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2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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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7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225화
225화
백무천은 천공을 울리는 외침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놈들이 왜 갑자기 조용해졌는지 알 것 같았다. 적은 밤의 침공을 위해서 전력을 정비하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던 것이다.
미리 보고가 올라오지 않은 것도, 놈들이 감시조를 먼저 제거했기 때문일 터. 그 말인즉, 일시적인 충동에 의한 공격이 아닌 철저한 계획 하의 공격이라는 말이었다.
‘건곤일척의 승부를 내겠다는 건가?’
백무천은 우측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애검이 손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밖으로 나간 그는 정문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바로 그때, 전면 곳곳에서 비명과 고함소리가 울렸다.
“놈들을 막아라!”
“으아아악!”
“뚫리면 안 된다! 목숨을 걸고 막아!”
마침내 적이 담장을 넘어 안으로 진입한 듯하다.
검을 움켜쥔 백무천은 곧장 정문 쪽으로 몸을 날렸다.
5
풍천 일행이 정양에 도착하자마자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풍천은 비가 오자 정양에서 밤을 지내고 조가장에는 아침에 가기로 했다.
설마 밤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랴.
다들 풍천의 결정을 반기며 동문 쪽 대로에 있는 객잔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들이 막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옆에 앉은 두 명의 상인들이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신마성 놈들이 무슨 일을 저지르려는 모양일세. 마을에 들어갔던 상인들을 내일 아침까지 나가지 못하게 한다는군.”
“그동안 상인들의 출입은 놔두었잖은가?”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지. 뭔가 꿍꿍이가 있지 않고서야 나가려는 사람들을 막을 리가 없잖은가?”
“막을 수도 있지. 그게 왜 이상해?”
“이 사람아, 출입을 막는다는 것은 비밀이 유출되는 걸 막겠다는 말 아닌가? 그들이 유출을 염려할 만한 비밀이 뭐가 있겠나? 그것도 내일 아침까지만 막으면 되는 비밀이 말이야.”
“글쎄, 뭔가 잃어버린 게 있어서 도둑을 잡으려고 하는 것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오늘 밤 뭔가 일을 저지르려고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있는 것 같네. 오가는 사람 중에 첩자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설마 조가장을 공격하려고……?”
고개를 돌린 풍천은 이야기를 나누는 상인들을 쳐다보았다.
상인들은 눈이 마주치자 흠칫하며 말을 멈추고 식사에 열중하는 시늉을 했다.
그때 점소이가 다가왔다.
“무사님, 뭘 드시겠습니까요?”
풍천은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상황에서 요리를 먹으면 목에 걸릴 것 같았다.
“나중에 다시 오지. 지금 급한 일이 생겨서 말이야.”
풍천은 정양을 나서자마자 빗속을 뚫고 조가장을 향해 달렸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상인 중 신마성의 행동에 의문을 품은 상인의 추측은 앞뒤가 명확했다. 혹시 장사를 하기 전에 병법을 연구한 적이 없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도착할 때까지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하지만 그의 바람은 바람으로만 끝났다.
언덕을 넘어가자, 저만치 비가 내리는 산자락 아래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는 게 보인 것이다.
비가 내리는데도 불길이 치솟는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안 좋다는 말이었다.
“젠장!”
쌍소리를 내뱉은 그는 튕겨지듯이 앞으로 날아갔다.
뒤따라가는 사람들도 그 불빛을 보고는 굳은 표정으로 전력을 다해 신형을 날렸다.
불길은 건물 세 채를 집어삼킨 후 옆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 불빛으로 인해서 넓은 연무장의 광경이 환하게 드러났다.
잘리고, 뚫리고, 꺾어진 채 쓰러져 있는 이백여 구의 시신, 빗물에 섞여 내처럼 흐르는 시뻘건 핏물. 지옥이 따로 없었다.
백무천은 세 사람의 합공을 받고 있었는데, 삼십여 초가 흐르도록 승기를 잡지 못하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신마성이 공격을 시작한 지 이 각. 상황이 점점 삼파에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까?
그나마 견디고 있는 것은 천외천의 무사들 덕분이었는데, 그들 역시 신마성의 고수 백여 명이 진을 펼쳐서 붙잡아둔 상태였다.
“으하하하! 백무천! 오늘로서 신검무제의 이름이 사라지는구나!”
백무천의 얼굴에 초조한 표정이 드러나자, 신마성의 고수들 중 쉰 살가량의 중년인이 앙천광소를 터트리며 이죽거렸다.
그가 바로 신마성 사대지부 중 북마부의 주인인 혈수마신(血手魔神) 남광옥이었다.
