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17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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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173화
173화
제10장. 풍천, 뇌정(雷霆)을 얻다
1
신검문과 중소문파 군웅들의 연합은 곧장 응천보로 향했다.
잠시 후면 신마성과 마주칠지 모르는 상황. 모두가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금천문과 삼도맹을 무너뜨린 신마성이 장강을 건넌 후 크고 작은 싸움이 벌어지긴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신마성에 대한 첫 번째 반격인 것이다.
응천보가 십 리쯤 남았을 때 먼저 파견했던 신검문의 무사가 달려와서 응천보의 상황을 전했다.
응천보에 있는 적의 인원은 모두 이백오십. 그중 백오십 명 정도가 신마성의 정예라 했다.
그 소식을 들은 백무천은 싸늘한 눈빛을 빛냈다. 그 정도라면 우려할 만한 전력은 아니었다.
“계획대로 우리가 중앙을 뚫도록 하겠소.”
응천보는 명광에서 오 리가량 떨어진 야산 자락에 지어져 있었는데 장원 주위는 소나무와 백양목이 둘러싸고 있었다.
단숨에 십 리를 내달린 신검문과 중소문파 연합은 숲을 뚫고 응천보를 향해 달려갔다.
신마성 무사들이 그들을 발견하고 안을 향해 소리쳤다.
“적이다!”
“구룡회가 쳐들어온다!”
선두에 선 신검문 무사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응천보의 담을 넘었다.
풍천이 이끄는 칠 대는 비응장이 중심인 육 대와 함께 좌측 끝에서 응천보로 진입했다.
그들이 들어갔을 때는 이미 신검문이 들어간 곳에서 격돌이 벌어진 상태였다.
신마성 무사들은 대부분 그곳으로 갔는지 삼십여 명만이 육 대와 칠 대의 앞을 막아섰다.
그런데 앞을 막는 자들이 삼십여 명에 불과한 걸 보고는 육 대와 칠 대의 무사 중 사십여 명이 호기를 부리며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죽여버려!”
“저놈들을 죽여서 응천보 사람들의 한을 갚아주자고!”
풍천은 말릴 사이도 없이 달려드는 그들을 보고 버럭 소리쳤다.
“조심하쇼! 함부로 달려들지 말라니까!”
칠 대에 속한 사람 중 서너 명이 주춤거리며 눈치를 봤다. 그러나 나머지는 개 짓는 소리만큼도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난전이 벌어졌다.
쩌저저정! 채챙!
“크으윽!”
“으악!”
병장기가 얽혀들며 비명이 터져 나오고 피가 튀었다.
신마성 무사들은 대부분이 오대인 광혼신마대와 추혼신마대의 정예무사들이었다. 중소문파의 무사들이 상대하기에 벅찬 정도가 아니라 삼 초도 제대로 버티지 못할 만큼 무력의 차이가 컸다.
풍천은 짜증을 내며 몸을 날렸다.
“진짜 말 안 듣네.”
그가 움직이자 단천무령도 신마성 무사들을 공격했다.
그들은 그간 풍천 때문에 쌓인 짜증과 답답함을 풀기라도 하듯 손에 일말의 인정도 두지 않았다.
이번에는 신마성 무사들의 입에서 비명과 신음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그리고 다섯을 세는 사이 삼십여 명의 신마성 무사들 중 절반가량이 그들에 의해서 쓰러졌다.
심장이 꿰뚫린 자, 목이 반쯤 잘린 자, 가공할 장력에 얻어맞고 쩍 벌린 입에서 피를 뿜어내며 날아가는 자…….
생각지도 못한 상황.
그토록 살벌한 기운을 뿜어내던 신마성 무사들의 얼굴에 질린 표정이 떠올랐다.
칠 대와 육 대의 무사들도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에 환호하는 마음보다 경악이 더했다.
그 와중에도 풍천과 단천무령들은 신마성 무사들을 하나하나 추살했다.
