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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77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0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77화

 

177화

 

 

 

 

 

 

고삐를 쥔 관추양은 급히 중심을 잡고 눈을 홉떴다.

 

“어떻게 된 겁니까?”

 

“따로 몰지 않아도 되네. 노마가 집까지 알아서 갈 거야.”

 

“예?”

 

“몸이 비쩍 마르고 늙어서 그렇지, 노마는 보통 말이 아니네. 사람 말을 어느 정도는 알아듣지.”

 

세상에 그런 말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눈앞에 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손이 자유로워진 관추양은 일단 장 노인의 상처를 손보았다.

 

장 노인의 얼굴은 백짓장처럼 창백한 상태였다. 내외상이 겹친 데다 나이가 많이 든 몸이어서 쉽게 회복될 것 같지 않았다. 

 

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가 아니었다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를 만큼 심각한 상태.

 

마차 안에 있는 보따리를 찢어서 상처를 싸맨 관추양은 명문혈을 통해서 자신의 공력을 주입했다. 당장 큰 효과는 없을지 몰라도 내상을 가라앉히는 데 조금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등가위는 조양경이 수하들을 데리고 돌아오자 눈을 치켜떴다.

 

“그래서 놈들에게 당했단 말이냐?”

 

마차를 취하라 했더니 부상당한 몸으로 돌아왔다. 게다가 수하 둘은 중상을 입은 상태고.

 

평소였다면 놈들을 추적해서 목을 쳐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놈들과의 거리가 오 리는 벌어져 있을 터. 잡으려면 얼마의 시간이 더 걸릴지 모른다.

 

천의맹의 뒤를 따라가기도 바쁜 판국이거늘.

 

더구나 중상을 입은 수하의 상처를 이대로 놔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빌어먹을! 도대체가 되는 일이 없군.”

 

왈칵 짜증이 난 등가위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를 놀리기라도 하듯 비가 더욱 거세게 퍼붓고 있었다.

 

“당추환과 적상유를 업어라. 관추양과 늙은이를 잡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천의맹을 쫓아간다. 서둘러!”

 

 

 

2

 

 

 

노마는 이 각을 쉬지 않고 달렸다. 그때까지 따라오는 자는 보이지 않았다.

 

놈들이 왜 추적을 포기한 것인지 몰라도 장 노인으로선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몸 상태가 엉망이긴 하지만, 더 이상 공격을 받지만 않는다면 천풍장까지 갈 수 있을 듯했다.

 

머리를 벽에 기댄 장 노인은 고마움이 담긴 눈빛으로 관추양을 바라보았다.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관추양이라 합니다.”

 

장 노인은 천풍문의 정보통답게 그 이름을 바로 알아들었다.

 

“자네가 사신도 관추양?”

 

“부끄럽게도 강호의 친구들이 그렇게 불러주고 있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자부심이 깃들었던 별호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에게 그런 별호가 붙은 게 부끄럽기만 했다.

 

남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몇 번이나 죽었을 놈이 사신도라니. 웃기지도 않는 것이다.

 

사정을 모르는 장 노인은 관추양의 성격이 강호의 소문과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신도라 불려서 살벌하고 거친 성격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말하는 거나 행동을 보니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마치 자신의 젊은 날을 보는 기분이랄까?

 

사람들이 그를 흑야살이라 부르며 두려워했지만, 사실은 그도 내면은 상당히 부드러운 남자였지 않은가 말이다. 한두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관추양이 마음에 든 장 노인은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어디로 가던 길인가? 시간이 괜찮다면 이 늙은이를 집까지 데려다 주지 않겠나? 물론 대가는 지불하겠네.”

 

내상이 생각보다 깊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정신이 몽롱했다.

 

이러다 죽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

 

그러나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죽더라도 초웅을 만난 다음에 죽어야 했다. 자신의 단 하나뿐인 손자에게 부탁할 것이 있는 것이다.

 

관추양은 잠시 망설이다가 장 노인에게 물었다.

 

“상구 근처를 잘 아십니까?”

 

“잘 알지. 내 집이 상구에서 멀지 않으니까.”

 

자신의 집이라기보다는 풍천의 집이지만.

 

뭐 어때? 그게 그거지.

 

장 노인은 그런 마음으로 가볍게 대답했다. 그런데 관추양이 다시 물었다.

 

“혹시 천풍장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군요.”

