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17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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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174화
174화
단리욱을 쫓아가서 묵은 빚을 받으려던 풍천은 위자양이 날아오자 밝게 웃으며 반겼다.
“어서 오쇼.”
위자양은 웬 미친놈인가 싶었다. 피가 튀는 전쟁터에서 어서 오라니. 그것도 웃으면서 말이다.
“미친놈!”
그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풍천을 향해 검을 뻗었다.
풍천은 씩, 열기 하나 없는 웃음을 지으며 위자양을 향해서 마주 검을 뻗었다.
쩡!
날아들던 위자양의 몸이 옆으로 미끄러졌다.
와락 구겨진 얼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어떻게 보면 사기당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되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검을 앞세운 풍천이 그림자처럼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헉!”
헛바람을 들이켠 그는 급히 몸을 틀며 공격권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풍천이 마음먹고 펼친 천풍무영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강호를 통틀어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더구나 위자양은 백무천과의 대결로 부상을 입은 상태가 아닌가.
“크윽!”
어깨가 깊숙이 갈라진 위자양은 당황한 표정으로 정신없이 검을 뻗었다.
그때 얼음송곳처럼 싸늘한 목소리가 그의 고막을 후볐다.
“잘 가슈.”
동시에 심장어림에 싸한 충격이 전해지고 온몸이 허공에 붕 뜬 기분이 들었다.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시야. 온몸이 축 늘어지는 기분.
위자양은 떡 벌린 입을 덜덜 떨면서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어이가 없었다. 자신의 심장에서 피분수가 뿜어지고 있는데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말 내가 죽는 건가?’
그는 안간힘을 다해서 고개를 돌렸다. 일 장 뒤에 서서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풍천이 붉게 보였다.
“너, 너…….”
풍천은 온기 한 점 없이 씩 웃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지옥에 가면 동광후가 반갑게 맞아줄 거요. 내가 누군지 궁금하면 그에게 물어보쇼.”
동시에 위자양의 몸이 뻣뻣하게 꼬꾸라졌다. 마침내 팔대신마 중 또 한 사람이 풍천의 손에 죽은 것이다.
풍천은 별일 아니라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삼 장 앞까지 다가온 백무천이 곤혹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그동안 자네를 너무 몰랐군.”
위자양이 비록 내상을 입고 풍천을 얕보긴 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몇 수 만에 죽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강호가 이 사실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니 자신의 말을 믿기나 할까?
풍천은 백무천의 눈빛을 슬그머니 피하며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운이 좋았죠.”
탈백검마 위자양을 죽인 것이? 아니면 실력이 늘은 것이?
백무천은 워낙 빠르게 벌어진 일인 데다가 풍천의 몸으로 가려져 있어서 마지막 장면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곧 아쉬움을 털어내고 몸을 돌렸다. 풍천이 예상했던 것보다 강하다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다.
“일단 상황을 정리하고 보세.”
그런데 풍천이 그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혹시 신마비원에 대해서 아십니까?”
멈칫한 백무천은 고개만 돌리고 되물었다.
“신마비원?”
풍천은 손을 들어서 단천무령이 몰아붙이고 있는 자들을 가리켰다.
“저기 저자들이 바로 신마성이 비밀리에 기른 신마비원의 고수들입죠.”
“신마비원이라…….”
신마비원의 이름을 되뇌는 백무천의 눈빛이 잘게 흔들렸다.
기존의 신마성만 해도 버거운 상대였다. 하거늘 비밀리에 기른 절정고수들이 다수 존재한다면 더욱더 힘든 싸움이 될 것이었다.
‘산 너머 산이군.’
단리욱이 도망가고 위자양이 죽자 신마성 무사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단천무령의 공격을 받은 신마비원의 고수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비슷한 무위에 인원이 두 배인 상황. 그들은 동료 두 사람이 쓰러지자 상황이 완전히 기울었음을 알고 몸을 빼서 응천보를 빠져나갔다.
그때부터 신마성 무사들도 사력을 다해서 응천보를 탈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은 이백오십여 명 중 칠팔십 명이 살아서 도주하는 것으로 이 각에 걸친 격전이 일단락되었다.