여기저기서 외쳐대던 악다구니가 서서히 멈추고, 고막을 뒤흔들던 격전장의 소음이 잦아들었다.
들리는 것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과 신음뿐.
하지만 그러한 소리도 오래가지 않았다. 신마성 무사들 중 다섯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도망쳐버리자 갑자기 장내가 조용해졌다.
칠 대의 일반무사들과 육 대의 무사들은 눈을 부릅뜨고 경악한 표정으로 풍천과 단천무령을 쳐다보았다.
‘세상에! 저렇게 강한 자들이었다니!’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군.’
대부분이 그런 생각이었다.
풍천은 사람들의 그러한 눈빛이 불만이었다.
‘제길, 힘을 바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그만큼 더 힘든 일이 더 많이 주어질 테니까.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강하면 의심을 받기 십상이었다.
‘봐, 벌써부터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잖아?’
풍천은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사람들을 다그쳤다.
“뭐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을 도와서 놈들을 쳐요! 육 대는 저쪽을 도와주쇼! 우리는 저 안쪽을 도와줄 테니까!”
그제야 정신을 차린 비응장주 주소문은 마치 명령을 받은 사람처럼 고개를 힘차게 숙이고 수하와 함께 오른쪽으로 달려갔다.
“알겠소! 육 대는 나를 따르라!”
2
한편 중앙을 치고 들어간 신검문은 연무장 앞쪽의 일차 저지선을 뚫고 안으로 밀려들어 갔다. 그때만 해도 모든 것이 예상대로 흐르는 듯했다.
그런데 상대를 밀어붙이며 연무장을 거의 다 통과했을 무렵 안쪽에서 칠십여 명의 무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쏴아아아.
신검문 무사들은 그들을 향해서 파도처럼 밀려갔다. 그들만 무너뜨리면 응천보를 수복하는 일도 끝날 것 같았다.
“신마성도 별것 없다! 모두 힘을 내서 놈들을 물리쳐라!”
“놈들을 죽여서 응천보의 원혼을 위로하자!”
“와아아아!”
신검문 무사들과 신마성 무사들이 뒤엉켰다.
조환의 무사들을 독려하는 목소리가 응천보를 뒤흔들었다.
“신검문의 자랑스러운 무사들이여! 마도의 무리를 물리쳐서 응천보에 신검문의 의협심을 심어라!”
화청백 역시 비검당 무사들을 이끌고 선두에 서서 상대를 몰아붙였다.
누구보다 신마성을 적대시하는 사람이 그였다. 당연히 검에서 뻗어 나가는 검기에는 살기가 충천했고 일 검, 일 검이 모두 살수였다.
하지만 신마성의 무사들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신마성 최정예무력인 삼단 중 신마광령단과 오대 중 추혼신마대원들이었다.
접전은 시간이 갈수록 더 치열해졌다.
아직 다 마르지도 않은 연무장에 또 다른 피가 흘렀다.
그 와중에도 백무천은 전면으로 나서지 않고 신마성 무사들을 이끄는 수뇌부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그가 나서면 조금 더 빨리 끝날지도 몰랐다. 하지만 하수 몇 명 쓰러뜨리기 위해 힘을 쏟았다가 자칫 수뇌부를 놓치는 실수를 범하기라도 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컸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른 정도로 보이는 장한과 마흔 전후의 중년인 다섯이 안쪽에서 나타났다.
‘드디어 나타났군.’
백무천은 그들이 바로 신마성의 수뇌부임을 직감적으로 깨닫고 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의 신형이 주욱 삼 장씩 미끄러져갔다. 좌우에 서 있던 네 명의 장로가 그를 따라 움직였다.
거력이 파도처럼 밀려가자 앞에서 싸우던 자들이 바다가 쪼개지듯 좌우로 쫙 갈라졌다.
