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19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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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0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194화
194화
한 번 도약할 때마다 심장이 터질 듯했다. 어깨뼈가 부서져서 떨어지고, 내장이 빨랫줄처럼 빠져나올 것 같은데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평소의 반밖에 안 되는 속도. 유천삼위가 십 장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데 거리가 벌어지지 않았다.
아니 벌어지기는커녕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더구나 천풍심법으로 끌어올린 기운이 급격히 소진되었다.
이대로 가면 반 각도 달리지 못하고 따라잡힐 것 같다.
쉬이익!
대기를 가르며 날아든 검기가 등을 스쳤다.
등에서 바늘을 살 속에 집어넣고 휘젓는 고통이 느껴졌다.
“죽일 놈! 어디 더 달려봐라!”
조금 전 자신에게 속아서 말대답해주었던 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속은 게 상당히 분한 듯했다.
그러게 누가 속으래? 멍청하긴!
하지만 지금은 그를 놀려줄 정신이 없었다. 뒤에서 시도 때도 없이 검기가 날아들고 있었다.
풍천은 섬뜩한 느낌이 들 때마다 방향을 틀어서 유천삼위의 공격을 피하며 한쪽을 힐끔거렸다.
저만치 앞쪽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낭떠러지가 있었다. 그곳에는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외나무다리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곳까지만 가면 놈들을 따돌릴 수 있을지도…….
‘한 번만 더!’
그때였다.
쉭!
머리꼭대기가 시원해지면서 머리카락 한 주먹이 검기에 잘려서 너풀거렸다.
‘이크!’
고개를 쏙 집어넣은 그는 또다시 방향을 틀었다. 한 번씩 방향을 틀 때마다 온몸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몸의 주인은 더 괴로웠다. 낭떠러지까지 가려면 서너 번은 더 도약해야 하는데, 그 전에 상대의 검이 목을 후려칠 것 같았다.
공포.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밀려들었다.
제길, 형에 대한 복수도 아직 다 하지 못했는데!
부모님에 대한 기억도 완전히 떠올리지 못했는데!
‘살아야 돼! 나는 부모님을 만나야 돼!’
풍천은 입술이 찢어지도록 세차게 깨물고 혼신을 다해서 도약했다.
바로 그 순간!
“이제 죽어라!”
차디찬 목소리와 함께 뒤에서 날아든 검기가 그의 등을 파고들었다.
왼쪽. 심장이 있는 바로 뒤쪽이었다.
‘헉! 안 돼!’
대경한 풍천은 황급히 몸을 틀었다.
하지만 한 번 파고든 검기는 거머리처럼 떨어지지 않고 갈비뼈를 부러뜨리며 심장으로 박혀들었다.
뒤이어 또 다른 두 줄기의 공세가 그의 좌우에서 몰려들었다.
그런데 검기가 심장에 닿은 바로 그 순간,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찌이이잉!
심장에서 풍천 자신도 알 수 없는 가공할 기운이 폭죽처럼 터지며 검기를 튕겨내는 것이 아닌가.
그뿐이 아니었다. 뒤이어 기해혈에서도 벼락을 맞은 것 같은 충격이 느껴졌다.
온몸이 사분오열로 분해될 것 같은 고통!
‘크어억! 이건 금제……!’
그랬다. 아극사의 금제. 정확히는 심장에 머물러 있던 벽라의 인이 외부의 직접적인 충격에 반응한 것이었다.
정신이 아득해진 풍천은 그 기운을 벽라진기의 통로를 통해서 밖으로 뿜어냈다.
아극사와 상관없이 금제가 발동된 이상 몸이 터져서 죽을지 몰랐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세 마리 개새끼를 저승으로 끌고 가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함께 죽자, 개새끼들아!’
속으로 욕을 퍼부은 풍천은 전력을 다해서 천라신수의 삼 초식 중 하나, 천라회풍(天羅回風)을 펼쳤다.
순간, 그의 우수에 들린 검과 좌수에서 눈부신 벽광이 피어나더니 회오리처럼 휘돌며 유천삼위를 휘감았다.
휘리리링!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상황.
등골이 오싹해진 유천삼위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헉!”
“이게 무슨……!”
“아, 안 돼!”
세 사람은 비명에 가까운 악을 쓰며 전 공력을 쏟아냈다.