신검문과 중소문파 연합의 완벽한 승리!
평상시라면 환호가 울려 퍼져야 했다. 하지만 혈향이 진동하고 청석에 스며든 응천보 사람들의 피가 아직 마르지도 않은 상태였다.
사람들은 승리의 기쁨을 가슴에만 담아둔 채 격전의 잔재를 정리했다.
3
응천보를 정리하는 사이 어둠이 밀려들었다.
시신은 구덩이를 파서 모두 묻고 사방에 쏟아져 있는 핏물은 일단 흙으로 덮은 상태였다. 하지만 새벽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서 워낙 많은 사람이 죽어나간 곳이었다. 코를 찌르는 짙은 피비린내는 쉽게 가시지 않고 사람들의 표정을 구겨놓았다.
“바람이 습한 걸 봐서 비가 올 것 같군. 몽땅 쏟아지면 좀 나을 것 같은데…….”
풍천은 달과 별이 반짝거리는 하늘을 쳐다보며 연신 구시렁거렸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때는 여름, 언제 어느 때 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은 계절이었다.
하지만 하늘의 상태를 봐서는 그들이 원하는 것과 달리 비가 올 것 같지 않아서 단순한 바람일 뿐이라 생각했다.
감능하는 풍천을 째려보며 내심 코웃음 쳤다.
일전에는 구름이라도 껴서 풍천이 맞췄지만 오늘은 아무리 봐도 비가 올 것 같지 않았다.
‘비가 오면 내가 장을 지진다.’
그런데 술시를 넘어갈 무렵이었다. 갑자기 달과 별이 구름 속으로 사라지더니 느닷없이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사람들은 빗물에 씻겨나가는 핏물을 보고 다행으로 생각하는 한편 비가 오기를 바라며 구시렁거리던 풍천을 힐끔거렸다.
신기했다. 어떻게 알았을까? 그냥 말해봤는데 우연히 맞은 걸까?
감능하는 손을 쥐었다 펴면서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 말을 했으면 자신이 장을 지질 때까지 령주가 볶아댔을 게 분명했다.
쏴아아아아.
밤이 깊어가면서 빗줄기가 더욱 굵어지기 시작했다.
자정이 다 된 시각. 천공에선 어둠을 백색으로 물들이는 벼락이 작렬하고 천둥소리가 통곡처럼 울렸다.
번쩍! 콰르릉.
그런데 눈부신 백광이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일 때였다. 누군가가 응천보 중앙의 이 층 건물 지붕 위에 서서 고개를 쳐들고 중얼거렸다.
“흠, 오랜만에 제대로 된 벼락을 보는군.”
천둥 벼락이 떨어지는 빗속에서 흥에 겨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이십 대 청년. 다름 아닌 풍천이었다.
하긴, 그가 아니고서야 벼락이 떨어지는 밤에 이 층 건물 지붕 위에 올라갈 사람이 누가 있을까.
간이 큰 것인지, 아니면 정신을 잠깐 방에 놓고 나온 것인지……. 아마 누가 봤다면 죽고 싶어 환장한 미친놈으로 치부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풍천은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였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을 목격하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을 보면 절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콰과광! 쩌저저적!
그가 하늘을 바라보는 와중에도 귀청을 후벼 파는 천둥소리는 계속 되었다.
그런데 그의 머리카락이나 옷은 조금도 비에 젖지 않은 상태였다. 그토록 거센 빗줄기가 몸으로부터 한 치 떨어져서 흐르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무심한 눈으로 하늘을 보던 풍천이 검을 빼들었다.
그때였다.
번쩍!
하늘에서 그 어느 때보다 밝은 백광이 작렬하더니 비단을 잡아 찢는 굉음이 귀청을 터트릴 것처럼 울렸다.
쩌저저적! 콰광!
눈썹 한 올 흔들리지 않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풍천은 앞을 향해 천천히 검을 내밀었다.
몸 안에서 꿈틀대던 음양의 두 기운이 광폭한 폭류처럼 흐르면서 검을 든 손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두 기운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검을 든 손이 터질 것처럼 부풀었다.
후우우우웅!