“남광옥! 누가 죽을지는 싸움이 끝난 뒤에 보면 알 것이니라!”
백무천은 노성을 내지르며 전면의 남광옥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시퍼런 검강이 부슬비를 가르며 쭉 뻗어 나갔다.
순간, 좌우에서 기회만 노리고 있던 회의 중년인 둘이 백무천을 공격했다.
백무천은 검세를 거두며 허공으로 몸을 뽑아 올렸다.
동시에 남광옥이 날아오르며 쌍수를 휘두르고, 두 회의 중년인도 땅을 박차고 백무천을 향해 검을 뻗었다.
그들의 합공은 마치 다년간 연습이라도 한 듯 한 치도 어김없이 맞물려 돌아갔다. 게다가 그들은 백무천의 검강을 어려워하긴 해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의 고수들이었다.
백무천이 어려움을 겪는 것도 바로 그러한 세 사람의 합공 때문이었다.
허공으로 떠오른 그는 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하염없이 세 사람을 상대로 시간을 보내기에는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오냐, 이놈들!’
합공의 고리를 끊기 위해 살을 내주기로 결심한 그는 허공에서 빙글 공중제비를 돌고 두 회의 중년인 중 하나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설마 그 상황에서 역습을 할 거라 생각을 못 했는지 공격을 받은 회의인은 눈을 부릅떴다.
찰나, 석 자의 검강이 회의 중년인의 검을 쳐내고 곧장 어깨를 잘라버렸다.
“크억!”
회의 중년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직후 남광옥의 혈마수가 백무천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퍽!
“크읍!”
호신진기를 끌어올려서 보호했음에도, 온몸이 부서지는 충격에 눈앞이 노래졌다.
그러나 반탄력에 의해서 비스듬히 날아간 백무천은 땅에 내려서서 흐트러지려는 내력을 가까스로 추슬렀다.
바로 그때,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남광옥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며 손을 떨쳤다.
백무천의 심장을 노리며 날아드는 시뻘건 혈수.
뒤이어 회의 중년인도 동료의 복수를 하겠다는 듯 앞뒤 가리지 않고 검과 하나가 되어 몸을 날렸다.
백무천은 검을 가슴 높이로 들어올려서 무원만상(無源萬象)을 펼쳤다.
정중동의 극치에 이른 검결.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가운데 두 줄기 검기가 회오리쳤다.
바로 그 순간, 세 사람의 공세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과광!
굉음이 일며 백무천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남광옥은 일그러진 얼굴로 이 장을 날아가 내려서고, 일 장 밖으로 나가떨어진 회의 중년인은 억지로 일어나려다가 가슴에서 피를 쏟아내며 다시 쓰러졌다.
남광옥은 백무천의 검첨이 잘게 떨리는 걸 보고 하얗게 웃었다.
“이제 끝이다, 백무천!”
일성을 내지른 그는 남은 공력을 모조리 끌어올리고서 재차 백무천을 향해 날아갔다.
백무천은 검을 든 손이 자신의 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가슴에 핏덩이가 고인 듯 숨조차 쉬기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 남은 공력을 혼신을 다해 끌어올리고 남광옥의 장력에 맞섰다.
떠더덩!
검세와 장력이 부딪치며 둔중한 소리가 울렸다.
직후 백무천의 가슴에 뭉쳐 있던 핏덩이가 목구멍으로 솟구쳤다.
“욱!”
핏덩이를 쏟아낸 백무천은 후들거리는 몸을 겨우 세우고 남광옥을 노려보았다.
남광옥은 가슴이 길게 갈라져 있었다. 그러나 치명적인 상처는 아닌 듯 눈에서 분노의 불길을 뿜어내며 다시 손을 쳐들었다.
“정말 강하구나, 백무천! 하지만 오늘 네놈이 죽는 것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고막을 잡아 뜯어낼 것처럼 날카로운 목소리가 남광옥의 귓구멍을 파고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당신이나 죽어!”
흠칫한 남광옥은 고개를 돌렸다.
“어떤 놈이……!”
순간, 눈앞이 하얗게 변하며 억만 근의 압력이 그를 짓눌렀다. 그리고 시커먼 묵뢰가 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대경한 그는 백무천을 공격하려던 혈마수로 풍천의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심한 부상으로 인해 공력이 반감된 그의 혈마수로는 묵전검의 검세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쩍!
기괴한 소리와 함께 남광옥의 움직임이 멈췄다.
곧이어 그의 이마에 붉은 선이 그어졌다.
“이, 이런 개 같은…….”
남광옥은 마지막 유언처럼 그 말만 남긴 채 뒤로 넘어갔다.
풍천은 두 번 다시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백무천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백무천은 흐트러지는 정신을 겨우 붙잡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잘 왔네…….”
