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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69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9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69화

 

169화

 

 

 

 

 

 

호자충은 간이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면서 숨쉬기가 곤란해졌다.

 

‘헉! 이게 무슨…….’

 

하지만 일순간뿐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풍천은 호자충을 다독였다.

 

“그런 것쯤은 경험이 풍부하신 호 장로께서 이해하셔야죠. 제가 뭐 나쁜 의도로 그랬겠습니까? 안 그래요?”

 

호자충은 자신이 잘못 본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가슴이 아직도 답답한 걸 보니 결코 헛것을 본 것만은 아닌 듯했다.

 

‘감능하 말대로 실력은 있는가 보군. 하긴 단천무령주가 아무나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무시하던 마음을 한풀 꺾은 그는 풍천을 더 이상 몰아세우지 않고 그 정도에서 상황을 마무리했다.

 

“험, 뭐 별일 없으니 나도 그에 대해선 더 말하지 않겠네. 매사에 조심해달라는 뜻에서 한 말이니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게.”

 

“하하, 제가 왜 호 장로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먼저 온 사람들은 어디 있죠?”

 

“그들은 부련당(浮蓮堂)에 있네.”

 

“부련당?”

 

“객당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네. 다만 일반 객당보다 좀 더 고급스럽다는 것이 다르지. 당주가 내 사람이니 령주와 령주 일행도 그곳에 머물러주시게.”

 

“그렇게 하죠. 그런데 구룡회가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 생각인지 아십니까?”

 

“구룡회의 임시 총단을 정원의 부가장으로 옮긴다고 하네. 내일 아침에 이동한다는군.”

 

순간 풍천의 눈이 가늘어졌다.

 

“신마성을 치는 겁니까?”

 

“공격보다는 견제의 목적이라고 봐야겠지. 그리고 천의맹도 움직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네.”

 

천의맹이 움직였다고?

 

문득 천의맹으로 간 공손선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야망을 품고 있는 그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천의맹이 움직였다면 그도 오고 있을 것이다.

 

‘오는 건 좋은데 네 뜻대로 되진 않을 거다, 공손선우.’

 

 

 

3

 

 

 

풍천은 일행과 함께 부련당으로 가서 방 세 개를 배정받았다. 풍천이 하나, 공손이향이 하나, 그리고 허무정과 이곡이 하나.

 

풍천은 일단 단천무령을 모두 자신의 방으로 모이게 했다.

 

“오셨습니까, 령주.”

 

감능하가 반갑지 않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정체를 감추고 있으려니 답답했나 보군.’

 

그렇게 제멋대로 생각한 풍천은 허무정과 이곡을 그들에게 소개시켜주었다.

 

서로 간의 인사가 끝나자 풍천이 말했다.

 

“내일부터 바빠질지 모르니 오늘 푹 자놓으쇼.”

 

“…….”

 

사람들은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지만 풍천은 의자에 앉아서 붕어처럼 차만 따라 마셨다.

 

결국 감능하가 참지 못하고 나섰다.

 

“그게 답니까?”

 

“왜요, 심심해요? 일거리라도 만들어줘요?”

 

“그게 아니고…….”

 

감능하는 머뭇거리며 말을 길게 끌었다.

 

뒤통수가 서늘했다.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만일 령주가 일거리를 맡기면 당신 혼자 처리해!

 

그런 뜻이 담긴 눈빛으로.

 

감능하는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서둘러 입을 열었다.

 

“령주께서 피곤하신가 봅니다. 우리는 그만 나가지요. 령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고복수의 귀에는 그 말이 꼭 아부하는 것처럼 들렸다.

 

“감 형이 령주를 싫어하는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닌 것 같군.”

 

응초와 사공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감능하를 흘겨보았다.

 

감능하는 속이 상했지만 차마 토를 달 수는 없었다.

 

‘지미, 그게 아닌데…….’

 

그때 풍천이 감능하를 불렀다.

 

“아참, 감 형. 혹시 신검문 사람들이 어디 머물고 있는지 아슈?”

 

감능하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고 재빨리 대답했다.

 

“저쪽, 진영원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확실히 풍천에게 아부한다고 생각했다.

 

 

 

4

 

 

 

풍천은 어둠이 완전히 적련방을 집어삼킨 후에야 방에서 나왔다. 진영원은 그의 거처에서 건물 두 개를 지나야 했다.

 

부련당을 나선 풍천은 어슬렁어슬렁 진영원으로 향했다.