 

장 노인의 주름진 눈꺼풀이 최대한 위로 올라갔다.

 

“천풍장은 왜……?”

 

“그곳에 가던 길입니다.”

 

‘뭐?’

 

장 노인은 마부석에 앉아 있는 관추양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지금까지 천풍장을 직접 찾아온 손님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청부를 하기 위해서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혹시 원한 때문에? 아니면 청부로 인해서 손해를 본 거라도?

 

장 노인은 잔뜩 경계하며 넌지시 물었다.

 

“무슨 일로 천풍장에 가려는 건가?”

 

“얼마 전에 잠풍이라는 친구와 헤어졌는데, 갈 곳이 없으면 천풍장으로 찾아오라 하더군요.”

 

‘친구? 그 게으름뱅이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저기 다니며 친구를 사귄 거지?’

 

장 노인은 풍천이 요즘 들어서 친구를 사귀며 다니는 게 신기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구라고 할 사람이 한 명도 없었거늘.

 

그는 풍천의 금제가 풀리면서 게으른 성격도 조금 변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어쨌든 목적지가 같다는 것은 장 노인에게도 손해될 게 없었다. 대가를 따로 지불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또한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게 손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 역시 마음에 들었다.

 

“클클클, 이것도 인연이구먼, 내가 사는 곳이 바로 천풍장이라네.”

 

이번에는 관추양이 깜짝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고삐를 잡아당겼다.

 

노마는 관추양이 갑작스럽게 고삐를 잡아당기자 짜증이 나는지 고개를 돌리고 그를 째려보았다.

 

그때 관추양이 장 노인에게 물었다.

 

“그럼 어르신과 잠풍이라는 친구와는 어떤 관계이십니까?”

 

하인과 주인.

 

그러나 자존심이 있지,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내가 바로 천풍장의 총관이라네.”

 

노마의 시선이 관추양에게서 장 노인에게로 옮겨갔다.

 

두꺼운 입술을 비틀고 푸르륵거리는 게 마치 비웃는 것 같았다.

 

‘총관은 무슨! 하인이지!’ 그렇게 말이다.

 

 

 

3

 

 

 

응천보를 되찾은 지 사흘째.

 

아침 식사를 마친 풍천은 공손이향에게 공력의 조절과 적을 상대할 때의 요령에 대해서 가르쳤다.

 

단순한 무공만 따진다면 단천무령 중 그녀와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허무정뿐이다. 하지만 초식의 운용과 실전의 경험 면에 있어서는 초보나 다름없었다.

 

신마성과 싸울 때도 적의 죽음을 보고 당황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약점을 보여서 역습을 받을 뻔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지 않은가.

 

공손이향은 조금도 싫다는 소리를 하지 않고 풍천의 지도를 받았다. 싫어하기는커녕 오히려 즐기는 듯했다.

 

그런데 이 각 정도 지날 무렵, 백무천이 풍천을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풍천은 감능하와 고복수에게 공손이향을 맡겼다.

 

“두 사람이 실전처럼 연습하면서 세세한 임기응변에 대해서 좀 알려주쇼.”

 

그러고는 백무천의 거처로 향했다.

 

하지만 감능하와 고복수는 공손이향과 비무할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자칫 공손이향이 다치기라도 하면 양곽연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공손이향의 무지막지한 빙백한천장을 상대하다가 다치면 자신만 손해고.

 

그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공손이향에게서 멀어졌다.

 

그때 호시탐탐 공손이향의 곁으로 접근하고 싶었던 사공수가 눈빛을 빛내며 나섰다.

 

“그럼 제가 가르쳐드리지요.”

 

이제 막 초식 운용의 묘미를 알아가던 공손이향은 사람들이 자신을 피하자 서운했던 터였다. 그런데 사공수가 스스로 나서주니 고맙기만 했다.

 

“고마워요.”

 

 

 

* * *

 

 

 

백무천은 풍천이 찻잔을 반쯤 비운 후에야 입을 열었다.

 

“계속 정체를 숨기고 지낼 건가?”

 

“사정이 있어서 그러니 문주님이 이해해주십쇼. 전들 인피면구 쓰고 있는 게 편해서 이러겠습니까? 생각해보십쇼. 제 얼굴과 이름이 드러나면 신마성 놈들이나 천외천이 가만있겠어요? 제가 그곳에서 뭐 대단한 거라도 얻은 줄 알고 벌 떼처럼 달려들걸요?”

