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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80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5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80화

 

180화 

 

 

 

 

 

 

결국 그는 혼자서 커다란 접시를 네 개나 비운 후, 일행들의 질린 눈빛을 받으며 식사를 끝냈다.

 

사실 한두 접시 더 먹을 수도 있었지만 공손이향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그쯤에서 참은 것이었다.

 

“쩝, 맛이 괜찮네. 그렇죠? 이제 배도 적당히 채웠고, 차 맛이나 좀 볼까?”

 

적당히?

 

사람들은 반쯤 포기한 표정으로 풍천을 쳐다보았다.

 

도대체 그 많은 음식이 어디로 다 들어간 것일까?

 

신기하기만 했다.

 

 

 

남궁도영이 객잔으로 돌아온 것은 자정이 막 넘었을 때였다.

 

그는 풍천 일행을 찾지 않고 아래쪽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뒷간을 갔다 오던 풍천은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남궁도영을 보고 가까이 다가갔다.

 

‘무슨 일이 있었나 보군.’

 

왠지 고민에 찬 표정이었다. 책임 추궁을 당할지 모른다더니, 아마도 그의 염려대로 상황이 흐른 듯했다.

 

남궁도영은 다가오는 풍천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술 한잔할까 해서 왔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주무시오.”

 

풍천은 그의 맞은편 의자에 털썩 앉았다.

 

“하하, 저도 술이 한잔 마시고 싶군요.”

 

남궁도영은 여전히 쓴웃음을 지은 채 점소이를 불러 잔을 가져오게 했다.

 

남궁도영의 입이 열린 것은 풍천이 술을 석 잔 비운 후였다.

 

“창천검대는 도하 아우가 맡기로 했소. 뛰어난 아이니 잘 이끌 거라 생각하오만, 경험이 적어서 조금 걱정이오.”

 

“몇 배나 되는 신마성 무사들을 물리쳤는데도 책임 추궁을 했단 말입니까?”

 

“형제들을 너무 많이 잃었소.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여지가 없는 일이지요.”

 

“거 꽉 막힌 분들이시네.”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이오. 사실 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수하들을 이끄는 것은 내 성격과 맞지 않는 것 같소. 세가의 엄격한 규율도 정나미가 떨어지고. 하하하, 이 기회에 좀 더 자유롭게 살아볼까 생각 중이오.”

 

남궁도영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술잔을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풍천은 눈빛을 반짝이며 남궁도영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남궁도영이 술잔을 내려놓자 술을 따라주며 담담히 말했다.

 

“사실 이번 임무에 사람이 더 필요한데, 함께 일해 볼 생각 없습니까?”

 

남궁도영은 술잔을 잡다가 멈칫했다.

 

“그대와 함께 일을 한다?”

 

“하, 하. 그냥 해본 말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더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풍천은 당연히 그 점을 알고 말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남궁도영은 더욱 관심이 가는 눈길로 풍천을 바라보았다.

 

“무슨 임무인지 말해줄 수 있겠소?”

 

풍천은 빙그레 웃으며 술잔을 비웠다. 그러고는 술잔을 내려놓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구인창의 머리에 불을 붙이는 일이죠.”

 

남궁도영은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반문했다.

 

“천혈궁을 치겠다는 거요?”

 

“비슷하다고 봐야겠죠. 보나마나 신마성이 천혈궁을 움직일 것은 뻔한 일 아닙니까? 그러니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한바탕 흔들어놓아서 당분간 하남을 치지 못하게 할 생각이거든요.”

 

남궁도영의 눈빛에서 술기운이 빠르게 사라졌다.

 

천혈궁은 남궁세가에게도 위협적인 존재다. 그들이 흔들리면 남궁세가 역시 그만큼 안전해진다는 말.

 

문제는 풍천 일행이 모두 아홉 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도 풍천 일행이 강하다는 걸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천혈궁은 그 숫자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어떻게 상대하려고 하는 걸까? 방법이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겠지?

 

남궁도영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방법은 있소?”

 

“몇 가지 계획을 세웠죠. 그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진 못하겠지만, 최소한 구인창의 머리를 새카맣게 태울 수는 있을 겁니다.”

 

남궁도영의 입가로 웃음이 번졌다.

 

“그거 재미있겠구려. 정말 나를 끼워줄 거요?”

 

풍천도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대신 임무를 마칠 때까지 제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남궁도영은 다시 술잔을 비우고 입술을 닦으며 씩 웃었다.

 

“아주 쉬운 약속이구려.”