그때 오십 대 중반의 초로인이 단리욱 곁으로 다가오며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신검무제 백무천이오, 공자.”
단리욱은 천천히 칼을 뽑았다.
스르릉.
그의 입가로 싸늘한 살소가 번졌다.
“오제가 얼마나 강한지 알아볼까?”
백무천도 거리가 십여 장으로 줄어들자 검을 잡았다.
쩡!
맑은 검명과 함께 검이 뽑혀 나왔다.
그걸 본 단리욱이 땅을 박차고 백무천을 향해 날아갔다.
동시에 단리욱의 좌우에 늘어서 있던 중년인 다섯이 장로들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 직후 백무천의 검세와 단리욱의 도세가 정면으로 부딪쳤다.
콰광!
귀청을 먹먹케 하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뒤로 주르륵 세 걸음을 밀려난 단리욱의 이마에 깊은 골이 파였다.
백무천은 두 걸음 물러나서 검으로 그를 가리켰다.
“혈광도인가? 그대가 바로 진마공자 단리욱인가 보군.”
단리욱은 눈을 치켜뜨고 도를 쥔 손에 전 공력을 집중했다.
“오제라는 이름이 허명은 아니다, 이건가?”
“최소한 그대 같은 자에게 당할 이름은 아니니라.”
“흥,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 일. 너무 자신만만하지 마라, 백무천!”
단리욱은 도를 들어서 커다랗게 휘저었다. 붉은 기운이 도는 도신을 따라서 커다란 원이 그려졌다.
백무천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공력을 팔성까지 끌어올렸다.
그때였다. 단리욱이 신형을 날리며 칼을 쭉 뻗었다.
순간 붉은 원이 백무천을 향해 밀려갔다.
백무천은 허공에 대고 세 개의 점을 찍었다.
붉은 원과 세 개의 백색 점이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허공이 이지러졌다.
콰르릉! 콰광!
벽력음 사이로 연이은 굉음이 울렸다.
혈광과 백광이 사방으로 퍼지며 찰나 간에 삼 초의 공방이 이루어졌다.
단리욱의 머리가 풀어헤쳐지며 사방으로 뻗었다.
백무천은 예상보다 강한 단리욱의 도세에 표정이 바위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바로 그때, 지켜만 보고 있던 초로인이 검을 빼들고 백무천을 공격했다.
“대공자, 내가 도와드리리다!”
초로인의 검에서 쭉 뻗어 나온 묵기가 백무천의 측면으로 밀려들었다.
백무천은 초로인의 검기를 보고 곧 초로인의 정체를 짐작했다.
“그대가 탈백검마로군!”
초로인. 그는 바로 팔대신마, 아니 이제는 육대신마라 불러야 될 자들 중 하나인 탈백검마(奪魄劍魔) 위자양이었다.
단리욱만 해도 만만치 않은 상대다. 하거늘 탈백검마마저 가세하자 백무천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공력을 구성까지 끌어올렸다.
그때부터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막상막하의 가공할 접전이 펼쳐졌다.
그런데 그 즈음 다른 곳에서 생각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단리욱과 함께 나온 자들 다섯과 싸우는 장로들이 형편없이 밀리고 있었던 것이다.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백유현이 벼락처럼 소리쳤다.
“빈객들께선 장로들을 도와주시오!”
여섯 명의 빈객 중 셋이 장로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제 칠 대 오다.
백유현은 빈객들의 무공도 장로들 못지않으니 그 정도면 빠른 시간 안에 적을 이기진 못해도 더 이상 밀리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착각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 없었다. 빠른 시간 안에 당할 것 같진 않지만 밀리는 것은 여전했던 것이다.
백유현은 경악을 감추지 못한 채 칠 대 오의 격전이 벌어진 곳을 노려보았다.
문주인 백무천이야 걱정하지 않았다. 단리욱과 팔대신마 한 명의 합공으로는 백무천을 어찌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장로와 빈객들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전세가 급격히 변할 가능성이 컸다.
