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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99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9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99화

 

199화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근육과 뼈다귀가 비명을 질러댔다. 기본적인 권장법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상승 무공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 하지만 수련을 멈출 수는 없었다.

 

‘젠장. 공력을 삼 할만 되찾아도 금방 나을 수 있을 텐데.’

 

풍천은 땀을 닦으며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역조생은 약초를 캐러간 지 사흘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가 돌아올 때까지는 매서운 겨울바람 소리를 벗 삼으며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초령이는 잘 있을지 모르겠네.’

 

간간이 흐르는 구름에 초령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뒤이어서 이 사람, 저 사람의 얼굴도 떠올랐다.

 

역조생에게 부탁해서 강호의 상황을 알아볼 수 있음에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천외천과 신마성의 전쟁으로 세상이 뒤집어졌다 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절망과 고통만 커질 뿐. 그것은 자신의 상태에 도움은커녕 해만 될 뿐이었다.

 

‘모두들 살아만 있어줘.’

 

이를 악문 풍천은 머리를 흔들어서 그들의 얼굴을 지웠다.

 

그때 목에서 뭔가가 덜렁거렸다. 벽월적이었다.

 

묵묵히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던 풍천은 벽월적을 잡아서 입에 가져다 댔다.

 

눈을 반쯤 감자 벽라동의 입구에 그려져 있던 곡조가 떠올랐다.

 

풍천은 아무런 생각 없이 벽월적을 불었다.

 

정신을 잃었을 때 본 부모님의 모습이 희미하게 떠오르자 피리 소리에서 그리움이 절로 묻어나왔다.

 

맑고 가느다란 피리 소리가 겨울바람 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삐리리리리, 삐이이, 삐리리리…….

 

그는 백초령과 아수비 등 그리운 사람들이 떠오르면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서, 간혹 공손선우와 공손무백 등이 떠오르면 복수를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벽월적을 불었다.

 

그는 상상도 못 했다. 자신이 아무런 생각 없이 불어댄 벽월적 소리로 인해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역조생이 돌아온 것은 그날 오후 늦게, 풍천이 이른 저녁 식사를 막 마친 후였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망태기를 내려놓고 풍천에게 물었다.

 

“혹시 이 근처에서 무슨 일이 없었느냐?”

 

“예? 어떤 일 말입니까?”

 

“계곡을 지나오면서 이상한 광경을 봤다. 이 근처 산에 사는 짐승들이 모조리 몰려온 것 같더군. 개중에는 심지어 호랑이도 있었지. 그런데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이지 뭐냐.”

 

“정말 이상하군요. 천재지변이 일어나려는 징조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다. 천재지변의 징조면 모두 멀리 도망갔을 거야.”

 

“그럼 몇 마리 잡아오시지 그랬어요.”

 

“너무 이상해서 그럴 정신도 없었다. 너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됐고.”

 

풍천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역조생이 자신을 걱정해서 다른 생각을 미처 못 했다는 말을 듣자 마음이 짠해진 것이다.

 

그때 음식 냄새를 맡은 역조생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먹을 것 없느냐? 정신없이 달려왔더니 배가 고프군.”

 

“제가 조금 전에 다 먹었는데…….”

 

역조생은 솥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솥에 죽이 묻어 있는데, 적어도 사오 인분은 끓인 듯했다.

 

그걸 혼자 다 먹다니.

 

‘너 같은 놈 걱정한 내가 미쳤지. 이럴 줄 알았으면 넋 나간 토끼라도 몇 마리 잡아올걸.’

 

그는 풍천을 흘겨보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먹었으면 설거지라도 해놓아야 할 것 아니냐?”

 

“지금 하면 되죠 뭐. 괜히 신경질이셔.”

 

역조생은 그 대답을 들으니 배가 더 고팠다.

 

‘빌어먹을. 괜히 살려놓았나?’

 

짜증이 난 그는 목옥을 나가는 풍천의 등에 대고 빽 소리쳤다.

 

“밥도 다시 해!”

 

 

 

4

 

 

 

찬바람이 대지를 매섭게 할퀴던 어느 겨울 날.

 

청의를 입은 청년 하나가 신검문에서 오 리가량 떨어진 산등성이에 나타났다.

 

그는 석양 노을에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신검문을 바라보며 뒷짐 진 손을 움켜쥐었다.

 

‘백초령, 나는 천룡회와의 싸움은 관심 없어.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너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너는 나 위태곤의 부인이 되어야만 해.’

