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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70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0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70화

 

170화

 

 

 

 

 

 

“그래, 간략하게라도 말해보게. 어떻게 둘째 아가씨를 자네가 구했는가?”

 

“제가 좀 끈질긴 성격이 있죠. 초령이를 찾기 위해서 남창으로 갔는데 어떤 놈이 납치를 했지 뭡니까? 그래서 악착같이 쫓아가서 죽음을 무릅쓰고 납치범의 손에서 구했죠.”

 

“허어, 정말 수고했네.”

 

별로 감동한 표정이 아니다. 하지만 풍천도 조환의 감정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정도면 선가장에서 내건 상금은 제 것이 된 게 확실하죠?”

 

뜬금없는 말에 조환의 이마가 구겨졌다. 이 마당에도 상금을 탐하다니.

 

“그거야 그렇겠지. 자네가 둘째 아가씨를 구했다면 말이야.”

 

“정말이라니까요?”

 

“아, 알았네. 자네가 구했다면 당연히 그 상금은 자네에게 지급돼야지. 하, 하.”

 

풍천은 일단 황금 오십 냥을 챙길 수 있는 유력한 상황을 만들어놓고 조환의 마음이 잠시 흐트러진 틈을 이용해 본격적인 질문을 했다.

 

“형에 대해서 물어볼 게 좀 있는데 솔직히 대답해주실 수 있죠?”

 

“형에 대해서? 뭘 알고 싶은 건가? 내가 아는 것은 다 말한 것 같네만…….”

 

“형이 정말 몸이 녹을 정도의 지독한 독상을 당했습니까?”

 

“물론이네. 내가 그럼 거짓말을 한 줄 아나?”

 

“다른 사람은 조금 다르게 말하던데요?”

 

“다른 사람?”

 

“그들은 형의 독상이 심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제가 알아본 바로도 형은 황산을 떠날 때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하고요.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위태곤과 설추교의 이름은 꺼내지 않았다. 조환은 그들이 신마성 사람이라는 이유를 들어 절대 수긍하지 않을 것이었다. 오히려 자신을 수상하게 볼지도 모르고.

 

풍천은 질문을 던지고는 이를 드러낸 미친개처럼 푸른 안광을 빛내며 조환을 노려보았다.

 

조환은 순간적으로 심장이 얼어붙은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노회한 강호고수답게 숨을 한 번 쉬는 것으로 정신을 가다듬고 짐짓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나를 의심하고 있는 건가?”

 

“의심을 하는 게 아니라 사실을 알고 싶을 뿐이죠.”

 

“으음, 좋네. 정 알고 싶다면 말해주지.”

 

풍천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꼈다.

 

조환은 그 잠깐 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자네 말대로 황산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큰 이상이 없었지. 그런데 장강을 건너서 북상할 때 문제가 발생했네. 잠복되어 있던 독기가 급격히 퍼지면서 발작을 일으켰지 뭔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였습니까?”

 

“자네도 알지 모르지만 그 당시 독귀의 독에 당한 사람은 사마 당주뿐이 아니었네. 사마 당주처럼 심하진 않지만 문주님의 둘째 제자인 영호 공자도 중독된 상태였지. 놀란 우리들은 황급히 두 사람의 독기를 몰아내려 했는데 독귀의 독은 생각보다 더 지독하더군. 더구나 천혈궁의 추적을 피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한곳에 오래 머물 수도 없었으니…….”

 

조환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풍천은 그런 조환을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영호관은 살아 있던데요?”

 

“영호 공자는 그나마 약하게 중독되어서 독기를 뭉칠 수가 있었네. 그로 인해서 얼굴이 조금 상하긴 했네만 그래도 목숨은 구할 수 있었지.”

 

결국 그렇게 된 이야긴가?

 

풍천은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고개를 들고 조환을 응시했다.

 

“독기가 너무 심해서 화장을 했다는 건 거짓말이죠?”

 

“왜 그리 생각하는가?”

 

“장강을 건넌 후에야 발작한 독기가 그 정도로 심하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됩니다. 그리고 천혈궁에 쫓기느라 시간이 없었다면서 언제 화장했다는 거죠? 더구나 화장을 하느라 불을 피우면 천혈궁에게 위치를 알려줄 뿐인데 조 당주님 같은 분이 그런 멍청한 짓을 저지르지도 않았을 거고요. 어디 솔직히 말씀해보시죠. 형은 어디서 죽었습니까? 화장을 하지 않았다면 어디다 묻었습니까? 설마 시신을 아무렇게나 버린 것은 아니겠죠?”