풍천은 아득하게 들리는 그 소리에 하얗게 웃었다.
‘안 되긴! 크크크!’
쩌저저적! 콰광!
일부 공세는 벽광과 부딪치면서 산산이 부서지고, 일부는 풍천을 덮쳤다.
벽광에 의해 약화됐다 해도 절정고수가 전력을 다해 쏟아낸 공격이다.
고막이 먹먹해지고,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느낌!
풍천은 몽둥이에 얻어맞은 자갈처럼 낭떠러지가 있는 곳으로 훌훌 날아가며 세상을 한탄했다.
조금 전까지는 목적지였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든 지금은 절대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인생 드럽네, 씨바아아알……!’
그 많은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죽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무조건 초령이와 그걸 해보는 건데…….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그는 그 와중에도 뭔가가 가슴을 후려치자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뒤이어 쩍쩍 갈라진 유천삼위의 몸뚱이가 핏물을 사방으로 뿜어내며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2
풍천의 심장에서 벽라의 인이 반응한 바로 그 시각.
벽라동에서 아극사가 피를 뿜어내며 몸을 덜덜 떨었다.
“커억!”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설마 그놈에게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것인가?
벽라의 인은 자신과 혼으로 이어져 있다. 자신이 이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은 벽라의 인에도 그만한 충격이 가해졌다는 말.
끝내 자신이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진 것인가?
벽라의 인과 이어진 연결을 끊어야 하나?
연결을 끊으면 벽라의 인이 어떤 충격을 받아도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연결을 끊으면 놈을 통제할 방법도 없어지고, 결국 그놈에게만 좋은 일을 시켜줄 뿐이었다.
‘조금만 더 참아보자. 다행히 아직 죽지는 않은 것 같으니…… 이놈, 죽으면 안 된다. 우리 비아를 위해서라도…….’
바로 그때, 석실로 아수비가 들어왔다.
그녀는 바닥에 뿌려진 피를 보고는 놀라서 아극사에게 달려갔다.
“할아버지! 어떻게 된 거예요?”
아극사는 벽라의 인에 대한 비밀을 숨기고 태연히 말했다.
“별일 아니니 너무 걱정 마라.”
“피를 토했는데 어찌 별일이 아니라고 하세요?”
“걱정 말라니까. 속이 안 좋아서 썩은 피를 뱉어냈더니 이제 좀 편하구나.”
“할아버지…….”
“허허허, 이 할아비 나이가 몇이냐? 여태 살아 있는 게 신기하지.”
아극사의 고집을 잘 아는 아수비는 피에 대해서 더 묻지 않았다. 말하지 않을 생각인 이상 아무리 물어봐도 소용없을 것이었다.
“조심하세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아프시면 저희는 마음이 더 아파요.”
“오냐, 그러마. 허허허. 그건 그렇고…… 몸은 어떠냐?”
아수비의 얼굴이 옅은 홍조로 물들었다.
“아무래도…… 된 것 같아요.”
“그래? 앞으로 몸을 조심하도록 해라. 아이를 낳을 때까지는 심한 일을 타아와 령아에게 맡기고.”
“예, 할아버지.”
대답하는 아수비의 눈에서 그리움이 일렁였다.
3
천응단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다음 날 아침 무렵이었다.
섭위릉과 염사진, 좌궁화는 보고를 듣자마자 즉시 협곡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천응단원들의 시신 중 몇 구는 짐승들에게 훼손된 상태였다. 하지만 협곡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좌궁화는 협곡에 널브러져 있는 시신을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섭 장로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섭위릉은 바로 입을 열지 못했다. 아마 그가 아닌 누구라도 그러했을 것이었다. 좌궁화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물어보듯이.
그의 입이 열린 것은 천천히 숨을 두어 번 쉰 다음이었다.
“이들은 모두 본성의 당주급 이상 가는 고수들이네. 그리고 저자는 솔직히 말해서 우리 아래가 아니었던 것 같군.”
좌궁화도 모르지 않았다. 그 역시 협곡에 남은 흔적만 보고도 어느 정도의 고수들이 싸웠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몇 명에게 당했다 보십니까?”
섭위릉은 고개를 들어 좌궁화를 바라보았다.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자신의 눈이 본 것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한 사람.”
