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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213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2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213화

 

213화

 

 

 

 

 

 

“공손선우에 대한 것은 일부분밖에 못 알아냈습니다.”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그거라도 줘보시오.”

 

장한은 품속에서 꼬깃꼬깃한 종이 네 장이 겹쳐진 뭉치를 꺼내 내밀었다.

 

풍천은 종이를 펴고 내용을 읽어보았다. 장한 말대로 공손선우의 평범한 일상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가 두 장을 읽고 석 장째 읽으려 할 때 장한이 말했다.

 

“다른 청부는 다행히 완수했습니다요.”

 

‘다른 청부?’

 

움찔한 풍천은 눈을 들어 장한을 바라보았다.

 

그는 공손선우에 대한 것 외에 두 가지 청부를 더했다. 그중 하나는 대원사에 편지를 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모에 관한 것이었다.

 

완수했다면 그림의 장소도 알아냈다는 말.

 

수천 마리 말이 대지를 박차고 달려가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입을 여는데 목소리가 저절로 떨렸다.

 

“말해……보시오.”

 

“그림과 비슷한 장소가 몇 군데 있긴 합니다만, 그중 세 가지 특징과 완벽히 일치하는 곳은 오직 한 군뎁니다.”

 

‘어디냐니까!’

 

풍천은 장한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장한은 숨이 턱 막히고 온몸이 떨려서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 그, 그곳은…….”

 

‘후으으으읍.’

 

풍천은 숨을 길게 들이쉬어서 답답한 가슴을 진정시켰다.

 

“자, 자. 아무 걱정 말고 말해보시오. 어디요?”

 

“나, 낙양 백마사(白馬寺)입니다.”

 

 

 

4

 

 

 

묵천단의 주인인 용사정은 밖에서 죽은 두 남녀의 주검을 보고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단 일 초에 당했다. 방 안에서 당한 정유도 별다른 반항을 해보지 못했고.’

 

움켜쥔 주먹 안에 땀이 고였다.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

 

단지 일 초에 당한 것뿐이라면 이토록 긴장할 이유가 없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하들을 죽인 그 ‘일 초’의 상흔이었다.

 

‘누가…… 누가 이토록 무서운 검을 펼친 것인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상흔. 하지만 그 평범한 상흔이 그에게 많은 말을 전해주고 있었다.

 

마치 검을 쓴 자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상흔을 남긴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그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아직은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귀에 들릴 것이었다. 그때가 언제냐는 걸 모를 뿐.

 

‘후우우우우우.’

 

남몰래 숨을 천천히 들이쉰 용사정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수하에게 물었다.

 

“놈을 본 사람은?”

 

좌측에 서 있던 장한이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

 

“아직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단주.”

 

“시신을 조심스럽게 챙겨라. 이조와 삼조만 남아서 놈의 흔적을 찾고 나머지는 철수한다.”

 

“예, 단주.”

 

“그리고 누구에게도…… 이 두 사람이 일 초에 당했다는 말을 하지 마라.”

 

장한은 그 말에 슬쩍 고개를 쳐들었다.

 

‘묵천단원으로서의 자존심을 마지막까지 지켜주겠다는 뜻인가?’

 

그는 용사정의 말뜻을 그렇게 이해하고 비감 어린 표정으로 답했다.

 

“알겠습니다, 단주.”

 

 

 

교비은은 보던 서류를 덮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앞에는 검은 수염이 멋지게 턱을 덮은 중년인이 마주 앉아 있었다.

 

“수하들이 모두 죽었단 말이오?”

 

“그렇소, 총사.”

 

교비은은 가슴이 서늘하게 식었다.

 

공손선우의 뒤를 캐는 자를 발견하고 뒤를 쫓아서 하오문 회남 분타를 찾아냈다.

 

하오문은 정보를 사고파는 자들. 처음에는 그들이 정보를 팔기 위해서 공손선우의 뒤를 캔 줄 알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그 일을 청부한 자가 따로 있다지 않는가.

 

그는 청부자를 잡아서 공손선우에게 선물을 하려 했다. 공손선우는 차기 천외천의 주인. 잘 보여서 나쁠 게 없는 것이다.

 

그런데 청부자를 잡기는커녕 묵천단 단원 셋이 모두 죽어버리다니.

 

‘아무래도 기분이 안 좋아.’

 

하지만 그는 조금도 내색을 하지 않고, 오히려 용사정을 다그쳤다.

 

“내가 묵천을 너무 믿었나 보구려. 셋이면 충분하다 해서 감시조도 가동시키지 않았거늘.”

 

용사정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 그는 모욕을 꾹 참고 고개를 숙였다.

 

“우리도 그놈이 그렇게 독하고 강할 줄 미처 몰랐소이다, 총사.”

 

“놈의 정체는 알아냈소?”

 

“지금 다루 인근을 조사 중이오. 철저히 조사해보면 놈을 본 사람이 있을 것이오.”