 

 

 

3

 

 

 

밤이 깊어 해시가 다 되어갈 무렵. 정원의 부가장 깊숙한 곳에서 탁자를 가운데 두고 세 사람이 둘러앉았다.

 

천붕성주 탁능한, 적련방주 담청, 검각주 구양곤.

 

시비가 세 사람의 찻잔에 차를 채우고 물러가자 탁능한이 먼저 짜증 내듯이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겁니까? 우리가 먼저 칩시다!”

 

구양곤은 찻잔을 잡아가며 고개를 저었다.

 

“누군들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겠소? 자칫 양패구상이라도 하면 구룡회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신세가 될 것이기에 참고 있는 것 아니오? 너무 서두르지 맙시다.”

 

담청도 구양곤의 손을 들어주었다.

 

“서두르다 큰 손해라도 보면 놈들을 도와주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신검문이 합류하고 천의맹 무사들이 도착한 후에 공격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때 탁능한이 비릿한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반드시 패웅보를 쳐야만 할 필요는 없지요. 놈들의 전력이 패웅보에 모두 모여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구양곤과 담청은 탁능한을 바라보았다.

 

탁능한은 찻잔을 들어서 입술을 적시고 말을 이었다.

 

“패웅보에서 오십 리 떨어진 비원장에 적 오백이 모여 있다는 걸 아실 겁니다. 패웅보와의 거리가 가까워서 위험하긴 합니다만, 놈들의 눈을 속이고 이동할 수만 있다면, 패웅보에서 지원 무사가 오기 전에 놈들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구양곤과 담청의 눈이 흔들렸다.

 

탁능한은 두 사람의 마음이 움직였다는 걸 알고 나직이 말했다.

 

“백 문주가 응천보를 탈환할 때 단리욱과 탈백검마 위자양을 물리친 걸로 인해서 무사들의 마음이 신검문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번 일로 인해서 모두들 총회주를 뽑아야 한다고 하는 판인데, 현 상황이라면 백 문주가 총회주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백 문주의 능력이면 충분하지요. 하지만 제대로 된 경쟁도 없이 백 문주가 총회주로 뽑히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구양곤과 담청은 잠시 입을 닫고 차만 마셨다.

 

총회주를 뽑아야 한다는 것에는 구룡회 모두 이견이 없었다.

 

총회주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세력이 구축되었다면, 신마성도 함부로 금천문과 삼도맹을 치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문제는 총회주로 누가 뽑히느냐는 것인데, 현재 총회주가 될 만한 사람은 넷뿐이었다.

 

백무천과 탁능한, 구양곤, 담청.

 

그중 백무천과 탁능한이 좀 더 강력한 후보였고, 구양곤과 담청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백무천과 탁능한의 경쟁이 심화되면, 구룡회의 안정을 위해서 구양곤과 담청이 되지 말란 법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라면 탁능한의 말대로 백무천이 총회주가 되는 게 거의 확실했다.

 

“험, 누가 되든 구룡회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뽑히면 되는 거 아니겠소?”

 

구양곤은 총회주가 누가 되든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러나 탁능한은 그의 눈빛 속에 감춰진 욕심을 놓치지 않았다.

 

“그야 당연히 그렇지요. 다만 좀 더 공정한 경쟁을 하자는 거지요. 더불어 신마성의 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면 금상첨화 아니겠습니까?”

 

한참을 생각하던 담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비원장만 치는 거라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지요. 그곳이 무너지면 신마성도 큰 타격을 입게 될 테니까요. 저는 총회주 문제를 떠나서 비원장을 치는 걸 찬성합니다.”

 

구양곤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탁능한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좋소, 담 방주까지 그런 생각이라면 한번 해봅시다. 단, 철저한 준비를 한 다음에 움직여야 할 것이오. 패웅보 놈들이 알게 되면 함정을 팔지도 모르오.”

 

“그야 당연하지요. 하하하, 이제야 뭐가 되는 것 같군요.”

 

탁능한은 잔잔한 웃음을 지으며 찻잔을 비웠다.

 

 

 

5

 

 

 

구강에서 장강을 따라 내려가던 커다란 상선 세 척이 안경에 도착한 것은 새벽 무렵이었다.

 

상선은 물건 대신 오백여 명의 무사들을 쏟아냈다.

 

부두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배에서 내린 자들은 신마성의 무사들이었던 것이다.

 

이미 신마성과 구룡회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상황. 사람들은 혈운이 안경을 뒤덮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무사들이 거의 다 배에서 내려왔다 싶을 때였다.

