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2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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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215화
215화
선자불래(善者不來) 내자불선(來者不善)이라 했던가.
이 밤중에 섬뜩한 기운을 흘리며 찾아오는 불청객이 선객(善客)일 리는 없는 일.
풍천은 다가오는 기운의 흐름을 살피면서 방문 옆의 기둥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딱.
지풍이 기둥을 두들긴 소리가 난 직후 방 안에서의 대화가 끊겼다.
그 사이 아홉 명이 바람과 함께 담장을 넘어왔다.
방 안에 있는 세 사람만은 못해도 능히 고수라 불릴 수 있을 만큼 강하게 느껴지는 자들이었는데, 눈 밑을 복면으로 가리고 있었다.
그들은 두 패로 갈라져서 넷은 건물 뒤로 돌아가고, 다섯은 정면으로 접근했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수염이 가슴까지 늘어진 노승이 모습을 보였다.
“나무아미타불. 뉘신데 야밤에 빈승을 찾아오셨소?”
복면인들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곧장 노승을 향해 쇄도했다.
동시에 방 안에서 두 사람이 튀어나오며 무기를 빼들었다.
“악적들이 마침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두 사람은 사십 대 중반 정도로 보였는데, 한 사람은 검을 들고, 한 사람은 도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복면인들을 향해서 한 걸음에 이삼 장씩 성큼성큼 나아갔다.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벽이 밀려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위세였다.
“죽여라.”
다섯 명의 복면인 중 가운데 서 있던 자가 짧게 명령을 내렸다. 좌우의 복면인 넷이 땅을 박차고 두 중년인을 공격했다.
찰나 간에 침입자 다섯과 방에서 나온 두 중년인이 뒤엉켰다.
쩌저저정! 떠더덩!
폭음에 가까운 격돌음이 어둠에 묻힌 백마사를 뒤흔들었다.
한편, 풍천은 유령처럼 움직여서 노승 근처로 다가갔다.
조금 전의 대화로 봐서 노승이 바로 백마사의 주지인 종화선사인 듯했다. 풍천으로선 다른 사람이 모두 죽더라도 그만은 보호해야 했다.
그런데 그가 장소를 옮김과 동시였다.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선방의 뒤쪽 창문이 부서지며 복면인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종화선사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몸을 돌리며 뒷짐 진 손을 풀어 앞으로 향했다.
그 사이 거리를 좁힌 복면인들 중 둘이 종화선사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며 검을 뻗었다.
“갈!”
휘리릭.
대갈을 터트린 종화선사는 승포의 넓은 소맷자락을 휘저어서 두 사람의 검을 휘감았다.
공력이 주입되어서 철판처럼 강해진 승포는 검기에도 잘리지 않고 검의 진로를 틀어서 서로의 검을 엉키게 만들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이화접목(移花接木)의 수법.
하지만 방으로 들어선 자들 역시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그들은 넷이나 되었다.
두 복면인의 검을 제어하는 대신 종화선사 역시 움직임에 제한을 받고 있는 상태. 다른 두 복면인이 찰나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섬전처럼 달려들었다.
한 사람은 신월처럼 휘어진 칼을 들고 있었고, 한 사람은 무기를 들지 않고 주먹을 움켜쥔 상태였다.
종화선사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두 손을 휘둘러서 소매에 감긴 검을 털어냈다. 그리고 눈 한 번 깜박일 사이의 틈을 이용해서 쌍장을 휘둘렀다.
쏴아아아아!
파도치는 소리와 함께 천수만불장(千手萬佛掌)의 강맹한 장력이 철벽처럼 앞을 차단했다.
떠더더덩!
둔중한 굉음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 충격에 종화선사의 몸이 뒤로 일 장가량 밀려나고, 두 복면인 역시 뒤로 서너 걸음을 물러선 뒤에 겨우 몸을 세웠다.
그 순간, 처음에 공격했던 복면인들이 밀려나는 종화선사를 향해 검을 뻗었다.
미처 중심을 잡지 못한 종화선사는 옆으로 몸을 빙글 돌리며 소맷자락을 휘저었다.
이번에는 두 사람도 쉽게 당하지 않았다. 그들은 승포에 휘말리면 안 된다는 걸 알기에 철저히 승포를 피해서 검을 내질렀다.
두 자루 검이 교묘하게 승포 사이를 뚫고 종화선사의 가슴과 어깨를 노렸다.