좌궁화의 눈빛도 흔들렸다.
“그놈일 거라 보십니까?”
“처음서 끝까지, 지독하리만치 처절하게 맞서 싸운 것 같네. 그놈이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겠지.”
그때 무영신마가 돌덩이처럼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나는 다른 놈일까 봐 더 걱정이네. 차라리 그놈이 죽인 게 낫지.”
“그놈만 한 적이 하나 더 있을까 봐 그러십니까?”
염사진은 느릿느릿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놈이 정말 이들을 죽였다면 이겼다 해도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 아닌가? 나는 제발 그러길 바라고 있네. 그럼 멀리 가지 못했을 테니까. 어딘가에서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르고.”
말을 맺는 그의 눈에서 진한 살기가 쏟아졌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절박한 감정이 섞인 채.
좌궁화와 섭위릉도 같은 마음이었다.
좌궁화는 이를 악물고 협곡이 끝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아이들에게 맡기고 놈의 흔적을 쫓아가 봅시다. 몸을 치료하느라 멀리 가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섭위릉과 염사진은 반대할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었다.
‘이번에 놈을 죽이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
‘반드시 죽여야 돼!’
염사진이 앞장섰다.
“내가 흔적을 찾아보지.”
또 다른 흔적을 찾은 것은 정오 무렵이었다.
좌궁화와 섭위릉, 염사진은 쩍쩍 갈라진 채 죽어 있는 세 구의 시신을 보고 곤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염사진은 한참 만에야 두 사람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것도 놈의 짓일까?”
좌궁화와 섭위릉은 입술을 몇 번이나 씰룩이다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나도 모르겠소.”
협곡에서 죽어 있는 자들과 흔적이 완전히 달랐다. 게다가 세 사람을 죽인 무공은 그들조차 가슴이 떨릴 정도였다.
그들은 이 세 사람을 죽인 사람은 절대 풍천이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다 죽어가던 놈이 이토록 가공할 무공을 펼쳤을 가능성은 만에 하나도 안 되었다.
염사진은 낭떠러지에 걸쳐져 있는 외나무다리를 살펴보았다.
외나무다리에는 초입에만 피가 묻어 있을 뿐, 더 이상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건너편으로 넘어가서 주위를 살펴본 후 낭떠러지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뿌연 안개가 절벽 중간에 걸쳐져 있어서 아래가 보이지 않았다.
“놈이 이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졌으면 좋겠는데…….”
섭위릉과 좌궁화도 같은 마음이었다.
놈은 치명상을 입은 상태로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려 한 듯했다. 하지만 건너편에는 놈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건너가려다 밑으로 떨어졌을 확률이 높다는 말.
좌궁화는 제발 그러하기를 바라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들을 시켜서 산을 샅샅이 수색해봐야겠습니다.”
섭위릉도 나름대로 자신의 결론을 말했다.
“만약 놈이 낭떠러지에 떨어진 게 아니라면, 누군가가 놈을 구했다고밖에 볼 수 없소.”
두 사람도 차라리 그러기를 바랐다.
풍천이 이들을 죽인 후 혼자서 사라졌다고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다.
그때 염사진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때문에 답답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자네들은 죽은 놈들이 누군지 알겠나?”
섭위릉은 고개를 저었다.
신비단체에 속한 자들일 확률이 높았다. 문제는 자신들이 쫓는 놈도 그 단체의 고수로 짐작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한 것일까?
그럼 그놈은 그 단체의 사람이 아니었단 말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좌궁화가 무거운 어조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일단 시신을 수습해서 군사에게 보냅시다. 군사라면 이 일의 전모를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을 것이오.”
4
하루가 지나도 풍천이 돌아오지 않자 남궁도영은 제운당을 통해 동암 분타의 상황을 알아보았다.
그날 저녁, 제운당의 남궁용화가 두 가지 소식을 가지고 객잔을 찾아왔다.
“숙부께서 찾으시는 분은 그날 동암 분타를 빠져나가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천혈궁 무사들이 남쪽에서 격렬한 싸움 흔적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누가 싸운 건지 아느냐?”
“그들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신을 일부 회수했다는 말을 듣긴 했습니다만, 그중에 대풍이라는 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남궁도영은 둘러앉아 있는 단천무령을 돌아다보았다.
“어떻게 하시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