 

합비에서 청부를 받았다는 것, 바람을 찾는 자에게 정보를 건네려 했다는 것. 회남 분타 놈들도 그것밖에 모르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득실거리는 회남에서 놈을 본 자를 찾는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교비은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합비로 사람을 보내시오. 놈에게 직접 청부받은 자를 잡으면 대충이나마 알 수 있을 거요.”

 

“알겠소.”

 

 

 

교비은의 방을 나온 용사정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교비은에게 모든 것을 다 말하지 않았다. 그러잖아도 묵천단을 우습게 여기는 교활한 구렁이가 그 사실을 알면 더욱더 기고만장할 테니까.

 

‘교비은, 다른 것은 다 괜찮다만, 묵천의 명예만은 짓밟지 마라.’

 

이를 지그시 악문 그는 천외천 간부들의 거처인 백련원을 나왔다.

 

오늘따라 걷고 싶었다.

 

그런데 가산을 지나 연무장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을 때였다.

 

저만치에서 다가오는 자가 보였다.

 

키가 제법 큰 청년이었는데, 뭐가 그리 불만인지 연신 투덜거리고 있었다.

 

“지미, 두 번 봤으면 기억해야지. 왜 그렇게 처음 본 사람처럼 꼬치꼬치 캐물어? 그러니 나이 서른이 넘어서도 위사밖에 못 하지.”

 

적련방 내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이곳에서 누가 함부로 입을 놀린단 말인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친군가 보군.’

 

그런데 그가 빤히 바라보고 있자, 다가오던 키 큰 청년이 멈칫하며 물었다.

 

“응? 귀하는 누구신데 사람을 그렇게 빤히 보시는 거요?”

 

“나는 용사정이라 하네. 그러는 자넨 누군가?”

 

‘용사정이라면…… 묵천단주?’

 

풍천은 가슴이 뜨끔했지만 태연히 대답했다.

 

“저는 신검문의 풍천이라는 사람입죠.”

 

“신검문의 풍천? 그런데 왜 그렇게 투덜대지?”

 

“문지기가 저를 두 번이나 봤거든요. 그런데 밖에 좀 나가려고 했더니 누구냐면서 꼬치꼬치 캐묻지 뭡니까.”

 

“어딜 가려고 했는데 그러나?”

 

방구석에 처박혀 있으니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강가에 가서 소리라도 질러보고 싶었다. 적련방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가는 다들 미친놈이라 할 게 뻔하니까.

 

그런데 용사정의 말을 들으니 문득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술 한잔 마시고 싶어서 나가려고 했거든요. 거 왜, 마음이 답답할 때 술 한잔 마시면 답답한 기분이 다 풀어진다잖아요.”

 

그 말을 듣자 용사정도 갑자기 술 생각이 났다.

 

술 상대가 조금 맹한 구석이 있어 보이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과 술 마시며 가슴에 쌓인 찌꺼기를 털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술 마시려면 아무래도 대작할 사람이 있어야 할 텐데, 나하고 함께 가지 않겠나? 술은 내가 사지.”

 

“정말입니까?”

 

“가세.”

 

 

 

잠시 후.

 

주루를 찾아간 용사정과 풍천은 별말도 없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술 한 병을 비웠다.

 

그들의 입이 열린 것은 술 한 병이 깨끗하게 비워진 후였다.

 

“어이, 여기 한 병 더!”

 

풍천이 술을 더 시키자, 빈 잔을 앞에 놓고 앉아 있던 용사정이 먼저 물었다.

 

“자넨 뭐가 그리 답답해서 이 밤중에 술을 마시려고 나온 건가?”

 

“그게 말이죠. 제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거든요? 근데 그 여자 집안에 요즘 힘든 일이 닥쳐서 제가 도와줘야 돼요. 문제는 그게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거죠. 이러다 장가도 못 가고 일만 하다 늙는 거 아닐지 몰라서 답답해 죽겠어요. 용 대협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거 쉽지 않은 문제군. 그래도 나 같으면 일단 혼인부터 하고 보겠네. 도와주는 거야 혼인을 한 다음에 도와줘도 되는 것 아닌가?”

 

“만약 여자 쪽 집안에서 어려움이 끝나기 전까지 혼인시킬 수 없다고 하면요?”

 

“혹시 자네를 이용만 하고 버릴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것 아닌가?”

 

“뭐 그런 것도 없는 건 아니죠.”

 

“그럼 확실하게 담판을 짓게. 만약 약조를 안 해준다면 도와줄 수 없다고 말이야.”

 

“그래도 안 된다고 하면요?”

 

“그런 약조도 안 해주는 집안을 어떻게 믿겠나? 자네도 못 한다고 해.”

 

풍천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번 말해봐야겠군요.”

 

마침 점소이가 술을 가져왔다. 풍천은 용사정의 빈 잔에 술을 따라주고 다른 고민을 털어놓았다.

