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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89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3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89화

 

189화

 

 

 

 

 

 

동암 분타의 정문 옆에서 화톳불이 어둠을 밝히며 타오른다.

 

정문 위로 두 개의 기다란 대나무가 솟구쳐 있다. 화톳불 불빛을 받아서 춤을 추듯 흔들리는 그 대나무 꼭대기에 피로 물든 머리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채 걸려 있다.

 

그가 아는 사람들이.

 

고복수와 응초가.

 

그들을 바라보는 풍천의 눈에서 푸르스름한 눈빛이 파도쳤다.

 

‘고 형, 응 형, 왜 거기 매달려 있어? 거기서 복수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요?’

 

움켜쥔 주먹이 잘게 떨렸다. 악다문 이가 으드득 갈렸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살기가 솟구친 풍천은 입꼬리를 비틀며 살소를 머금었다.

 

‘좋아, 그럼 복수를 해주죠. 아주 철저히. 거기서 즐겁게 구경하쇼.’

 

그냥 죽이기만 했다면 그들의 운명이려니 했을지 몰랐다.

 

하지만 머리를 잘라서 대나무에 매달아놓은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개짓거리였다.

 

남궁도영과 허무정은 머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풍천의 반응으로 봐서 이곡을 제외한 네 사람 중 둘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분노의 살기를 흘렸다.

 

“령주, 보란 듯이 머리를 걸어놓은 걸로 봐서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소.”

 

남궁도영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풍천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풍천은 고복수와 응초를 바라보며 물었다.

 

“생포된 사람은 없습니까?”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심한 목소리.

 

중년인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고는 자신이 아는 바를 말해주었다.

 

“아직 살아 있는지 알 순 없지만 두 사람이 잡혔다는 말을 들었소.”

 

악진표와 감능하는 잡혔다는 말.

 

하지만 풍천은 그 말을 듣고 반갑기보다 가슴이 아팠다.

 

차라리 죽은 사람들이 더 편할지도 몰랐다. 잡혔으면 지독한 고문을 받고 있을 테니까.

 

‘그래도 살아만 있으쇼. 내가 구해줄 테니까.’

 

풍천은 시선을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반달이 구름 사이를 유영하고 있었다.

 

‘천풍이 왜 바람의 하늘인지, 살풍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확실하게 알려주겠어.’

 

그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나직이 명을 내렸다.

 

“내가 먼저 들어가서 악 형과 감 형을 찾아보죠. 허 형은 안에서 불이 나면 북쪽을 공격하쇼. 잠깐 시선만 끌면 되니 너무 오래 있지 말고 적이 몰려오면 바로 튀쇼. 그리고 남궁 형은 남쪽으로 접근해서 나를 기다려주쇼.”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모두 상황이 끝나면 이곳으로 오지 말고 곧장 서성의 그 객잔으로 돌아가쇼.”

 

“령주, 혼자 들어가는 것은 너무 위험…….”

 

남궁도영은 풍천을 말리려 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풍천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3

 

 

 

야심한 밤. 동암 분타의 별원 전각 안에서 여섯 사람이 마주 앉았다.

 

한쪽에 좌궁화와 섭위릉, 염사진이 앉았고, 맞은편에는 천혈궁의 부궁주인 은혈마도 구인악과 대장로인 천혈쌍마가 앉았다.

 

시비가 차를 따르고 한쪽으로 물러나자 구인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천혈오사 중 셋이 협곡에 죽어 있고 도주하던 놈은 사라졌다고 합니다.”

 

섭위릉은 눈살을 찌푸리며 찻잔을 들었다.

 

천혈오사 중 셋의 죽음이 아쉽긴 하지만 분노는 일지 않았다. 그들은 천혈궁의 사람들. 천혈궁의 전력이 너무 강한 것도 좋을 게 없으니까.

 

하기에 그는 그들의 죽음보다 절정고수인 그들이 한꺼번에 죽었다는 게 더 마음에 걸렸다.

 

“놈이 그 정도로 강했나?”

 

“그보다는 다른 놈들의 도움이 있었다고 봐야겠지요.”

 

“클클클, 그럼 놈들이 곧 이곳으로 오겠군.”

 

염사진이 듬성듬성 빠진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깊은 주름이 진 눈 가장자리가 불그스름해졌다.

 

그때 좌궁화가 고개를 모로 꼬고 입을 열었다.

 

“놈들을 이끄는 자가 어떤 자이기에 수하들이 그토록 입이 무거운지 모르겠습니다.”

 

“쯔쯔쯔, 이럴 줄 알았으면 독부용 지민민이나 악초당을 우리 쪽으로 데려올 것인데, 아쉽군.”

 

염사진은 아쉬운 표정으로 혀를 찼다.

