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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82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7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82화

 

182화

 

 

 

 

 

 

악진표는 조금 불안한 눈으로 풍천을 힐끔거렸다.

 

“놈들이 삼백 명도 넘는데 말입니까?”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말.

 

풍천은 그 말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그 정도면 천혈궁에 상당한 타격이 되겠군요.”

 

악진표는 반쯤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요청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바짝 긴장해 있는 천혈궁으로선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동암 분타에 고수들을 배치했을 게 분명하다. 숙주의 다섯 마리 마귀도 머물러 있다 하고.

 

그런 곳을 달랑 열 명으로 치겠다니.

 

말도 안 돼!

 

그러나 악진표의 손을 들어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기껏해야 공손이향이 한마디 했는데, 그것도 악진표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너무 무리해서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속으로 한숨을 내쉰 악진표는 풍천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돌릴 수 없다면 피해라도 줄여야 했다.

 

“령주, 언제 치실 겁니까?”

 

“곧 어두워질 것 같은데, 놈들이 저녁을 다 먹고 나면 치죠 뭐.”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천혈궁 무사들이 마지막 저녁 식사를 마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처럼 들렸다.

 

감능하도 그렇게 생각하고 비꼬듯이 말했다.

 

“지금 적에게 그런 아량을 베풀 때입니까? 기다릴 것 없이 지금 공격하죠?”

 

풍천은 감능하를 째려보면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식사를 마친 직후에는 기혈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한 법이죠. 전력을 다해서 무공을 펼칠 수 없단 말입니다. 그럼 상대하기가 그만큼 쉬워지지 않겠수?”

 

설명을 듣고 나서야 풍천의 의도를 알게 된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단순하게 내뱉은 말에 그런 심오한 뜻이 숨어 있었다니!

 

감능하는 입을 다물고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풍천의 눈빛이 관자놀이에 쿡 박혀드는 느낌. 괜히 나섰다는 후회감이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그때 남궁도영이 질문을 던져서 감능하를 구제해주었다.

 

“령주, 생각하고 계신 계획이라도 있소?”

 

풍천의 입가로 냉소가 잔잔히 번졌다.

 

“당연히 있죠.”

 

 

 

4

 

 

 

반 시진이 지나자 붉게 타오르던 서천이 검게 물들었다.

 

풍천 일행은 객잔에서 나와 은밀하게 장원으로 접근했다. 이미 풍천의 계획을 모두 들은 상황. 그들의 움직임엔 거침이 없었다.

 

몇 사람이야 불만이 많았지만.

 

특히 감능하와 악진표는 속으로 한숨까지 쉬었다.

 

‘후우, 뭐 그따위 계획이 있어?’

 

‘나도 내일모레면 사십인데, 어쩌다 걸려서…… 에혀.’

 

그래도 겉으로는 일체 토를 달지 않았다. 토를 달아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을 터. 괜한 일로 찍혀봐야 좋을 게 없었다.

 

사실 계획이랍시고 말하는데, 처음에만 해도 제법 그럴듯하게 시작했다.

 

 

 

“성동격서라는 병법 알죠?”

 

그런데 그 말이 문제였다.

 

“악 형과 감 형이 남쪽으로 들어가서 놈들의 시선을 집중시키쇼.”

 

단둘이서 동암 분타로 들어가라고? 그것도 몰래 들어가는 게 아니라 놈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면서?

 

혹시 자신들을 미워해서 사지로 내모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럼 그 사이에 나머지 사람들이 중심부로 곧장 스며들어서 계란의 노른자를 쏙 빼내듯이 동암 분타에 있는 고수들을 제거하는 겁니다. 그들만 제거하면 나머지를 처리하는 것쯤이야 뭐 닭 모가지 비트는 일일 뿐이죠. 아주 쉽죠? 표정이 왜들 그래요? 닭 모가지 비틀 줄 몰라요?”

 

그 말을 듣고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꿀꺽 삼켰다.

 

풍천의 표정을 보니, 못 하겠다고 하면 마혈을 제압해서 놈들에게 던져줄 것만 같았다. 똥파리를 꼬이게 만들 미끼로.

 

악진표는 감능하를 슬쩍 쳐다보고는 자신과 별다를 게 없는 마음이란 걸 알고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놈들의 시선을 저희에게 집중시키죠. 그런데 어느 정도까지 버티면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우리가 일을 마칠 때까지는 버텨야겠죠?”