종화선사의 표정이 굳어진 바로 그 순간.
퍽!
갑자기 둔탁한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종화선사의 가슴을 향해 검을 내지르던 자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천수만불장에 밀려났던 두 사람은 종화선사를 공격하려다가 난데없는 상황에 주춤거렸다.
바로 그때, 어두컴컴한 허공에서 검이 불쑥 튀어나왔다.
“헉!”
“누가……?”
대경한 두 사람은 튕기듯이 뒤로 물러서며 도와 권을 휘둘렀다.
도기와 권풍이 코앞까지 다가온 검을 휘감았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빠르게 반응했어도 풍천의 눈에는 굼벵이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묵전검에 살기를 담아 펼친 비월탄의 일검은 그들이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서걱.
멈칫했던 자들 중 도를 든 자의 목이 쩍 갈라졌다.
묵전검은 복면인의 목을 자르고 옆으로 번개처럼 흘렀다. 비월탄이 낙성천류검의 낙성비류로 이어진 것이다.
주먹을 휘두르던 자는 철갑으로 만든 팔목보호대에 공력을 주입해서 풍천의 검을 막았다.
그러나 묵전검의 위력은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쩡, 서걱.
팔목이 보호대와 함께 잘려나가고, 복면인의 입에서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크억!”
동시에 묵전검이 그의 이마를 갈라버리자, 복면인은 눈을 뜬 채 지옥으로 달려갔다.
복면인들은 동료 셋이 순식간에 쓰러진 것을 보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반면 방에서 나온 두 중년인은 후면의 위협이 사라졌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져서 공수가 안정되었다.
종화선사 역시 상대가 넷에서 한 사람으로 줄어들자 한순간에 승기를 잡았다.
일단 종화선사를 도와준 풍천은 한쪽으로 물러나서 상황을 살펴보았다.
도를 든 중년인이 복면인 둘을, 검을 든 중년인이 셋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들의 격전으로 인해서 잠깐 사이 방장원의 앞마당은 태풍에 휩쓸린 것처럼 난장판이 된 상태였다.
팽팽한 접전.
복면인들도 강했지만, 두 중년인의 무위는 풍천조차 감탄할 정도로 대단했다. 특히 혼자서 셋을 상대하고 있는 중년인은 절대의 경지에 근접한 무위여서 마치 상관경의를 보는 듯했다.
‘누군지 몰라도 제법인데?’
그때 문득 ‘서문 시주’라 불렀던 종화선사의 말이 떠올랐다. 그가 아는 한, ‘서문’이라는 성을 쓰는 사람 중 검으로 절대지경에 근접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설마 저자가 오제 중 하나인 검제(劍帝) 서문결?’
풍천은 새삼스런 눈으로 검을 쓰는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북검왕 독고현과 신검무제 백무천에 비견되는 검의 고수가 바로 그인 것이다. 무당파와 화산파, 남궁세가 등 검의 명문이 다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들 셋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검의 고수는 중원을 통틀어도 열을 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가 살펴보는 사이, 서문결이 한 사람을 몰아붙이며 코웃음 쳤다.
“흥! 이제 보니 상주원, 그대였구나! 천외천의 개!”
그자는 복면인들 중 가장 강한 자였는데, 서문결이 그의 무공을 통해서 정체를 알아낸 듯했다.
바로 그때, 종화선사의 천수만불장이 복면인의 가슴을 연속적으로 두들겼다.
퍼벅!
“크어억.”
억눌린 신음을 내지른 복면인은 눈을 홉뜬 채 이 장 밖으로 나가떨어져 널브러졌다.
종화선사는 숨 고를 새도 없이,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는 풍천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시주, 도와주려거든 끝까지 도와주시게나.”
풍천에게 도움을 청한 그는 풍천이 당연히 도와줄 거라 여겼는지 대답도 듣지 않고 서문결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최소한 은자 백 냥짜리인데, 청부금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풍천은 그 와중에도 청부금을 계산하고는 격전이 벌어지는 곳으로 훌쩍 몸을 날렸다.
그 즈음, 서문결의 검에서 시퍼런 검강이 뻗어 나왔다.
“조심해!”
상주원이라 불린 자가 그걸 보더니 대경해서 소리쳤다.
하지만 미처 대응할 틈도 없이, 두 자가량 쭉 뻗어 나온 검강이 세 복면인 중 하나의 가슴을 뚫었다.
