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2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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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5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226화
226화
제1장. 내 발걸음이 멈출 때까지
1
쩌정!
첫 번째 격돌에 위태곤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자존심이 상한 위태곤은 이를 악물고 다시 달려들었다.
콰광!
보다 더 큰 격돌음이 울렸다.
위태곤은 피로 물든 땅바닥을 서너 바퀴 뒹굴고 벌떡 일어섰다.
“개자식! 정말 강하구나!”
그때 풍천의 신형이 허공으로 떠오르는가 싶더니, 벽력음이 빗속에서 울렸다.
우르르르릉.
위태곤은 입을 딱 벌린 채 혼신의 힘으로 검막을 펼쳤다.
뇌정천결의 일초 뇌정명이 검막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겼다.
콰과광!
그 충격에 위태곤의 몸이 훌훌 이장을 날아가 한쪽에 처박혔다.
힘이 쭉 빠진 그는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서 몸을 일으켰다.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철벽에 부딪힌다면 이런 기분일까?
자신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낀 후에야 위태곤은 다가오는 풍천이 염왕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절대 죽일 수 없는 지옥의 마왕.
일순간, 여기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안 돼! 아직 죽을 순 없어!’
때마침 신마성의 장로 두 사람이 그가 있는 곳으로 날아오며 풍천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공자! 그놈은 우리에게 맡기시오!”
눈을 번뜩인 위태곤은 이를 악물고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혼신을 다해서 도망쳤다.
‘살아야 돼! 저놈에게서 멀어져야 돼!’
“크억!”
“끄아악!”
담장을 넘어가는데 두 마디의 비명이 뒤에서 울렸다.
풍천이 달려와서 금방이라도 뒷덜미를 잡아당길 것 같은 느낌.
위태곤은 온몸을 오들오들 떨면서 담장을 넘었다.
‘저놈은 악마 같은 놈이야! 누구도 죽일 수 없어!’
한편, 장로 둘을 단 이 초 만에 죽인 풍천은 위태곤이 담을 넘어가는 걸 보고도 쫓아가지 않았다. 쫓아간다면 위태곤을 죽일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가 일행과 함께 신마성 무사들의 일각을 무너뜨리는 사이, 백무천을 보호하고 있는 쌍무혼이 신마성 무사들에게 공격받고 있었다.
쌍무혼이야 걱정할 것 없지만, 그로 인해서 백무천이 위험에 노출된 상태였다.
“개자식, 운 좋은 줄 알아라!”
그는 위태곤의 뒤통수에 욕설을 퍼붓고 백무천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2
신마성이 침공한 지 반 시진. 싸움이 멈췄다.
처마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와 신음 소리, 동료들의 생사를 확인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신마성과 천혈궁 무사들의 시신이 오백여 구, 삼파 무사들의 시신도 사백여 구나 되었다.
합이 일천. 조가장 곳곳에 발 딛기도 힘들 정도로 시신이 널브러져 있고, 바닥에선 핏물이 고랑을 타고 개울처럼 흘렀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시신의 적아를 구분했다.
신마성의 시신은 한쪽에 대충 구겨서 쌓아놓고, 동료들의 시신은 조심스럽게 들어서 처마 밑으로 옮겼다.
그사이 풍천은 백무천을 침대에 눕히고 부상을 살펴보았다.
자잘한 상처야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문제는 남광옥의 혈마수에 얻어맞은 부위였다. 호신진기로 몸을 보호했는데도 혈마수의 강력한 위력에 혈도가 막히고, 내장까지 상한 것이다.
풍천은 급한 대로 자신의 진기를 이용해 막힌 혈도를 뚫어주었다.
하지만 상한 내장은 그의 재주만으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부기를 가라앉히고, 뒤틀린 내장의 위치를 바로잡아줄 수 있을 뿐.
백무천의 몸에서 손을 뗀 풍천은 심각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귀수괴의가 있는 곳을 제가 아는데, 가서 데려올까요?”
흠칫한 백무천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든 상황에서도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귀수괴의가 어떤 식으로 치료하는지 잘 알고 있는 그로선 그에게 치료받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럴 필요 없네. 본문에 가면 좋은 내상약이 있으니, 그걸 복용하고 안정하면 괜찮아질 거야.”
“소환단이 더 남아 있나 보죠?”
“소환단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효과를 지녔지.”
“혹시……, 배 가르는 게 싫어서 그러십니까?”
“…….”
