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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96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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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천풍전설 196화

 

196화

 

 

 

 

 

 

백무천은 그 의견에 반대했다.

 

편법으로 숫자의 불리함을 이겨냈을 뿐, 진정한 실력으로 따진다면 자신들이 불리했다. 또한 적은 패퇴해서 물러선 게 아니었다. 일시적인 작전상의 후퇴일 뿐.

 

지금은 지킬 때이지 공격할 때가 아니었다. 피해가 커서 자칫 한 번만 실수해도 나락으로 떨어질지 몰랐다.

 

더구나 그는 혁련후와 싸우면서 입은 내상이 가볍지 않았다. 기회를 엿보던 신마성의 장로들이 합공을 하는 바람에 내상을 입은 것이다.

 

혁련후가 장로들의 합공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면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지 몰랐다.

 

그 일은 백무천이 생각해도 뜻밖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탁능한이 본격적으로 반발하기 시작했다.

 

추적을 만류했다는 것을 빌미로, 백무천은 겁이 많아서 총회주를 맡을 자격이 없다는 식으로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 것이다.

 

백무천은 일절 대꾸하지 않았다.

 

아직 많은 군웅들이 그를 신뢰하고 있는데, 자신이 대꾸하면 분란만 생길 뿐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는 오히려 분기를 참지 못하는 신검문의 사람들을 다독이기에 바빴다.

 

솔직히, 그까짓 총회주 자리, 탁능한이 맡으면 어떠랴! 그런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신마성의 고수들이 천혈궁에 몰려든 상황. 신검문이 걱정되어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탁능한이 총회주를 맡으면 앞으로의 상황이 불을 보듯 뻔해서 그리할 수도 없었다. 답답하고 속이 상해도 당분간은 참는 수밖에.

 

적련방에 머물고 있는 공손무백에 대한 말이 나온 것은 바로 그날 저녁이었다.

 

 

 

“적련방에 이 탁모가 아는 분이 오셨다 하오. 그분이 도와주신다면 신마성의 잡졸들을 당장에 물리칠 수 있을 것이오. 백 문주, 그대가 임시로 총회주와 같은 위치에 있으니, 서신을 보내 그분께 도움을 청하는 게 어떻겠소?”

 

탁능한의 말에 군웅들이 웅성거렸다.

 

누군데 천하의 천붕도제 탁능한이 ‘그분’이라 부르는 걸까?

 

그가 정말 구룡회를 신마성의 공격에서 구할 수 있단 말인가?

 

경악과 설레임, 의혹이 교차된 군웅들의 시선이 백무천에게로 향했다.

 

백무천은 풍천에게 들은 말이 있기에 마침내 천외천의 사람들이 도착했다는 걸 알고 안색이 굳어졌다.

 

문제는 거부하고 싶어도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구룡회의 힘을 장악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히 아는 터에 무작정 찬성할 수도 없었다.

 

난형난제(難兄難弟).

 

백무천은 그 일에 대한 결정을 다음 날로 미루었다.

 

“아직 그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소? 그 일은 내일 의논합시다.”

 

그런데 탁능한이 입술 끝을 비틀고 말했다.

 

“아마 백 문주께서도 그분이 누군 줄 알면 내 말을 이해하실 것이오.”

 

“무슨 말씀이오?”

 

“그분들은 천외천에서 나온 분들이시오.”

 

쿵!

 

충격을 받은 백무천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탁능한이 천외천과 연관되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천하에 그곳과 연관된 유명인사들이 부지기수일 테니까.

 

문제는 천외천의 이름을 밝혔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백무천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놀랄 만한 일임에 분명했다.

 

풍천의 말을 듣고도 설마 했거늘…….

 

‘그들이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려는 것인가?’

 

그는 가까스로 탁능한의 말을 받아쳤다.

 

“좌우간 그 일에 대한 결정은 이곳을 정리한 다음으로 미룹시다.”

 

“뭐 백 문주의 마음이 정 그러시다면야…….”

 

탁능한은 조소를 베어 문 채 자리에 앉았다.

 

마치 모든 것을 차지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백무천은 그제야 그동안 의아해했던 일 몇 가지에 대해서 왜 그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탁능한! 그랬더냐? 그래서 구양 형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거냐? 구룡회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그래야 사람들이 천외천의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할 테니까?’

 

분노가 스멀거리며 피어났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마음을 일절 내비치지 않고 포권을 취했다.

