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2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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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229화
229화
풍천은 대월산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힐끔거렸다. 아침에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니 배가 고팠다.
“요리 만드느라 불을 피운 걸 거야.”
“연기가 조금 틀려.”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특히 구양종 일행과 곽인청은 실망감마저 느꼈다.
덩치가 커서 한가락 할 줄 알았더니, 뭐라? 산적?
‘칼 하나는 정말 크군.’
하지만 풍천은 초웅이 괜한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연기와 초웅을 번갈아 보았다.
“뭐가 틀리지?”
“저건 신호야. 잘 봐, 형. 연기가 중간 중간 끊어져서 올라가지? 저건 억지로 연기를 붙잡았다가 다시 올라가게 만들어서 그래.”
초웅의 말 대로였다. 연기는 호박덩이가 떠오르듯이 덩어리져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풍천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사조원들도 자세를 바로 하고 풍천을 바라보았다.
“초웅, 저 연기가 뭘 뜻하는지 알아?”
“우리는 적이 쳐들어올 때 저런 식으로 연기를 올렸어.”
곽인청이 이마를 좁히고 대월산장 쪽을 보며 말했다.
“공격이 시작된 모양이오.”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생각지 못했다.
풍천이 그 점을 정확히 짚어냈다.
“문제는 누구에게 보라고 올린 것이냐, 왜 알리는 거냐하는 거겠죠.”
싸늘하게 입을 연 그는 남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정도면 수십 리 떨어진 곳에서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만약 대기하고 있던 자들이 있다면, 저 연기를 보고 지금쯤 움직였을 거요.”
아니나 다를까, 연기가 솟구친 지 이각 가량 지났을 때였다. 남쪽으로 오 리가량 떨어진 숲 속에서 수백 명의 무사들이 벌떼처럼 몰려나왔다.
그들의 움직임은 평지를 달리는 것만큼이나 빨라서 순식간에 거리가 삼백여 장이나 줄어들었다.
풍천은 은초당에게 명을 내렸다.
“은 형, 서문 조원과 함께 진 장로께 가시오. 적의 숫자는 모두 삼백이십삼 명, 그 중 고수라 할 수 있는 자들은…….”
적의 숫자를 말하던 풍천이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빌어먹을! 운조평과 등청도 있잖아?”
그들만이 아니다. 신마비원의 고수인지, 아니면 북천맹이나 서천무련의 무사인지 몰라도 그들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는 고수가 십여 명은 될 듯했다.
마음이 급해진 그는 은초당과 서문경을 향해 빠르게 말했다.
“우리가 어떻게든 막아볼 테니, 일각 동안 공격한 후 뒤도 돌아보지 말고 새벽에 숨어 있던 곳까지 물러나라고 하쇼!”
은초당과 서문경은 운조평과 등청의 이름을 듣는 순간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예, 조장!”
두 사람이 떠나자 풍천은 기종탁에게 명을 내렸다.
“기 형은 나머지 다섯 사람과 함께 우리가 온 길을 되돌아가쇼.”
“예?”
“돌아가면서 본문의 문도들이 후퇴할 길을 확인해 봐요. 혹시 놈들이 동쪽에서도 나타날지 모르니까. 무슨 말인지 알죠? 놈들이 보이면 즉시 진 장로에게 사람을 보내서 알리고 방향을 틀어요.”
풍천이 숨조차 제대로 쉬지 않고 명령을 내리자 구양종이 딱딱한 표정으로 물었다.
“마도연합세력이 사방에서 천룡회의 배후를 칠 거라 생각하는 건가?”
“설마 하다가 뒤통수 맞는 것보단 열심히 뛰어서 사는 게 낫죠. 뭐해요? 빨리 가요!”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조장.”
기종탁은 이를 지그시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여공위, 백승문, 강대구, 조은탁과 함께 새벽에 온 길을 되돌아갔다.
그 사이 마도연합세력의 무사들은 그들이 숨어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고개를 오르고 있었다.
거리는 이백여 장, 구양종은 기가 질린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고수들의 숫자가 너무 많네. 설마 우리들만으로 저들을 막자는 건 아니겠지?”
“못할 것도 없죠 뭐.”
구양종과 칠성검위 두 사람, 곽인청은 풍천을 미친놈 보듯 바라보았다.
하지만 허무정과 초웅, 관추양은 진기를 끌어올리고, 천외천의 열세 사람도 무기를 잡으며 공격할 준비를 갖추었다.
그들의 한 점 두려움도 없는 냉정한 눈빛은 보는 이가 질릴 지경이었다.
풍천은 허리에 매달린 묵전신검의 검병을 쓰다듬으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바람이 조금만 더 세게 불면 좋겠는데.’
적들이 달려오는 앞쪽에 황무지가 펼쳐져 있다.