 

그랬다. 청년은 다름 아닌 잠응마력차혼대법을 완성하고 남창을 떠나온 위태곤이었다.

 

그는 혁련궁이 천혈궁으로 보낸 일천 명의 지원 무사들과 함께 장강을 건넜다. 하지만 장강을 건너자마자 잠깐 볼일이 있다며 그들과 헤어져서 천중산까지 달려온 터였다.

 

신마귀혼대의 무사들이 따라오려 했지만 전보다 월등히 강해진 그는 그들을 따라오지 못하게 했다. 그들이 따라와 봐야 눈을 부릅뜨고 있는 하남 세력의 눈에 띌 뿐 별 도움도 되지 않았다.

 

산등성이에서 한 시진을 보낸 그는 어둠이 밀려오자 신검문으로 향했다.

 

 

 

소리 없이 담장을 넘은 위태곤은 그동안 얻은 정보를 떠올리며 백초령이 있다는 검향원으로 향했다.

 

절대지경에 근접한 무위를 지니게 된 그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백초령을 빼낼 자신이 있었다.

 

백 명이 지켜도 한 사람의 도둑을 막기 힘든 법이 아니던가.

 

태연히 장원 안을 누비던 그는 마침 혼자 지나가는 무사가 보이자 소리 없이 다가가서 그를 제압해 구석진 곳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그에게서 검향원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사혈을 눌러서 죽인 후,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숨겼다.

 

잠시 후.

 

검향원의 담장에서 십여 장 떨어진 곳에 도착한 그는 몸을 숨기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경비가 제법 삼엄했다. 하지만 그를 곤란케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경비 무사들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돌아간 틈을 이용해서 담을 넘었다.

 

‘한 놈 더 잡아서 백초령의 거처를 알아봐야겠군.’

 

이미 무사 하나를 죽인 터였다. 하나 더 죽인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낄 것도 없었다.

 

어둠을 이용해서 재빨리 정원을 가로지른 그는 연못가에 숨어서 마땅한 사람이 오가기를 기다렸다.

 

그때 마침 한 사람이 그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나이, 고민이 가득한 표정. 어깨가 축 처진 걸 보니 그리 강할 것 같지 않다.

 

‘저놈을 잡아야겠어.’

 

위태곤은 주위에 다른 사람이 없다는 확신이 들자 그를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거리가 삼 장으로 줄어들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의 뒤를 덮쳤다.

 

그런데 위태곤이 막 상대의 풍부혈을 짚으려 할 때였다.

 

고민하는 표정으로 걸어가던 자가 죽 미끄러지더니 홱 몸을 돌리며 쌍장을 휘둘렀다.

 

순간 강력한 장력이 거꾸로 위태곤을 위협했다.

 

대경한 위태곤은 마주 손을 휘둘러서 상대의 장력을 해소했다.

 

퍼버벅!

 

둔중한 소음이 연못가의 침묵을 깨고 울렸다.

 

동시에 두 사람은 서너 걸음씩 물러서서 상대를 노려보았다.

 

그러잖아도 백초령 때문에 마음이 심란하던 공손천우는 갑작스런 습격에 화가 치밀었다.

 

“웬 놈이 검향원에 숨어 들어온 거냐!”

 

위태곤은 상대가 예상보다 훨씬 강한 걸 알고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상대가 약하게 보인 것은 약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강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정확히 판단을 못 할 만큼.

 

자존심이 상한 그는 도망칠 때 도망치더라도 상대에게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해줄 생각이었다.

 

스윽.

 

검을 빼든 그는 땅을 박차고 공손천우를 공격했다.

 

공손천우는 상대의 무공이 자신의 아래가 아님을 알고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자신 역시 전보다 강해진 상태. 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쩡.

 

그도 검을 빼들고 위태곤의 검에 맞섰다.

 

“오냐,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두 사람은 상대가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듯 살기가 풀풀 날리는 살초를 망설이지 않고 펼쳤다.

 

곧 대기를 울리는 격전음이 어둠을 뚫고 울렸다.

 

정원의 나무와 바위들이 격전의 여파에 부러지고 부서졌다.

 

뒤이어 검향원 여기저기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싸우는 거냐?”

 

“조심해서 접근해라! 보통 고수들이 아니다!”

 

순식간에 십여 초를 겨루고 이 장의 거리를 둔 채 물러선 두 사람은 불길이 이는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때 위태곤을 바라보던 공손천우의 눈빛이 묘하게 반짝였다.

 

“네놈은…… 위태곤?”

