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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221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6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221화

 

221화

 

 

 

 

 

 

싸늘한 표정이던 쌍무혼도 정신적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멍한 눈길로 풍천을 바라보았다.

 

도움을 받으려면 돈을 내라니. 이 얼마나 악랄(?)한 짓인가!

 

하지만 풍천은 자신의 본업에 충실했다.

 

“만약 귀하까지 보호를 원한다면 이십 냥 추가요. 그럼 쉰다섯 냥인데, 다섯 냥은 에누리하고 쉰 냥만 내쇼.”

 

“허어, 뭐 이런…….”

 

“대신 청부는 확실히 이행될 거요. 모르는 사람에게 무작정 맡기는 것보다는 해결사의 양심을 믿는 게 더 나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어이없는 표정으로 풍천을 바라보던 청의인의 눈빛이 잘게 흔들렸다.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약속, 지켜줄 수 있는가?”

 

“천하에서 가장 약속을 잘 지키는 해결사가 바로 나요. 그러니 믿고 맡기셔도 되오. 단, 청부금은 쉰 냥에서 한 푼도 깎을 수 없소.”

 

그때 청의인의 뒤를 따라서 절벽을 내려온 갈의인들이 풍천 일행과 청의인을 삼재의 형태로 에워쌌다.

 

그들은 얼굴을 복면으로 가리고 있었는데, 전신에서 일류 이상의 고수만이 지닐 수 있는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후후후, 뛰어봐야 벼룩이지. 구문위, 그 서신을 내놓아라. 그럼 목숨을 살려주마.”

 

세 갈의인 중 키가 제일 큰 자가 조소를 지으며 말한 순간, 풍천이 홱 고개를 돌려 그를 째려보았다.

 

“뭐하는 짓이지? 지금 내 일을 방해하겠다는 거야?”

 

“뭐, 뭐야?”

 

“이 사람은 나에게 먼저 청부를 했어. 그러니 당신은 이 사람이 내 조건을 거부할 때까지 기다려.”

 

“뭐 이런 미친놈이……!”

 

갈의인은 눈을 치켜뜨고 검을 쥐었다.

 

풍천은 그의 반응에 눈곱만큼의 신경도 쓰지 않고 고개를 돌려 청의인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하겠소?”

 

구문위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이 든 그는 그 일에 겸해서 한 가지 청부를 더했다.

 

“좋소. 청부를 하겠소. 그리고 만약 저 셋을 죽여준다면 대가를 더 주겠소.”

 

풍천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즉시 대가를 말했다.

 

“시체 처리 비용은 한 구당 은자 백 냥. 셋이니까 삼백 냥이군요. 금액이 너무 커서 돈이 모자라다면 나머지는 외상으로 해줄 수도 있소.”

 

구문위는 자신도 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차피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 무슨 짓인들 못 하랴.

 

“좋소. 당신의 조건을 승낙하겠소.”

 

풍천은 먼저 서신을 받아들었다.

 

그걸 보고는 포위하고 있던 세 갈의인이 살을 에는 살기를 흘리며 거리를 좁혔다.

 

“죽고 싶다면 전부 죽여주마!”

 

그때였다. 풍천이 쌍무혼을 바라보며 이마를 좁혔다.

 

“뭐하는 거요? 청부를 맡았으면 빨리 처리해야죠?”

 

갈의인들이 지척까지 가까워진 상황. 쌍무혼은 무기를 뽑아들고 앞으로 나섰다.

 

동시에 갈의인 둘이 땅을 박차고 쌍무혼을 공격했다.

 

상대가 공격한 이상 선택은 하나뿐. 쌍무혼은 무심한 눈으로 갈의인들을 쳐다보며 도검을 휘둘렀다.

 

쩌저저정!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콩 볶듯이 울리고, 갈의인들의 공세가 철벽에 막힌 것처럼 더 이상 전진을 하지 못했다.

 

두어 수 만에 갈의인들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자, 수장으로 보이던 자가 가세했다.

 

그러나 그가 가세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오히려 적이 한 사람 더 늘어나자 쌍무혼의 도검에서 뻗어 나가는 기운이 더욱 강해졌다.

 

그렇게 사오 초가 지날 때였다.

 

쩌저저정! 서걱, 서걱!

 

골육이 잘리는 소리와 함께 피가 뿜어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쌍무혼은 불필요한 소리를 최대한 줄인 채 갈의인들을 염라대왕 앞으로 보내고 도검을 회수했다.

 

“그럭저럭 밥값은 하겠군.”

 

풍천은 쌍무혼에 대한 평을 간단하게 내리고는, 넋이 반쯤 빠진 구문위를 바라보았다.

 

“가시죠.”

 

구문위는 어이가 없었다.

 

그의 별호는 추혼검객(追魂劍客). 강호에서 일류 고수로 이름을 날린 지 어언 십 년이 넘은 터였다. 그런 자신을 위기로 몰아갔던 자들이 저리도 쉽게 죽다니.