 

적련방의 평소 인원보다 일천 이상이 더해진 상황. 질서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밖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았다. 아마도 더위가 그들을 방에서 몰아낸 듯했다.

 

간혹 순찰무사들이 보였는데 그들 역시 상황이 상황인 만큼 나와 있는 사람들을 심하게 제지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풍천은 여유 있게 걸어가며 귀를 기울였다.

 

아침이 되면 떠나야 하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조금은 들뜨고, 조금은 긴장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천의맹에서 도와준다면 신마성도 물러갈 수밖에 없을걸?”

 

“글쎄, 놈들이 그걸 모르고 장강을 건넜을까?”

 

“천혈궁도 조심해야 되네. 아직까지 움직이지 않는 게 수상해.”

 

“걱정할 것 없어. 우리 구룡회도 힘을 합하면 신마성에 뒤질 것 없으니까. 더구나 천의맹이 온다잖아?”

 

어떤 자는 신중론을 펴고, 어떤 자는 낙관론에 젖어서 금방이라도 신마성을 무너뜨릴 것처럼 말했다.

 

그래도 천의맹의 합류에 대해선 모두가 고무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풍천은 생각이 조금 달랐지만.

 

‘신마성의 힘을 과소평가했다가는 승부의 저울추가 한순간에 기울 거야.’

 

그런데 그가 진영원으로 들어가는 월동문에서 십여 장 떨어진 곳에 도착했을 때였다.

 

저만치 두 사람이 대치하고 있는 게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친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귀를 기울여보면 말투에서 도검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바로 구양종이었다.

 

‘저 인간도 살아 있었군.’

 

비록 미운 정이긴 하지만 그가 살아 있는 걸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쳐다보며 다가오는 풍천을 조금도 반가워하지 않았다.

 

구양종과 마주 서 있던 자는 풍천이 다가가자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풍천의 복장이 평범하다는 걸 알고 대뜸 반말로 다그쳤다.

 

“뭘 쳐다보는 건가?”

 

나이는 이십 대 중반쯤, 매부리코에 눈초리가 위로 치켜 올라간 걸 보니 성질깨나 있는 자 같다.

 

‘누군지 몰라도 눈먼 칼에 맞기 딱 좋은 성격이군.’

 

풍천은 그자를 간단하게 평하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지나가는 것도 죄요?”

 

매부리코 청년은 눈매를 씰룩거리며 풍천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곳은 그의 집이 아니라 적련방이었다.

 

“지나가려면 빨리 지나가게.”

 

그는 가라고 하면 더 가기 싫어하는 사람이 풍천이라는 걸 몰랐다.

 

풍천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말했다.

 

“혹시 검각의 구양 공자가 아니십니까?”

 

구양종은 눈매를 좁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내가 구양종이오만. 그런데 귀하는 누구요?”

 

풍천은 오래전에 헤어진 형제를 만난 사람처럼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

 

“검각의 기재이신 구양 공자도 신마성과의 싸움에 뛰어드셨군요. 과연 협의를 아시는 분입니다.”

 

“별말씀을. 그런데 누구신지……?”

 

구양종은 담담히 웃으며 되물었다. 천붕성의 탁고원과 말싸움이 붙어서 짜증이 났는데 한순간에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상대를 보고 있으니 꼭 어디선가 본 사람 같았다.

 

‘어디서 봤더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하하, 저는 대풍이라고 합니다. 아마 잘 모르실 겁니다.”

 

“어느 문파의 분이신지……?”

 

“이거 참, 사부님께서 함부로 사문을 밝히지 말라 하셔서 말이지요. 구양 공자의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십시오.”

 

“사정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여기서 말다툼을 하시고 계십니까?”

 

그에 대한 대답은 탁고원이 했다.

 

“그건 그대가 상관할 바 아니다. 그대는 가던 길이나 가라.”

 

“좀 전에 들으니까 도와 검 중 어느 것이 강한가 하는 것 가지고 말씀을 나누시는 것 같던데 설마 그것 때문에 싸우시는 건 아니겠지요?”

 

“정녕 계속 끼어들 것이냐?”

 

“하하, 저도 검을 익힌 사람이다 보니 관심이 가는 것뿐입니다. 제가 봐선 결국 익힌 사람의 재주 문제인 것 같은데 왜 쓸데없는 말싸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졸지에 쓸데없는 말싸움이나 하게 된 두 사람은 풍천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풍천은 끄떡도 하지 않고 한마디 더했다.

 

“두 분이 비무를 해보시면 간단하게 해결 날 문제 같은데 말이죠. 무사가 입으로 싸우는 것도 우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팽팽하게 당겨진 실에 불을 붙인 꼴이었다.