 

“가서 쉬어야 할 것 같소이다. 백모가 부족해서 혁련후에게 내상을 입고 말았소이다.”

 

사람들은 백무천이 혁련후와 신마성 장로들의 합공을 받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기에 백무천의 건강을 걱정했다.

 

“백 문주가 아니면 누가 혁련후와 신마성 장로들의 합공을 받아낼 수 있겠소이까? 그나마 그 정도로 그친 게 다행이외다.”

 

“빨리 나으십시오. 우리는 백 문주만을 믿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백무천은 그들을 향해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순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탁능한의 눈에서 새파란 한광이 번뜩였다.

 

백무천이 부상을 입었음에도 사람들이 그를 천하제일 고수처럼 대해주는 게 배가 아픈 것이다.

 

‘흥, 그것도 며칠 남지 않았다, 백무천.’

 

 

 

4

 

 

 

부가장의 싸움이 있은 지 사흘.

 

패웅보에 도사리고 있는 신마성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 사이 탁능한과 담청은 적련방에 있던 공손무백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본래 백무천이 해야 할 일이었지만, 그는 내상이 예상보다 깊다는 핑계를 대고 모든 일을 그들에게 맡겨버렸다.

 

탁능한이 구룡회를 이끄는 게 영 불안했지만 천외천이 나타났다면 더는 우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결국은 탁능한도 허수아비 역할밖에 할 수 없을 테니까.

 

이틀 후. 공손무백이 천외천의 무사들을 이끌고 정원으로 달려왔다.

 

백무천은 몸도 안 좋고, 천혈궁에 있는 신마성의 세력이 하남으로 향하는 걸 막겠다며, 신검문의 무사 반을 데리고 신검문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공손무백과 탁능한은 그의 신검문 복귀를 막지 않았다.

 

백무천이 드리운 그림자는 의외로 컸다. 그들 마음대로 하려면 없는 게 나았다. 신마성이 하남으로 향하면 막아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었고.

 

그렇게 백무천은 남은 신검문도들을 백유현과 화청백에게 맡기고 정원을 떠나 신검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천외천과 구룡회의 무사들도 일단 회남까지 물러서기로 결정을 내렸다.

 

패웅보의 적보다도 천혈궁에 도사리고 있는 자들이 더 걱정된 것이다.

 

 

 

5

 

 

 

풀잎이 끝에 맺힌 이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는 새벽녘.

 

신검문 신무전의 내실에서는 은은한 다향이 흘렀다.

 

용후정은 다향을 음미하듯 찻잔에 입술을 대었다 떼고는 전면에 앉아 있는 영호관을 바라보았다.

 

“천붕성과 적련방이 대공께 무릎을 꿇었다는군. 그런데 백무천이 돌아온다고 하네. 더 늦기 전에 우리도 시작하지.”

 

영호관은 차에 손도 대지 않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전주께서는 수호검단만 처리해주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맡지요.”

 

“후후후, 알겠네. 수호검단에 남은 자들은 삼십 명밖에 안 되니 어렵지 않을 거네.”

 

“좋습니다. 그럼 내일 새벽에 시작하겠습니다.”

 

“수고하게. 이제 하루만 지나면 신검문주가 되겠구먼.”

 

영호관은 상기된 얼굴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 말은 모든 일이 끝난 후에 듣지요.”

 

 

 

다음 날 새벽. 영호관이 이끄는 일단의 무리가 신검문의 외곽을 휩쓸었다.

 

처음에는 백여 명에 불과했던 인원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불어났다.

 

영호관은 신검문의 조직을 한 곳, 한 곳 차례차례 방문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간부들이 욕을 퍼부으며 달려들었다.

 

영호관은 대항하는 간부들을 직접 쓰러뜨려서 혈도를 제압한 후 뇌옥에 가두었다.

 

개중에는 철검전주 금대철도 있었고, 백검당주 이종상도 있었다. 조장들은 굳이 영호관이 손을 쓸 것도 없었다.

 

간혹 분기를 이기지 못하고 신검문을 빠져나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영호관은 그들을 쫓지 않았다.

 

뒤늦게 상황을 안 일반 무사들은 영호관의 엄청난 무위에 놀라는 한편, 영호관이 문주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을 만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바람에 얍삽한 자들은 입을 다문 채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침 해가 떠오르던 시각. 영호관이 이끄는 삼백 명의 무사들이 장로원을 에워쌌다.