 

위태곤은 상대가 자신을 알아보자 흠칫했다.

 

“너는 누군데 나를 알아보는 거냐?”

 

공손천우의 입가에 하얀 웃음이 걸렸다.

 

“후후후, 누구냐고? 나는 공손천우라고 하지. 그런데 등왕각에서 백초령을 뺏긴 놈이 무슨 용기로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모르겠군.”

 

“뭐야?”

 

위태곤은 분노로 눈을 부릅떴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이를 악물고 공손천우를 노려보았다.

 

“혹시 네놈이……?”

 

“크크크, 창피하지도 않나 보지?”

 

“개자식……!”

 

위태곤은 불길이 이는 눈으로 공손천우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머물 여유가 없었다. 검향원을 지키는 무사들이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으드득 간 그는 어둠 속으로 몸을 날리며 원한에 사무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그냥 간다만,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네놈의 목을 베어주마, 공손천우!”

 

“흥! 감히 초령 낭자를 납치하기 위해서 침입하다니!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들어왔어도 나가긴 쉽지 않을 것이다, 위태곤!”

 

공손천우는 유난히 위태곤의 이름을 크게 말하며 쫓아갔다.

 

그는 백초령이 얼마나 위태곤을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잘하면 자신을 거부하는 백초령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위태곤, 고맙다! 네가 나를 구원해주기 위해 왔구나!’

 

입이 귀에 걸린 그는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위태곤을 잡아라!”

 

그의 목소리가 검향원은 물론 신검문 하늘에 울려 퍼지자 여기저기서 비상 호각소리가 들렸다.

 

삐이이익!

 

“침입자다! 잡아라!”

 

그리고 곧 신검문에 머물고 있던 천외천의 무사들마저 쏟아져 나왔다.

 

“이공자, 무슨 일이오?”

 

공손천우는 더욱더 큰 소리로 소리쳤다.

 

“저놈을 잡으십시오! 백초령 낭자를 납치하려고 침입한 신마성의 위태곤이란 잡니다!”

 

“저쪽으로 간다! 쫓아라!”

 

하지만 천외천의 무사들이 강하다 해도 죽기 살기로 도망치는 위태곤을 잡기는 쉽지 않았다.

 

위태곤은 서너 군데 작지 않은 상처를 입긴 했지만, 전력을 다해서 천외천의 추적을 따돌리고 신검문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쉬지 않고 전력으로 이십 리를 달린 뒤 추적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걸음을 멈췄다.

 

“공손천우, 이 개자식. 헉헉헉…… 두고 봐라, 이놈. 풍천은 내 손으로 못 죽였지만, 네놈은 반드시 내가 직접 죽일 것이다.”

 

 

 

5

 

 

 

풍천이 역조생의 입에서 들은 첫 번째 강호 이야기는 천룡회에 대한 것이었다.

 

한 달 만에 생필품을 사러 마을에 나갔다가 어디서 주워들은 모양이었다.

 

“천룡회?”

 

“천외천인가 뭔가 하는 곳하고 구룡회가 사람들을 끌어모아서 만든 곳이라더라. 요즘 그놈들하고 신마성 놈들이 대판 싸우는 바람에 바깥이 난리도 아니다.”

 

“주인이 누군데요?”

 

“몰라. 나하고 상관없는 놈인데 뭐하러 물어봐?”

 

‘제길, 그럼 천룡회라는 이름도 알려주지 말든가.’

 

풍천은 달랑 천룡회라는 이름만 알아온 역조생을 흘겨보며 속으로 투덜댔다.

 

‘그런다고 내가 모를 줄 아쇼? 보나마나 공손무백이겠죠 뭐.’

 

하지만 겉으로는 제법 상냥한 표정을 짓고 넌지시 물었다.

 

“그 사람들, 요즘도 싸우고 있어요?”

 

역조생이 풍천을 째려보았다.

 

“요즘 천주산 인근에도 신마성과 천혈궁 놈들이 제법 출몰하던데, 함부로 싸다니지 말고 안에 처박혀 있어.”

 

풍천은 뜨끔해서 대충 얼버무렸다.

 

“누가 나간데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지.”

 

역조생은 그런 풍천의 위아래를 슬쩍 훑어보고는 혀를 차며 안으로 들어갔다.

 

“에잉, 쯔쯔쯔, 원래 도둑놈이 제 발 저린 법이다. 그러게 왜 도둑질을 해?”

 

도둑질?

 

풍천은 고개를 모로 꼬며 역조생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누구에게 하는 소리야? 설마 나에게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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