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19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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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8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192화
192화
풍천은 그 느낌만으로도 쫓아오는 자들이 누군지 알고 쉴 생각을 버렸다.
‘정말 질긴 늙은이들이군.’
아무래도 저들의 추적을 완전히 따돌린 다음 내상을 다스려야 할 것 같다.
그는 동쪽으로 가던 발걸음을 남쪽으로 돌렸다.
자신이 저들의 추적 방향을 돌린다면 사성으로 가는 남궁도영 등이 안전해질 것이다. 저들이 계속 동쪽으로 추적하면 자신이 안전해질 것이고.
‘어이가 없군. 저 정도로 강했단 말인가?’
은양은 멀어지는 풍천을 보며 손을 움켜쥐었다.
손 안에 땀이 고였다.
풍천이 싸우는 걸 몇 번 봤기에 강하다는 걸 모르진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안전하다 생각한 거리보다 두 배나 더 멀리 떨어져서 움직였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에서야 자신이 풍천을 반밖에 알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절대(絶對)의 강(强)함!
그것은 스스로를 강자라 여기는 그의 심장을 뛰게 하는 데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본천의 모두가 저자에게 속은 건가?’
은양은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속은 게 아니라 몰랐을 뿐. 한 없이 가벼워 보이는 저자가 절대의 무위를 지녔을 줄 누가 알았으랴.
풀썩, 쓴웃음을 지은 그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좌우간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군.’
풍천을 돕기 위해 두 사람을 급습해서 벽에 구멍을 뚫어주었다. 그 정도면 적극적으로 돕진 못했어도 공손이향의 부탁은 들어준 셈이었다.
그는 풍천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신마성의 고수들이 풍천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몸을 돌려서 그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십여 줄기 그림자가 그의 시선에서 벗어난 곳을 이동하며 풍천의 뒤를 쫓고 있다는 걸.
2
풍천은 중간 중간 주위를 살피며 걸음을 늦추고 기운을 다스렸다. 잠깐씩 운기하는 것만으로도 들끓었던 진기가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반 시진이라도 머물며 내상을 다스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예민한 감각이 지속적으로 누군가의 추적에 대한 경고음을 보내고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이삼십 리쯤 내려갔다가 우회해서 올라가면 놈들도 추적을 못 하겠지.’
괜찮은 장소가 있으면 그곳에서 몸을 치료한 다음 가도 되고.
그는 서두르지 않고 흔적을 최대한 남기지 않으려 애쓰면서 추적자의 느낌이 느껴지지 않는 쪽으로 내려갔다.
십 리쯤 더 가자 저만치 절벽 사이로 난 길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협곡이 유난히 어두워 보였다.
‘저곳을 지난 다음 방향을 돌려야겠군.’
협곡은 천주산 쪽으로 향해 있었다. 협곡을 지난 흔적이 발견된다 해도 적은 자신이 천주산으로 들어갔을 거라 생각할 확률이 높았다.
그는 걸음을 빨리해서 협곡으로 들어갔다.
뒤에서는 여전히 추적자들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거머리가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기분 나쁜 느낌이었다.
‘그들이 쫓아왔나?’
그것은 아닌 듯했다. 그들이라면 뒤만 쫓아올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만큼 강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가 협곡으로 들어감과 동시, 뒤통수를 자극하던 더러운 느낌이 빠르게 다가왔다.
‘더는 못 참겠다는 건가? 대체 어떤 놈들이야?’
눈살을 찌푸린 풍천은 협곡 안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런데 서너 번 도약한 그가 협곡을 절반쯤 통과했을 때였다. 앞쪽에서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가 그를 압박했다.
걸음을 늦춘 풍천은 공력을 끌어올리며 전면을 노려보았다.
적은 뒤만 아니라 앞에도 있었다. 전이었다면 강제로 통과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다.
“어디서 온 손님인데 바쁜 사람의 앞을 막는 거요?”
전면의 바위 뒤에서 세 사람이 걸어나왔다. 그리고 셋 중 중앙에 서 있는 자가 말했다.
“네놈을 지옥으로 보내기 위해서 온 손님이지.”
그를 본 풍천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나타난 자. 그는 다름 아닌 천응단주 등가위였다.
빌어먹을! 하필 내상이 심할 때 만나다니. 단천무령도 없거늘.
하지만 약점을 보일 수는 없는 일. 더구나 그는 겉으로나마 대공과 손을 잡은 사이가 아닌가.