백무천은 입을 닫고 천장만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생살을 가르고 배를 열어본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섬뜩했다. 남의 배라면 ‘조금만 참게. 빨리 나으려면 별수 있나?’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풍천은 백무천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넌지시 말했다.
“저도 치료하느라 대여섯 군데 갈랐는데, 별로 아프지 않았습니다. 한번 보여드릴까요?”
“됐네. 이 정도는 약을 복용하고 내상요법을 병행하면 치료할 수 있네.”
백무천이 강하게 거부하고 슬며시 고개를 돌리는데 공손문과 삼파의 간부들이 조환과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백무천은 잘 됐다는 듯 그들을 향해 말했다.
“놈들은 어떻게 되었소?”
온몸이 피로 물든 조환이 창백한 얼굴로 대답했다.
“머물던 마을을 떠나 계속 남하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광산까지 물러날 걸로 보입니다.”
“으음, 그럼 당분간은 안심할 수 있겠군.”
“이곳은 저희에게 맡기시고, 문주님은 본문으로 돌아가셔서 치료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무래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군.”
가만히 듣고 있던 풍천이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백무천을 바라보았다.
“몰아붙인 김에 놈들을 하남에서 쫓아내 버리죠.”
조환이 인상을 쓰며 풍천을 흘겨보았다.
“남은 무사가 삼백에 불과하네. 그나마도 대부분이 부상을 입은 상태지. 한데 누가 그들을 쫓아간단 말인가?”
풍천은 공손문을 바라보았다.
“저희와 천외천 사람들만 가도 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자신 없으시면 저희만 가죠.”
그렇게 말하는데 어찌 거부할 수 있을까.
공손문은 속이 살짝 뒤틀렸지만, 밖에서 쌍무혼에게 그간의 사정을 들은 터라 화를 내지도 못했다.
“그렇게 하지. 부상자만 남겨 놓고 함께 가세.”
풍천은 그쯤에서 슬쩍 공손천우의 상황을 물어보았다.
“이공자는 어떻습니까? 함께 갈 수 있겠죠?”
“그럴 거네. 별다른 부상을 입지 않았으니까.”
‘다행이군. 안 가려고 하면 끌고 가려 했는데.’
풍천은 내심 만족하고 백무천을 돌아다보았다.
“몸조리 잘 하시고, 정 안 되겠으면 바로 말씀해주십쇼. 제가 천주산으로 달려가서 귀수괴의를 끌고 올 테니까요.”
‘그놈 끈질기군. 그렇게 내 배 속을 보고 싶은가?’
오죽하면 그렇게 생각하면서 백무천은 손을 저었다.
“내 걱정 말고 다녀오게.”
“예, 장인어른.”
풍천은 씩 웃으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실하게 각인시키고는 공손문에게 말했다.
“일단 밥부터 먹고 출발하죠. 정양에서 먹고 오려다가 급히 달려왔더니…….”
한숨인지, 숨소리인지 모를 나직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새어나왔다.
3
공손천우는 풍천과 함께 신마성의 뒤를 추적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풍천 일행과 천외천의 사람들을 합해서 서른네 명이다. 그 인원으로 사백 명에 이르는 적을 추적한다는 게 어디 말이 되는 일인가.
하지만 풍천에게 지기 싫은 오기로 입을 꾹 다물고 걸음을 옮겼다.
풍천은 식현을 이십 리 정도 남겨놓은 지점에서 신마성의 꼬리를 잡았다. 그때쯤에는 오락가락하던 부슬비도 멈춘 상태였다.
신마성 무사들은 제법 큰 사당에 있었는데, 인원은 백 명 정도로 보였다. 아마도 두 패나 세 패로 갈라져서 남하하는 듯했다.
추적대는 신마성의 무사들을 지켜보며 내력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일각. 풍천이 먼저 일어나서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시작하죠. 저희가 왼쪽을 칠 테니, 공손 단주께선 오른쪽을 치십쇼.”
“알겠네.”
“도주하는 자는 그냥 놔두십쇼. 어차피 추적이 끝난 것도 아니니까.”
그때 공손천우가 끼어들었다.
“어디까지 추적할 셈이오?”
풍천은 공손천우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내 발걸음이 멈출 때까지.”
광풍 같은 공격이 사당에서 지친 몸을 다스리던 신마성 무사들을 휩쓸었다.