 

영호관은 열 명의 최측근 무사들만 대동하고 장로원으로 들어갔다.

 

소문을 들었는지 장로원주 여평선을 비롯해서 일곱 명의 장로들이 모두 정원으로 나와 있었다.

 

영호관이 다가가자 여평선이 노성을 내질렀다.

 

“이게 무슨 짓인가, 이공자!”

 

“시기가 조금 당겨졌을 뿐입니다, 원주.”

 

“무슨 시기 말인가?”

 

“신검문의 주인이 바뀔 시기 말이지요.”

 

“뭐라? 지금 네놈이 사부를 배신하고 반역을 하겠다는 게냐!”

 

“반역이 아닙니다. 시의에 따라 움직일 뿐이지요.”

 

“이런 고약한 놈이 있나!”

 

여평선은 검을 빼들더니 노성을 내지르며 신형을 날렸다.

 

“내 문주를 대신해서 네놈의 목을 베리라!”

 

영호관은 무심한 눈으로 여평선을 바라보며 검을 뻗었다.

 

눈부신 검광이 교차하며 벼락 치는 소리가 울렸다.

 

쩌저저정!

 

운천검 여평선의 무위는 백무천에 비해 별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도 영호관은 조금도 밀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십여 초를 받아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영호관의 검이 허공을 길게 가르며 여평선을 압박했다.

 

여평선은 그 검의 정체를 알고 눈을 부릅떴다.

 

“네가 어떻게……!”

 

그는 전력을 다해서 영호관의 검을 막아냈다.

 

두 사람의 전 공력이 실린 검세가 정면으로 부딪쳤다.

 

쾅!

 

일성 굉음과 함께 웅혼한 검기가 불꽃처럼 사방으로 튀고, 이 장을 날아간 여평선은 비틀거리며 내려섰다.

 

영호관도 그 충격에 세 걸음을 물러난 후 고요한 눈으로 여평선을 응시했다.

 

주위가 고요해졌다. 경악의 눈빛이 일제히 영호관을 향했다.

 

언뜻 본 것만으로도 두 사람의 실력은 대등했다. 그래서 놀란 것이었다.

 

설마 영호관이 운천검 여평선과 대등하게 싸울 줄이야!

 

그때 영호관의 목소리가 고요를 깨며 울렸다.

 

“너무 흥분하지 마시고 잘 생각해보십시오. 적련방과 천붕성이 천외천 밑으로 들어간 판국입니다. 한데 문주께선 천외천과 척을 지고 있지요. 천혈궁과 신마성만 해도 감당할 수 없는 적인데, 천외천까지 적으로 돌리면 우리가 설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흥! 배신의 이유치고는 너무 조잡하군. 정 생각이 다르면 문주께 의견을 말할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니더냐?”

 

“시간이 없습니다. 천혈궁과 신마성이 시시각각으로 저희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놈들의 공격을 받기 전에 천외천과 손을 잡지 않으면 본문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게 될 겁니다.”

 

“어리석은 놈! 우리 장로들은 네놈의 그따위 망발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니라!”

 

“장로 전체가 같은 마음일 거라고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뭐야?”

 

영호관은 비릿한 조소를 지으며 여평선 뒤쪽에 서 있는 여섯 명의 장로들을 향해 말했다.

 

“안 그렇습니까?”

 

순간 그들 중 셋이 멈칫거리더니 하나둘 앞으로 걸어나오며 말했다.

 

“영호 공자의 말씀이 맞소.”

 

“나도 영호 공자의 뜻에 따르겠소.”

 

“천외천을 거역하고, 망하는 것보다, 따르고 영화를 누리는 게 현명한 일 아니겠소, 원주?”

 

여평선의 얼굴이 푸들거리며 떨렸다. 믿을 수 없는 눈빛이었다.

 

비연검 전충관, 적수패검 두양, 삼절검객 도종화. 셋 모두 자신과 호형호제하며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아닌가.

 

“어찌 자네들이……!”

 

세 사람은 영호관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평선을 비롯한 다른 장로들은 분노한 눈으로 그들을 보면서도 공격하지 못했다.

 

그렇게 영호관 앞으로 간 세 사람 중 전충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우리를 불러낸 것이오? 전주께선 저들 속에 있다가 명이 떨어지면 제거하라 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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