“커억!”
쩍 갈라진 가슴에서 솟구치는 피 분수!
상주원이라 불렸던 자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생각했는지 복면인들을 향해 소리치며 뒤로 주욱 물러났다.
“물러서라!”
겨우 버티던 복면인들도 기다렸다는 듯 뒤로 몸을 뺐다.
서문결과 도를 든 중년인은 물러서는 적을 향해 쇄도하며 검과 도를 휘둘렀다.
“어딜 도망가느냐, 상주원!”
상주원은 이를 갈며 담장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아홉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성공할 것 같았다. 갑자기 엉뚱한 놈이 튀어나와서 세 사람을 쓰러뜨리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저 젊은 놈만 아니었어도……!’
바로 그 순간, 풍천이 유령처럼 그의 머리 위를 덮쳤다.
“가려거든 머리는 놔두고 가쇼.”
막 담장을 넘어가려던 상주원은 흠칫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찰나, 한 줄기 검은 번개가 어둠 속에서 내리꽂혔다. 낙성천류검 중 낙성단혼이 펼쳐진 것이다.
대경한 상주원은 반사적으로 손에 든 검을 휘둘렀다.
쾅!
검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폭음처럼 울렸다.
상주원은 손목에서 시작된 진동이 온몸을 울리자, 더 이상 날아가지 못하고 화살 맞은 기러기처럼 담장 위로 떨어졌다.
직후, 풍천의 묵전검에서 묵광이 쏟아졌다.
비월신검 삼초 중 가장 강한 비월광이었다.
상주원은 안간힘을 다해서 피했지만, 묵광은 눈이 달린 것처럼 그를 쫓아가며 심장을 꿰뚫었다.
“크억!”
비명을 지르며 가슴을 움켜쥔 상주원은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서다 그대로 무너졌다.
풍천은 그를 더 보지 않고, 방향을 틀어서 바로 뒤따라오는 복면인의 앞을 막아섰다.
복면인들은 상주원이 형편없는 모습으로 떨어지는 걸 볼 때부터 앞이 암담했다.
그들은 풍천에 맞서지 않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그들의 뒤를 쫓는 사람들은 검제와 그에 필적하는 고수들이었다.
풍천이 손쓸 것도 없이 그들에게 막힌 세 명의 복면인은 오 초를 견디지 못하고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여기저기서 달려 나온 백마사의 스님들이 뒷정리를 하는 사이, 종화선사를 비롯한 세 사람은 풍천을 에워싸고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소협은 누군가?”
서문결의 질문에 풍천은 자신의 본명을 순순히 밝혔다.
“풍천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무슨 일로 왔지?”
“방장스님께 뭘 좀 물어볼 게 있어서 왔죠.”
“저들이 누군지 아나?”
“정확한 정체는 모르지만, 어느 곳의 사주를 받은 자들인지는 알 것 같군요.”
“천하에서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자들이네. 자네가 어떻게 알지?”
“알 만하니까 안다고 하죠. 좀 전에 소림의 공각 스님에 대해서 말씀하시던데, 그분에게 제 이름을 대면 의심이 풀릴 겁니다.”
종화선사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시주가 공각은 어떻게 아는가?”
“작년 여름에 그 양반을 소림에서 나오게 만든 사람이 바로 저거든요.”
갑자기 질문이 그쳤다.
설마 풍천이 공각을 소림에서 나오게 만든 사람일 줄이야.
다른 거야 대충 핑계를 댄 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공각이 소림에서 작년 여름에 나온 것을 아는 사람은 강호에 거의 없다.
‘저 친구의 말을 믿어야 하나?’
서문결이 인상을 구겼다 폈다 반복하며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중년인이 질문했다.
“방장스님께 뭘 물어보려고 왔나?”
그는 광천도(光天刀)라 불리는 팽조로 하북 팽가의 사람이었다.
계속된 질문에 슬슬 짜증이 난 풍천은 툭 쏘듯이 대답했다.
“그거야 개인적인 사정이니 답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서문결과 팽조는 지금껏 풍천 같은 태도의 청년을 상대해본 적이 없었다. 강호의 젊은이들 대부분이 검제와 광천도의 이름 앞에서는 자세부터 바로 했으니까.
하지만 두 사람은 화를 내지도 못한 채 풍천을 노려보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