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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78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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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천풍전설 178화

 

178화

 

 

 

 

 

 

“내 가족의 안위에 해가 되는 일만 아니라면 들어주지.”

 

‘음, 백초령을 달라는 것은 해가 되는 일이 아니겠지?’

 

돈도 많이 벌었다. 또한 서로 좋아한다. 이미 첫 번째 관문은 통과했으니, 그 정도면 됐지 뭐.

 

풍천은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흔쾌하게 대답했다.

 

“그야 물론이죠. 하, 하, 하.”

 

“좋아, 그럼 그렇게 약속하지.”

 

“언제 떠나면 되겠습니까?”

 

“내일 새벽에 떠나도록 하게. 대외적으로는 정보 수집을 위해서 파견하는 것으로 하지. 놈들의 간세가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야.”

 

“그렇게 하죠. 그런데…… 경비는 제 돈으로 써야 합니까?”

 

‘그놈 참, 별걱정 다하는군.’

 

백무천은 피식 웃으며 풍천의 염려를 잠재웠다.

 

“조 당주에게 말해둘 테니 떠나기 전에 받아가도록 하게.”

 

“감사합니다. 주시는 만큼 열심히 하죠. 하, 하, 하.”

 

백무천의 눈매가 조금 가늘어졌다.

 

“모자라지 않게 줄 것이니 걱정 말게.”

 

 

 

기쁜 마음을 가지고 거처로 돌아온 풍천은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지?’

 

마침 방에서 나오던 허무정을 본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다들 어디 갔죠?”

 

허무정은 쓴웃음을 지으며 사정을 설명했다.

 

“그게…… 사공 형이 조금 다쳤네.”

 

“사공 형이? 어쩌다 다친 거죠?”

 

“공손 소저와 비무를 하다가 그만…….”

 

풍천은 방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러자 공손이향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해요, 령주. 제가 공력 조절을 잘못한 바람에 그만…….”

 

“감 형과 고 형은 뭐하고 사공 형이 공손 소저를 상대한 거죠?”

 

“바쁘다고 해서…….”

 

“얼마나 다쳤습니까?”

 

“빙백한천기가 조금 스며들었어요. 다행히 공력을 급히 낮추어서 심하진 않지만 당분간은 고생할 것 같아요.”

 

“쯔쯔쯔, 왜 고생을 사서 하는지 모르겠네.”

 

풍천은 혀를 차며 사공수가 누워 있는 침상으로 다가갔다.

 

사공수는 서리가 내린 것처럼 얼굴이 창백한 상태로 기침을 해댔다. 마치 한겨울에 고뿔이라도 걸린 것처럼.

 

“콜록, 콜록. 죄송합니다, 령주.”

 

“그러게 왜 함부로 달려들어요?”

 

“설마 그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습니다.”

 

풍천은 사공수의 맥을 짚어보고 이마를 좁혔다.

 

열심히 한기를 몰아낸다 해도 다 나으려면 며칠은 갈 것 같았다.

 

“우리는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오늘 밤에 이곳을 떠날 거요. 사공 형은 이곳에 남아서 정보 수집을 하며 내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쇼.”

 

“어딜 가시는데……?”

 

“빚 받을 놈들이 좀 있어서 말이죠.”

 

풍천은 나직이 답하고 씩 차갑게 웃었다.

 

사공수는 그 웃음을 보고 가슴이 섬뜩해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누군지 몰라도 더럽게 재수 없군. 걸려도 이런 사람에게 걸리다니.’

 

 

 

4

 

 

 

거대한 황촛불이 타오르는 전각 안.

 

혁련궁은 마주 앉은 사우를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후아가 생각보다 더 잘해주고 있군. 덕분에 구룡회의 힘이 저주로 집중되고, 천의맹까지 움직였어.”

 

“그들 속에 놈들이 섞여 있다고 보십니까?”

 

“어느 정도의 전력이 움직였느냐 하는 것이 문제일 뿐, 그렇다고 봐야겠지.”

 

“그럼 두 번째 계획을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이제 시작해. 구인창도 손이 근질거릴 게야. 흘흘흘, 하남이 피로 물들면 그들도 보고만 있을 수는 없겠지.”

 

“존명.”

 

혁련궁은 고개를 숙이는 사우를 보며 찻잔을 들었다. 그리고 입술을 가볍게 축인 후 지나가듯이 물었다.

 

“그건 그렇고, 어둠 속의 박쥐들은 몇이나 찾았느냐?”