풍천은 비틀거리는 그의 몸을 재빨리 부축했다.
“문주님!”
백무천은 손을 뻗어서 풍천의 도움을 고사했다.
“나는 견딜 만하니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게.”
풍천은 마침 뒤에 내려선 쌍무혼에게 백무천을 맡겼다.
“당신들은 문주님을 지켜주쇼. 문주님, 조금만 기다리십쇼. 제가 놈들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오겠습니다.”
풍천 일행의 합류는 승기를 잡은 신마성에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숫자는 열한 명밖에 안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신마성 무사들이 낫에 잘린 갈대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 선두에는 초웅이 있었다.
“우리 편은 비키고 신마성 놈들만 덤벼!”
초웅은 조가장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소리를 내지르고 도를 휘둘렀다.
부우우웅!
도를 휘두르는 것인지, 기둥을 뽑아 휘두르는 것인지 모를 파공음과 함께 거센 도의 폭풍이 일대를 휩쓸었다.
따다다당! 콰광!
“으악!”
“피해!”
그의 거대한 도가 휘둘러질 때마다 신마성의 무사 서너 명이 튕겨져서 날아가거나, 무기와 함께 잘린 채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가히 일당천의 기세!
“맙소사!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타났단 말인가?”
“저게 정말 사람이야?”
신마성의 무사들은 초웅의 기세에 눌려서 뒤로 물러서기에 정신없었다. 삼파의 무사들도 행여나 초웅의 도세에 휘말려서 엄한 목숨을 잃을까 봐 거리를 멀찌감치 벌렸다.
하지만 초웅을 피한 신마성 무사들은 또 다른 공포를 마주해야 했다.
공손이향이 두 손을 휘두를 때마다 한여름 밤에 온몸을 얼려버리는 서리가 내리고 한풍이 불어댄 것이다.
그녀의 장력에 휘말린 사람들은 온몸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채 얼어 죽었다.
공포에 질린 신마성 무사들은 그녀의 장력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 앞다투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물러서는 그들의 머리 위를 바람이 휩쓸고 지나가면, 부슬비 내리는 하늘로 피가 솟았다.
말 그대로 혈풍이었다.
언제 어디서 불어올지 모르는 공포의 혈풍!
공손천우와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듯 눈에 불을 켜고 싸우던 위태곤은 신마성 무사들이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걸 보고 대경했다.
“대체 어떤 놈들이……!”
반면 상황이 급변하자 공손천우는 기운이 솟구쳤다.
“와하하하. 위태곤! 하늘도 네놈들을 용서치 않으려는가 보구나.”
하지만 위태곤은 그때까지도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미 삼파의 무사 중 반 이상이 쓰러진 상태였다.
조금만 더 강력하게 몰아붙이면 승리는 자신들의 것이었다.
생각지 못했던 고수들로 인해 피해가 조금 커진 것일 뿐 크게 달라질 것은 없는 것이다.
“흥, 꿈 깨라, 공손천우! 네놈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오늘의 승리는 우리 것이 될 테니까!”
바로 그때, 풍천의 목소리가 빗속에서 울려 퍼졌다.
“위태곤! 이 변태 같은 놈! 목을 길게 내밀고 기다려라!”
풍천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위태곤은 참담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풍천? 이런 빌어먹을! 역시 네놈이 살아 있었구나!”
공손천우 역시 풍천이라는 말에 인상을 와락 구겼다.
“위태곤, 지금 풍천이라 했느냐?”
“오냐, 공손천우. 저놈이 바로 세상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풍천이란 놈이다.”
“제기랄, 저 자식이 풍천이란 말이지?”
언젠가부터 검향원에 금족령이 내려졌다. 몰래 들어가도 백초령이 쫓아냈다. 나중에서야 풍천이란 놈 때문이란 걸 알고 얼마나 이를 갈았던가.
‘비겁한 자식!’
그가 이를 가는데, 위태곤이 훌쩍 몸을 날렸다.
“공손천우, 네놈을 죽이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겠다!”
이제 유령총에서 느꼈던 패배감을 되갚아줘야 할 때였다.
예전의 자신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면 놈의 그 빌어먹을 신법에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풍천! 오늘은 반드시 네놈의 목을 쳐주마!”
이십여 장을 달려가자 저만치 풍천으로 여겨지는 놈이 보였다.
땅을 박찬 위태곤은 검에 전 공력을 주입하고 신검합일하여 몸을 날렸다.
“죽어라, 풍천!”
풍천은 위태곤이 날아드는 걸 보며 씩 웃었다.
“변태 자식, 두 번 다시는 초령이를 건들지 못하게 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