 

‘이자들은 누구지?’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것은 아닐까?

 

걱정이 태산 같은 그를 풍천이 재촉했다.

 

“나도 바쁜 사람이오. 여기서 계산하고 헤어지고 싶다면 그렇게 하쇼.”

 

구문위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몸이 안 좋으니 이현까지 호위를 부탁하겠소.”

 

 

 

이현까지 가는 동안 풍천이 물어보았다.

 

“이건 청부와 상관없는 이야긴데, 저들이 누군지 아쇼?”

 

그가 구문위에게 억지 청부를 받은 것은 꼭 돈 때문만이 아니었다. 갈의인들이 백마사에서 종화선사 등을 암습하려 했던 자들과 같은 세력의 무사들처럼 보인 것이다.

 

“그에 대해선 함부로 말할 수 없으니 소협이 이해하시오.”

 

“아, 소협이라고 부르지 마쇼. 저는 협사가 아니라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일을 해결해주는 해결사니까. 단 죄 없는 자를 해치거나, 도둑질하거나, 남의 것을 강제로 뺏거나, 힘없는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 해결사죠. 물론 약속은 칼처럼 정확하게 지키고 말입니다. 하, 하. 나중에라도 제 도움이 필요하면 상구의 대원사 오층 석탑 안에 청부할 내용을 적어서 넣으쇼. 싸게 해드릴 테니까.”

 

구문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음만 옮겼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자는 악인일까, 선인일까?

 

 

 

4

 

 

 

이현에 도착한 구문위는 품속의 은자를 다 털어서 풍천에게 내밀었다.

 

모두 은자 칠십 냥. 이백팔십 냥이 모자랐다.

 

“나는 강호 친구들이 추혼검객이라 불러주는 구문위요. 언제 허창의 대정문으로 오시면 나머지 금액을 드리리다.”

 

풍천도 구문위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가 대정문 사람이라는 것도. 그래서 외상 청부를 서슴없이 받은 것이었다.

 

서신을 건네준 풍천은 흔쾌히 대답하고 포권을 취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그럼 이만.”

 

그리고 헤어지는 김에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여기서 풍운보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죠?”

 

구문위가 움찔하며 되물었다.

 

“풍운보에는 무슨 일로……?”

 

“그곳에 볼일이 있어서 말이죠. 누굴 좀 만나야 하거든요.”

 

“누굴 만나려는 거요?”

 

왠지 긴장된 표정. 풍천은 구문위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구문위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를 지그시 악물고 말했다.

 

“내가 가진 서신의 최종 목적지가 바로 풍운보요.”

 

“음? 그럼 왜 서신을 선동객잔의 왕이에게 전하라고 한 거죠?”

 

“그때만 해도 내가 갈 수 없는 상황이었잖소. 그래서 서신 전달을 그에게 맡기려 했던 거요.”

 

“그럼 차라리 처음부터 풍운보에 전하라고 하시지.”

 

그 말에 쌍무혼이 슬쩍 풍천을 흘겨보았다.

 

‘적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중요한 서신을 어떻게 맡겨?’

 

‘쯔쯔쯔, 역시 아직은 어리군.’

 

구문위는 차마 그렇게 말하진 못하고 대충 얼버무렸다.

 

“원래부터 내가 못 가면 그가 가기로 되어 있었소.”

 

“그럼 어떡할 거요? 바로 풍운보로 갈 거요, 아니면 왕이를 만날 거요?”

 

구문위는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시가 급한 상황. 왕이를 만나는 시간도 아까웠다.

 

“풍운보로 갑시다.”

 

 

 

풍운보는 이현에서 이십오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런데 정문이 이백여 장 남았을 때쯤 풍천이 풍운보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여기서도 뭔 일이 벌어진 것 같은데?”

 

정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위사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안쪽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일반적인 소리가 아니었다.

 

벼락이 떨어진 듯, 화탄이 터진 듯, 간간히 터져 나오는 굉음. 그것은 절정고수들이 싸우는 소리였다.

 

구문위가 그 소리를 듣더니 창백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협, 놈들이 쳐들어온 것 같소.”

 

‘놈들?’

 

누군지 물어볼 것도 없었다. 용문석굴에서 만났던 자들과 한패일 게 분명했다.

 

“귀하는 바로 들어오지 말고 눈치 봐서 움직이쇼.”

 

구문위가 서신을 다시 풍천에게 넘겨주었다.

 

“이걸 보주께 전해주시오.”

 

“그러죠. 아 정말, 요즘은 편히 쉴 틈이 없군.”

 

풍천은 투덜거리며 쌍무혼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쌍무혼은 별다른 말이 없는데도 코가 꿰인 말처럼 풍천을 따라 몸을 날렸다.

 

‘돌려보내지 않길 잘했군. 안 그랬으면 나만 더 고생했을 텐데.’