검명(劍鳴)이 천둥소리를 뚫고 완연하게 들렸다.
찰나였다!
고오오오오!
검첨에서 눈부신 청광이 쭉 뻗어 나갔다.
그것은 또 하나의 벼락이었다.
시퍼런 벼락은 뻗어 나가는 걸로 만족하지 않고 쏟아지는 빗줄기와 어둠을 뻥 뚫으면서 수십 갈래로 쪼개졌다.
그 시간은 말 그대로 찰나지간에 불과했다. 시퍼런 벼락이 정말 검에서 뻗어 나왔는지, 아니면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을 잘못 본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풍천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음양의 두 기운을 확실하게 끌어냈고 마지막에는 합일을 시키면서 뇌정의 기운을 새로이 만들어낸 것이다.
‘음하하하, 드디어 뇌정천결을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 알아냈다!’
지나친 공력의 소모로 힘이 조금 빠지긴 했지만 그는 가슴이 벅차서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뇌정천결의 두 번째, 뇌정낙류산(雷霆落流散)을 펼쳐보았다. 어설프긴 하지만 처음 펼쳐본 것치고는 그럭저럭 만족할 정도의 결과였다.
물론 그 힘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으려면 아직 까마득했다. 공력이 지나치게 많이 소모되는 것도 보완해야 하고.
그러나 중요한 것은 뇌정의 기운을 검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상관 노형, 봤수?’
‘뭐였지?’
백무천은 방을 나와서 이 층 건물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백광을 번뜩이며 떨어지는 벼락과 천둥소리도 조금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조금 전에 느낀 심장이 멈출 것 같던 전율을 두 번 다시는 느낄 수가 없었다.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가슴을 관통한 거대한 그 기운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정말 단순한 벼락이었을 뿐인가?’
백무천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신검문의 일과 신마성과의 싸움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서 그렇게 느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주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묵묵히 백무천을 바라보던 경호무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백무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몸을 돌렸다.
“아니다, 천둥 벼락이 치니 아무래도 신경이 너무 날카로워진 것 같다.”
“혹시 조금 전에 친 벼락이 마음에 걸리신 건 아니신지요?”
“무슨 말이냐?”
“조금 전 근처에 벼락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거의 동시에 또 한 번의 벼락이 쳤지요. 저쪽 이 층 건물 뒤쪽에서…….”
돌아서던 백무천의 몸이 멈칫했다.
“이 층 건물 뒤쪽에서?”
“예, 문주. 조금 이상하게 생각되긴 했습니다만 워낙 비가 많이 내리고 벼락이 자주 치는 터라 그러려니 했습니다.”
눈살을 찌푸린 백무천은 다시 고개를 돌려 이 층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비를 맞지 않도록 호신진기를 끌어올린 후 빗속으로 몸을 날렸다.
깜짝 놀란 경호무사가 급히 백무천을 불렀다.
“문주님.”
“따라올 것 없다. 곧 돌아올 테니까.”
백무천은 경호무사에게 따라오지 말라 말하고는 이 층 건물 쪽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이 층 건물의 지붕 위로 날아오른 그는 지붕 위를 세세히 살펴보았다.
그렇게 반 각이나 지났을까. 그는 어느 한곳을 보고 신광을 번뜩이면서 좌수를 가볍게 저었다.
흘러내리던 빗물이 옆으로 밀려나고 기왓장에 남은 손바닥만 한 문양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회오리치듯 휘도는 문양은 푸른 이끼를 벗겨내고 기왓장을 파고든 상태였다.
별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 그 자국은 절대 오래전에 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것도 아니었다.
‘진기가 와류처럼 휘돌면서 기와를 깎아냈다.’
정확한 원인을 알 수는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누군가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조금 전에.
누가, 왜 여기서 그런 가공할 기운을 흘려낸 것일까?
백무천의 눈에서 흘러나오던 신광이 복잡하게 흔들렸다.
‘내 아래가 아닌 자다.’
응천보에서 그만한 고수는 오직 풍천밖에 없다. 사람들은 아직 그의 무서움을 모르지만 자신만은 알고 있지 않은가.
‘정말 그라면 계획을 새로 짜야 할지도 모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