 

“셋을 찾아냈습니다. 몇 더 있는 것 같은데 너무 깊이 숨어 있어서 찾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서두르지 말고 모두 찾아내. 없앨 때 한꺼번에 없애야 놈들을 장님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예, 성주.”

 

“둘째는 어떤가?”

 

사우의 입가에 가느다란 웃음이 걸렸다.

 

“잠응마력차혼대법의 첫 번째 관문은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이공자께서 그렇게 열심히 수련하는 것은 처음 봤습니다.”

 

잠마원의 다섯 원로가 돌아가면서 하루씩 위태곤의 몸에 공력을 불어넣었다. 위태곤의 혈도에 쌓여 있는 탁기를 몰아내기 위함이었다.

 

세 번에 걸쳐서 그 일이 끝나면 다섯 가지 영약으로 연단한 마신단을 복용시키고, 그 안에 깃든 기운을 흡수시키는 대법이 시행된다.

 

그 와중에 다섯 원로의 기운도 일부분이 녹아들어 갈 터. 대법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위태곤의 공력은 팔대신마보다도 더 강해질 것이다.

 

그럼 위태곤의 모든 무공이 빠른 시간 안에 십성 경지에 이를 것이고, 적어도 지금보다 배 이상 강한 고수가 되어 있겠지.

 

혁련궁은 위태곤을 강하게 만드는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클클클, 좋아하는 여자를 얻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이공자가 성주님께서 원하시는 만큼 강해지면 신검문 접수하는 일을 맡겨볼 생각입니다.”

 

“그것도 괜찮겠지. 좌우간 곧 놈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박쥐를 모두 가려낼 때까지는 정면격돌을 피하고 놈들을 자극해서 주력을 끌어내도록 해라.”

 

“예, 성주.”

 

“그리고 가면서 좌궁화도 데려가. 동마부에 오래 처박혀 있었으니 손이 근질거릴 게야.”

 

 

 

 

 

제2장. 별동대(別動隊)

 

 

 

 

 

1

 

 

 

새벽 어스름이 밀려들 무렵.

 

풍천은 조환에게 돈주머니를 하나 받아들고 단천무령과 함께 응천보를 나섰다. 인피면구를 쓰고서 중소문파의 무사들 속에 끼어들어 있던 악진표는 물론이고, 마동춘도 동행을 자처했다.

 

‘쩨쩨하게 은자 백 냥이 뭐야? 사람이 아홉 명이나 가는데.’

 

풍천은 조환의 조막만 한 씀씀이에 불만이 많았다.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고, 무슨 일이 있을지 누구도 모르는 판이다. 은자 백 냥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천혈궁을 상대해야 하는 임무를 생각하면 많은 돈도 아니었다.

 

그래 놓고 성과가 좋으면 나중에 더 주겠다나?

 

‘손에 들리지 않은 돈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신념을 지닌 풍천으로선 그 말이 영 미덥지 못했다.

 

하지만 돈이나 밝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진 않아서 꾹 참고 그냥 나왔다. 다그치는 것은 그때 주는걸 봐서 해도 될 테니까.

 

아껴 쓰면 반은 남을 것이라는 것도 강하게 따지지 않은 이유였고.

 

‘경비를 헤프게 쓰는 것은 아주 나쁜 습관이지. 성공하려면 검소함이 몸에 배어 있어야 돼.’

 

풍천은 그렇게 아껴 쓰고 남는 돈을 천풍장의 재건에 쓸 생각이었다.

 

그 정도는 이해하겠지 뭐.

 

 

 

응천보를 출발한 풍천 일행은 진시(오전 7시~9시) 말쯤 정원을 지나쳤다.

 

그때까지 임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악진표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정원으로 가기에 백무천의 명령을 받고 부가장으로 가는 거라 생각했거늘, 그냥 지나치지 않는가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야 정원을 지나친 것도 모르고 있어서 궁금함도 없었지만.

 

풍천의 입이 열린 것은 냇가에서 휴식 겸 점심 식사를 할 때였다.

 

“악 형, 천혈궁에 대해서 잘 알아요?”

 

악진표는 풍천의 질문에 별 뜻 없이 대답했다.

 

“천혈궁요? 어느 정도는 압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빚 받을 게 좀 있거든요.”

 

악진표는 측은한 표정으로 풍천을 바라보았다.

 

“하필 그놈들에게…… 아마 주지 않을 겁니다. 아주 독한 놈들이라서 줄 것은 안 주고, 받을 것은 악착같이 받아내는 놈들이죠.”

 

“상관없어요. 어차피 내 방식대로 받아낼 거니까.”

 

그때 이곡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 혹시 그 빚이라는 게 목숨 빚 아닙니까?”