 

그 두 사람이라면 제아무리 입이 무거워도 지금쯤 모든 사실을 토해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패웅보에 있었다.

 

“내가 봐선 그들이 뭔가를 두려워하는 것 같더구려. 입을 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표정이었소. 좀 묘한 것은 신의를 지키려고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단 말이오. 후환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섭위릉의 말에 좌궁화가 이마를 좁혔다.

 

“그래서 더 의문입니다. 후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구출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단 말인데, 우리의 정체를 알고도 그런 태도라는 게 영 이상해서 말이지요.”

 

구인악은 좌궁화의 염려가 이해되지 않았다.

 

“후후후, 주인이 자기를 구해줄 거라 철석같이 믿고 있나 보지요. 불가능한 희망이라도 품어야 두려움이 덜하지 않겠습니까?”

 

천혈쌍마 중 검은 천에 붉은 줄이 들어간 옷을 입은 흑마도 별걱정 다한다는 투로 말했다.

 

“입을 열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다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소?”

 

좌궁화가 어찌 그걸 모를까?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단순하게 보복을 두려워하는 것과 달랐다.

 

목이 잘리는 한이 있어도 더러운 똥물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절실한 표정이 그러할까?

 

더구나 더 이상한 것은 그런 표정 와중에도 절대적인 믿음이 깃들어 있다는 점이었다.

 

‘정말 궁금하군. 그들을 이끄는 자가 어떤 자이기에 그들에게 그런 두려움과 희망을 준단 말인가?’

 

 

 

4

 

 

 

“끄으으으으!”

 

악진표는 이를 악문 채 신음을 잇새로 흘렸다.

 

고문하는 놈이 시뻘건 손으로 자신의 부러진 팔을 붙잡고 비튼다. 날카롭게 부러진 뼈가 살을 찢으며 헤집는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가는 극렬한 고통!

 

하지만 그는 감능하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이를 부서지도록 악물었다.

 

이번이 세 번째 고문. 감능하는 악착같이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온몸이 피로 범벅되어서 푸줏간의 고기처럼 늘어져 있지만.

 

곱상하게 생긴 감능하도 말하지 않는데, 자존심이 있지, 자신이 말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죽기 싫으면 털어놔라! 네놈들이 속한 곳은 어디지?”

 

끝없이 귀청을 파고드는 목소리. 우습게도 그 목소리가 이제는 정겹게 들릴 판이다.

 

‘그건 말해줄 수 있지.’

 

악진표는 고개를 반쯤 쳐들고 순순히 말해주었다.

 

“시, 신검문.”

 

“이 새끼가! 끝까지 거짓말만 할 거냐!”

 

“진짜야, 개자식아!”

 

이번에는 어깨를 꿰뚫은 비수가 뼈를 긁어댄다.

 

“크으으으윽!”

 

악진표는 펄쩍거리며 눈을 부릅떴다.

 

고문을 하던 천혈궁 귀혈당주 적도삼은 침을 튀기며 다그쳤다.

 

“네놈들이 신검문 사람이라고? 흥, 내가 속을 줄 알아? 신검문에 너희 같은 놈들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빨리 말 안 해?”

 

그때 축 늘어져 있던 감능하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마, 말하면…… 살려줄 거냐?”

 

적도삼은 씩 웃으며 못생긴 얼굴을 감능하의 코앞으로 들이밀었다.

 

“물론이지. 부상도 치료해주고 먹을 것도 주마.”

 

“조, 좋아. 그, 그럼 말해주마.”

 

악진표는 부들부들 떨면서 감능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친 순간, 두 사람의 피로 범벅된 입술 끝에 쓴웃음이 매달렸다.

 

‘그래, 더는 견딜 수 없겠지.’

 

악진표 자신도 고문을 계속 받느니 차라리 죽고 싶었다. 아니 죽긴 싫었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될 거면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하물며 천외천에서 어려움 없이 살아온 감능하는 오죽하겠는가.

 

악진표는 감능하를 향해서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참기 힘들면 말하쇼. 나도 당신 마음 이해하니까.’

 

감능하는 묘하게 입술을 비틀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입을 열었다.

 

“우리는…….”

 

적도삼은 바짝 귀를 들이대며 재촉했다.

 

“우리는? 어디서 왔지?”

 

감능하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적도삼의 귀가 한 자 떨어진 곳에 있었다. 머리를 쑥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

 

확, 물어뜯을까?

 

강렬한 유혹이 밀려들며 입안에 침이 고였다.

 

하지만 귀를 물어뜯으면 찢어 죽인다며 미쳐서 날뛸 게 자명한 일. 그는 유혹을 참아내고 마저 입을 열었다.

 

“우리는…… 단천문 사람들이오.”

 

“단천문?”