 

사실 신마성이야 두려울 것 없었다.

 

문제는 천외천이다.

 

공손무헌과 달리 공손무백은 절대 과거를 참회할 사람이 아니다. 그는 벽라동의 비밀을 숨기기 위해서라도 전력을 다해서 자신을 죽이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천주인 공손량의 의중도 아직 모르지 않는가 말이다. 

 

그런 상태에서 자신을 밝힌다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그것도 말해줄까?’

 

풍천은 백무천을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곧 생각을 바꾸고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백무천도 위험해질지 모른다. 

 

백초령의 아버지, 미래에 장인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순 없는 일 아닌가?

 

‘음, 장인이라…… 기분이 이상한데?’

 

풍천은 머쓱한 표정으로 눈을 돌렸다.

 

그런데 백무천의 눈에는 그것이 마치 무슨 큰 비밀을 감추려는 것처럼 보였다.

 

‘정말 대단한 것을 얻었는지도 모르지.’

 

백무천은 무척 궁금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자네 사정이 정 그렇다면 별수 없지.”

 

풍천은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나오기 전에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하신 거죠?”

 

“삼사 일 후 정원으로 이동할 생각이네. 이제부터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될 텐데, 자네가 전면으로 나서주면 어떨까 싶어서 그러네.”

 

“에이, 그건 싫습니다. 저는 앞으로 나서는 건 딱 질색이거든요.”

 

“그럼 계속 뒤에서 노닥거리겠다는 건가?”

 

“노닥거리긴 누가 노닥거려요?”

 

“실력이 있으면서 나서지 않으면 노닥거리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대신 그만큼 중요한 일을 하면 되죠.”

 

“정말이지?”

 

왠지 당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장인이 될지 모르는 사람이니 대들기도 애매했다.

 

“그렇다니까요?”

 

“좋아, 그럼 일을 맡길 테니 열심히 하게.”

 

“일요? 어떤 일을……?”

 

“그야 중요한 일이지.”

 

정말 당했군!

 

‘제길, 이래서 소문은 믿을 것이 못 된다니까.’

 

신검무제 백무천은 진중해서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소문나 있는데, 다 헛소리였다.

 

초령이의 아버지만 아니면 그냥 나가버리는 건데.

 

풍천은 입술을 씰룩이면서 백무천을 흘겨보았다.

 

“어디 말해보십쇼.”

 

백무천은 가라앉은 눈빛으로 풍천을 바라보았다.

 

“천혈궁을 흔들어주었으면 하네.”

 

“천혈궁을? 저희들만으로요?”

 

“못 하겠으면 말하게. 억지로 강요할 생각은 없으니까.”

 

천혈궁은 형의 원수와도 같은 곳이다. 자신 역시 반드시 손보고 싶었던 곳.

 

“놈들이 하남을 칠까 봐 걱정돼서 그러십니까?”

 

백무천은 이마를 좁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구룡회를 삼키는 게 놈들의 최종 목적이라면 저주에 오래 머물 이유 없이 곧바로 회남을 치든가, 아니면 최소한 정원과 명광까지 올라왔어야 해. 그런데 저주에 머물면서 우리가 정원으로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구룡회 전체를 상대하는 게 부담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죠.”

 

“금천문과 삼도맹을 단숨에 무너뜨린 놈들이야. 그런 놈들이 뭘 두려워한단 말인가? 게다가 자네가 말한 신마비원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더욱더 두려워할 일이 없지 않겠나? 아무래도 우리의 힘을 한곳으로 몰리게 해놓고 다른 곳을 노리는 것 같아. 아니면 구룡회를 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있든가.”

 

문득 어떤 생각이 든 풍천의 눈이 커졌다.

 

‘혹시……?’

 

백무천은 풍천의 생각을 읽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만 말했다.

 

“어쨌든 천혈궁이 신마성과 함께 치고 올라온다면, 현재 남아 있는 경천산장과 검각과 본문의 전력만으로는 막아낼 수가 없네. 하지만 천혈궁을 거세게 흔들어놓는다면 상황이 달라질 거야. 힘든 일인 줄은 아네만, 자네라면 적당한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풍천은 눈빛을 반짝이며 넌지시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나중에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십쇼. 그럼 확실하게 처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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