 

“그럼 그놈들하고 돈 거래할 일 있어요?”

 

그제야 경악한 악진표가 눈을 홉떴다.

 

“설마 우리들만으로 천혈궁을 치겠다는 것은……?”

 

“못 할 것도 없죠. 어차피 전체를 상대하려는 건 아니니까.”

 

“신마성에 눌려서 하부 세력으로 전락했지만, 천혈궁은 마도 십대 세력 중 하나로 꼽히는 곳입니다. 게다가 혈마존 구인창은 구마존 중 하나입죠. 잘못하면…….”

 

풍천이 손을 들어서 악진표의 입을 막았다.

 

“나도 알고 있수. 그래서 총단을 치지 않고 외곽을 치려는 거죠. 그러니 알고 있는 거나 말해봐요.”

 

악진표는 지원을 청하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손이향과 감능하 등 천외천 사람들은 어차피 천혈궁을 안중에 두고 있지도 않았고, 허무정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허무한 표정이었다.

 

그나마 천혈궁의 무서움을 아는 사람은 이곡 정도. 그러나 그도 이제 풍천을 어느 정도 알게 된 만큼 토를 달 배짱은 없었다.

 

“외곽만 친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죠.”

 

악진표는 이곡마저 그렇게 말하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지미, 미친놈 옆에 있다가 날벼락 맞게 생겼군.’

 

하지만 어쩌랴,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에 걸려 있는 신세거늘.

 

“정말 외곽만 치실 겁니까?”

 

“일단은 그래야죠. 완벽한 기회가 오면 또 몰라도.”

 

‘젠장.’

 

더 말해봐야 씨알도 안 먹힐 것 같다. 악진표는 반쯤 포기하고 자신이 아는 바를 순순히 털어놓았다.

 

“사실 천혈궁은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더 강합니다. 구인창만 해도…….”

 

 

 

악진표는 근 이 각에 걸쳐서 천혈궁을 낱낱이 해부해서 설명해주었다.

 

풍천은 악진표가 왜 용후정의 오른팔인지 알 것 같았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사실 악진표도 풍천에 대한 일을 제외하면 실패한 일이 거의 없었다. 용후정이 그를 죽일 것처럼 다그치면서도 계속 일을 맡기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악진표의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남쪽 저 멀리에 있는 산등성이를 넘어서 달려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언뜻 봐도 사오십 명은 되어 보였는데 보고 있는 중에도 숫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문제는 앞에서 달려오는 자는 도주하는 자, 뒤에서 달려오는 자는 쫓는 자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일까?

 

사람들은 그곳을 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거리가 워낙 멀어서 양편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그때 풍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 남궁세가 사람들이 신마성 놈들에게 쫓기고 있잖아? 어떻게 된 거지?”

 

사람들이 풍천을 힐끔거렸다.

 

남궁세가와 신마성? 정말일까?

 

소속을 확인하려면 옷에 있는 문양이나 검의 수실 등을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점처럼 보일 뿐, 옷 색깔도 정확치가 않았다.

 

공손이향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정말 남궁세가 사람이에요?”

 

“그렇다니까요. 응? 저 사람은 남궁도영이잖아? 턱 밑에 흉터가 생겼네? 언제 생긴 거지?”

 

턱 밑에 흉터?

 

사람들은 시력을 최대한 집중하고서 달려오는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눈이 아플 정도로 노려보았지만 흉터는커녕 얼굴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제길, 정말 있긴 있는 걸까?’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흉터를 찾고 있는데 풍천이 핀잔을 주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신마성 놈들에게 쫓기고 있는데 보고만 있을 겁니까? 사람들이 왜 이렇게 인정머리가 없어요?”

 

졸지에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이 된 단천무령과 마동춘은 풍천을 따라서 몸을 날렸다.

 

늦으면 늦었다고 뭐라고 할지 모르는 일. 다른 사람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남궁도영은 앞쪽에서 달려오는 사람들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기껏해야 열 명이다. 남궁세가의 정예도 당한 판에 저들이 무슨 도움이 될까?

 

그런데 거리가 오십여 장으로 가까워지자 생각이 바뀌었다.

 

순식간에 백 수십 장의 거리가 좁혀졌다. 

 

엄청난 신법. 모두가 일류 이상, 절정 경지에 이른 고수들이 아닌가 말이다.

 

달려오는 자들의 수준을 알게 되자 이제는 다른 것이 걱정되었다.

 

저들이 만약 적이라면?

 

그럼 끝장이었다.

 

남궁도영은 입술을 깨물고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어차피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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