숫자는 서른넷에 불과했지만, 광풍의 위력은 삼백사십 명이 몰아친 것보다도 더 거셌다.
공격이 시작된 지 반 각, 신마성 무사들은 사당을 빠져나와 정신없이 도주했다.
풍천이 공격을 멈추고 사당에서 나왔을 때까지 도주한 자들은 모두 이십여 명에 불과했다.
풍천은 검을 거두고 재차 적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끈질긴 그의 추적의지에 사람들 대부분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풍천은 멈출 마음이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곽산까지 쫓아가서 위태곤의 뒤통수를 갈기고 싶었다.
식현에서 쉬고 있던 위태곤은 적이 뒤를 쫓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벌떡 일어났다. 그는 느낌만으로도 추적해 오는 자가 풍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간이 철렁한 그는 급히 무사들을 불러 모으고는 이를 갈면서 식현을 벗어났다.
장로를 비롯한 고위 간부들이 추적대를 함정으로 몰아넣고 처리하자고 했지만, 위태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아는 것이다. 풍천이 얼마나 여우 같고 질긴 놈인지.
거기다 이제는 절대지경의 무공마저 지녔지 않은가.
그런 놈을 함정에 집어넣고 처리해?
거꾸로 놈들을 잡겠다고 만든 함정에 자신들이 빠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바람을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압니까? 그걸 모른다면 제 말을 따라주십시오.”
그는 장로와 간부들에게 뜻이 모호한 질문을 던지고는, 그들이 대답을 못하자 두말 않고 남쪽으로 향했다.
4
풍천은 만 하루를 추적하고 경천산장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사이 신마성 무사들은 숫자가 반으로 줄어든 채 겨우 하남을 벗어났다. 조가장에서 살아남은 자들 사백여 명 중 이백여 명이 추적대에게 당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추적의 목적을 완벽히 달성한 셈이었다.
그런데도 풍천은 결과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위태곤을 발가벗겨서 정문 앞에 걸어놔야 직성이 풀릴 텐데…….
‘그자식, 명은 되게 기네.’
풍천은 아쉬움을 접고 하루 만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했다.
풍천이 경천산장을 되찾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가장에 있던 경천산장의 무사들이 남쪽으로 내려왔다.
풍천은 그들에게 산장을 넘겨주고 신검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대신 공손문에게 당분간만 머물러 달라고 부탁했다.
공손문의 입장에서는 신검문으로 가나 경천산장에 있으나 매일반이었다.
어쩌면 제멋대로인 풍천과 떨어져 있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할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공손승을 비롯한 오지회 다섯 사람이 풍천을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겉으로는 전날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풍천의 거침없는 행동이 젊은 그들의 피를 끓게 한 것이다.
“허락해주십시오, 단주.”
공손문은 풍천에게서 그들과의 관계에 대한 말을 들었던 터라 순순히 승낙했다.
“허락하마. 단, 너희들은 본 천의 직계후손들이다. 명예에 어긋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라.”
“알겠습니다, 단주.”
풍천도 그들을 순순히 받아주었다. 그리고 공손천우를 향해 미리 못을 박아두었다.
“이공자는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으쇼. 몇 명 남지도 않았는데 이공자까지 가면 안 되잖습니까?”
공손천우는 불만이 많았지만, 건드려봐야 득 될 게 없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참았다.
“걱정 마시오. 나도 그렇게 멋대로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니까.”
5
사흘 후. 풍천은 일행과 함께 신검문으로 돌아왔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전에는 바라보기만 해도 시선을 피했던 사람들이 먼저 눈이 마주치기를 기다려 말을 붙였다. 마치 말 한마디 나누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할 것 같은 표정들이었다.
풍천은 이 사람 저 사람의 인사를 받으며 검향원으로 갔다.
백무천은 억지로라도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고 풍천을 맞이했다. 누워 있으면 또 귀수괴의 이야기를 꺼낼지 모르니까.
“수고했네.”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입죠.”
“자네 같은 사람을 식구로 맞이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구먼.”
“그리 생각해주시니 고맙습니다.”
“허허허, 초령이는 만나 봤나? 어서 가보게. 며칠 전부터 눈이 빠지게 기다리더구먼.”
“예, 장인어른.”
풍천은 기분 좋게 웃으며 방을 나섰다.
백무천은 풍천이 방을 나가자마자 바로 드러누웠다.
‘끄응, 그냥 누워서 만날 걸, 괜히 오기를 부렸나? 내장이 터질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