문제는 다섯 명의 정체였다. 하나하나가 팔대신마에 크게 뒤지지 않는 고수들이었다.
그는 아무리 머릿속을 뒤적여봐도 다섯 명의 정체에 대해서 짐작도 할 수가 없었다.
‘대체 저들이 누군데 저리 강하단 말인가?’
이곳에 있는 자만도 다섯. 저주의 거점에는 더 많을지 모른다. 만약 저런 자들이 더 있다면 상황은 구룡회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게 흐를 터. 결국 천의맹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신마성을 물리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동안 장로 하나가 허리를 굽히고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입에서 핏물이 배어나오고 허리를 움켜쥔 걸로 봐서 상당한 중상을 입은 듯했다.
백유현은 몇 번이나 이마를 찡그렸다 펴고는 이를 악물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무공이 약하다고 소문난 그였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와 많이 달랐다.
아마 그가 나선다면 적어도 저들에게 더 이상의 피해는 보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그럴 경우 지난 십여 년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갈 공산이 크지만.
그는 자신이 나서는 대신 다른 곳에서 싸우고 있는 빈객 두 사람을 더 빼내기로 했다. 다른 곳은 몇 명 빼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유리한 상황이었다.
“장 대협과 추 대협은 그곳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장로들을 도와주시오!”
장소전과 추인상이 몸을 빼내기 위해 상대를 몰아붙였다.
풍천이 건물을 돌아서 격전장에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 백무천이 싸우고 있네? 잉? 저건 단리욱이잖아?’
풍천은 백무천이 단리욱과 초로인을 상대하는 광경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신검무제 백무천은 강호에서 오제라 불리는 절대고수다.
그러한 사람이 싸우는 것을 구경하는 것은 평생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했다.
더구나 검을 배운 사람의 입장에서는 한 번 보는 것이 몇 년 수련한 것보다 더 많은 걸 깨달을 때가 있는 법.
풍천은 백무천이 단리욱과 위자양을 상대하는 모습을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쳐다보면서 손짓으로 대충 명령을 내렸다.
“몇 사람은 저쪽을 도와주고 나머지는 다른 쪽을 정리하쇼!”
풍천이 가리킨 곳은 장로와 빈객들이 신마성 고수들과 싸우고 있는 곳이었다.
단천무령 중 감능하와 고복수, 응초, 사공수가 즉시 그곳으로 몸을 날려서 장소전과 추인상보다 한 발 앞서 격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허무정과 공손이향을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은 일반무사들이 싸우는 곳으로 달려갔다.
손에 든 검을 어깨에 척 걸친 풍천은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백무천이 검을 펼치는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겹쳐보았다.
‘신검무제 백무천. 과연 오제 중 하나라 불릴 만하군.’
그렇게 오 초 정도 지날 무렵이었다. 백무천의 검에서 백색 검강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콰과광!
곧이어 굉음이 터지고 단리욱과 위자양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정신없이 물러났다.
반면 백무천은 조금 창백해진 얼굴로 다시 검을 들어올렸다.
단리욱은 위자양과 함께 협공하고도 백무천을 어찌하지 못하자 이를 악물고 신형을 뒤로 날렸다.
“위 장로님, 일단 물러나지요!”
위자양도 백무천의 강함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상대가 신검무제라면 누구도 자신의 도주를 비웃지 못할 것이었다.
“가세!”
그는 땅을 박차고 백무천에게서 멀어졌다.
다행히 백무천은 추적할 마음이 없는 듯 쫓아오지 않았다.
“백무천! 나중에 다시 한번 붙어보자!”
부끄러움을 털어내기 위해서 한소리 내지른 그는 외곽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런데 그가 향하는 곳에서 새파란 애송이가 검을 어깨에 걸친 채 씩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저 새끼는 또 뭐야?’
“죽고 싶지 않으면 비켜라, 애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