 

풍천의 계속된 추궁에 조환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후우,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사실대로 말해주지. 자네 말이 맞네. 사마 당주는 악착같이 살아서 신검문에 도착했네. 하지만 말이 살아 있는 것이지 죽은 거와 다를 바가 없었네. 문주님께선 최선을 다해서 살리려 하셨지만 반나절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 숨이 끊어졌네.”

 

“그런데 왜 형의 죽음에 대해서 아무도 모르고 있는 거죠? 서령 아가씨도, 초령이도, 비검당 사람들도 아는 사람이 없던데요.”

 

“독기가 심한 것은 사실이었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접근을 허용할 수가 없었지. 더구나 임무가 임무인지라 다른 사람에게 이런저런 말을 하지 않고 귀환 도중에 죽은 것으로 처리했네. 자네에겐 정말 미안하네. 내 사과하지.”

 

풍천은 한기가 풀풀 날리는 눈으로 조환을 노려보며 물었다.

 

“형을 어디다 묻었습니까?”

 

조환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본문의 뒤쪽으로 가면 본문을 위해서 죽은 사람들을 묻는 곳이 있네. 그곳에 가면 이름이 적히지 않은 묘비가 하나 있을 거야.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서 만든 묘니 가보면 바로 표가 날 거네.”

 

“서령 아가씨도 모릅니까?”

 

“묘가 가까이 있는 걸 알면 슬픔을 떨치지 못할까 봐 말하지 않았네.”

 

‘제길! 알았으면 찾아가서 향이라도 피워줬을 텐데.’

 

풍천은 죄 없는 찻잔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조환을 보고 있으면 한 대 후려칠 것만 같았다.

 

조환은 풍천의 눈치를 보며 넌지시 말했다.

 

“문주님을 찾아뵐 생각인가?”

 

“예, 말씀드릴 게 있거든요.”

 

“문주님께선 최선을 다하셨네. 그러니 그 일에 대해선 문주님을 너무 원망하지 말게.”

 

“그 판단은 제가 알아서 내리죠.”

 

“험, 부디 옳은 판단을 내리길 바라겠네. 함께 가지.”

 

 

 

풍천은 조환과 함께 방을 나왔다.

 

경비를 서던 신검문 무사들은 조환이 풍천과 함께 나오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자가 언제 들어갔지?’ 그런 표정으로.

 

조환은 그들의 표정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운기 중이라 하지만 자신조차 풍천이 들어온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니 경비를 서는 무사들이 풍천을 발견하지 못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풍천은 입술을 씹으며 조환을 따라갔다.

 

자신을 속인 게 괘씸하긴 하나 그렇다고 형의 죽음을 신검문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신검문에 들어간 것도 형이 원한 것이었고, 유령총에 간 것도 신검문의 비검당주로서 임무를 수행한 것일 뿐.

 

‘멍청하게 왜 독에 당해서 죽어?’

 

화가 났다. 눈물이 글썽거렸다.

 

젠장!

 

예쁘고 마음씨 좋은 마누라도 얻고 조카도 한 열 명쯤 낳아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는데…….

 

 

 

5

 

 

 

백무천은 조환이 풍천을 데리고 들어오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조환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풍천입니다, 문주님.”

 

“누구?”

 

백무천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서 풍천을 쳐다보았다.

 

풍천은 터벅터벅 걸어서 백무천에게 다가갔다.

 

“걱정 마십쇼. 귀신은 아니니까.”

 

“정말…… 풍천이란 말인가?”

 

“얼굴이 알려지면 귀찮아질지 몰라서 껍데기를 하나 뒤집어썼죠.”

 

“허어…….”

 

백무천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탄성을 흘렸다.

 

죽은 줄 알았던 풍천이 돌아오다니!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곧 현실임을 알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반겼다.

 

“정말 잘된 일이군. 자네가 죽은 줄 알고 얼마나 미안했는지 아나?”

 

“그래서 제 물건도 재빨리 치우고 조장도 새로 뽑았나 보죠?”

 

“신마성이 금천문을 무너뜨렸다는 말을 듣고 오당을 새롭게 정비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지.”

 

“정말 제 생각을 해본 적이 있기나 한 건지 모르겠군요.”

 

백무천은 풍천의 말투와 행동이 전과 다른 걸 알고 이마를 찌푸렸다.

 

‘이놈이 왜 이렇게 삐딱하게 말하지? 살아서 돌아오더니 간덩이가 부었나?’

 

하지만 풍천의 입장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에 그냥 넘겼다.