 

신마성 무사들의 수뇌부로 보이는 다섯 사람이 배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중 오십 초반의 장대한 체구를 지닌 초로인이 새벽안개가 흐르는 부두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형님께선 왜 일을 복잡하게 진행하시는지 모르겠군.”

 

그러자 바로 옆에 서 있던 중년인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만큼 완벽을 기하자는 것이지요.”

 

“하긴, 뭐 나야 명령에 따르면 그만이긴 하네만, 그래도 구룡회 따위를 상대하면서 조호이산지계니 뭐니 복잡한 계책을 세울 필요가 있을까 싶군.”

 

“성주께서 조심하실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동마부의 주인이자 사대마신 중 하나인 신월마신 좌궁화는 눈살을 찌푸리고 사우를 바라보았다.

 

“혹시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라도 있나?”

 

사우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담담히 말했다.

 

“이해해주십시오, 부주. 성주님의 명이 워낙 엄한지라…….”

 

“형님도 너무하시는군. 이 좌궁화에게까지 비밀이라니.”

 

“나중에 들으시면 왜 성주님께서 그리 명하셨는지 이해하실 겁니다.”

 

“좋아, 오늘은 그냥 넘어가지. 하지만 만약 군사 말처럼 중요한 이유가 아니라면, 내 군사를 다시는 보지 않을 거네.”

 

사우는 좌궁화의 협박에도 조용히 웃기만 했다.

 

좌궁화는 자신의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자 좌측을 돌아다보았다.

 

“두 분도 모르십니까?”

 

그의 좌측에는 있는 듯 없는 듯 두 명의 노인이 서 있었다.

 

웃는 듯 마는 듯 미묘한 표정을 지은 채 말없이 서 있는 빼빼한 노인은 무영신마(無影神魔) 염사진이었고, 좌궁화만큼이나 장대한 체구를 지닌 노인은 팔대신마 중 최강이라는 건곤신마(乾坤神魔) 섭위릉이었다.

 

좌궁화가 묻자 섭위릉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조금만 참게나, 좌 아우. 곽산에 도착하면 말해주겠지.”

 

“킁, 이거 원, 총단 사람이 아니면 알 자격도 없는 모양이군요.”

 

콧소리를 내며 투덜거린 좌궁화는 아래쪽을 향해 소리쳤다.

 

“사문! 준비 다 되었느냐?”

 

부두에서 수하들을 정렬시키고 명을 기다리던 엽사문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명만 내리시면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부주!”

 

“그럼 출발해!”

 

오백에 이르는 신마성의 정예는 장강에서 피어나는 새벽안개를 등에 지고 북쪽으로 빠르게 올라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시진이 지날 즈음, 풍천 일행도 합비를 떠나 동암으로 향했다.

 

천혈궁의 사대 분타 중 하나가 동암에 있는 것이다.

 

 

 

 

 

제3장. 성동격서(聲東擊西)

 

 

 

 

 

1

 

 

 

“할아버지!”

 

초웅은 마차 안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장 노인을 보고 놀라서 소리쳤다.

 

장 노인은 금산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초웅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그 정도 목소리라면 죽은 시체라 해도 벌떡 일어났을 것이다.

 

“이놈아, 조용히 좀 말해라. 이 할아비 아직 안 죽었으니까.”

 

황우연도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오, 장 형?”

 

“어떤 도둑놈들이 말과 마차를 뺏으려 해서 한바탕 싸웠소이다. 그런데 늙어서 몸이 말을 안 듣지 뭐요. 흘흘흘, 몇 년 전만 같았어도 놈들을 모두 귀신으로 만들어주는 건데…….”

 

초웅이 눈물을 글썽이며 물었다.

 

“산적을 만났어요?”

 

“산적보다 백 배는 더 무서운 놈들이었지.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나 좀 안아서 들어라.”

 

초웅은 커다란 몸을 마차 안으로 들이밀고 장 노인의 가냘픈 몸을 들어냈다. 손이 어찌나 큰지 장 노인은 의자에 앉은 것처럼 편안했다.

 

장 노인을 품에 안은 초웅은 관추양을 힐끔거리며 나직이 물었다.

 

“근데 저 사람은 누구죠?”

 

“관추양이라고 하는데, 네 형의 친구라고 하는구나.”

 

“그럼 뭐라고 불러야 돼요? 형은 할아버지의 주인이고, 저는 형의 동생이고, 저 사람은 형의 친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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