 

구양종과 탁고원은 주제넘게 끼어드는 풍천이 가소로웠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약하게 보일 것 같아서 비무를 반대하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탁 형?”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군요.”

 

이제는 물러나야 할 때.

 

“승패와 상관없이 멋진 비무를 벌이시길 바라겠습니다. 하, 하, 하. 저도 구경을 하고 싶습니다만 바빠서.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확실하게 불을 붙인 풍천은 즐거운 마음으로 그곳을 떠났다.

 

‘내기를 하면 구양종에게 걸겠는데 말이야. 그 일을 겪어서 그런지 전보다 확실히 강해졌어.’

 

 

 

진영원에는 신검문의 제자 이백여 명이 기거했다.

 

힐끔 진영원 안을 바라보자 신검문 사람들도 상당수가 밖으로 나와 있었다.

 

풍천은 진영원으로 통하는 월동문을 지난 다음 남들 눈에 안 띄게 담을 넘었다. 그리고 환신술로 몸을 숨기고 먼저 정무당주 조환을 찾아보았다.

 

간부들의 방이 있는 건물 근처는 사람들의 왕래가 없었다.

 

풍천이 조환을 발견했을 때 그는 침상 위에서 운기를 하고 있었다.

 

안개처럼 방으로 스며든 풍천은 조환의 운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일 각 후.

 

운기조식을 마친 조환은 숨을 길게 내쉬며 눈을 떴다. 순간 바로 앞에 있는 탁자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풍천을 보고 하마터면 진기가 꼬여서 주화입마에 들 뻔했다.

 

“누, 누구냐?”

 

풍천은 입술에 검지를 대고 나직이 말했다.

 

“쉿, 조용히 하쇼.”

 

소리가 유출되지 않도록 진기로 대충 막긴 했다. 그 정도면 일반적인 대화 정도는 새어나가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조환 정도의 고수가 공력을 실어서 외치는 소리까지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조환은 간이 떨어질 만큼 놀란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다음 신검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답게 침착한 어조로 풍천을 다그쳤다.

 

“정체를 밝혀라.”

 

풍천은 조환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밝혀도 될까?

 

망설임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백무천에게도 밝힐 생각이었다. 그리고 형의 일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자신을 밝히는 게 나았다.

 

“그 전에 먼저 나에 대해서 알게 되어도 당분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쇼.”

 

“약속?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면 하지.”

 

상황에 따라서 지킬 수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

 

풍천은 그 정도로 만족했다. 조환이라면 어리석은 일은 저지르지 않을 것이었다.

 

“백초령이 돌아왔다는 건 알고 있죠?”

 

조환의 미간에 골이 파였다.

 

그 이야기는 들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조환의 표정을 보니 아직 못 알아들은 것 같다. 풍천은 답을 암시하는 두 번째 질문을 했다.

 

“임무를 완수했는데 보상은 없수?”

 

“무슨 말……?”

 

눈을 좁히고 풍천을 바라보던 조환의 눈이 점점 커졌다.

 

풍천은 씩 웃었다. 이제 알아챈 것 같다.

 

“사부님과 심심할 때 하던 놀이죠. 제법인데요? 두 번 만에 알아채다니.”

 

튀어나올 것처럼 눈이 커진 조환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을 더듬었다.

 

“자네…… 정말…… 풍천……? 그런데 얼굴이……?”

 

“인피면구를 하나 샀죠. 특상품이라더니 정말 쓸 만하더군요. 닷새 정도는 벗지 않아도 부스럼이 나지 않거든요.”

 

조환은 정말로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풍천과 마주 앉아 있으면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놈. 바로 말해주면 주둥이가 덧나나?’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바로 말해주었으면 정말 심장이 멈췄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으음, 대체 어떻게 된 건가?”

 

“사정을 다 말하려면 좀 깁니다. 왜요? 제가 살아서 온 게 반갑지 않으세요?”

 

“아, 아니네. 그야 당연히 반갑지. 허, 허, 허.”

 

그런데 놀라긴 했지만 가슴이 뛸 정도로 기쁘진 않았다. 그런 자신의 감정이 너무 무딘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그래도 나나 되니까 반가워하지, 아마 석초산이나 다른 사람들은 풍천이 살아서 돌아왔다는 걸 알면 한숨을 쉴지도…….’

 

조환은 그렇게 위안하며 최대한 반가워하는 웃음을 지었다.

 

중요한 것은 풍천이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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