 

그때 조환이 백무천의 마음을 눈치채고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사마 당주가 본문에서 죽었고 화장이 아니라 뒷산에 묻혔다는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문주. 풍천이 어느 정도 알고 와서 할 수 없이…….”

 

백무천의 눈빛이 잘게 떨렸다.

 

그제야 풍천의 행동을 이해한 그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하긴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는 일이지. 그래, 풍 조장. 나를 원망하는가?”

 

“문주님을 원망할 것은 없죠. 강호의 삶이 원래 그런 것인데요 뭐.”

 

초령이만 아니어도 조금 더 심하게 한마디 해주었을 텐데.

 

풍천은 나름 담담히 말하고 고개를 돌려 조환을 바라보았다.

 

“조 당주님, 죄송하지만 주위에 아무도 오지 못하게 해주시죠.”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라도 이곳에는 본문 사람들밖에 없네. 걱정 말게.”

 

풍천의 눈초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세상이 하도 험하다 보니 믿을 사람이 없어서 말이죠.”

 

조환은 그 말이 마치 자신에게 하는 것처럼 들려서 속이 울컥했다. 그러나 사마공유에 대해서 거짓말한 전력이 있으니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알겠네.”

 

조환이 툭 쏘듯이 말하고 방을 나갔다.

 

백무천은 풍천을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리 조심하는가?”

 

“초령이가, 따님이 돌아왔다는 건 아실 것이고 서령 아가씨가 혼인하려고 한다는 것은 아세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백무천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알고 있네.”

 

“그럼 뭐 그건 더 말할 것 없고…….”

 

풍천은 말을 길게 끌며 백무천을 직시했다.

 

“용 전주님이 천외천의 사람인 것은 아시죠?”

 

백무천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걸 자네가 어떻게……?”

 

“초령이를 구하기 위해서 별수 없이 천외천까지 들어갔죠. 그런데 그곳 사람이 용 전주님을 알더군요.”

 

“초령이가 천외천에 있었단 말인가?”

 

“몰랐습니까?”

 

백무천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으으음…….”

 

서신에는 딸이 풀려나서 집으로 돌아왔다는 말만 있을 뿐 자세한 내용은 적혀 있지 않았었다. 그로선 많은 것이 궁금했지만 일단 딸이 돌아왔다는 것에 만족하고 자세한 것은 나중에 알아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딸이 천외천에 있었다니!

 

더구나 풍천은 천외천까지 들어가서 딸을 구한 것처럼 말하지 않는가.

 

“천외천에 있었다면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군.”

 

백무천은 의혹을 확실하게 풀고 싶었다. 하지만 풍천은 이야기를 길게 끌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골치 아프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그곳에 들어가서 목숨을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은 그곳 사람이 되는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자네가 천외천의 사람이 되었다고?”

 

“초령이를 구하기 위해서인데 못 할 게 뭐 있겠습니까?”

 

백무천의 표정이 묘하게 이지러졌다.

 

‘풍천이 원래 이런 놈이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자신의 딸을 ‘초령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게 들렸다.

 

그래도 어쨌든 딸을 구한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으니 그 일에 대해선 눈감아 주기로 하고 질문을 계속했다.

 

“그곳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초령이를 구할 수 있는 건 아니었을 것 같은데……?”

 

“제가 그곳 사람이 되어서 천주께 사정했지요. ‘백초령을 집으로 보내주십쇼!’라고 말이죠.”

 

‘그렇게 말한다고 보내줄 사람들이라면 납치하지도 않았겠지.’

 

백무천은 의심 가는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세한 사정을 모르니 다그치기도 어정쩡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지?”

 

“그렇게 해서 초령이를 데리고 돌아오려는데 천외천의 대공이란 사람이 몇 가지 부탁을 하더군요. 하, 하, 하, 하.”

 

“천외천의 대공?”

 

“몰라요? 아, 문주님께서도 아시는 게 얼마 없나 보군요.”

 

백무천의 굵은 눈썹이 검은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하지만 풍천은 눈썹 한 올 끄덕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하긴 모를 수도 있죠 뭐. 좌우간 그 대공이라는 사람은 천외천 천주의 큰아들인데…….”

 

풍천은 말을 끊고 방문을 바라보았다.

 

문이 열리고 조환이 들어왔다.

 

백무천은 한참이 지나도록 풍천이 말을 하지 않자 인상을 찡그리며 재촉했다.

 

“왜 말을 하다 끊는가?”

 

풍천은 슬쩍 턱짓으로 조환을 가리켰다.

 

“믿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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