 

“용 대협은 부모님의 모습을 아세요?”

 

“당연히 알지. 왜? 자넨 모르나?”

 

“어렴풋이 기억은 나는데 정확한 모습을 잘 모르겠습니다.”

 

“저런, 어릴 때 부모님을 잃었나 보군.”

 

“만약에 말이죠. 잃은 것이 아니라…… 버림을 받았다면, 그리고 다시는 찾아오지 못하게 하셨다면, 그래도 찾아가야 할까요?”

 

용사정은 묵묵히 풍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술잔을 목구멍에 털어 넣더니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

 

“설령 자네 부모님이 자네에게 그렇게 하셨더라도 미워하지 말게. 그만한 사정이 있으니 그런 것 아니겠나?”

 

“저도 미워할 마음은 없습니다. 그냥 한번 보고 싶은 거죠.”

 

“그럼 가서 보게. 제정신이 아닌 이상, 세상 어느 부모도 자식이 미워서 멀리하는 사람은 없다네. 혹시 아나? 매일 지극정성으로 하늘에 빌며 자네가 찾아오기를 바라고 계실지.”

 

“그게 낫겠죠?”

 

“물론이네. 자, 술 한 잔 하게.”

 

풍천은 술을 받아서 단숨에 마셨다.

 

‘그래, 가서 찾아보자. 정 싫어하시면 그냥 오지 뭐.’

 

어린아이를 데리고 걸어서 놀러갔다면, 낙양 백마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곳에 가서 기억을 더듬으면 집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막상 부모님에 대한 단서가 나오자 갈등이 일었다.

 

부모님은 자신의 기억을 봉인해서 과거를 찾지 못하도록 했다. 결코 평범치 않은 그러한 방법까지 썼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찾아가는 것을 강하게 반대한다는 말. 그래서 찾아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그런데 용사정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망설일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거야. 더 나빠질 것도 없잖아?’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풍천은 보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용사정에게 물었다.

 

“그런데 용 대협도 답답해서 술을 마시는 겁니까?”

 

용사정은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면이 없잖아 있지.”

 

“뭔데요? 어디 말해보세요. 혹시 압니까? 제가 풀어줄 수 있을지.”

 

용사정은 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

 

풍천도 재촉하지 않고 술잔을 비웠다.

 

그렇게 또 한 병의 술이 거의 다 비워질 즈음 용사정이 말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마음을 아나?”

 

“하기 싫은 일을 왜 합니까?”

 

“명령이니까. 하늘의 명령.”

 

“용 대협 정도 되면 마음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군요.”

 

“나도 한때는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지. 그런데 막상 나에게 그런 상황이 닥치니 쉽지 않군.”

 

“그럼 마음에게 물어보세요. 어느 쪽으로 가는 게 좋은지. 그리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세요. 그럼 최소한 나중에 후회는 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마음에게 물어보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라?”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하는 것만큼 괴로운 것도 없죠. 저도 해봐서 아는데, 잘 돼도 기쁘지 않고, 잘못되면 기분이 몇 배로 더럽더라고요. 저는 이제 그런 일은 죽어도 안 할 겁니다.”

 

“젊은 친구가 많은 경험을 해봤나 보군.”

 

“워낙 어렵게 살아서요. 자, 술 한 잔 더 드십쇼.”

 

용사정은 술을 목 안에 털어 넣고 풍천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앞에서 기세에 눌리지 않고 농담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천룡회 전체를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았다.

 

더구나 눈앞에 있는 청년처럼 이십 대 중반의 나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자네가 누군지 정말 궁금하군.”

 

풍천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신검문의 풍천. 지금은 그렇게만 아시죠. 너무 깊게 생각해봐야 골치만 아프니까요.”

 

풍천은 꼬이고 꼬인 세상이 짜증 나는 판에 잘 걸렸다 생각했다. 여차하면 용사정을 제거해서 짜증 나는 기분을 풀 생각마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예상 외로 순진한(?) 면이 있었다. 공손무백과 갈등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제거하는 것보다 놔두는 게 나을 것 같군.’

 

용사정은 풍천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꿈에도 모르고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긴, 지금은 내 앞에 있는 사람만 생각하면 되겠지. 그런데 말이야…… 정말 나와 술을 마시기 위해서 따라온 건가?”

 

“공짜라는 게 더 중요하죠. 만약 저에게 술값을 내라고 했으면 안 왔을 겁니다.”

 

“훗, 하, 하하하. 그래? 좋아, 그럼 오늘은 이런저런 것 다 구석에 처박아놓고 술이나 마시세.”

 

“누구처럼 술 사준다고 해놓고, 술에 취해서 돈 안 내고 그냥 가시기 없깁니다.”

 

“허어, 자네가 당한 일인가? 몹쓸 사람이군. 자, 한 잔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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