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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71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9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71화

 

171화

 

 

 

 

 

 

‘저 자식이!’

 

조환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아마 백무천이 말하지 않았으면 그대로 뒤돌아서 나갔을 것이었다.

 

“걱정 말게. 조 당주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한 번 거짓말한 사람은 두 번 거짓말도 하는 법인데 문주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뭐…….”

 

풍천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조환을 힐끔 쳐다보고 마저 말을 끝냈다.

 

“그는 이번 신마성과 구룡회 간의 전쟁을 이용해서 천외천을 세상에 알리려는 것 같습니다.”

 

조환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백무천은 풍천의 말에 숨겨진 의미를 간파하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이…… 세상으로 나오려 한다고?”

 

“전체의 뜻이 아니라 대공의 뜻이죠.”

 

“그럼 반대세력도 있다는 말?”

 

풍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들 덕분에 초령이를 무사히 데리고 나올 수 있었죠. 그리고 제가 몇 사람 데리고 왔는데…….”

 

풍천은 그때부터 전음으로 말했다. 조환이 이마를 찡그린 채 노려보고 있었지만 손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백무천은 풍천의 말을 다 듣고 난 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알았네.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풍천은 그 정도에서 대화를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환의 답답해하는 얼굴을 보고는 한마디 해주고 돌아섰다.

 

“저에 대한 이야기가 새어나가면 다 조 당주님 책임인 줄 아쇼.”

 

‘빌어먹을 놈!’

 

 

 

백무천의 입이 열린 것은 풍천이 방을 나간 지 반 각가량 지났을 때였다.

 

“그러잖아도 관아에게서 연락이 왔네. 마침내 그가 본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인가 보더군.”

 

“너무 걱정 마십시오. 영호 공자가 잘해낼 겁니다.”

 

“그래야지. 꼭 그래야 해…….”

 

나직이 답하는 백무천의 눈빛이 깊어졌다. 조환이 그런 백무천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풍천에게 계속 말하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자네와 나, 둘이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넘치네.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은 법이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풍천이 도와줄지도 모르잖습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자칫하면 풍천까지 위험해지네. 그러니 일단은 관아에게 맡겨보세.”

 

조환도 더 이상 그에 대해선 말하지 않고 대신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저, 풍천이 대체 뭐라고 했습니까?”

 

백무천은 조환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술을 묘하게 비틀며 나직이 말했다.

 

“미안하네. 비밀을 지켜달라더군.”

 

‘끄응.’

 

백무천마저 그리 말하니 조환도 더 이상 묻고 싶지 않았다.

 

“그놈 얼굴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아무래도 주먹이 먼저 나갈 것 같으니 원…….”

 

“글쎄,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될 거네. 정원에 가면 우리와 함께 움직이겠다고 하더군.”

 

‘제기랄!’

 

“후후후, 너무 마음 쓰지 말게. 그래도 살아서 돌아와 줬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초령이까지 구하고 말이야.”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마음에 안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본문과 함께 움직인다고 했으니 실컷 부려먹어야겠군.’

 

 

 

 

 

제9장. 혈풍(血風)은 불기 시작하고

 

 

 

 

 

1

 

 

 

황포산 패웅보에 둥지를 튼 신마성은 열흘의 기간 동안 반경 백 리 일대를 피로 휩쓸었다.

 

그 동안 크고 작은 중소문파 십여 군데가 제대로 대항도 못 해본 채 무릎을 꿇었고, 세 곳은 마지막까지 저항하다 개 한 마리 남지 않고 몰살당했다.

 

철저한 응징. 저주 일대를 공포로 짓누른 신마성은 전열을 정비하며 구룡회와 남궁세가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마침내 구룡회의 이동 결정이 난 그날 자정 무렵 회남에 파견되어 있던 첩자에게서 긴급소식이 전해졌다.

 

임시 군사를 맡고 있는 장로 마유자(魔儒子) 오자형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혁련후를 찾아갔다. 마침 혁련후는 잠자리에 들지 않고 단리욱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구룡회가 정원의 부가장을 임시 총단으로 삼는다고 하오, 소성주”

 

“그래요?”

 

혁련후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오자형은 실처럼 가는 눈에서 잔혹한 살기를 번뜩이며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아예 부가장을 쓸어버리는 게 어떻겠소이까?”

 

혁련후는 쓸데없는 짓 말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놔두시오. 그런다고 올 놈들이 오지 않을 것도 아니니까. 그보다 남궁세가는 어떻소?”