풍천은 턱을 쳐들고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이게 누구요? 등 단주가 아뇨?”
“오늘 같은 날이 있을 줄은 몰랐을 거다, 대풍. 아니 잠풍이라고 해야 하나?”
“어쩐 일이쇼?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천에서 무슨 명령이라도 떨어졌수?”
등가위는 그에 대한 답을 피하고 나직이 웃었다.
“후후후후, 정말 대단해. 건곤신마와 무영신마, 거기다 신월마신까지 합세한 합공을 뚫고 나오다니 말이야.”
그걸 아는 걸 보니 동암 분타에서 여기까지 따라온 듯했다. 완벽한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다 봤수?”
“천혈쌍마가 죽는 걸 보지 못한 게 조금 아쉬웠지.”
“거참, 나름대로 적의 눈을 속이면서 도망쳤는데, 어떻게 찾은 거요?”
“흐흐흐, 방향을 트는 바람에 하마터면 놓칠 뻔했지. 그런데 다행히 내상을 다스리느라 여유를 부리더군, 그래서 재빨리 따라와서 양쪽을 막고 몰았더니, 네놈이 멍청한 토끼처럼 알아서 이곳으로 들어온 거야.”
토끼몰이를 하듯이 양방향을 막고 협곡으로 몰은 것 같다. 등가위는 안에서 기다리고.
결국 추적자들을 떨치기 위해서 안전한 곳으로 간다는 게 천응단의 품 안으로 뛰어든 셈이란 말.
‘제길, 감각이 너무 예민해도 문제군.’
그는 짜증을 내듯이 툭 쏘아붙였다.
“내가 좀 바쁜데, 본론을 말해보쇼.”
등가위의 입가에 냉소가 걸렸다.
“본론이라…… 간단해. 네놈의 목을 자르는 일 때문에 왔으니까.”
“대공이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진 않았을 테고…… 흐음, 이제는 대공도 소용없단 말인가 보군.”
대공을 들먹이자 등가위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그는 얇은 입술을 깨물고 나직이 말했다.
“이 일은 대공과 상관없다.”
“그럼 당신 혼자 결정했단 말이오? 그건 아닐 텐데?”
등가위의 눈빛이 다시 한번 출렁였다.
그걸 본 풍천은 문득 공손선우가 구룡회에 도착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라면 자신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고도 남았다.
풍천은 넌지시 넘겨짚어 보았다.
“아하, 이제 보니 대공자가 시켰나 보군.”
등가위는 부인하지 않았다. 어차피 공손선우는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네놈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군. 대공자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일 뿐이지.”
그가 말하며 왼손을 들어올리자 뒤따라온 열세 명의 천응단원이 나타나서 풍천을 에워쌌다.
다섯이면 섭위릉이나 염사진, 좌궁화도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무려 열다섯이나 된다. 거기다 일대일로도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등가위까지.
반면 자신이 기댈 수 있는 것은 밤의 어둠과 바람뿐.
정말 빌어먹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풍천은 짜증 나는 기분을 공손선우에게 털어냈다.
“거참, 나처럼 마음씨 좋은 사람을 싫어하다니. 그 빌어먹을 인간, 지옥에서 열두 바퀴 굴러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등가위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조소를 지었다.
“네놈도 그 기분을 느끼도록 팔다리를 잘라서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쉽지 않을 텐데? 내가 바람 부는 날, 밤길을 조심하라고 한 걸 잊었나 보죠?”
“후후후, 네놈이 내상을 입은 걸 모를 줄 아느냐?”
‘제길, 별걸 다 아는군. 인피면구가 너무 좋아서 얼굴 표정이 다 드러나나?’
풍천은 천응을 언급하며 등가위의 성질을 살짝 건드렸다.
“그래도 참새 새끼나 데리고 다니는 사람보단 나을걸? 아참, 그 참새는 누가 구워 먹었수?”
아니나 다를까, 등가위의 눈에서 살광이 번뜩였다.
“죽일 놈! 어디 팔다리가 잘리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지 보자! 모두 놈을 쳐라!”
천응단원들은 원을 그리면서 포위망을 좁혔다.
그리고 삼 장의 거리가 되자 열다섯 중 다섯이 풍천을 향해 쇄도했다.
풍천은 천풍무영류를 펼쳐서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기댈 수 있는 것이 어둠뿐이라면 최대한 이용해야 했다.