 

되묻는 적도삼의 이마에 골 깊은 주름이 그어졌다.

 

악진표는 혼절한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가슴을 들썩거리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맞아, 우리는 단천문 사람들이지. 크크크크.’

 

풍천이 마동춘에게 그랬다. 자신들은 스무 명밖에 안 되는 작은 문파, 단천문 사람들이라고.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좋아, 단천문이란 말이지? 그럼 단천문은 어디에 있지?”

 

“단천문은…… 단천문은…….”

 

감능하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적도삼은 더욱 가까이 귀를 들이대고 다그쳤다.

 

“말해봐. 말하면 살려준다니까?”

 

토실토실한 귀가 바로 코앞에 있다.

 

감능하는 끝내 유혹을 참아내지 못하고 머리를 쑥 내밀었다. 그리고 토실토실한 적도삼의 귀를 있는 힘껏 물어뜯었다.

 

“아악!”

 

적도삼은 비명을 내지르며 황급히 머리를 잡아 뺐다. 귀를 어찌나 세게 물었는지 감능하의 몸이 의자와 함께 앞으로 꼬꾸라졌다.

 

우당탕탕.

 

“이 개새끼! 죽여버리겠어!”

 

적도삼은 반쯤 잘린 채 피로 범벅된 귀를 한 손으로 감싸고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한쪽에 있던 가시 달린 몽둥이를 집어들었다.

 

악진표가 다급히 소리쳤다.

 

“머, 멈춰! 내가 말해주겠다!”

 

“기다려! 이 새끼 먼저 잘근잘근 다져놓고 들을 테니까!”

 

적도삼은 악진표의 말을 들은 척도 않고 가시 달린 몽둥이를 들어올렸다.

 

다급해진 악진표는 안간힘을 다해서 악을 썼다.

 

“만약 그 친구를 죽이면…… 나도 절대 입을 열지 않겠다! 그럼 당신도 좋을 게 없을 텐데?”

 

적도삼의 눈빛이 흔들렸다. 귀가 찢어진 것을 생각하면 저 개 같은 놈을 푸줏간의 다져진 고기처럼 잘근잘근 다져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악진표의 말대로 대답을 듣지 못하고 죽이면 나중에 책임 추궁이 뒤따를 것이었다.

 

퉤!

 

적도삼은 감능하의 몸에 가래침을 한 움큼 뱉어내고 몽둥이를 내렸다.

 

“개새끼. 오냐, 이놈. 마음 넓은 내가 조금 더 참지.”

 

‘다 듣고 나서 뼈까지 다져주마.’

 

적도삼은 짐짓 분노를 억누른 척하며 악진표를 바라보았다.

 

“말해봐라. 만약 헛소리를 하면 너까지 어육처럼 다져버릴 것이다.”

 

“걱정 마라.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좋아, 단천문은 어디에 있지?”

 

“단천문은…….”

 

악진표도 말을 길게 끌었다. 하지만 적도삼은 가까이 가지 않고 노려보기만 했다.

 

악진표는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마저 말해주었다.

 

“우리 단천문은…… 상구에 있다.”

 

적도삼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악진표를 다그쳤다.

 

“상구? 상구 어디에 있지?”

 

순간, 나직한 목소리가 뇌옥 안에 울려 퍼졌다.

 

“상구 금산에 있지. 당신은 영원히 가볼 수 없겠지만.”

 

악진표는 고개를 번쩍 쳐들고 눈을 치켜떴다.

 

자신이 말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감능하가 말한 것도 아니고.

 

그 말은 분명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이가 갈리도록 많이 들어본 목소리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반갑지?

 

미치지 않고서야 저 목소리가 반갑게 들릴 리가 없을 텐데?

 

그뿐이 아니다. 가슴이 울컥하더니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그 인간이 왔어!’

 

“어떤 새끼냐?”

 

적도삼도 악진표가 대답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홱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순간, 빙글 돌아간 그의 이마에 검이 깊숙이 박혔다. 마치 스스로 검을 향해서 이마를 들이대기라도 한 것처럼.

 

“끄으으으.”

 

“지옥에 가서 내가 보냈다고 하면 잘 대해줄 거야.”

 

풍천은 냉랭히 말하며 적도삼의 이마에 박힌 검을 빼냈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감능하와 의자에 묶인 채 킬킬대고 있는 악진표를 바라보았다.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고 심지어 뼈가 밖으로 튀어나온 곳도 있었다.

 

두 사람의 처참한 몰골을 본 풍천의 눈빛이 잘게 흔들렸다.

 

“너무 편하게 죽였군.”

 

그는 적도삼의 목을 질끈 밟았다.

 

우두둑, 목뼈가 부러지면서 머리가 괴이하게 뒤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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