 

그는 구룡회보다 남궁세가가 더 신경이 쓰였다. 순수한 힘만으로 따진다면 구룡회 오대세력 중 두세 곳을 합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단일 세력으로는 무시할 수 없는 거력이긴 했다. 하지만 정작 남궁세가가 신경 쓰이는 것은 그들의 뒤에 버티고 있는 천의맹 때문이었다.

 

“남궁세가에서 소수의 정예를 파견할 거라는 정보외다. 그리고 천의맹이 움직인 것 같소이다.”

 

“천의맹이? 흐음, 생각보다 빨리 움직였군. 일이 복잡해지겠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혁련후의 표정이 신중해졌다.

 

오자형은 그런 혁련후를 보며 넌지시 말했다.

 

“천의맹이 도착하면 구룡회 놈들의 기가 살아날 것이오. 그 전에 놈들을 공격했으면 하오만.”

 

“서둘 것은 없소..”

 

“하면…….”

 

“일단 가지치기부터 하지요. 명광의 응천보를 제거하면 놈들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응천보는 중소문파에 불과해서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적련방과 천붕성의 중간에 있고 그곳을 차지하면 정원의 부가장을 간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어서 지리적 요충지라 할 수 있었다.

 

“좋은 생각이오, 소성주.”

 

혁련후는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단리욱이 묵묵히 앉아서 듣고만 있었다.

 

“그 일은 아우가 나서주게.”

 

단리욱은 눈을 들고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소성주.”

 

“저들이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최대한 사납게 몰아쳐.”

 

“그거 반가운 주문이군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단리욱은 신마성을 떠나올 때만 해도 불만이 많았다. 그동안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했는데 결국 핏줄에 밀리고 마는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금천문과 삼도맹을 치면서 혁련후의 능력을 알게 된 그는 더욱 큰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차라리 혁련후의 능력이 부족하면 나중이라도 기약할 수 있거늘 그는 그런 마음조차 들지 못할 정도로 강하고 완벽했던 것이다.

 

단리욱은 가슴에 가득 쌓인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라도 피를 보고 싶었다.

 

“응천보를 혈해로 만들어서 구룡회가 우리만 보면 백 리 밖으로 도망가게 만들지요.”

 

“후후후, 기대하겠네.”

 

단리욱은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살기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모자란 술은 새벽닭이 울 때쯤 응천보에서 마시겠습니다.”

 

 

 

2

 

 

 

신마성에 백초령의 생환소식이 전해진 것은 단리욱이 응천보를 공격하기 위해서 패웅보를 떠날 무렵이었다.

 

탕!

 

탁자를 내리친 위태곤은 상기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백초령이 신검문으로 돌아왔다고?”

 

“예, 대주.”

 

수하의 대답에 안절부절못하며 방 안을 오가던 그는 곧 방을 나서서 혁련궁을 찾아갔다.

 

“사부님, 제자도 안휘로 가서 후 형님을 돕겠습니다! 보내주십시오!”

 

혁련궁은 위태곤의 속을 들여다보고 실실 웃었다.

 

“후후, 후아를 돕겠다는 거냐, 아니면 초령이라는 아이를 만나러 가겠다는 거냐?”

 

가슴을 쿡 찔린 위태곤은 얼굴이 벌게졌다.

 

“그게 아니옵고…….”

 

“네가 가는 것을 말리지는 않겠다. 단,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위태곤은 혁련궁이 순순히 허락하자 희색이 만연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제가 할 일이 무엇이옵니까?”

 

“너 자신을 지금보다 두 배 이상 강하게 만드는 것이지.”

 

“예? 사부님…….”

 

위태곤은 울상을 지었다. 두 배 이상 강해진다는 게 어디 말만으로 되는 일이던가?

 

하지만 혁련궁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너의 지금 실력으로는 백초령을 차지할 수 없다는 걸 알 텐데?”

 

위태곤의 얼굴이 벌게졌다. 두 눈 빤히 뜨고 뺏긴 적이 있는 그로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혁련궁은 자존심이 뭉개진 제자를 내려다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어떠냐? 삼 개월간만 고생하면 될 것 같은데?”

 

위태곤은 사부가 자신을 놀리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님을 그제야 깨닫고 눈빛이 달라졌다.

 

삼 개월. 마음이 이미 신검문으로 가 있는 그에게는 삼십 년만큼이나 긴 시간이었다.