그런데 뭐가 안 되려는지 내상이 심해서 기운의 흐름이 완벽하게 감춰지지 않았다.
“저기다!”
모든 감각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채 주시하던 조양경이 그의 기운을 눈치채고 소리쳤다.
풍천은 천풍무영류를 귀환신법으로 바꾸고 천응단원 사이를 누볐다.
어둠 속에서 환영이 어른거리며 유령처럼 너울거렸다.
신출귀몰한 풍천의 움직임에 천응단원들이 주춤한 사이, 나직한 신음과 함께 피가 튀었다.
“크윽!”
“조심해!”
천응단원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을 때는 이미 두 사람이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풍천은 단숨에 두 사람을 제거하고 또 다른 자를 덮쳤다.
하지만 천응단원들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풍천이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는 것만으로도 뇌리를 지배했던 공포심이 많이 가신 상태였다.
그들은 철저하게 다섯이 한 조가 되어서 공격했다.
풍천이 반격하면 뒤로 물러서고, 다른 자들이 달려들었다.
서너 번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풍천은 등가위의 생각을 눈치채고 이를 악물었다.
등가위는 차륜전을 펼쳐서 내상이 심한 풍천의 공력을 고갈시키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뜻대로 해줄 순 없지!
풍천은 천응단원들이 달려들자 다른 때처럼 피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다.
기회라 생각한 천응단원들은 마지막까지 쇄도했다.
순간, 검기가 넘실거리는 다섯 자루의 도검이 풍천의 몸을 수십 조각으로 쪼갰다.
조양경이 그걸 보고 벼락같이 소리쳤다.
“물러서!”
그가 아는 풍천은 가만히 서서 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뭔가 꿍꿍이속이 있지 않고서야 스스로 도검 앞에 몸을 내밀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수십 조각으로 쪼개졌던 풍천이 허공에서 뭉치는가 싶더니 시퍼런 검기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크억!”
“헉!”
비명이 거의 동시에 터져 나오며 세 사람의 몸에서 피 분수가 솟구쳤다.
풍천은 환신술과 귀환신법을 적절히 혼용해서 상대의 눈을 속인 후 세 사람을 베어내고는, 마저 두 사람을 베기 위해 바람을 타고 흘렀다.
하지만 풍천의 몸이 허공에서 뭉치는 순간, 이미 조양경이 땅을 박차고 풍천을 향해서 날아가고 있었다.
풍천은 공격을 계속하지 못하고 몸을 뒤집어 조양경의 검세를 피했다.
열다섯 중 쓰러진 자가 다섯, 남은 자가 열이다. 지켜보고 있는 등가위까지 합하면 열하나. 반면 자신의 내상은 점점 심해지고 공력도 약해지고 있다.
풍천은 이대로 가면 등가위의 술수에 말려들어 스스로 무너질 거라는 걸 알고 입술을 깨물었다.
‘씨발, 이 정도에서 무너질 것이었으면 사부님의 수련도 견디지 못했어! 하긴, 천풍무영류를 익히는 게 얼마나 힘든 줄 당신들은 상상도 못 할걸?’
그는 재차 공격해오는 조양경의 검세 속으로 뛰어들었다.
생각지 못한 듯, 조양경은 흠칫하며 쇄도하던 속도를 늦추고 풍천의 다음 변화를 기다렸다.
하지만 풍천은 무식하리만치 정면으로 뛰어들며 검을 뻗었다.
“헛!”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조양경은 다급히 방어를 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것이 두 번째 실수였다. 그는 풍천의 신법이 자신보다 빠르다는 걸 잊지 말고 그 자리에서 전력을 다해 방어했어야 했다.
그러지 못한 대가는 너무나 컸다.
번개처럼 파고든 풍천은 어깨로 날아드는 조양경의 검을 천라신수로 쳐내며 비월탄의 일검을 펼쳤다.
넘실거리는 검기가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싸한 느낌. 살이 갈라진 듯했다.
그러나 살이 갈라진 게 남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풍천은 눈빛 한 점 흔들리지 않았다.
쉬이익!
시퍼런 검기가 조양경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흐억!”
와락, 얼굴이 일그러진 조양경은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갈라진 그의 옷자락 사이로 쩍 벌어진 가슴이 보였다.
풍천은 물러서는 조양경을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며 재차 검을 뻗었다.
그때 좌우에서 네 명의 천응단원이 풍천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