 

풍천은 자신의 현명한 판단에 만족하며 풍운보를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지붕을 타넘으며 후원으로 간 풍천은 상황을 살펴보았다.

 

복면인 이십여 명 중 십여 명이 다섯 명을 포위공격하고 있었다. 그들의 주위로는 풍운보 무사로 보이는 자들이 있었는데, 싸움이 워낙 격렬한 데다 복면인 십여 명이 접근을 막고 있어서 끼어들 생각도 못 하는 상태였다.

 

공격을 받고 있는 다섯 중 풍천이 아는 사람은 셋. 서문결과 팽조, 그리고 공각이었다.

 

나머지 둘은 처음 보는 자들이었는데, 그들 역시 완숙한 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고수들이었다.

 

문제는 복면인들도 나름 고수라는 소리를 들을 만한 실력을 지닌 자들이라는 것이었다. 특히나 그들 중 두엇은 서문결이나 공각에 비해서도 약하지 않았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다섯 사람 모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전체적으로 복면인들이 유리한 상황. 이대로 가면 희생자가 나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안녕들 하셨수!”

 

풍천은 일단 인사를 건네며 후원으로 뛰어내렸다.

 

복면인 대여섯 명이 그의 인사에 반응을 보이며 멈칫거렸다.

 

어떤 미친놈이 이 와중에 저런 식으로 인사를 한단 말인가?

 

마치 그런 눈빛이었다.

 

어쨌든 그 정도면 인사를 한 효과는 충분히 거둔 셈. 풍천은 또 다른 효과를 바라며 쌍무혼에게 소리쳤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죽여버리쇼!”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다는 듯, 뒤따라 내려온 쌍무혼은 망설이지 않고 복면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복면인들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풍천과 쌍무혼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이 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 없었다.

 

쌍무혼은 풍천의 말대로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복면인들을 몰아붙였다. 그리고 그 결과로 몇 번의 격돌 끝에 복면인 셋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순식간에 상황이 묘하게 변했다. 복면인들은 흔들린 눈빛을 감추지 못하고 전력을 다해서 쌍무혼을 견제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마침내 풍천이 묵전검을 뽑아들고 나선 것이다.

 

“공각 스님,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나눕시다! 계산이 복잡할 것 같으니까!”

 

서문결과 팽조는 풍천이 왔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았다.

 

말하는 게 조금 건방져서 그렇지 실력만큼은 최고인 풍천이었다. 지금은 예의 바른 사람보다 실력 뛰어난 사람이 더 필요한 상황. 풍천의 건방 정도는 문제 될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계산이 복잡하다는 말은 또 무슨 소릴까?

 

어쨌든 상관없었다. 그것은 나중에 물어보면 될 일.

 

떠더덩!

 

서문결은 상대를 몰아쳐서 두어 걸음 물러서게 하고 풍천을 향해 소리쳤다.

 

“바깥부터 정리해주게!”

 

풍천은 그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단숨에 복면인 둘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다른 먹이를 향해 움직였다.

 

유령 같은 그의 움직임은 복면인들을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크억!”

 

“조심…… 헉”

 

그가 스쳐가는 곳에서는 여지없이 피가 튀고, 억눌린 신음과 함께 복면인이 쓰러졌다.

 

아무리 외곽 쪽의 복면인들이 안쪽에 있는 자들보다 약하다 해도, 그 광경은 복면인들의 가슴을 섬뜩하게 만들고도 남았다.

 

공각과 다른 두 사람도 복면인들이 흔들린 틈을 놓치지 않고 전력을 다해 반격했다.

 

그들이 상대하는 자들은 다른 복면인에 비해 월등히 강했다. 더구나 다른 자들이 틈만 보이면 합공을 하는 판이어서 공각과 두 사람은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이제는 복면인들도 합공할 인원이 못 되는 상황. 일대일이라면 해볼 만했다.

 

“아미타불, 하늘이 이 땡초의 목을 원하지 않는 것 같소이다 그려!”

 

일성을 내지른 공각은 반야대금강장과 백보신권으로 상대의 검을 막으면서 틈틈이 반격을 노렸다.

 

다른 두 사람도 전력을 다한 공격을 펼치며 더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순식간에 외곽이 무너진 데 이어서 안쪽에서도 반격이 거세지자, 복면인들도 더 견디지 못하고 물러서기 시작했다.

 

풍천은 물러서는 적이라 해서 가만 놔두지 않았다. 하나가 쓰러지면 하나가 줄어드는 법. 기회가 왔을 때 하나라도 더 쓰러뜨려야 했다.

 

“어딜 가? 오고 가는 게 당신들 자유인 줄 알아?”

 

그런데 그가 다섯 명째 적을 쓰러뜨렸을 때였다.

 

“이노오오옴!”

 

공각과 팽팽한 접전을 벌이던 흑의복면인이 노성을 내지르면서 풍천을 향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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