바람이 세게 불면 그곳에서 먼지가 피어날 것이고, 그럼 천풍무영류와 환신술의 위력이 배는 더 강력해질 것이다.
‘운조평, 등청. 오늘 한 번 제대로 맛을 보여주지.’
좌측의 산등성이에서 다섯 사람이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타난 자들 중 하나가 배에 힘을 주고 소리쳤다.
“마도의 잡졸들아! 어디를 그리 바삐 가는 거냐!”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인근 산과 계곡을 뒤흔들었다.
빠르게 달려가던 마도연합세력 무사들의 속도가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다.
운조평이 뒤를 향해 뭐라고 하는가 싶더니, 곧 그들 중 이십여 명이 산등성이에 나타난 자들을 향해서 달려갔다.
풍천은 나타난 자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양반, 뭐하는 짓이야? 죽으려고 환장했나?”
다섯 명 중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천중수 백리진학이었다. 복수를 위해 친구를 만나러 갔던 그가 친구들과 함께 돌아온 듯했다.
풍천이 나타난 자들을 아는 척하자 곽인청이 물었다.
“아는 사람들인가?”
“한 사람만 압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말을 길게 끌던 풍천은 나머지 네 사람 중 기다란 창을 들고 있는 중년인을 주시하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한 사람을 더 알 것 같군요. 저쪽에 창을 들고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상주의 절혼쌍절창(折魂雙節槍) 육자귀 같습니다.”
구양종이 경악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동천제일창이라는 육자귀 말인가?”
“그자 말고는 이단으로 된 여덟 자 크기의 창을 들고 강호에서 설칠 만 한 자가 없죠.”
“그럼 자네가 처음에 안다고 한 사람은 누군가?”
“백리진학. 사람들이 천중수라고 부르는 양반인데, 나한테 빚이 좀 있죠.”
풍천의 입에서 칠절의 이름이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오자, 구양종과 칠성검위, 곽인청의 눈이 동시에 홉떠졌다.
풍천이 바라보는 동안 백리진학 일행과 마도연합세력의 무사 이십여 명이 뒤엉켰다.
숫자는 마도연합세력이 네 배 이상 많았다. 그러나 백리진학 일행은 모두가 절정의 경지에 올라선 고수들이었다.
떠더덩! 차창! 콰르르릉!
“놈들을 죽여라!”
“개자식들! 네놈들의 피로 제 형의 원혼을 달랠 것이다!”
“으악!”
“이노오오옴!”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고함소리, 비명과 노성이 뒤섞여서 울리고, 붉은 피가 허공으로 튀면서 떠오르는 태양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팔다리가 잘리고, 심장에 구멍이 뚫리고, 가슴이 마른 장작처럼 쪼개지고…….
열을 세기도 전에 마도연합세력 무사들 숫자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핏물이 푸른 풀밭과 누런 황토를 적시자, 상큼하던 새벽 공기가 비릿하게 느껴졌다.
뒤늦게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운조평은 걸음을 멈추고 우측에 서 있는 자를 바라보았다.
“철 단주, 그대들이 처리해주겠나?”
말꼬리처럼 머리를 뒤로 묶은 중년인이 성큼 앞으로 나섰다. 그는 북천맹의 다섯 수뇌 중 하나인 파천마권(破天魔拳) 철막위였다.
“좋습니다, 저희 백마단이 처리하죠. 따라와라!”
또다시 이십여 명의 무사들이 나섰다. 하지만 이번에 나선 자들은 처음에 나선 자들과 비교해서 움직임부터가 달랐다.
그들은 멋을 내기 위해 허공으로 신형을 날리지 않았다.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일대일로 달려들지도 않았다.
지면에 붙다시피 한 채 미끄러지듯 백여 장을 나아간 그들은 다섯 명이 하나처럼 움직이며 철저히 한 명을 합공했다.
백리진학은 곧장 철막위를 향해 날아가며 쌍장을 휘둘렀다.
“흥! 북쪽의 잡놈이 왜 이곳에 와서 설친단 말이냐!”
철막위는 주먹을 교차시키며 백리진학의 장력을 막아냈다.
쾅!
굉음이 일면서 철막위의 몸이 주르륵 일 장 가량 밀려났다.
경악한 철막위는 눈을 부릅뜨고서 백리진학을 노려보았다.
“네놈은 누구냐?”
“백리진학이라 하지. 죽거든 지옥에 가서 그리 말해라!”
철막위는 무리하지 않았다. 그는 백리진학이 자신보다 고수임을 인정하고 측근 둘을 불러들였다.
“소강, 소전! 나와 함께 저자를 상대한다!”
세 사람이 합공하자 칠절 중 하나라는 백리진학도 쉽게 그들을 물리치지 못했다.