 

 

 

‘빌어먹을!’

 

그걸 지금 계획이라고 짠 건가?

 

―계획은 무슨! 그냥 때려 부수면 되죠!

 

차라리 평소처럼 그렇게 말하기라도 했으면 그러려니 하지.

 

‘천혈궁 놈들에게 당한 것처럼 위장하고 도망칠까? 주군께 가면 숨겨줄지 모르는데.’

 

악진표는 동암 분타가 가까워지자 심란한 마음으로 머리를 굴려봤다. 미리 마음을 정해야 적절한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풍천이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말 들어봤죠? 죽어도 그 자리에서 죽겠다는 마음으로 버티쇼. 그럼 내가 어떻게든 구해줄 테니까.”

 

나름대로 비장한 뜻이 담긴 말이었다. 악진표와 감능하의 귀에는 그 말이 마치 ‘도망가면 가만 안 두겠어!’ 그런 투로 들렸지만.

 

‘제기랄!’

 

두 사람은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할 수만 있다면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럴 능력이 안 되니 풍천을 노려보는 눈에다 힘만 주는 수밖에.

 

풍천은 두 사람의 그런 눈빛을,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해석했다.

 

“그럼 시작해보죠. 당신들은 저쪽으로 가쇼. 우리는 이쪽으로 갈 테니까.”

 

‘그래, 차라리 보지 않으면 속이라도 편하겠지.’

 

‘사나이가 맹서를 어길 순 없지.’

 

두 사람은 그렇게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남쪽으로 내려갔다.

 

풍천은 추호도 망설이지 않고 움직이는 두 사람을 보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죠? 제가 사람은 잘 뽑은 것 같습니다.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말이죠. 하, 하.”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일절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럼 자신들에게도 같은 임무를 부여할지 모르니까.

 

그때 풍천이 나직하게 말하며 찬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홱 몸을 돌렸다.

 

“자, 우리도 가죠.”

 

말투는 옆집에 놀러 가는 것처럼 가벼웠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상하게 등골이 서늘해졌다.

 

시신이 펼쳐진 들판을 쳐다보는 기분이랄까?

 

 

 

이십여 장 떨어진 곳에 순찰 무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낄낄거리며 잡담을 나누느라 두 마리 거대한 야조가 담장을 넘어가는 걸 알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남쪽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여기가 천혈궁의 분타냐? 다 나와!”

 

“내 오늘 이곳에서 피를 보리라! 누가 먼저 죽겠느냐? 여기에 혹시 대가는 없느냐!”

 

악진표와 감능하는 고래고래 악을 쓰면서 풍천에게 쌓인 울분을 대신 풀었다.

 

“웬 놈들이 감히 본장에 들어와서 소란이냐!”

 

“저런 건방진 놈들이! 저놈들을 잡아라!”

 

“뭘 잘못 먹고 체했나, 어디서 헛소리냐, 이놈들! 이리 와라, 내가 손발가락을 잘라주마!”

 

 

 

풍천은 소란이 일자 열을 센 다음 담장을 넘었다.

 

넘어오기 전에 이미 안쪽의 상황을 살펴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터였다. 더구나 앞에서 소란스런 일이 벌어진 상황. 근처에 있던 자들도 그쪽으로 달려갔을 것이었다.

 

‘감 형이 왜 대가를 찾지? 대가 중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나?’

 

고개를 갸웃거린 풍천은 곧장 분타주인 안평과 간부들이 기거하는 곳으로 향했다.

 

이곡이 앞장설 것도 없었다. 들어오기 전에 세세히 듣기도 했고, 해결사의 직감은 평무사들이 지내는 곳과 간부들이 지내는 곳을 본능적으로 구별했다.

 

허무정과 이곡, 남궁도영이 좌측을 마동춘과 고복수, 응초가 우측을 맡았다. 그리고 공손이향은 풍천의 바로 뒤에 바짝 붙어서 달렸다.

 

“무조건 죽여야 하나요?”

 

건물 하나를 지나가는데 뒤따라가던 공손이향이 나직이 물었다.

 

풍천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대답했다.

 

“좋을 대로. 단, 무리하진 마쇼. 다치면 안 되니까.”

 

마치 그 말을 듣고 싶었다는 듯 공손이향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움직임이 동암 분타의 무사들에게 포착된 것은 건물을 지나 정원을 통과할 때였다.

 

“웬 놈이냐?”

 

“멈춰라!”

 

풍천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대화할 생각도 없고.