 

그러나 백초령을 얻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강해져야 했다. 두 번 다시 과거의 잘못을 반복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정말 삼 개월이면 강해질 수 있습니까?”

 

“노력한다면 단축될 수도 있겠지. 게으름을 피운다면 더 늘어날 거고 말이야.”

 

“좋습니다. 사부님의 말씀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고통이 따를 게야.”

 

“견딜 수 있습니다!”

 

“정말이냐? 또 전처럼 어디로 도망가는 것 아니고?”

 

혁련궁은 단리욱보다 위태곤을 더 좋아했다. 무공은 단리욱이 강하지만 위태곤은 마도인답지 않게 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위태곤은 자질도 단리욱에게 뒤처지지 않았다. 뒤처지기는커녕 어떤 면에서는 더 나았다.

 

다만 문제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끈기가 부족해서 마공수련을 게을리 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바로 위태곤의 무공이 단리욱보다 현격하게 약한 가장 큰 이유였다.

 

위태곤은 고통을 당하는 게 싫었지만 그보다는 백초령을 얻고 싶다는 욕망이 훨씬 더 강했다.

 

“걱정 마십시오! 이번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해지겠습니다!”

 

“녀석, 그 계집아이가 그토록 좋더냐? 뭐 어쨌든 좋다. 네 마음이 그러하다면 오늘 저녁부터 당장 시작하자.”

 

그래도 걱정이 되는지 위태곤은 혁련궁을 빤히 쳐다보며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어떤 방법이 있어서 제자를 삼 개월 만에 두 배 이상 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하시는 겁니까?”

 

순간 혁련광의 노안 깊숙한 곳에서 광기에 가까운 이채가 번뜩였다.

 

“죽지 못해 살아 있는 잠마원의 늙은이들을 이용할 셈이다. 너는 그저 내 말만 믿고 따라오도록 해라. 클클클클…….”

 

 

 

3

 

 

 

사시 초. 구룡회 일천오백 무사와 구룡회를 돕기 위해 몰려온 무사들이 적련방의 정문을 나섰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장관인지 설거지하던 아낙네까지 뛰쳐나와서 그 광경을 구경했다.

 

구룡회 오대 세력이 앞서가고 중소문파 무사들과 각지에서 몰려온 군웅들이 그 뒤를 따랐다.

 

풍천은 일행과 함께 군웅들에 섞여서 어슬렁거리며 따라갔다.

 

저만치 앞에 화청백이 걸어가는 게 보였다.

 

그가 공석인 비검당주로 임명되었다더니 석초산을 비롯한 비검당 무사들이 그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진노교와 나한조, 그리고 사조의 조원들 중 살아남은 사람들…….

 

그들을 바라보는 풍천의 입술이 미미하게 틀어졌다.

 

‘아직 내기는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아쇼.’

 

 

 

회남을 벗어나 언덕을 하나 넘어갔을 때였다. 저 멀리 구양종의 뒤통수가 눈에 들어왔다.

 

풍천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맺혔다.

 

‘제법이란 말이야.’

 

아침에 보니 표정이 제법 밝아 보였다. 반면 탁고원은 구석에 처박혀서 남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아무래도 구양종이 어젯밤의 비무에서 이긴 듯했다.

 

조금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서령이 용원명과 혼인하게 되었으니 구양종으로선 새로운 신붓감을 찾아야 할 판이었다. 물론 백초령이야 당연히 안 되고.

 

‘당신은 차라리 초령이하고 맺어지지 않는 게 나아. 꽉 잡혀 살 것이 분명하거든. 나 같은 사람이나 되어야 그런 말괄량이를 확실하게 길들일 수 있지. 음하하하하.’

 

풍천은 백초령이 들었으면 배꼽 잡고 뒹굴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활짝 웃었다.

 

‘맞아, 초령이와 같이 살게 되면 그 성질부터 고분고분하게 고쳐놔야겠어.’

 

 

 

빠르게 이동하던 선두가 걸음을 멈춘 것은 정원을 칠십 리 남겨놓은 신시 무렵이었다.

 

풍천 일행은 선두와 오 리 정도 떨어져서 따라가고 있었는데 선두에서 달려온 적련방의 무사가 중소문파의 주인들에게 급히 앞쪽으로 와달라는 소식을 전했다.

 

중소문파의 주인들이 앞쪽으로 날듯이 달려갔다.

 

오십여 장 뒤쪽에 있던 풍천은 그 모습을 보고 이마를 찌푸렸다.

 

‘무슨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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