운조평은 철막위가 다섯 사람을 효과적으로 막는 걸 보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늦으면 안 된다! 출발해!”
풍천은 마도연합세력이 다시 고개를 오르는 걸 보고 싸늘한 냉소를 지었다.
“우리도 나가볼까요?”
구양종이 흠칫하며 풍천을 바라보았다.
자신들만으로 삼백에 가까운 마도연합세력을 막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그들 중에는 팔대신마가 둘이나 되고, 그들과 비슷한 무위를 지닌 자가 십여 명이나 있다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정말 우리들만으로 저들의 앞을 막을 수 있다고 보나?”
“못할 것도 없죠. 나서기 싫으면 그냥 여기 있으쇼.”
몇 마디 툭 던진 풍천은 풀숲에서 나와 마도연합세력의 무리를 내려다보았다.
뒤이어 초웅과 허무정, 관추양, 천외천의 사람들이 그의 뒤에 늘어섰다.
별수 없이 구양종과 칠성검위, 곽인청도 땡감을 씹은 표정을 지으며 풀숲에서 나왔다.
“안녕하쇼! 오랜만입니다!”
풍천은 웃는 얼굴로 손까지 흔들며 예의 바르게 인사부터 건넸다.
등청은 풍천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대체 어떤 놈이 지금 상황에서 저따위 인사를 하는 거지?’
하지만 운조평은 목소리를 듣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설마 그자식이 살아 있는 건 아니겠지?’
그는 고개 위쪽의 우측을 바라보았다. 야산 정상에 스무 명의 무사가 서 있었다.
먼저 곰 두 마리를 겹쳐 놓은 것처럼 거대한 체구의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정말 거대한 덩치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 한 놈이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운조평의 눈매가 한겨울 북풍에 흔들리는 문풍지처럼 파르르 떨렸다.
믿을 수 없게도, 바로 그놈이었다!
정말 그놈일까? 혹시 쌍둥이나 얼굴이 많이 닮은 형제는 아닐까?
하지만 목소리까지 똑같고, 자신들을 아는 것처럼 말할 놈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너, 너는……?”
“벌써 일 년이 넘었죠? 변태 놈은 잘 있나요? 하남에서 몇 대 얻어맞고 꽁지 빠져라 도망쳤는데.”
등청이 눈을 껌벅이며 풍천을 쳐다보았다.
그가 어찌 풍천을 잊을 수 있을까.
“저, 저 새끼, 풍천이잖아?”
두 사람이 멈칫하자 뒤따르던 자들도 걸음을 늦췄다.
그때 운조평의 뒤쪽에 있던 사십 대 중반의 중년인이 몇 걸음 앞으로 나섰다.
“저놈들은 우리가 맡지요.”
그는 북천맹의 다섯 수장 중 하나인 혈응검(血鷹劍) 목정탁이었다. 운조평은 그를 말리지 않았다.
“조심하게. 신법이 괴이한 놈이니까.”
“후후후, 걱정 마십시오.”
어린놈이 뛰어나봐야 얼마나 뛰어나겠는가?
목정탁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수하들에게 지시했다.
“가서 목을 따와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스물네 명의 무사들이 풍천 일행이 있는 곳을 향해 쇄도했다.
풍천은 일부만이 덤벼들자 입 끝을 비틀며 조소를 지었다.
‘깔짝깔짝 달려들면 우리야 좋지.’
“초웅. 네 마음껏 도를 휘둘러봐라.”
“알았어, 형.”
“물러서라고 하면 바로 물러서.”
“어!”
초웅은 우직하게 대답하고 거도를 뽑아들었다.
칼날의 길이 다섯 자, 너비가 여덟 치, 두께가 세 푼에 이르고, 도병 길이가 두 자다. 도병의 끝을 잡으면 여섯 자 길이의 도를 휘두르는 격이 될 것이었다.
“내가 상대해주마!”
초웅이 거도를 뽑아들고 바위가 굴러가듯 쿵쿵거리며 뛰어 내려가자 북천맹 무사들이 실소를 지었다.
저렇게 큰 거도를 휘두르는 자치고 어디 제대로 된 도객이 있던가.
삼류무사들이야 거대한 도를 보고 겁을 먹을지 몰라도, 일격에 바위조차 무처럼 베어버리는 그들의 눈에는 조소만 떠오를 뿐이었다.
하지만 허무정이나 관추양, 공손이향을 비롯해 천풍장에 있었던 천외천 사람들은 눈곱만큼도 염려하지 않았다. 그들보다는 오히려 구양종과 칠성검위, 곽인청이 초웅을 더 걱정했다.
“저 친구를 도와줘야 하지 않겠나?”
구양종의 말에, 풍천은 별걱정 다한다는 투로 대답했다.
“일단은 조금 지켜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