 

그는 상대의 질문에 검으로 답했다.

 

한 줄기 섬광이 뻗어 나간 순간!

 

서걱! 투두둑!

 

골육이 잘리고, 반쯤 잘린 목에서 핏줄기가 뿜어졌다.

 

지옥으로의 첫 번째 초대!

 

풍천은 단숨에 두 사람을 쓰러뜨리고 중앙의 이층 건물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때였다.

 

남쪽에서 벌어진 소란 때문인지, 아니면 풍천 일행의 침입을 알고 나온 것인지, 이층 건물과 그 좌우 전각에서 수십 명의 무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체 어떤 새끼들이 겁대가리 없이 소란을 피우는 거야?”

 

“뭐야? 몇 놈 안 되잖아?”

 

“엇? 놈들이 순찰 무사들을 죽였다! 도주하지 못하게 막아라!”

 

풍천은 냉소를 지으며 그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흥, 개떼처럼 쏟아져 나오는군. 모조리 지옥의 불구덩이에 처박아주지!”

 

뒤이어 단천무령들도 동암 분타의 무사들을 덮쳤다.

 

그로부터 다섯을 세기도 전, 동암 분타의 무사들은 침입자들이 불길 속으로 뛰어든 불나방이 아니라 지옥의 사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검광, 도광이 어둠을 갈가리 찢으며 육신까지 가르고, 서릿발 같은 백색 장력은 한여름 밤의 어둠을 얼려버렸다.

 

십여 명이 피를 뿌리며 쓰러진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비명과 악다구니가 터져 나온 것은 그 이후였다.

 

“으아악!”

 

“물러서!”

 

“이 악귀 같은 놈들!”

 

동암 분타의 무사들은 동료들이 힘도 못 써보고 죽어가자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물러서기에 바빴다.

 

하지만 한 번 불기 시작한 바람은 그들이 물러선다고 해서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욱 거센 폭풍이 되어 그들을 덮쳤다.

 

선두에 선 풍천은 유령처럼 어둠 속을 누비면서 추호도 인정을 두지 않고 동암 분타 무사들을 추살했다.

 

바람이 스쳐가는 곳에서 피가 튀고, 공포에 질린 눈빛이 하나둘 생명을 잃고 바람 앞의 촛불처럼 꺼져갔다.

 

다른 사람들도 풍천에게 뒤질세라 동암 분타 무사들을 몰아붙였다.

 

도기, 검기가 휘몰아칠 때마다 동암 분타 무사들의 사지가 잘리고, 심장에서 피 분수가 솟구쳤다.

 

그렇게 단천무령들의 무정한 손에 삼십여 명이 쓰러졌을 때였다.

 

“이놈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쳐들어온 것이냐!”

 

장원을 뒤흔드는 고함과 함께 십여 명이 나타났다.

 

그중에는 턱이 뾰족하고 입술이 얇은 중년인과 흑의 장한 다섯이 섞여 있었다. 마침내 마혈수 안평이 숙주오마와 측근을 대동하고 나타난 것이다.

 

풍천은 상대하던 자들을 놔둔 채 그들을 향해 날아갔다.

 

평상시라면 손을 멈추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을지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말 한마디 나누는 사이 악진표와 감능하가 죽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안평은 섬뜩한 느낌이 들자 눈을 부릅떴다.

 

본능은 위험을 알리고 있는데 보이는 것이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형의 공포!

 

그는 반사적인 움직임으로 몸을 뒤로 뺐다.

 

스윽!

 

가슴의 옷자락이 길게 베어지며 싸한 느낌의 고통이 밀려들었다.

 

와락 얼굴을 구긴 그는 쌍수를 들어 가슴을 보호하며 전 공력을 끌어올렸다.

 

옷자락이 갈라진 가슴에서 피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등골이 서늘해진 그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소리쳤다.

 

“누, 누구냐!”

 

바로 그때 푸르스름한 검기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으헛!”

 

대경한 안평은 급히 몸을 뒤로 눕혔다.

 

하지만 그가 피하기에는 풍천의 공격이 너무나 빨랐다.

 

풍천의 검에서 뻗어 나온 검기가 안평의 왼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핏줄기가 사방으로 뿜어지면서 안평의 왼팔이 몸뚱이에서 떨어져 나갔다.

 

“크억!”

 

정신없이 물러서는 안평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풍천은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가며 좌수를 뻗었다.

 

냉정한 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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