보를 수집하러 간 사람들이 만 하루가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정보를 수집하다 보면 경우에 따라서 며칠씩 걸릴 수도 있으니 조급해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안 좋은 느낌이 들면서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너무 걱정 마세요.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요?”
공손이향이 그렇게 말하며 안심시키려 했지만 가슴이 답답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설마 그냥 떠나버린 건 아니겠지?’
악진표나 이곡은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감능하와 고복수, 응초는 천외천의 사람들. 두 다리가 부러졌어도 돌아올 것이었다.
‘혹시 너무 깊숙이 들어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다섯 사람 다 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였다. 이곡은 신법에 관한 한 어느 경지를 넘은 사람이고. 설령 함정에 빠졌다 해도 몸만 빠져나오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단순히 정보 수집 때문에 늦어지는 건가?
하지만 자신의 감각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특히 안 좋은 일과 관계된 것은 더욱더 그러했고.
‘아무래도 안 되겠어.’
잠시 이마를 찡그리고 있던 풍천은 고개를 돌려 남궁도영을 바라보았다.
“남궁 형, 지금 당장 제운당 사람과 연락할 수 있죠?”
“그럴 수 있을 거요. 뭐 알아볼 것이라도……?”
“어제 이후 동암 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주쇼. 그리고 알아보는 김에 천혈궁의 상황도 자세히 물어보고요.”
“다섯 분이 걱정되어서 그런 거요?”
“제 육감이 남달리 뛰어나서 말이죠. 오죽하면 장 노인이 저보고, 돈 떨어졌다면서 거적 하나 주고 상구에 나가 앉아 있으라고 한 적도 있었다니까요?”
“…….”
“하인이 주인에게 거적을 주면서 일을 시키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 아, 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좌우간 제 육감이 너무 뛰어나다 보니 가끔은 예지 능력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혹시 뭐 걱정되거나 물어보고 싶은 거 없어요? 돈 안 받고 말해줄 테니 말해봐요. 단, 틀릴 수도 있으니 너무 믿지는 말고…….”
남궁도영은 풍천의 쓸데없는 말이 더 길어지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녀오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